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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관련자료/학교폭력

학교 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진짜 이유

by 참교육 2011.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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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앞을 지나다 보면 학교도 다닐 나이도 아닌 어린아이가 문방구 앞에서 오락을 하는 모습을 가끔씩 본다. ‘무슨 오락이기에 저렇게 재미있어 할까?’하고 들여다보면 사람을 치고 박고하는 싸움을 하는 게임이다. ‘이 아이가 왜 혼자 게임기 앞에 앉아 있을까?’ 몇년 전 제자들의 모임에 갔다. 제자들 모임에 가면 아직도 미혼인 노처녀도 있지만 결혼을 해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제자와 중·고등학교 학부모가 된 제자들도 같이 모인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자연스럽게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가 나온다. 부부가 직장에 모두 나갈 경우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놀 친구가 없다’는 것이다. 이 얘길 들으면서 전에 혼자서 게임을 하던 아이 생각이 났다. 아마 부부가 다 일하러 나가면서 잔돈 몇 푼주고 간 돈으로 혼자 놀다 심심해 게임기 앞에 앉아 있었던가 보다.

 같이 놀 친구가 없어 갈 곳이 없는 아이. 부모가 다 일터에 나가고 학원에도 갈 수 없는 아이는 이렇게 일찍부터 게임기에서 폭력을 경험하며 왜곡된 사회를 배운다. ‘돈이 되는 것은 선’이 되는 사회구조에서는 폭력물은 곧 돈이다. 폭력물을 만드는 사람도 죄의식 없이 먹고살기 위한 생존 방식으로 만들고 폭력을 배우는 아이도 폭력이 나쁜 것이라는 생각도 없이 자연스럽게 배워가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 아이들은 이렇게 오락기 앞에서 혹은 게임방에서 혹은 TV연속극에서 자연스럽게 폭력을 배운다. 조금 더 자라 중고등학생이 되면 신나고 스릴 넘치는 폭력영화를 좋아하면서 폭력은 나쁜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것으로 배우게 된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문학작품 또는 영상물 중에는 폭력이나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이 유달리 많다. 왜 그럴까? 폭력이나 전쟁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본인이 직접 당하면 고통스럽지만 이미지화시키면 재미만 남는다. 폭력물이나 전쟁을 소재로 한 예술이 그래서 인기다 있는가 보다.

불후의 고전까지 폄하하자는 말이 아니다. 폭력이나 전쟁을 소제로 한 작품에 상업주의가 첨가되면 예술성보다 폭력을 미화하는 상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자국의 국민 한 사람의 생명은 하늘같이 귀하지만 베트남 사람을 파리 목숨처럼 죽이는 람보를 비롯해 그런 류의 만화나 영화들을 보면서 아이들은 악의 없이 서서히 폭력에 물들어 가는 것이다.


7천만이 다 통일을 원하는데 왜 통일이 안 될까? 답은 간단하다. 통일을 바라는 사람보다 분단을 바라는 사람들의 힘이 더 크기 때문이다. 군수산업으로 번영을 구가하는 나라가 패권을 휘두른다면 세계평화를 유지하기 어렵다. 그것이 강대국일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학교폭력이 사회적인 문제가 된지 오래지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학교폭력과 전쟁을 선포하고 온갖 전문가들이 다 동원되고 좋다는 처방을 써볼 만큼 써봤다. 그러나 아직도 해결은커녕 날이 길수록 더더욱 폭력적이고 잔인해지고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학교폭력과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지만 폭력문제가 해결 안 되는 이유는 폭력근절이 전쟁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폭력을 이용해 이익을 보는 세력이 학교폭력을 막으려는 세력보다 크기 때문’이다. 사행성 오락이 그렇고 폭력을 주제로 한 게임이며 만화가 그렇다. 수많은 영화중에 전쟁이나 폭력을 주제로 하는 영화가 폭력성을 띠고 안방까지 침투하는 이유도 그렇다.


사회에서는 폭력을 가르치고 학교에서는 폭력을 막겠다면 막아질 리 없다. 오늘날처럼 학교교육의 영향력보다 메스미디어의 영향력이 더 큰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학교폭력이 이슈가 되면 교육과학부 장관을 비롯한 법무부장관, 행정자치부장관, 경찰청장, 국가청소년위원회위원장...이 나서서 연례행사처럼 ‘학교폭력 자진신고 및 집중단속 기간 운영에 즈음하여’ 어쩌고 하는 담화문을 발표하고 ‘자진신고 기간’을 설정, ‘처벌을 받지 않으려거든 자진 신고하라’고 한다.

거대한 자본이 합작해 만들고 있는 폭력을 형식적인 자진신고기간 설정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믿을 바보는 없다. 연례행사처럼 대책이랍시고 한 가지씩 던지는 해결책을 내놓는 동안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죄의식도 없이 ‘폭력은 아름다운 것’으로 배워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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