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 전입, 세금 탈루, 병역 면제, 논문 표절....’ 국회 인사 청문회장에 나온 인사들의 한결같은 이력이다. 청문회를 보고 있으면 고위공직을 맡겠다는 인사들의 인면수심에 전율을 느낀다. 더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그게 왜 죄가 되는가?'하는 뻔뻔 스러움이다. 사전을 보면 ‘거짓말’이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진술하는 행위’라고 적고 있다. 거짓말은 ‘법을 어기는 사악한 인간들이나 하는 짓거리’(용어 사전)라는 것이다. 그런데 작금의 세태를 보면 거짓말이 사악한 인간이나 파렴치한들이 저지르는 행위가 아니라 국회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관을 비롯한 경찰청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대부분이 이지경이니 학교가 길러낸 훌륭한 인간이란 이런 모습일까?

거짓말에 대한 재미있는 기사가 있다. 최근 수원지검에서는 거짓말 사범에 대해 집중단속을 벌여 92명을 적발해 5명을 구속 기소하고 85명을 불구속기소했다고 한다. 검찰관계자는 "거짓말 사범은 수사력의 낭비와 사법 불신을 초래하는 중대범죄로 이들 사범은 원칙적으로 기소해 징역형을 구형, 엄히 처벌된다는 인식을 심어줄 방침"이라고 한다. 검찰이 하는 일이니 믿어야겠지만 이 기사를 보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검찰이 사회정화를 위해 할 일을 하고 있다고 박수를 칠까? 큰 거짓말쟁이는 두고 힘없는 피라미들만 잡는다고 검찰을 비웃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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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용산참사 살인정권 규탄! MB악법 저지! 경제파탄 책임전가, 이명박 정권 심판 전국노동자대회. 2009년 2월 28일.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 사진=이기태기자/노동과세계>

‘진짜’가 불신당하는 세상이라 진짜가 아니라 ‘정말 진짜’도 믿어지지 않는다. 거짓말이 얼마나 일반화됐으면 ‘하얀 거짓말’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을까? 그것도 그럴 것이 4천만 국민이 지켜보는데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해대는 세상이니 어떻게 세상을 믿을 수 있겠는가? 오죽했으면 부자간 목욕탕에서 있었던 ‘세상에 믿을 놈 한 놈 없다’는 얘기가 인구에 회자 됐을까? 대통령이며 대학총장을 지낸 분까지 나라 안을 휘젓고 다니며 뻔~한 거짓말도 마다 않는 세상이니....

정직하게 살면 손해 보는 세상을 불신의 시대라 하는가?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유명인사가 되고 출세하는 세상을 보면 우리나라 교육이 실패했다는 확신(?)을 하게 된다.(대부분의 학교 교훈이 ‘정직, 성실, 근면’이다) 하긴 교훈까지 거론할 필요까지 없다. 일류대학을 나와 무슨 박사학윈가 뭔가 하는 공증 인증서(?)며 언론계 출신, 무슨 대학 교수, 심지어 시민단체 이력까지 달고 나와 유명인사만 되면 얼굴에 철면피를 깐다. 이들의 거짓말은 서민들의 생계형과는 달리 불특정 다수에게 정신적, 물질적 엄청난 피해를 주는 인면수심의 파렴치한 행위가 대부분이다.

거짓말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니다. 연인들끼리 하는 거짓말도 있고 부모 자식간에 나누는 가슴 찡한 거짓말도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후안무치한 거짓말은 정치허무주의를 만들고 이민이라도 가고 싶다는 냉소주의풍토를 만들고 있다. 몇몇 사람들을 잠간 속일 수는 있지만 다수의 사람들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하긴 수천명의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훈장까지 받는 세상이니 ‘행정부처가 분할되면 나라가 거들 날지도 모른다’는 정운찬국무총리의 말은 거짓말이 아닌 애교로 봐도 좋지 않을까? 하기는 대통령이 된 사람이 '내가 BBK 설립'했다는 동영상조차 오리발을 내미니 국무총리니 고위 공직자가 청문회에서 하는 거짓말 정도야 애교(?)로 봐줘야 할까?

과정은 무시하고 이기는 게 선(善)이 되는 세상. 사람이 아니라 경제력이나 권력이 인품이 되는 나라. 연고주의가 판을 치고 기만과 사술(邪術)로 선량한 사람이 설 곳이 없는 세상에는 법 없어도 살 사람이 무능력자 취급 당한다. 이런 세상에는 사이비 정치인도 부족해 알아서 기는 사이비 언론까지 기고만장이다. 거짓말을 잘하면 출세하는 세상. 이들이 만드는 막가파 세상에는 사회정의니 애국 따위는 헛소리다. 언론과 검사는 권력의 하수인이 되고 양심을 지키며 사는 사람은 색깔칠을 당하고 왕따를 당해야 한다. 예술인은 교사도 피에로가 되어야 하는 세상. 양심을 파괴하든, 환경을 파괴하든 TV에 얼굴만 자주 비치고 부자만 되면 존경받는 세상에 희망을 말해도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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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비단안개 2010/02/09 2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 어른들은
    자라는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 매일 죄를 짓는 듯 합니다.
    답답합니다.

    선생님 계신 곳도 비가 내리나요?
    여긴 어제부터 조용히 내립니다.
    분명 희망의 봄을 부르는 비 같은데...


“교사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됩니까?”

교직생활을 하다보면 학생들에게 가끔 받는 질문이다. 학생들의 질문 요지는 ‘교사 자격증을 받아 교단에 설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교원자격증을 획득해 소정의 임용고시를 거치면 교단에 설 수 있다.(사립은 재단에서 임용) ‘교원 자격증’이란 교사로서 자격 요건을 갖추었으니 학생들을 가르쳐도 좋다는 ‘자격을 인정해 주는 증서’다. 초등학교는 교육대학을, 중등학교 교사는 대학에서 교직과정을 이수하고 난 후 받는다. 이수과정에서는 ‘교사로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법과 역사 그리고 교육과정이나 교육사, 교육철학 등 관련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자격증을 얻는다고 해도 임용고시에 합격하지 않으면 교단에 설 수 없단다.”  자격증 취득절차를 가르쳐 주면 답이 될까?

‘할 일 없으면 선생질이라도 하지...’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청년실업이 사회문제가 되는 요즈음 교사라는 직업이 상종가(?)를 치고 있어 그런 시절도 있었는가 싶지만 사실이 그랬다.


- 학교는 왜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가? -

자격증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직업은 교사뿐만 아니다. 변호사, 의사도 그렇다. 자격증은 아니라도 경찰이나 공무원도 일정한 정도의 지식을 확인하는 시험을 거쳐야 한다. 교사가 ‘교육과정’을... 경찰이 ‘미란다법칙’도 모른다면 그 직을 수행하기 어렵다. 자격이란 자격 소지자가 그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역량이다. 모든 공직자가 각 영역에서 직무수행을 위해서는 일정정도의 지식과 기능 외에도 ‘세상을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지식은 물론 ‘그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판단의 기준이란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쁘다는 것을 구별하는 근거다. 다시 말하면 세상을 이해하는 세계관이요, 철학이다. 교사가 자신이 전공한 지식만을 피교육자에게 암기시키는 것으로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교사는 교사로서 자격미달이다. 인간으로서 또 사회적인 존재로서 살아 가야할 제자가 자신이 가르치는 지식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에 대한 안내자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교사라 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교직생활 40년 가까이 생활하면서 궁금한 게 한 가지 있다. ‘학생들..., 그 학생들이 금과옥조로 생각하고 배우는 교과서를 통달하면 건강한 민주시민, 좋은 남편, 좋은 아내, 자상한 부모가 될 수 있을까?, 훌륭한 직장인, 사회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단언컨대 대한민국 교과서. 그것이 국정이든 검인정교과서든 교과서만 통달하면 교육목표가 요구하는 인간으로 키워낼 수 없다. 어떤 선생님에게 물어봐도 답은 ‘노우!’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학생들이 금과옥조로 알고 있는 교과서가 틀렸거나 잘못됐다는 뜻이다. 교과서가 아니라 교육과정이 틀린 것이다. 주부에게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자료를 다 갖다 줘도 왜 이런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지,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 지, 알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만들 수 있는 재료(지식)보다 정작 필요한 것은 어떤 방법으로 무엇을 왜(철학) 만드는지 목적이 없다면 그런 요리(요리)는 요리로서 구실을 못하게 될 것이 뻔하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학문은 국어, 영어, 수학과 같은 학문만 있는 게 아니라 ‘철학’이라는 학문도 있다. 그런데 왜 학교는 학문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가? 답은 간단하다. 과거가 부끄러운 사람은 자신의 과거가 드러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일제시대 친일을 했던 사람이 교과서 편수관이 됐다면 현대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겠는가? 실제로 박정희나 전두환시대 국사교과서에는 현대사가 몇 쪽밖에 없었다. 친일 했거나 국민의 권리를 도둑질한 과거가 부끄럽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해방과정에서 권력을 장악한 세력들은 누굴까? 일제시대 민족해방을 위해 가족도 버리고 민족해방을 위해 온몸으로 맞섰던 사람들의 자녀들은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있었을까?

                    지난 4일 치러진 전국수능 모의평가. 서울 ㄱ고. 교육희망 안옥수 기자
 

해방 조국의 집권세력 중 상당수는 친일 혹은 부일 세력이었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이승만 정권 12년간의 각료 중 34.4%인 33명이 부일 협력 전력자였고 경찰 간부의 80%가 일제 경찰 출신이라면 그들이 만든 교과서는 일제세대를 어떻게 가르칠까? 민족을 배신한 대가로 부귀영화를 누렸던 세력들은 대를 이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영역에서 화려한 부활을 꾀한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감추기 위해 현대사를 비롯한 교과서를 저희들의 입맛에 맞게 고치고 꿰맞춰 ‘국정 교과서’라는 이름으로 정당화시켜왔던 것이다.

보도연맹 사건이 그렇듯이 과거가 부끄러운 사람들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3S정책을 동원하기도 하고 종교를 이데올로기로 둔갑시켜 권력의 도구로 만들기도 한다. 교육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이데올로기가 되었음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인품이 아니라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 혹은 연고주의를 동원해 기득권 세습을 괘하고 벌문화를 통해 기득권유지 수단으로 악용하기도 했다.

휴대폰 뚜껑을 열고 칩의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산업사회는 직종이 다양해지고 전문화, 세분화된다. 전문화와 세분화된 사회에서는 현상을 보고 본질을 알기 어렵다. 휴대폰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또한 그렇다. 사회를 알기 위해서는 변증법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전문화세분화가 아니라 변화와 연관의 관점에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내과의사가 산부인과를 잘 알 수 없듯이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이 자연과학분야를 알기는 어렵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삶의 질은 자신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나무는 보고 숲을 볼 수 없게 만드는 교육. 지식의 양으로 사람까지 서열을 매기지만 정작 지식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철학)은 가르치지 않는 나라. 민주주의를 가르친다면서 주인인 학생을 소이시키고 순종이 미덕이라고 가르치는 나라. 시비를 가리는 사람은 빨갱이로 매도되고 비판이 비난이라 호도하는 풍토에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자격증을 얻기 위해서는 일정한 '절차나 기준'이라는 게 있다. 교육사니 교육철학이니 교육과정이라는 학문의 학점을 따고 임용고시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것은 아이들을 사람답게 살도록 이끄는 일, 선악과 시비를 분별하는 일, 정의와 불의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배울 필요를 강조하지는 않는다. 철학이 없는 교사가 지식을 전달하면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는가? 현상으로 판단하는 안목으로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 경제력이 있는 사람, 좋은 옷을 입고 고급 아파트와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 명품을 몸에 감고 허세를 떠는 사람이 더 멋지게 보이지 않을까? 
교사는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사람이다. 사랑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희망을 가르치고 시비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자기희생으로 제자를 키우는 마음의 어머니요, 권력 앞에 ‘아니오’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교사는 갈대처럼 바람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가르치는 일은 뒷전이고 승진점수를 모아 장학사가 되고 교장이 교육관료가 되는 게 꿈인 사람은 진정한 교육자가 될 수 없다. 일류대학 몇 명 더 입학시켰는가의 여부로 능력 있는 교사라 착각해서도 안 된다. ‘교원자격증’을 뛰어넘지 못하는 교사는 교육자가 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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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윤기 2010/02/08 1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생님, 교육위원 승계건 너무 아깝고 안타깝습니다.

    주소만 마산에 있었으면...승계하시고...

    재선도 가능하셨을텐데....

    • 김용택 2010/02/08 1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잘지내시죠?
      그게 제 팔잔가 봅니다.
      좀 더 쉬라는 뜻인가 봅니다.
      쉬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2. 달그리메 2010/02/08 1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류대학 몇 명을 더 입학시켰는가의 여부로
    능력있는 교사로 착각해서는 안된다는 이갸기가 참 공감이 됩니다.

  3. 참교육 2010/02/08 1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목적전도현상?
    우리나라 학교는 지금 불치의 중병에 걸려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일류대학을 위해서라면....
    제자 출세를 위해서라면.....

    제도를바꾸지 않고서는 고칠 수 없는 병.

    그런데 그 '제도'를 바꾸자면 선생이 공부는 안가르치고
    데모나 하는 빨갱이 선생이 되어야 하니.....

  4. 동피랑 2010/02/09 2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산이 활활 타오르는것 아니겠느냐' - 조동화-

    '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을 지켜주지 못해 마음 아픕니다만.
    꿈도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고 하니,
    인간의 '보편적인 상식이나 원칙이 통하는' 사회가 될때까지
    함께 꿈꾸며 노력하며 갈 밖에요.

    창녕 나들이 때 가깝지 않은 길 잘 올라가셨는지요?

    저도 교육위원 승계 기사보고 이윤기씨 같은 안타까움이 일었습니다.

    아마 '신경 쓰이는 일 없이 건강을 잘 돌보시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나 봅니다. 건강하십시오...


교사는 학생을 지도하에 있어 학생의 기본적인 인권을 존중하고 이해와 설득으로 선도하되,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에 제한하여 체벌을 실시함으로써.... 건전한 생활태도를 습관화하여 함에 있다.

1) 길이 50cm이내, 지름 1.5cm이내의 회초리를 사용한다.

2) 손, 발 등으로 신체적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

3) 견봉류(대걸레자루, 빗자루 등), 실내화, 학습 도구류(자, 출석부, 등)등의 도구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4) 일부 학생의 잘못 때문에 단체 기합을 주어서는 안 된다.

5)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원산폭격, 한강 철교 만들기, 책ㆍ걸상 들고 서 있기)를 해서는 안 된다.
6) 체벌은 직접 체벌과 간접 체벌 중 선택하여 실시할 수 있다.....

00여자고등학생체벌규정의 일부다.
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한 때에는 법령 및 학칙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학생을 징계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다.(초, 중등교육법 제18조의 ①)
학교의 장은 법 제18조 제①항 본문의 규정에 의한 지도를 하는 때에는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지 아니하는 훈육, 훈계 등의 방법으로 해야 한다.(초, 중등교육법 시행령 제31조의 ⑦)는 법률을 근거로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가장한 폭력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체벌을 실시’해 ‘건전한 생활태도를 습관화’하겠다는 것도 그렇지만 체벌을 통해 ‘민주시민의 자질을 갖추도록’하겠다는 발상에 어이가 없다.

체벌뿐만 아니다. 머리 길이는 귀밑 0Cm 이내로 한다.’든지 ‘머리띠는 폭 3Cm 이내로 한다.(갈색과 검정색만 가능함), 염색, 탈색, 무스, 스프레이 사용 안 됨, 치마 길이는 무릎을 가릴 정도(무릎 밑 5㎝ 정도)로 입어야 한다, 구두는 굽이 3㎝ 이상 되거나 앞이 뾰족하거나 커다랗고 뭉툭한 것은 금지한다’‘는 조항에 이르면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항상 학생다운 머리를 유지하도록 한다‘는 규정에서는 객관적인 기준이 아니라 교사의 자의적인 잣대로 학생들의 인권을 공공연히 짓밟도록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 신입생 000명은 00(어자)고등학교에 입학함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재학 중 교칙을 준수하고 품행을 바르게 하여 학업에 전념할 것을 선서합니다.’

고등학교 입학식 때 학생대표가 학교장에게 하는 선서다. 내용도 모르는 선서를 학생대표가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 시간부터 학생들은 사람이 아닌 학생(?)이 되는 것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학생 인권과 행복추구권’에는 관심도 없고 두발의 길이는 물론 체벌까지 감수해야 하는 게 우리나라 학생들의 인권 현주소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는 최소한의 권리조차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 입시가 교육의 목표가 되고 그래서 성적으로 한 줄 세우기를 하는 경쟁지상주의, 성적지상주의는 중학생 46.2%, 고등학생 59.7%가 학생들의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 받고 있는 게 학교의 현주소다. 유사시 목숨을 내놓고 전쟁을 해야 하는 특수성 때문에 구타와 기합을 필요악으로 용납해온 군대조차도 병영문화개선을 위해 금지한 게 체벌이다.(93년7월) 그러나 학교는 아직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체벌을 금과옥조로 맹신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 체벌이 교육이라는 외피를 쓰고 등장한 것은 일제시대부터다. 황국신민화가 교육의 목적이었던 시대에는 학생들의 인권이 아니라 체벌이나 폭력과 같은 군사문화를 이식시켜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의도였다. 해방 반세기 하고도 수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학교는 체벌을 폭력이 아닌 교육으로 미화하고 공공연히 자행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유엔아동권리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서 조차 ‘학교에서의 체벌이 학생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며 초중등교육법의 체벌근거조항을 개정하라’고 권고까지 했겠는가?

체벌을 '사랑의 매'라는 말로 미화되어서는 안 된다.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거나 서양속담으로 체벌을 정당화해서도 안 된다. ‘중3인데 50년은 더 산 것 같다. 사는 게 고통이다’는 유서를 써놓고 자살한 어느 중학생의 절규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자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심각하게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학생은 물리적 및 언어적 폭력 또는 집단 괴롭힘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가진다.

학생은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 등 정규교과 외 교육활동과 관련하여 자유롭게 선택하여 학습할 권리를 가진다.

학생은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 등 정규교과 외 교육활동과 관련하여 자유롭게 선택하여 학습할 권리를 가진다.

경기도교육청이 만든 ‘학생인권조례안’의 일부다. ‘학생도 사람’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선언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식적인 인권조례조차도 수구언론과 교육관료들은 ‘교육을 파괴한다’는 위기의식을 조장하고 색깔을 덧씌우기에 여념이 없다. 몽둥이로 민주시민을 길러내겠다는 반교육인 발상은 이제 그쳐야 한다. 학생이 사람대접 받는 날,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햇빛을 보는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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