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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엽기적인 서열화! 언제까지...?

by 참교육 2009.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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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에 등단한 시인 56명 가운데 1등은 누구일까?」

평론가 34명에게 다섯 명씩 '인기투표'를 시켜 52표를 얻은 김경주라는 분을 1등, 차순위 득표자 000씨는 2등... 000씨는 3등.... 이런 식으로 시인 등기를 매겼다는 기사 내용이다. 경남도민일보 김훤주기자가 쓴 ‘시인 등수 매기는 황당한 문학잡지(2009.3.13)’라는 기사를 보면 어이가 없다. 1등 시인, 2등 시인이라니... 김훤주기자의 주장처럼 합리적 기준도 없이 등수를 매긴 것도 그렇지만 성적을 매길 권리는 도대체 누가 줬다는 말인가?


 

                              <사진 : 2009 교육선언 - 전교조 홈에서>

필자가 초등학교시절이었으니까 1950년대쯤 됐을까? 사회시간에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은?, 세계에서 제일 긴 강은...? 이런 걸 지식이라고 학교에서 달달 외웠던 기억이 남아 있다. 또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 어쩌고 하면서 조선시대 임금님 이름 외우기 숙제를 내기도 하고 그걸 잘 외우는 학생이 스타가 되기도 했다. 놀이 문화가 부족한 시대였으니까 재미삼아 암기놀이를 했다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지만 요즈음 같은 디지털시대에 수학문제와 답까지 달달 외워 일류대학에 입학한다면 이해가 될까? 일류대학 입학 순서가 ‘암기한 지식의 량’이라니...?

 

암기한 지식의 량으로 서열을 매기는 게 어디 <시인세계>뿐이겠는가? 텔레비전을 보면 무엇이든지 서열을 매기지 못해 안달이다. 게임이라는 게임, 놀이라는 놀이는 대부분이 등수매기기다. 여성의 가슴이나 키 엉덩이 크기로 미인을 가리는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며 요즈음 인기 있는 꽃미남 기준은 또 뭔가? 전자사전 하나면 다 해결될 지식을 전교생을 모아놓고 서열을 가리는 ‘골든 벨을 울려라’는 차라리 공동체 의식이라도 심어준다고 치자. 그러나 노래자랑을 비롯해 스타 킹이며 하나같이 서열을 매겨 줄세우기다.

 

1등만이 살아남는 엽기적인 서열매기는 풍토는 텔레비전 문화뿐만 아니다. 가장 교육적이어야 할 학교에서조차 원칙도 기준도 없이 서열매기기가 등장하곤 한다. 민주화의 바람이 한창 불던 지난 1980년대 후반, 학교에서는 두발자유화니 교복자율화 바람이 불어 닥쳤다. 전교조교사와 학생들의 요구가 워낙 드세니까, 이를 못 봐 주던 교장선생님이 내놓은 안이 ‘투표로 결정하자’는 카드였다. ‘다수결’이 민주주의 원칙이라는 걸 배우긴 배웠던 모양이다. 양보와 타협이 불가능할 경우 마지막으로 사용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인 ‘다수결의 원칙’이 이해관계가 아닌 ‘가치관’의 문제의 해결사로 등장했으니...!

 

평짜리 아파트에 사는가? 무슨 차를 타고 다니는가? 어떤 메이커의 옷을 입고 어떤 메이커의 장신구를 차고 다니는가에 따라 사람의 가치를 서열매기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인간의 됨됨이나 인품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 학벌이 사람의 가치를 서열매기는 사회는 사회적 지위는 곧 그 사람의 인격이요, 가치로 둔갑한다. 돈이 얼마나 많은가? 얼마나 고급 아파트에 살고 얼마나 고급 차를 타고 다니는가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요, 인품으로 자리 매겨지는 것이다.

 

이러한 풍토는 학교에도 예외가 아니다. 전국의 초·중등학교와 개인, 지역을 줄세우겠다는 전국단위 일제고사는 또 어떤가? 기저귀를 찬 아이들에게 영어 회화를 가르치는 열성 엄마들이 판치는 강남의 학생들과 경제력도 유명학원도 하나 없는 시골 학생과 점수비교로 한 줄로 서열 매길 수 있을까? 소득격차는 물론 결손가정, 다문화가정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농어촌 학생에게 일제고사를 치러 도시학생과 비교시켜 한 줄로 세우는 시험은 공정한 경쟁일까? 프라이급과 미들급을 같은 링 위에 세워 경기를 시킬 수는 없다. 기준이나 원칙이 없는 경기를 어떻게 공정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능력의 차를 부정하자는 말이 아니다. 효율을 위해 경쟁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러나 오프라인에서 서열을 매기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성을 잃은 것 같다. 지식으로, 돈으로, 권력으로, 미모로, 끝없는 한 줄 세우기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과정은 생략되고 결과가 선(善)이 되는 풍토에서는 승자만 정당화되는 진흙탕 싸움판이 그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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