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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고양이 쥐생각하는 조선일보의 비정규직 짝사랑

by 참교육 2011.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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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자본주의 4.0'이다
"비정규직 임금, 정규직의 70%까지는 올려야"
비정규직 '4대 보험'이라도 사회가 책임지자
[자본주의 4.0] 한국, 이대로는 행복할 수 없다... 비정규직 800만명 불행하기에

최근 며칠간 조선일보의 이런 기사를 보면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가 아니라 마치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을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래 모든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웬만한 독자들이라면 조선일보가 얼마나 친 자본적이고 시장주의 원칙에 충실(?)했는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런데 느닷없이 갑자기 자본이 아니라 노동자 편이라니...
도대체 친 자본 경향의 조선일보가 어떤 기사를 썼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그 내용을 잠간 들여다 보자.

8월 3일지 "비정규직 임금, 정규직의 70%까지는 올려야"라는 기사는 이렇게 출발한다.

 

한국 노동시장은 '두명 중 한명이 비정규직, 네명 중 한명이 중위(中位) 소득의 3분의 2도 벌지 못하는 저임금 근로자'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조사 결과다.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임시직, 일용직의 비율이 높고 그만큼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는 근로자가 많다는 뜻이다.

이렇게 심각한 비정규직 문제를 왜 이제 갑자기 논하는가? 비정규직의 심각한 문제를 조선일보는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조선일보는 한계상황까지 온 비정규직문제를 이제까지 얼마나 지적하고 해결해 보려고 노력해 왔는가?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갑자기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노사(勞使) 모두가 비정규직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 지키려는 '위선'에 빠져 있다.’며 자본을 질타하고 있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문제가 이지경이 되기 까지 심층분석을 한 특집기사라고 싣고 대안을 모색했어야 옳았다. 그런데 조선일보 논조를 보면 비정규직 문제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은 해고가 되더라도 다른 직장에 재취업을 할 수 있는 정보나 직업훈련의 최소한 수단을 국가에서 제공해 주어야 할 것"이라는 김태기 단국대 교수의 조언을 덧붙이고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 서강대 남성일 교수의 설명을 소개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고양이 쥐 생각한다고 했던가?

조선일보가 비록 바른 말을 했다고 해도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가? 사실 오늘날 비정규직 문제가 이 지경이 되게 한 원인제공자 중의 하나가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이다. 해방 전 얘기까지 꺼내고 싶지 않다. 이승만독재,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군사정권시절 그들은 무슨 짓을 했는가? 권언유착으로 권력의 시녀가 되어 혹은 자본의 나팔수가 되어 노동자를 못살게 굴던 장본인이 조선일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해방정국의 빨갱이 사냥이며 5·18광주민중항쟁 당시의 광주시민을 학살하는데 일등 공신이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언론이 아닌가? 조선일보를 비롯한 친독재 친자본 언론이 저지른 죄악상을 차마 필설로 다 말하기 어려울 정도다.


조선의 젊은이를 총알받이로 혹은 정신대로 내몰고 나이 많은 사람들을 보국대로 보내 죽음으로 내 몬 장본인은 누군가? 그런 과거를 감추고 역사의 고비마다 카멜레온처럼 때로는 민족지로 혹은 유신을 찬양하고, 인권탄압에 앞장서고, 교육을 황폐화 시키고, 사교육비를 부추기고... 신자유주의 전도사가 되어, 노동자의 눈을 감기고, 귀를 막고 자본의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그 철면피한 편파왜곡보도며 친 자본의 교과서 왜곡에 이어 의료까지 민영화하자며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 게 조선일보다. 이러한 조선일보가 왜 갑자기 친노동적인 기사를 쓰고 소란(?)을 피울까? 조선일보가 몇 꼭지의 노동자에게 호의적인 기사를 썼다고 공정한 기사를 쓰는 신문이라고 믿어 줄 사람이 누굴까?

조선일보가 진정으로 노동자들의 권익을 생각할 의사가 있다면 210일째 크레인 위에서 죽음도 불사하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라고 절규하는 연약한 여성 노동자 김진숙위원의 문제부터 풀자고 팔을 걷어 붙여야 한다. 양의 탈을 쓴 늑대! 조선일보가 바라는 세상은 노동자가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이 아니라, 자본의 노예가 되어 수탈과 억압으로 노동자를 사람취급하지 않는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자본주의 위기와 선거를 앞두고 노동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악어의 눈물이다. 조선일보가 존재하는 한 이 땅의 노동자들의 눈물을 영원히 그칠 날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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