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사회를 만들어 ‘개인이 사회의 구성원이 됐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개인의 삶이 그 개인에게 책임이 있는 원시적인 존재일 때는 생존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존재의 의미도 개인에게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사회를 형성하면서 그 구성원이 됐다는 것은 개인은 그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됐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한 인간이 ‘어떤 제도에서 사느냐’에 따라 한 개인은 건강을 비롯해 인품이나 삶의 질까지도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개인의 존재는 ‘사회적’이면서 성숙하지 못한 사회에서 개인의 삶에 대한 모든 ‘결과’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예를 들어 보자. 자본주의라는 제도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이 광우병에 걸렸다고 치자. 이 사람이 병에 든 이유는 개인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생존을 위한 ‘먹거리’가 상품이 되는 제도에서는 그 상품의 질은 제도의 법적 규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소를 사육하는 양축업자가 초식을 하는 소에게 육식사료를 먹였다면 이 소를 도축해 상품화된 고기를 사 먹은 개인은 ‘광우병’에 걸릴 확률을 안고 있는 것이다.
건강뿐만 아니다. 인품도 마찬가지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며 산아제한이 미덕인 사회에서 자란 개인은 사회적인 존재로 자라기는 어렵다. 사람을 사회적으로 키우지 못하는 교육제도 아래서는 개인은 ‘왕자 병’에 걸리거나 ‘마마보이’로 자랄 수도 있다. 더불어 사는 게 미덕이 아니라 ‘승자가 선’이 라는 경쟁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은 이타주의자가 아닌 ‘이기주의자’가 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인간의 가치가 돈으로, 학력으로 혹은 연(緣)으로 평가받는 사회에서는 개인이 사회적 가치로 성장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제도는 사회적이면서 책임은 개인에게 지우는 룰은 공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못하다.
다수의 희생으로 소수가 행복한 사회가 아니라 다수가 골고루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 수는 없을까? 날이 갈수록 살기 어렵다고들 한다. 절대적 빈곤이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으로 삶의 의욕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루 평균 자살자 34명. OECD가입국 중 자살률 1위의 국가.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 자살률은 2007년 10만명당 24.8명으로 전년보다 13% 증가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OECD 평균 11.2명보다 두 배가 높고, 최저인 그리스(2.9명)에 비하면 무려 10배에 가깝다고 한다. 경제대국 운운하며 삶의 질을 말하면서 왜 세상은 자꾸 각박해지고 살맛을 잃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날까?
열심히 일해도 희망이 없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오늘날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경제 살리기가 아니라 ‘사람 살리기‘다. 열심히 일해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회. 아니 정의가 통하지 않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 법도 원칙도 없는 야만의 사회로 회귀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돈과 권력을 얻기 위해 양심이며 도덕이며 윤리 따위는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막가파식 경쟁과 시장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성이 상품이 되고 돈이 필요하다고 연약한 어린아이와 여성을 납치해 살해하기도 하는 무서운 사회로 바뀌고 있다.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돈만 있으면 투사도 되고 민주 인사도 되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사회.
갓난아이가 먹는 분유에서부터 과자류는 물론 서민들의 주식이며 반찬, 과일류는 안심하고 먹어도 좋을까? 돈이 되는 일이라면 사람의 생명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식품 첨가물을 넣어 상품을 만드는 것쯤은 양심 따위는 폐기처분 대상이다. 절대빈곤에서 벗어났다고들 하지만 농약이며 항생제며 유해색소로 뒤범벅이 된 먹거리.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유전자변형식품이 밥상에 오르고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물조차 없는 세상. 살고 있는 집의 벽지며 장판이며 가구들이 환경호르몬으로 뒤범벅이 되고 문명의 이기인 전자제품에는 전자파라는 괴물이 사람들의 건강을 옥죄고 있다.
미래의 꿈나무, 아이들을 길러내는 학교는 어떤가? 연중행사로 나타나는 학교급식 식중독이며,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학교폭력이며 죽기 살기로 공부해도 점수가 올라가지 않는 학생들에게 낙인을 찍는 줄 세우기. 학교와 교사는 있어도 교육이 없는 학교. 아이들이 보고 자라는 학교 밖은 차라리 요지경이다. 안방의 주인행사를 하는 텔레비전에서는 ‘당신의 사는 집이 당신의 신분을 말해 줍니다.’라며 가난한 이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다. 싸구려 웃음을 강요하는 저질 코미디며, 선정적인 드라마와 외모지상주의를 충동질하는 프로그램. 소득재분배정책은커녕 끝도 없이 치닫는 사회 양극화며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실업자 100만명의 시대.
어느 한쪽만 잘못됐으면 살아가면서 바꾸고 고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그게 아니다. 총체적인 병, 그것도 불치의 중병상태다. 아니 보다 무서운 건 사람들의 마음이 병들어 날이 갈수록 회복불능 상태로 오염되고 있다. 돈이며 출세를 위해서는 의리니 신념 따위는 고려의 대상조차 아니리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돈이며 변절자도 유명인사가 되고 군사독재나 되지 않는 의좀 더 솔직히 말하면 그런 세상을 정당화시키는 마약(이데올로기)에 마취돼 전 국민이 혼돈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누가 이런 세상을 고집하는가? 세상이 썩으면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게 아니라 그 썩은 세상으로 덕을 보는 사람이 있어 이들이 주도권을 잡고 그런 세상을 바꾸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세력이 힘이 바뀌기를 기대하는 힘보다 컬 때는 바뀔 리 없다.
건강한 사회란 소수가 아니라 다수가 행복한 사회다. 지금은 날이 갈수록 다수가 아니라 소수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철학이 없는 지도자. 아니 돈이 사람을 만드는 세상에서는 지도자조차 돈이 만든다. 돈이 있으면 영양사도 고용하고 미용사도 고용한다. 개인 주치의며 재산관리인, 변호사도 고용해 ‘3대 부자가 없다’는 옛말은 헛말이 됐다. 결혼조건이 돈이 우선조건이 되고 보니 2세는 머리 좋고 건강하고 잘생긴 사람.. 그런 배필을 만나면 2세 3세는 더 우수한(?) 자녀가 탄생하게 된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벌이 지배하는 사회를 상상해 보라.
다수가 살기 좋은 세상은 물 건너 간 것일까? 진부한 얘기 같지만 독재자들이 써먹던 ‘3S정책(Screen, Sex, Sports)'이란 게 있다. 가난의 대물림을 정당화시키고 바닥인생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마취제... 그게 아직도 효과가 있다는 거다. 나와 지역이 같다는 이유로 어느 편 야구 팬이 되어 경기가 있으면 천리가 멀다않고 관람하러 다니는 야구며 축구며.. ’나는 연속극 드라마 보는 재미로 산다‘는 순박한 안방마님도 돈벌이에 혈안이 된 장사꾼은 여성을 눈요기 거리로, 돈벌이 대상으로 끊임없이 옷을 벗기고 있다.
3S뿐일까? 민중의 눈을 감기는 예술이라는 외피를 쓴 사이비 예술인. 굿에는 관심도 없고 잿밥에 눈독 들이는 곡학아세하는 사이비 학자들이 있다. 시민운동을 한답시고 출세(?)를 하고 싶어 호시탐탐기회를 노리는 변절 대기자도 무진장이다. 천국을 팔아먹는 사이비 종교인이 있고 이름은 교육잔데 교육은 않고 지식판매상이 된 교육자가 출세하고 큰소리치기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사회적인 존재인 인간을 개인적인 존재로 키우면서, 운명론자를 키우면서 교육으로 착각하는 교사와 국,영,수 점수 몇 점으로 사람의 가치를 서열 매겨 대물림시키는 교육은 바뀌지 않는다.
‘내가 너보다 키가 5Cm 더 크다, 내가 너보다 돈이 몇천만원 더 많다. 내가 너보다 더 좋은 대학 나왔다......’ 이러한 조건으로 차별받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까? 회칠한 무덤같이 외모로, 학벌로, 경제력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줄 세우고 차별하는 사회를 만들어 누가 행복할 것인가? 건강한 사회란 어떤 사회일까? 건강한 사회란 좋은 제도를 바탕으로 구성원들의 정신과 육체가 건강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사회는 병든 사회다. 병이라도 불치의 중병에 걸린 사회다. 보다 더 큰 문제는 이 병든 사회를 보는 구성원들이 '문제의식'도 없이 무한경쟁에 매몰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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