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자료2014.08.29 06:26


강남의 B 중학교는 비싼 신발이나 책가방을 쓰면 벌점 3점을 준다. 인근 C 중학교는 부모의 차를 타고 등교하면 벌점 1점을 매긴다. 친구의 흡연 사실을 알리는 등 아이들끼리는 이른바 고자질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 상점을 주는 학교도 많다.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 불리할까 봐 일종의 그린마일리지 세탁를 세탁하는 경우도 있다. “벌점이 쌓인 아이가 자신의 돈을 마치 주운 것처럼 속여 교사에게 가져다 줘 상점을 받은 사례도 있다.”(서울신문)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오는 91일부터 경기도 교육감의 ·벌점제가 수구세력들의 집중포화를 당하고 있다. 진보교육감들의 정책에 흠집내기를 일삼아 오던 조중동과 수구세력 그리고 교원단체인 교총까지 나서서 상벌점제가 시행되면 "학생 지도 방안이 사라지게 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상벌점제란 무엇인가? 교육부가 2009년부터 체벌 없는 인권, 친화적 학교문화 조성을 위해 도입한 생활 평점제(·벌점제)가 상벌점제다. 체벌을 금지하고 상벌점제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자 학교마다 그린마일리지라는 이름으로 바꿔 전국 대부분 학교들이 시행 중이다.

 

들키지만 않으면 죄가 되지 않는 상벌점제로 학생들을 통제하는 것이 과연 교육적일까? 똑같은 일을 저질렀는데 들킨 학생은 범법자가 되고 운이 졸아 들키지 않은 학생은 도덕적인 학생인가? 학생들의 행동을 점수화해 평가하는 것이 교육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상점제도 마찬가지다. 선행이란 마음에서 우러난 행위여야 하지만 상을 받기 위해 하는 행위는 자칫 이중인격자를 만들어놓을 수도 있다. 진정한 선행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다. 상도 벌도 행위자체를 놓고 평가하는 게 어떻게 교육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지각 한 번에 1, 명찰 미부착 한 번 1, 마시지 말라는 시간에 음료수 마시면 1.... 익산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책가방의 크기가 학생의 가방으로서 크기가 좀 작거나 너무 큰 가방으로 등교하는 학생에게 벌점 5점을 매기기도 했다. 또 어떤 학교는 친구의 흡연사실을 신고하면 상점을 주는 학교도 있다. 어떤 학생이 인사 예절을 잘 지키거나 고운 말을 사용하고, 용의 복장 관리에서 다른 학생의 '본보기'가 되면 상점을 준다. 그렇다면 본보기의 기준은 무엇일까? 상벌점제가 얼마나 심각한 반교육적인지를 학생들이 지적한 문제점을 살펴보자.  

 

 

<이미지 출처 : 서울신문>

 

[학생들이 지적한 상벌점제의 문제점]

 

짜증, 스트레스 유발: 벌점을 받을 때 스트레스가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상벌점 의식 때문에 버겁다. 상벌점을 의식하여 재밌게 수업을 즐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재미있게 수업하려 하면 벌점을 준다.

남용성: 별 것 아닌 것에 벌점을 준다. 선생님이 너무 참견을 많이 한다. 작작 줘요.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찌질하게 굴지 마요 어른이면 어른답게. 진짜 벌점 아니면 안 되겠다 할 때 주시는 거 아닌가요? 이중적 처벌을 한다. 벌점도 하고 처벌도 하고. 너무 남용하고 학교 생활 내에서 모든 문제에 벌점이 부과됨.

위협, 조종, 종속성: 학교 노예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상점 때문에 청소하느라 수업을 소홀히 한다. 상벌점으로 아이들을 협박한다. 이거 안 하면 벌점이다. 저거 하면 상점 주겠다 이런 식으로.

 

                                                   

 

평가, 비교의식: 점수로 매기는 것이 싫다. 사람을 점수로 판단하는 건 비합리적이다. 학생을 점수로 표현하는 것 같아서 쫌 그렇다. 그냥 차라리 벌을 받는게 더 나을 것 같다.

가식성: 마음에도 우러나지 않는 봉사에 시간 때우기 보충학습을 하기도 한다. 자신의 의도가 아닌 그저 상점을 받으려고 좋은 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상점에 목숨 거는 애들이 있음.

가혹성: 고교 진학에 문제가 된다. 왜 하는지 모르겠다. 지각 10번 하면 징계다. 예전처럼 하면 좋겠다.

비균형성: 상점을 너무 적게 준다. 벌점은 쉽고 상점은 어렵다.

비합리성: 어려운 일이나 쉬운 일이나 똑같이 1점을 주니 불공평하다. 대답을 못했다고 벌점을 준다. 교복에 대해서 상벌점제가 없으면 좋겠다. 교무실에 신발 신고 들어왔다고 벌점 주는 것은 너무하다. 추워서 사복 입고 있는데 걸렸다. 터무니없다. 수업 시간에 어떤 애보고 춤추라고 하고 그 애가 못 추겠다고 하면 벌점 5점을 주겠다고 한다거나.

비민주성: 상벌점 문항을 학생들과 함께 만들면 불만이 적었을 것.

비일관성, 불공정성, 차별성: 선생님의 기준이 부당할 때가 많다: 안 잤는데 잤다고 한다.벌점을 너무 안 준다. 차별한다: 마음에 안 들면. 날나리들은 벌점만 받게 된다.

비소통성: 사정이 있어서 벌점을 받았는데 말을 해도 잘 안 믿어주고 그냥 넘어간다. 벌점을 받으면 화가 나서 더욱 나쁘게 행동할 수 있으니 경고를 줘도 나쁘게 행동하면 좋게 타이른 후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숫자로만 파악하여 정확한 상담과 지도가 힘들다. 학생의 잘못된 태도에 점수를 매기기 전에 시간이 있으시다면 좀 더 학생과 얘기를 한 뒤 상벌점제를 도입했으면 합니다.

관계성 악화: 선생님과 학생들의 관계가 안 좋아진다. 사춘기로써 반항을 할 수 있다. 교사의 권위가 무너진다.

비효과성: 벌점이 누적되면 의미가 없고 반성도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차피 막 나갈 애들은 벌점 신경도 안 씀.<자료 : 좋은 교사운동 블로그에서>

 

 

 

 

이런 현실을 놓고 수구세력이나 교총이 난리다. 상벌점제를 폐지하면 교육이 불가능하기라도 한 듯 어깃장을 놓고 있다. 중앙일보는 이재정 "상벌점제 폐지" 학교선 "교육감, 현실 너무 몰라"라는 기사에서 오전 9시 등교논란으로 학교 현장이 어수선한 가운데 상벌점제까지 없애겠다고 하자 교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상벌제를 시행하면 상벌점제 말고 학생을 선도할 방법이 없다는 투로 호도하고 있다. 한국최대의 교원들의 조직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도 상벌점제를 폐지하면 학생지도가 어렵다며 반발하고 있다. 안양옥 회장은 학교장 재량인 등교시간을 교육청 차원에서 사실상 강제하는 것은 직권남용이라며 학교 현실과 학부모들의 바람은 외면한 채 무리한 정책 추진으로 혼란만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가치내면화를 통해 학생들의 행동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인성교육이다체벌이 없어지고 상벌점제가 시행되면 학생지도가 어렵다는 것은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는 무지의 소치다. 상점을 잘 받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남이 보는 앞에서 선한 척하게 만드는 게 교육인가? 양심적인 교사들이 차마 상벌점제라는 이름이 부끄러워 그린 마일리지라고 바꾼 상벌점제는 당연히 폐지되어야 한다. 학생을 이중 인격자로 만들고 교권과 인권을 구별조차 못하는 단견으로 어떻게 인성교육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이재정경기도 교육감의 교육철학이 이 땅의 무너진 교육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은 양심적인 지식인들은 모르는 이가 없다.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세력과 권력의 눈치나 보는 교총은 후안무치한 괴변으로 교육을 더 이상 황폐화시키지 말라.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분류없음2014.03.07 06:57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고 있는 학생이 있으면 선생님은 어떻게 반응할까?
‘자거나 말거나 공부하지 않으면 자기 손해니 깨울 필요가 없이 하던 수업을 계속한다..?’
아마 그런 선생님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엎드려 자고 있는 학생을 깨우면 선생님을 쳐다보면서 ‘ㅅ’소리와 함께 인상을 찡그린다면 선생님들의 반응은 어떨까?

수업을 들어가 보면 학생들의 수업태도는 천태만상이다. 시작도 하기 전부터 잠만 자는 학생, 한두명이 자고 있으면 피곤하거나 몸이 안 좋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 갈 수 있지만 반수 이상이 엎드려 자고 있거나 다른 공부를 하고 있으면 수업을 진행할 의욕은 멀리 달아나고 만다.

 


캐나다 교육이야기

▲ 캐나다 교육이야기


 
잠에 못 이겨 깨워놓으면 1분도 안 돼 또 자고, 뒤에 가서 서 있으라고 세워 두면 선채로 졸고 있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짝꾼과 소곤거리며 끝도 없이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 주의를 줘도 5분도 채 안 돼 다시 잡담으로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 책상 속에 거울을 감추고 얼굴을 다듬고 있는 학생, 책상 속에 손을 넣고 휴대폰으로 문자 보내기 삼매경에 빠져 있는 학생....

선생님에게 농담인지 성희롱인지 모를 질문을 하고 음침하게 웃으며 무슨 개선장군이라도 된 것처럼 희희덕 거리는 모습을 보면 이런 학생에게 교육을 시키는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고 초라하다는 느낌마져 든다.

‘다른 나라는 경우 이런 상황이 되면 학생지도를 어떻게 할까? 박진도, 김수경이 쓴 ’캐나다 교육이야기(양철북)‘를 읽으면 '어떻게 이런 천국같은 나라가 다 있을까?' 하는 생각에 부러움과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캐나다에는 우리와 같은 교실풍경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큰소리한 번 내지 않고 수업이 진행되는 교실... 교사에서 수업이 가능하다는 게 참 신기하다, 도대체 어떻게 수업을 하고 있을까?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야단치는 일은 거의 없다. 학생들 사이에서 “어떤 학생이 ‘Yelling’했어(고함쳤어)”라는 말은 ‘그 선생님 또라이야’라는 말과 비슷한 수준의 말이다. 그만큼 선생님이 고함치는 일도 상식적인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학교는 정상적으로 조용하게 잘 돌아간다.(본문 P. 250)

우리나라 학교와 비교하면 꿈같은 얘기다. 수업에 지쳐 스트레스를 받다 못해 정신병원까지 드나드는 교사가 비일비재한 우리교육현실과 비교하면 경이로움까지 느껴진다. 어떻게 이런 교육이 가능할까?

고함도 안 지르고 체벌도 없으면서 수업이 가능하고 생활지도를 할 수 있는 그런 교육은 어렵지 않다. 캐나다는 어릴 때부터 가정교육을 ‘재미 뺏기’라는 신기한(?) 방법을 활용한다. 그 ‘재미 뺏기’란 다름이 아니라 어렸을 때는 장남감, 좀 더 크면 게임기, 컴퓨터, 친구 만나기 등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

북미에서는 아이들이 I am grounded'하면 ‘지금 벌 받고 있는 중이다’라는 말이다. ‘grounded’라는 말은 관제탑에서 항공기를 착륙시키고 날지 못하도록 금지 하는 것에서 유래된 ‘활동을 제약하는...’말이다.

 


 

<이미지 출처 : 교육개발>

 


정말 ‘재미 빼앗기’로 생활지도가 가능할까? 캐나다에서는 가정에서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에게 이런 생활지도는 상식적인 말이다. 아이들도 이에 대해 별로 저항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이 ‘grounded’될 만큼 잘못했는지 생각해 심하다 싶으면 ‘공정하지 못해!’ 라며 입술을 내미는 정도가 전부다. 재미를 빼앗긴 아이들은 대체로 화를 내기보다 자신의 행동을 크게 후회한다.

'재미 빼앗기'라는 생활지도는 매우 효과적이다. 장남감, 게임기를 숨겨 버리거나 컴퓨터도 패스워드를 바꿔버리거나 파워코드 등을 빼서 감춰 버리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렇게 자란 학생들은 학교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생활지도가 가능하다. 혹시 말을 안 듣거나 떠드는 아이가 있으면 주의를 주고 경고를 한다.

그래도 안 되면 아이들 전체가 칠판 앞으로 나올 때 그 아이만 책상에 혼자 있으라는 벌을 준다. 그래도 안 되면 책상을 들고 교실 밖으로 나가게 한다. 대부분 이 정도 단계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한다.(본문 P. 251)


곱게 말하다 안되면 달래고 그래도 안되면 고성이 오가고... 아이들 때문에 부부싸움으로 번지기도 하는 한국의 가정과 비교하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체벌을 반대하거나 학생들의 인권을 말하면 종북으로 몰리고 학생인권법을 만들자면 교권보호법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게 우리네 실정이다. 학교에서는 버릇없는 아이들을 지도한다면서 ‘벌점제’를 만들기도 하고 생활기록부에 남겨야 한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랑의 매를 권하는 학부모들도 없지 않다.

'캐나다의 생활지도는 벌만 주는 것이 아니다. 말썽 피우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을 도와줬다’거나 ‘친구를 도와줬다’는 구실을 붙여 그런 아이들에게 표창장을 주기도 한다. 캐나다 선생님들은 별것도 아닌걸 가지고 ‘잘한다, 잘한다’를 입에 붙이고 산다.' (본문 P. 252)

고등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에게는 이 정도로 통하지 않는다. 학생이 수업에 방해가 될 정도의 행동을 하면 교실에서 쫓아내 교장실이나 교무실에 가서 기다리라고 한 뒤 수업을 마치고 그 학생과 얘기를 한다. 시간이 지나 나중에 만나면 대체로 잘 해결된다는 이유다. 학교에서 책임질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부모에게 통보해 바로잡게 한다는 것이다.

흡연이나 약물에 대해서는 학칙에 따라 처벌하고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바로 경찰을 부른다. 학교에서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숙제를 안 해오는 경우 점수에 반영되니까 야단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생이 성적에 상관 않는다면 숙제를 안 하는 것도 자유라고 생각한다.

등수는 없지만 점수가 나쁘면 진학이나 좋은 학교를 갈 수 없도록 제도화된 학교에서는 교사와 갈등이 있을리 없다. 물론 교사의 권위가 절대적으로 인정된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수업시간에 잠을 자거나 선생님의 지도에 불응하거나 친구와 잡담으로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들이 없는 교실.... 선생님들이 ‘캐나다 교육이야기’를 읽으면 ‘나도 캐나다에 가서 공부 한 번 가르치고...’ 싶어 하지 않을까?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 고등학교 3학년인 황법량(19)군은 17일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자신이 다니는 광주 금호고등학교 내에 붙이려다가 학교 측의 제지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황군이 붙이려고 했던 대자보.

 

 

“학생은 닥치고 공부나 해라 이거죠”(벨제붑***),

“국가가 주는 것만 기억하고 사회의 목소리를 듣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어요”(Lun*******),

“교권을 바닥으로 떨구는 장본인이 교육부죠”(미누**),

“왜, ‘벽에다 대고’ 욕이라도 하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생전 말씀이 그렇네 두렵나?”(장강***),

“학생 때부터 불편한 일이 일어나도 입 닥치라는 훈련을 시키고 있군요”(정권교*********)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대해 “생활지도를 철저히 하라”는 공문을 경북교육청 산하 고등학교에 보냈다는 보도를 본 네티즌들의 반응이다.

 

경북교육청이 이런 공문을 학교에 보낸 이유는 “최근 일부 학생들이 사회적 문제와 관련된 특별한 주장이나 개인적 의견을 학교 내에서 벽보 등을 통해 표현한다”해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다.

 

경북 교육청이 보낸 공문에는 ‘학생들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학생 생활지도에 더욱 전념하라’는 내용도 잊지 않고 있다.

 

자아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1학년 학생에게 선생님이 칭찬과 격려를 하지 않고 수치심을 주는 발언이나 행동은 학생의 학교생활 내내 영향을 미친다는 건 상식이다.

 

사회의식이나 민주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그 생각을 주제로 토론학습으로 유도해 바람직한 가치관을 갖도록 하는 것은 교육자로서 해야 할 중요한 책무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걸 금지하는 게 교육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교육청의 관계자들의 사고방식이야 말로 민주주의 교육을 하지 말라는 반 교육적인 처사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서울 H여고에서는 학생들이 붙인 ‘안녕하십니까?’대자보를 보고 이 학교 교장선생님이 경찰에 신고해 말썽이 됐던 일도 있다. 이 학교 고 3학생이 붙였다는 대자보에는 ‘공정하여야 할 국정원이 트위터 댓글로 선거에 개입했다는 사실 앞에서도, 밀양에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송전탑은 안 된다며 독극물을 드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이미지 출처 : 옴이뉴스- 고등학교 3학년인 황법량(19)군은 17일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자신이 다니는 광주 금호고등학교 내에 붙이려다가 학교 측의 제지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황군이 붙이려고 했던 대자보>

 

코레일 직원들이 단체로 시위를 했다고 단체로 일자리를 잃었을 때에도 저는 안녕했습니다.’라며 지난 일을 돌이켜 반성하고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며 ‘강자가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 척하고 외면’했던 사회에 비판을 잊지 않았다.

 

논술교육을 하는 목적이 뭘까?

 

논술교육의 목적이 뭔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이치를 따져 전제로부터 결론을 이끌어내는 게 논술 공부다. 논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논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혀 대립되는 상대방과의 상호설득과정을 거쳐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논술은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문제를 놓고 토론해 결론을 이끌어 내는 방법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더구나 민주주의의식이나 사회의식을 교과서에 밑줄이나 끗고 5지선다형으로 정답이나 고르게 학업에 전념하는 방법일까? 자신의 생각이 없는 청소년들... 공부는 왜 하는지, 어느 대학에 가는 게 좋은지... 어떤 직장, 어떤 배우자를 골라야 하는 것 까지 부모가 일일이 도와줘야 할 수 있는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내놓고 토론한다는 것은 얼마나 기특하고 대겨한 일인가?

 

교육청이 원하는 ‘학업에 전념’이란 어떤 학업인가? 장학을 해야 할 교육청이나 학교장이 학생 개개인의 생각이나 판단을 묵살하고 공무까지 보내 간섭한다는 것은 장학이 아니라 교육파괴 행위다. 학생들의 의사표현의 자유까지 밟아 뭉개면서 어떻게 민주교육을 하겠다는 것인가?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책 보러가기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서울시민들의 자발적인 주민발의안으로 시행되고 있는 서울학생인권조례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임기 1년 반을 앞두고 취임한 문용린 새 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 담당 국장과 과장을 전격 교체하면서 인권조례를 대폭 수정할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인권조례가 정착도 되기 전에 누더기 조례를 만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이 인권조례를 수정하겠다는 이유는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교권실추와 학생생활지도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서울시와 경기도 등 진보교육감들이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것은 ‘입시경쟁력을 위해 처벌과 지시에만 의존한 전통적인 생활지도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통제와 단속이 아니라 상호존중을 핵심가치로 놓고 ‘인권’을 중심으로 소통하는 학교문화를 구축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지시와 감독, 통제와 단속이라는 군사문화의 잔재를 버리지 못하고 계속해 왔다.

 

이러한 모순을 바꿔 학교가 교육적인 차원에서 학생들의 인권교육을 제대로 해보자는 차원에서 시작한 게 학생인권조례다. 서울학생인권조례해설서를 보면, 인권이 자기중심적 권리 주장이 아니라, 타인 존중과 자기 책무 실천의 윤리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역시 학생의 자유와 권리만을 내세워 「학생의 권리 대 학교·교사의 의무」라는 이분법적 대립의 구조를 만들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학생인권조례는 전체 구성원들의 상호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그동안 학교현실에서 볼 수 있었던 폭력이나 억압, 획일과 타율 등의 비인간화의 모습들이 사라지고 보다 인권친화적인 학교문화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서울학생인권조례 해설서 일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생활지도의 어려움을 학생인권조례 탓으로 돌리는 것은 교육당국의 무책임함과 능력의 부재를 드러낸 조치다. 상호존중을 가르치는 인권교육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학생들의 버릇없음을 탓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울시교육청 학생참여단의 설문조사(10월15일~, 학생345명)에서 “서울학생 60%가 인권조례를 잘 모른다.

 

서울학생 98%가 인권교육을 따로 받은 적 없다”는 것으로 나타난 것은 이를 반증한 것이다.

시행 1년이 되도록, 인권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을 외면한 채 ‘생활지도가 어려우니 인권조례를 뜯어 고치겠다’는 것은 문교육감의 인권의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하고도 남는다.

 

2%밖에 인권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서울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고 “인권교육부터 제대로 해서 인권조례가 정착되도록 노력 해야겠다”는 의지도 없이 “학생인권조례부터 손 봐야 겠다”는 것은 학생을 인권의 대상이 아닌 순치의 대상으로 보는 위험한 학생관이다.

 

교권실추 논쟁도 그렇다.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을 실추시켰다고 주장은 ‘학생인권과 교권을 대립적’으로 보고, 교사가 말하면 무조건 순종했던 권위주의적 시대의 교권을 연상케 한다. 교사가 억압적으로 지시할 때, 겉으로는 잘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기보다 교사를 원망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것을 우리는 교사의 권위, 교권이라 할 수 없다. 민주화 시대의 교권은 학생과 상호 호혜적 관계와 소통의 관계 속에 발현되는 것이다.

 

진정한 교권이란 외면상의 복종이 아니라 학생과 교사의 상호인격적인 관계에서만 교권의 본질이 제대로 구현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학교는 교사의 통제를 통해 권위주의적인 국가권력과 무한경쟁으로 입시를 중심으로 생활통제를 강요해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교사-학생간의 갈등이 깊어져 온 것이다. 교사-학생을 통제적 관계로 만들고, 공동의 피해자로 만드는 것은 진정한 교육이 아니다.

 

오늘날 교권이 실추되고 학생들의 생활지도가 한계상황에 처한 것은 국가가 교육의 핵심인 교육내용 편성권과 평가권을 장악하고 국가수준교육과정과 일제식 평가체제로 일관해 왔기 때문이 아닌가? 지금까지 권위적, 시장적 교육정책을 쏟아냈던 교과부가 교권침해의 실질적 주범이 아니가? 교권실추의 탓을 학생과 학생인권조례로 돌리는 사람들은 여전히, 교사-학생의 관계를 대립적으로 보고 교권을 둘러싼 외부환경에 애써 눈감는 것이다.

 

 

생활지도의 어려움 뒤에는 MB정권의 학교다양화정책이 숨어 있다. 교육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교육을 상품으로 규정, 우열반을 편성해 수준별 수업의 ‘하반’, 비평준화 지역의 ‘비선호 학교’, ‘전문계 학교’, 대도시 ‘다인수 학급’으로 차별화했기 때문이 아닌가?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을 모아 놓는 분리정책과 대규모화 시키는 통폐합 정책이 생활지도를 어렵게 만든 요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교권침해와 생활지도의 어렵게 만든 정책을 쏟아내 놓고 대법원에 학생인권조례 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학교에서는 학생인권조례를 적극적으로 정착시키고 노력하는 학교들이 있다. 수업, 학급운영, 특강을 통해 인권교육을 생활화하고, 학기 초에 교사 ․ 학생 ․ 학부모가 오랫동안 치열하게 토론하면서 실천 가능한 생활규약(규정)을 만들면서 소통이 있는 학교문화를 정착시키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 교육청은 학교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바람직한 현상을 돕지는 못할망정 서울시교육청 학생참여단과 학생회가 주장하는 인권교육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인권교육이 현장에서 뿌리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인권조례 수정이 아니라, 이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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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총의 교직윤리헌장- 우리의 다짐에는 '학생의 인권과 인격을 존중하다'고 명시했다>

 

교사에게 사법권을 주면 학교폭력을 줄일 수 있을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교과부와의 교섭에서 “교사에게 특별사법경찰권(준사법권)을 부여해 달라”고 요청해 논란이 일고 있다. 특별사법경찰권이란 교사가 검찰의 지휘를 받아 수사권을 행사하는 사법경찰권으로 이 권한을 갖게 되면 학교폭력에 연루된 학생을 체포·신문·구속영장 신청할 수 있게 된다.

 

현재 교도 행정이나 식품위생관리, 삼림 관리 등 전문 수사인력이 부족한 분야에 한해 일부 공무원에게 제한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도록 하고 있는 제도다. 한국교총은 23일 이와 같은 특별사법경찰권을 교육과학기술부와 단체교섭을 위한 1차 본교섭에서 정부에 공식 요구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횝회 안양욱회장이 교과부와 교섭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교사가 특별사법경찰권을 갖게 되면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학생과 학부모를 소환하고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를 경찰과 검찰에 수사 자료로 넘길 수 있게 된다. 한국교총은 “학생인권조례 추진 후 교사들의 학생 생활지도권이 무너졌다”면서 “교사들이 효과적으로 생활지도 활동을 하기 위해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행할 자와 그 직무 범위에 관한 법률’ 개정을 요구”, “법률 개정을 통해 교사에게 학교폭력 사건을 수사할 수 있는 특별사법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해 12월, 대구의 한 중학생에 이어 올해 4월 영주에서도 중학생이 학교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가 하면 지난 26일에도 대구에서 학원폭력을 견디지 못한 중학생이 투신했지만 나무에 걸려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학교폭력은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한국교총이 원하는 교원에게 특별사법경찰권 요구는 것은 학교폭력을 해결하려는 방법으로서 옳지 못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20만 회원 한국교총의 교육관은 교육을 하겠다는 것인지 순치를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 교육은 가치내면화를 통해 학생 스스로 행동을 바꿔나가는 과정이요, 순치란 짐승을 길들이듯 강압으로 ‘길들이기’다. 학교폭력문제는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나 자기 존중감을 길러 상대방의 인권도 소중하다는 걸 깨우칠 때 가능한 일이다. 교총은 우발적인 폭력조차 학생생활기록부에 남겨 진학에 불이익을 주거나 폭력학생을 격리시키는 Wee스쿨을 설립, 폭력배로 낙인찍는 교과부의 폭력 근절책으로는 정말 학교폭력을 근절할 수 있다고 믿는가? 

 

 

 

지금이 경찰국가시대도 식민지시대도 아닌데 모든 학생을 예비범죄자로 취급해 교사에게 특별사법경찰권을 행사해 일진여부를 가려내는 준사법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망상이다. 교사는 교육을 통해 학생들을 올곧은 길로 이끄는 사람이다. 잘못한 일도 앞으로 잘 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믿고 이끌어 주는 것이 교사가 해야 할 책무다. 그런데 경찰이 할 일을 교사가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교사로서의 무능을 스스로 인정하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총의 인간관은 교육자로서 황당하다 못해 엽기적이다. 헌법을 비롯한 유엔인권헌장이나 청소년헌장이 보장하는 인권조차 반대하면서 어떻게 '학생의 인권과 인격을 존중'하겠다는 것인가? 역사적으로 권력의 비위를 맞춰 준 대가로 승진의 떡고물을 받거나 지도부 출세를 보장해 주는데 이력이 난 교총, 교육학의 기초이론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교사와 학생들과의 공감적인 인간관계, ‘라포르’형성이 대화의 기본이라는 걸 교총은 모르는가? 라포르의 형성 없이 어떻게 학생지도가 가능하다고 믿는가?

 

제자와 스승의 사이에 기본적인 믿음과 사랑이 없으면 교육이란 불가능하다. 신뢰가 아니라 회의와 불신의 눈으로 일진을 가려내고 조사해 처벌하는 사제지간에 어떻게 진정한 교육이 가능할까? 교사에게 특별사법경찰권 달라고 요구하기 전 학벌이 지배하는 사회풍토부터 바꾸고 입시교육이 아니라 인성교육을 할 수 있는 여건부터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는 게 교원단체로서 떳떳한 일 아닌가? 사랑하는 제자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체벌옹호론이나 준사법권을 요구하는 교육관으로 어떻게 아이들 앞에 부끄럽지 않는 교사가 될 수 있는가?

 

 

-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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