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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역사162

사실(事實)을 암기시는게 역사교육인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궁금하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프랑스혁명보다 600년이나 전 고려 신종 1년(1198) 대한민국사 최초의 신분해방운동으로 평가받는 만적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를 비롯한 국어사전에는 만적이 일으키려다 실패한 ‘노비해방운동’을 ‘만적의 난’이라고 표현한다. 자연재해, 생활고, 탐관오리들의 수취 때문에 일어난 저항운동은 조선이나 고려는 물론 삼국시대에서도 분명히 존재했지만, 주동자가 뚜렷하게 신분 해방을 목표로 삼았던 경우는 ‘만적의 봉기’가 최초이다. 만약 ‘만적의 노비해방운동’이 프랑스에서 일어났다면....? 학자들은 프랑스혁명(1789년)을 ‘근대 민주주의의 문을 연 혁명’이라며 오늘날의 근대 민주주의의 시효로 본다. 그런데 실패하기는 했지만 .. 2022. 9. 27.
이승만이 절대로 국부가 되어서 안 되는 이유 “이제 우리는 무기 휴회 된 공위(共委)가 재개될 기색도 보이지 않으며 통일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케 되지 않으니 남방만이라도 임시 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 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하여야 될 것이니 여러분도 결심하여야 될 것이다. 그리고 민족통일기관 설치에 대하여 지금까지 노력하여 왔으나 이번에는 우리 민족의 대표적 통일기관을 귀경한 후 즉시 설치하게 되었으니 각 지방에 있어서도 중앙의 지시에 순응하여 조직적으로 활동하여 주기 바란다” 미군정기에 이승만이 각지를 순회하는 도중 1946년 6월 3일 전북 정읍에서 '남측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할 것'을 강조하는 내용의 '정읍발언'이다. 그는 1919년 9월에서 1925년까지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맡았지.. 2022. 9. 15.
이승만이 국부요 존경받을 인물인가? 역사 왜곡으로 무얼 얻겠다는 것인가?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는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아마 국민의힘의 뿌리이고 그들이 롤 모델로 삼고 싶다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국민의힘이 국민을 주권자로 알고 헌법을 제대로 공부했다면 이들의 사진을 걸어놓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난 9월 1일 “군사정변을 일으킨 박정희를 ‘따라 배우겠다’는 윤석열...”이라는 주제의 글을 써 여기서는 생략한다. 오늘은 수구세력과 국민의힘이 국부로 추종하겠다는 이승만의 실체에 대해 밝히려 한다. 이승만은 우리 역사에서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될 부끄러운 인물이다. 아니 없었으면 오히려 좋을뻔한 사람이다. 사관도 없이 지식만 배운 사맹(史盲)들은 이승만을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을.. 2022. 9. 7.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냐’ ‘대한민국 수립’인가?(중) 역사 왜곡으로 무얼 얻겠다는 것인가? 아니나 다를까? 정권이 바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념 논쟁이 또다시 시작됐다. 2025년 고교 학점제 전면도입을 위해 시작된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냐’ ‘대한민국 수립이냐’가 역사교과서가 개정될 때마다 쟁점이 되어 왔는데 윤석열 정부가 출범 후 이번에도 예외 없이 뉴라이트를 비롯한 수구언론과 친일의 후예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은 이미 1919년 3·1 운동 뒤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4월 11일 임시헌장이 발표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정 역사 교과서’의 뼈대가 된 2015 개정 교육과정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이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뀌었다. ‘대한민국 수립’이라.. 2022. 9. 5.
군사정변을 일으킨 박정희를 ‘따라 배우겠다’는 윤석열... 윤석열은 어떤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 7년 전인 2015년 양승태 당시 대법원은 ‘긴급조치가 국민에게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정치행위라서 배상책임이 없다’고 판시했다. 마치 1995년 7월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항쟁 유혈진압 등으로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노태우에게 당시 장윤석 부장판사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면죄부를 준 것과 같은 논리다. 7년 후 2022년 8월 30일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 피해자 71명이 낸 국가 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과정은 불법이지만, 결과는 유효하다’는 이전 대법원 판례를 7년 만에 뒤집은 결정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4ㆍ19의거 및 5ㆍ16혁명의 이념을 계승하고...”.. 2022. 9. 1.
광복 77주년 완전한 광복은 언제쯤 가능할까?.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이 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길이 길이 지키세 길이 길이 지키세/2. 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 날을 잊을 건가/다 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 길러 하늘 닿게/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함께 힘써 나가세 함께 힘써 나가세’ (광복절 노래 듣기) 광복절 노래 가사다. 8월 15일은 빼앗겼던 나라를 다시 찾은지 77년째 맞는 광복절이다. 1910~1945년 35년간 나라를 잃고 남의 나라 종살이를 했던 백성들의 삶은 어땠을까? 세월이 지나면 상처의 아픔도 잊히는 것일까? 그런데 해방이 반갑지 않은 무리들이 있다. 해방과 함께 왜놈이나 진배없는 배신자들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했지만 우리는 이름만 바뀐 해방을 .. 2022. 8. 15.
69년 7월 27일 맺은 협정은 정전인가 휴전인가?(상) 69년 전 7월 27일.... 사람들은 이날을 ‘정전’이라고도 하고 ‘휴전’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한반도에서 69년 전 6·25전쟁을 멈춘 것은 휴전인가 정전인가?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서 벌어진 참혹한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3년여 만에 전쟁을 멈춘다. '정전'은, 전쟁 중인 나라들이 전투를 일시적으로 멈추는 것이요, 교전 당사국들이 정치적 합의를 이룰 수 없어 국제적 기관이 개입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휴전'은 국제법상 여전히 전쟁 상태를 의미하지만, 당사국 간의 협상을 통해 전투를 잠시 멈춘 상태를 말한다. 협정문 원문을 보면 ‘Armistice’, 즉 휴전이라고 명시하고 있는 반면 한국어 번역본에는 ‘정전’이라고 했다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 2022. 7. 26.
7·4남북공동성명 50주년 박정희를 다시 생각한다 “법과 원칙대로...” 강자들이 좋아 하는 말이다. 법이란 ‘정의를 실현하려는 목적을 가진 규범’이다. 법은 ‘복수’에서 비롯되었지만, 법의 역사는 ‘복수를 이성적으로 제도화’하는 경로를 따라 진행되었다. 서양의 법과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눈을 가리고 한 손엔 칼을, 다른 손엔 저울을 들고 있다. 여기서 칼은 ‘강제’를, 저울은 ‘갈등하는 이해관계의 균형’을, 눈을 가린 띠는 ‘공평무사’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데 칼을 가진 자가 여신의 한쪽 손을 들어주면 어떻게 되는가? 대한민국의 제 5ㆍ6ㆍ7ㆍ8ㆍ9대 대통령 박정희.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사람은 누구인가? 주권자인가? 아니면 노예가 된 주권자인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주권자가 국민이요.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 2022. 7. 4.
'7·4 남북공동선언'과 박정희의 야망 “조국통일 3대 원칙, 상호 비방·중상 중지 등 긴장상태 완화 및 신뢰 분위기 조성 조치, 다방면적인 제반 교류실시, 남북적십자회담 성사 협조, 서울과 평양 사이에 상설 직통전화 설치, 남북조절위원회 구성·운영, 합의사항의 성실히 이행...”한다는 1972년 7월 4일 정오. 이후락중앙정보부장이 발표한 ’전문과 7개 항의 7·4 남북공동성명‘은 그야말로 충격과 경악 그 자체였습니다. ‘무찌르자 오랑케 몇 해 만인가?...’ 6,25가 되면 이런 노래와 함께 공부하는 중·고등생들을 불러내 반공궐기대회를 열고 반공웅변대회, 반공글짓기, 반공 표어 포스터 공모... 와 행사를 하며 전봇대마다 ‘의심나면 다시 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 어쩌고 하던 광고가 붙어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남학생은 총검술에 여학.. 2022. 7. 2.
오늘은 6·25전쟁 72주년입니다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후렴)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72년 전 오늘.... 1950년 6월 25일부터 휴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 1개월 1,129일 동안 반만년간 함께 살아온 아버지가 아들을, 아들이 아버지를, 형이 동생을, 동생이 형을 향해 죽이고죽은 참혹한 전쟁이 시작된 날입니다. 해마다 이날이 되면 동족간의 적개심을 키우고 분단을 고착화하는 6·25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 가사를 다시 한번 보면서 불러보세요. 아픈 지난날을 잊고 하루빨리 통일을.. 2022. 6. 25.
오늘은 6·15 남북 공동선언 22주년입니다 오늘은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대한민국의 김대중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통해 발표한 6.15 남북공동선언 채택 22주년이다. 남북이 분단된지 72년 동안 남북정상이 합의해 발표한 공동선언만 해도 무려 다섯 번이다.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 ‘2007년 10·4남북공동선언’, ‘2018년 4·27 판문점 선언(4.27 선언)’,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9.19 선언)’ 등이다. 1985년 8월 20인 ~ 26일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이산가족의 고통을 풀어주기 위해 실시한 박정희의 인도적인 배려였는가? 1991년 9월 17일 남·북한은 동시에 각각 유엔 가입..은 남북의 정부가 진정으로 통일을 원해 이루어.. 2022. 6. 15.
오늘은 '한일협정 반대운동'(6·3항쟁) 58주년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오래 걸린 외교. 우리나라 역사에 외국과의 회담에세서 14년이 소요된 회담이 바로 이 한일회담이다. 1951년 10월 20일 예비회담에서 시작되어 7차례 본회의를 거쳐 1965년 6월 22일에 조인될 때까지 무려 14년이나 걸려 타결된 회담이다. 국정교과서 시절에는 ‘한일회담 반대운동’, 6·3항쟁 또는 6·3시위라고도 기록하고 있다. 외국과의 회담에 생뚱맞게 ‘항쟁’이란 이름이 덧붙었는지는 국정교과서가 검인정교과서시대로 바뀌면서부터 겨우 역사의 ‘한일협정 반대운동’이라는 이름을 되찾게 된다. 6월 3일 오늘은 한일협정반대운동((6·3항쟁)이 일어난지 58년째 맞는 날이다. 6·3항쟁은 서울에서 한일회담 반대시위가 최초로 벌어진 1964년 3월 24일부터 비상계엄령이 내려진 6월 .. 2022. 6. 3.
피의 역사... 5·18광주민중항쟁 빛고을 광주를 빼놓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말할 수 없다. 역사는 4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9년 10월 16일부터 부산과 마산 일원에서 터지기 시작한 부마항쟁은 유신의 종말을 재촉하고 있었다. 유신독재 박정희가 김재규 손에 사살당한 후 유신시대 총리였던 최규하가 대통령의 권한대행을 맡고 있었지만,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은 12.12 쿠데타로 군부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정치적인 실세로 등장한다. 이후 1980년 5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는 5·17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사실상 장악했다. 전두환을 비롯한 하나회출신들이 정권을 장악하자 이에 항거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전두환일당들은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한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이렇게 숨죽이며 지켜보고 이을 때 오직 빛고을.. 2022. 5. 17.
5·16은 ‘혁명’이 아니라 ‘군사반란’입니다 “오늘 아침 未明軍府(미명 군부)서 반공혁명” 동아일보는 5월 16일 아침 호외 신문에서 ‘신탁통치오보사건’ 주인공답게 5·16을 이렇게 ‘반공혁명’으로 장식했다. 조선일보는 “군부 무혈쿠데타 완전성공”이라고 제목을 뽑았지만, 부제목은 “16일 하오부터 정식 시무, 혁명완수에 만진”이라고 썼다. “천황폐하만세!”를 불렀던 조선일보는 이렇게 조선일보답게 5·16을 군사반란이 아닌 혁명으로 제목을 뽑았다. “올 것이 왔구나.” 쿠데타소식을 들은 4·19혁명정부 윤보선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자이며 국가원수임에도 불구하고 정통성을 지닌 합법 정부를 수호하지 않았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반란세력들은 예비사단 병력과 포병단, 해병대와 육군 제1공수특전단 등을 동원하여 1961년 5월 16일 새벽 서울을 비.. 2022. 5. 16.
4·19혁명 62주년을 통해 본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1960년 4월 19일... ‘미완의 혁명’ 혹은 ‘4·19의거’로 불리기도 하는 4·19 혁명이 일어난지 벌써 62주년이 됐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 지금은 80세의 노인이 됐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사는 국민들은 4·19혁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우리는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지만 교과서를 통해 배워 알고 있는 역사는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왜....’라는 사건 중심의 지식입니다. 사관(史觀)없이 암기한 지식은 ‘나’의 삶, ‘우리’의 삶을 얼마나 바꿔놓을까요? 사관없는 지식,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맹인모상’(盲人摸象)은 아닐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4·19혁명이란 “1960년 3월 15일 자유당정권의 개표조작애 반발 ‘부정선거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이.. 2022. 4. 19.
국민의힘이 보수정당인가? 우리나라 국민들은 더불어민주당을 진보, 국민의힘은 보수정당이라고 알고 있다. ‘나무위키’는 “국민의힘은 2020년 2월 17일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 등의 보수정당들이 신설 합당하여 중도·보수 세력을 통합한 빅 텐트 정당인 미래통합당이라는 당명으로 창당했다. 21대 총선 이후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흡수하였으며, 김종인 비대위가 주도하는 당 쇄신정책의 일환으로 동년 9월 2일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변경하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나무우;키’는 국민의힘을 “한국 보수진영의 계보를 잇는 적통이라고 할 수 있으며, 1997년 신한국당과 통합민주당의 신설합당을 통해 창당된 한나라당을 당의 공식적인 기원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나무위키’는 “결론적으로 미래통합당 창당 이후를 보자.. 2022. 4. 12.
오늘은 대한민국 탄생 103주년 기념일입니다 “3·1운동 이후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자주독립을 성취하고자 1919년 4월 11일에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임시정부 설립 주체인 임시의정원이 1919년 4월 11일 오전에 「대한민국임시헌장(大韓民國臨時憲章)」을 헌법으로 공표하면서 이때부터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정식으로 채택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에서는 항일 독립운동 정신을 고양시키고 순국선열의 넋을 기리기 위해 애초 4월 13일을 공식적인 기념일로 제정하였다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9년에 4월 11일로 기념일을 변경하였다.” 은 대한민국 생일날인 4월 11일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학교에서 배우지도 들어 본 일도 없는 ... 대한민국의 주인인 백.. 2022. 4. 11.
’나라 이름 바로 부르기 운동‘ 시작합시다(1)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 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헌법 전문과 헌법 제 1조)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제헌헌법 전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제헌헌법 제 1조)”, 1919년 4월 11일 상해임시정부 제헌헌법과 선서문에 “존경하고 경애하는 아이천만 동포 국민이여, 대한민국 원년 삼월일일...”로,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9월 11일 임시헌법에도 똑같이 전문과 1조에 전문과 국호에 대한민국으로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호를 한국이라고 한 단어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일본 제국(황국)의 백성(신민)을 기르는 학교’라는 뜻의 ‘.. 2022. 3. 21.
오늘은 3·1혁명 103주년 기념일입니다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하노라. 이로써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평등의 큰 뜻을 밝히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알려 민족 자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하노라. 반만년 역사의 권위에 기대어 이를 선언함이며, 이천만 민중의 성충을 합하여 이를 널리 밝히며, 민족의 오래도록 변함없을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적 양심이 드러남에 따른 세계 개조의 기회에 따라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이를 제기함이니 이것이 하늘의 뜻이며...” 오늘은 3·1독립운동일 일어난지 103주년이 되는 해이다. 조선 재일 유학생을 중심으로 한 2·8 독립선언의 영향을 받은 3‧1 운동은 고종의 독살설로 인하여 일본의 부당한 조선 점령과 폭력통치에 저항한 민족해방운동이다.. 2022. 3. 1.
‘가쓰라-테프트 밀약’은 재론하지 말라? “한국이 일본에 합병된 이유는 미국이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승인했기 때문”이라며 “결국 일본이 아닌 한반도가 분단돼 (한국)전쟁의 원인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다. 서울 영등포구 중앙당사에서 민주당 이재명후보가 존 오소프 미 민주당 상원의원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나온 얘기를 두고 중앙일보 이훈범기자가 쓴 글제다. 그는 이 글에서 ‘민감한 역사적인 사실을 손님에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식이다. 물론 이 기사는 이재명후보와 윤석열후보의 역사의식을 문제삼은 칼럼이지만 강대국의 과거를 비판하는 것은 ‘운동권식 궤변’이라는 시각이다. 수구언론은 ‘경술국치’를 ‘한일합병’이라고 하고 덮어두는 것이 일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한국 정부에 관한 일제의 통치권을 완전히 .. 2021. 12. 2.
우리가 노태우 죽음을 애도할 수 없는 이유 10·26사태.... 독재자 박정희가 불귀의 객이 된 날, 12·12쿠데타의 주모자 노태우도 갔다. 노태우... 그는 누구인가? 우리 국민이 너무 착해서 그럴까? 아니면 착하기만 해서 그럴까? 박정희와 전두환의 폭압 정치도 세월이 지나면 용서해주고 또 잊고, 물태우로 위장한 노태우도 6·29선언이라는 속이구 선언에 속아 그를 13대 대통령으로 만들어 줬다. 무슨 꿍꿍이 속이 있어서일까? 그는 죽으면서까지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점 및 제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는 유언 쇼를 남기고 떠났다. 착하기만 한 국민들은 또 그의 유언에 마음이 흔들려 노태우를 ‘국장’ 운운하고 있다. 살인강도가 훔친 돈으로 선행을 많이 하면 좋은 사람인가 아니면 나쁜 사람인가? 더불어민주당 대.. 2021. 10. 27.
영문 국호 COREA가 왜 KOREA로 바뀌었지? 국호란 “나라의 존엄과 영예를 집약적으로 반영한 국가의 공식적인 호칭”이다. 그런데 국호도 대한민국이 헌법에도 없는 ‘한국’으로 바뀌고 영문 국호 표기도 이제는 COREA가 아니라 KOREA로 호칭이 굳어져 버렸다. 또 헌법 제 1조에 명시한 ‘민주주의’도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슬그머니 ‘자유민주주의’로 바뀌어 버렸지만 바로 잡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국가라는 정치적 통일체는 헌법에 의하여 구성되고 조직되는 공동체이다. 이해관계를 비롯한 인권문제로 갈등이 생기면 헌법은 시비를 가릴 기준이 된다. 국호며 정체성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헌법에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이라고 했고, 헌법 제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해 우리나라 국호는 ’대한민.. 2021. 10. 20.
일본은 대한민국 국호만 바꾼 게 아니다 일본이 과거 우리국민들에게 한 만행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소름이 끼친다. 어린 처녀를 위안부로 끌고 가 차마 인간으로 못할 짓을 했는가 하면 2차세계대전 당시 조선인, 몽골인, 중국인, 연합군 포로 잡아 인체실험을 통해서 생물학무기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선조들이 차마 인간으로 못할 짓을 했다면 당연히 후손들이 피해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보상해야 마땅하거늘 일본은 속죄는커녕 일본의 역대수상들은 전범을 추모하고 재무장을 위해 헌법을 바꾸기 위해 전방위로 국제사회에 로비까지 벌이고 있다. 그들은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731부대의 생체실험 문제를 피해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보상해야 마땅한 일이지만 그들은 사과와 보상은커녕 남의 땅 독도까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며 2세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자기네 땅이라고 가르치고 있.. 2021. 10. 19.
10월 9일은 575돌을 맞는 한글날입니다 10월 9일은 575돌을 맞는 한글날입니다. 우선 세종임금님과 당시 집현전 학자님들께 우리글을 창제해 주셔서 ‘고맙다’는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세계 200여개국의 국가중 자기 나라 글이 있는 나라가 몇 개 나라가 될까요? 문자의 주요 뿌리를 찾아보면 메소포타미아 문자, 이집트 문자 그리고 한자가 있습니다. 지금은 흔적을 찾기 힘든 인더스 문자도 한 때 번성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세계 공용어로 사용하는 알파벳의 뿌리도 따지고 보면 이집트 문자입니다. 독자적으로 생겨난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는 한자 역시 메소포타미아 문자와 이집트 문자처럼 상형에서 시작했습니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를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이런 전차로 어린 백성이 니르고저 할뺴이셔도/마참내 제 뜻을 능히펴지 못할놈이 하니다... 2021. 10. 10.
국민의힘은 왜 그렇게 변절자를 좋아하는가 “보수 적통을 계승한 자유한국당이 신보수주의 정당으로 거듭나겠습니다. 면면히 이어온 대한민국 보수우파의 적통을 계승하고 있는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세 분의 대통령을 배출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전 대통령. ‘조국 근대화의 기수’, 박정희 전 대통령. ‘민주화의 주역’, 김영삼 전 대통령. 이 세분의 사진을 당사 및 각 시·도당 건물에 걸기로 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의 장제원 수석대변인이 당사 회의실에 이 세 사람의 사진을 내걸면서 내놓았던 논평이다. 자유한국당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이승만, 박정희 그리고 이명박시절에는 이명박을, 박근혜 시절에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을 당 대표 및 사무총장 사무실에 걸어두고 있었다. 그러다 당대표가 홍준표로 바뀌면서 인기가 없.. 2021. 8. 20.
국민의힘은 박정희시대를 재현하고 싶은가 "내가 죽거든 친일파들이 묻혀 있는 국립묘지가 아니라 동지들이 묻혀 있는 효창공원에 묻어 달라"라고 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비서장 조경한지사의 유언이다. 조경환지사는 왜 국립묘지에 묻지 말라고 유언했을까? 현재 서울동작구 국립현충원에는 김백일을 비롯해 김홍준,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백낙준, 김석범, 백홍석, 송석하, 신현준 등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공식 결정한 친일파 11명이 안장되어 있고, 김백일처럼 국립묘지인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파는 63명의 친일인사가 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에 묻혀 있다. 박정희가 애국자인가? 현재 초중고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에는 5·16을 ‘군사정변’이라고 서술했다. 국립국어원은 '정변'이란 ‘혁명이나 쿠데타 따위의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생긴 정치상의.. 2021. 8. 19.
이승만을 추종하는 세력이 집권하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될까? 상해임시정부 시절, 대통령으로 추대돼 ‘미국이 한국을 신탁통치를 해달라’고 요구하다 탄핵을 당한 사람... "통일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케 되지 않으니 우리는 남방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야 할 것"(정읍발언)이라며 권력을 잡기 위해 민족분단도 불사한 사람... 6·25전쟁 중에 임시수도 부산에서 계엄령을 선포해놓고 헌법을 개정하고 그것도 부족해 ‘초대 대통령에 한해 연임조항을 삭제하는 사사오입개헌에, 장기집권을 위해 3인조 5인조부정선거를 하다 4·19혁명으로 쫓겨난 사람이 이승만이다. 1950년 5월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지세력이 대거 낙선하자, 이승만은 당시의 국회를 통한 대통령 간선제를 통해서는 자신의 재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 전쟁 중인 1952년 비상계엄을 선포해 백.. 2021. 8. 18.
이승만정부가 친일정부 아니라니...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운동가들이 꿈꾸었던 나라, 어떤 나라였을까요?...」김원웅광복회장의 76주년 경축사는 이렇게 시작했다. 한국사회의 모순은, ‘친일 미청산과 분단’이며 일본 패전 후, 미군정은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강제로 해체 시키고, 일제에 협력한 전범들을 주요관직에 기용했던 뼈아픔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광복회장의 사자후야 말로 국정교과서로 왜곡된 역사를 배운 세대들이 가슴깊이 새겨들어야 할 교훈이요,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피를 토하는 절규이기도 했다. 정부 수립 후 1960년 4월까지, 이승만 정권 12년간의 각료 115명 중 독립 운동가는 단 4명, 국내 민족 투사 8명을 합해서 그 비율은 12.5%이다. 반면, 부일 협력 전력자는 34.4%인 33명이나 된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 2021. 8. 17.
부끄럽지 않은 광복 76주년을 보내려면....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이 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길이 길이 지키세 길이 길이 지키세/2. 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 날을 잊을 건가/다 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 길러 하늘 닿게/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함께 힘써 나가세 함께 힘써 나가세’ (광복절 노래 듣기) 광복절 노래 가사다. 우늘은 빼앗겼던 나라를 다시 찾은지 76년째 되는 국경일이다. 1910~1945년 36년간 나라를 잃고 남의 나라 종살이를 했던 백성들의 삶은 어땠을까? 세월이 지나면 상처의 아픔도 잊혀지는 것일까? 그런데 해방이 반갑지 않은 무리들이 있다. 해방과 함께 왜놈이나 진배없는 배신자들이 그에 상응하는 처벌받아야 했지만 우리는 이름만 바뀐 해방을 맞았다. .. 2021. 8. 15.
‘정전협정문’에 한국과 미국의 서명이 빠진 진짜 이유 정전협정문에 한국과 미국의 서명이 빠진 이유가 무엇일까? 정전협정문대로라면 6·25전쟁은 동족상잔이 아니다. 정전협정문은 6·25전쟁은 한국군과 조선군이 싸운 것이 아니라 유엔군과 조선군 그리고 중공군이 싸운 것이다. 그렇다면 6·25전쟁에서 국군은 무엇인가? 6·25전쟁에서 국군은 중국의 인민지원군처럼 독자적인 군대가 아니라 유엔군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여한 것이 된다. 중국의 참전은 중국정부군이 아닌 인민지원군이다. 그렇다면 6·25전쟁의 정체성은 조선과 유엔이 맞서 싸운 전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제국이 패망함과 동시에 한반도는 해방을 맞게 된다. 당시 한반도 내에는 건국준비위원회가 발족하여 치안권과 행정권을 담당하여 한반도의 혼란을 자주적으로 수습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 2021.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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