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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관련자료/학부모

이제는 부모가 배워야 할 차례다

by 참교육 2011.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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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기의 새끼사랑>

 지극한 자식사랑은 사람에게만 있는 일일까? 동물들의 새끼사랑을 한 번 살펴보자. 동해 바다에서 올라온 가시고기들은 수심 2m 지점에서 알을 키운다. 물고기 가운데 유일하게 둥지를 짓는 가시고기는 주둥이로 강바닥 모래를 퍼내 구덩이를 만들고, 수초 가닥으로 집을 짓고 단단하게 고정한다. 집이 완성되면 암컷은 3∼4초간의 짧은 산란을 마치고 집을 떠난다.

 그때부터 부화하기까지 알을 지키고 새끼를 키우는 것은 수컷의 몫이다. 몸길이가 고작 7㎝에 불과한 가시고기가 알을 노리는 붕어, 검정망둑이, 거북이 등과 맞서 끝까지 새끼를 지키고 보호한다. 가시고기의 새끼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산소를 제공하기 위해 1000개나 되는 알들을 둥지에서 차례로 꺼냈다가 다시 넣어 주는 일을 새끼가 부화할 때까지 약 15일을 계속한다.  

                                                      <사진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산란 후 8일째가 되면 알이 부화하는데, 그 때, 수컷은 알들을 주둥이로 찔러 부화를 돕는다. 부화 후 5일이 지나면 수컷은 서서히 죽어 간다. 둥지를 지을 때부터 새끼가 모두 부화하기까지 약 15일을 수컷은 잠도 자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새끼들의 생명 보호를 위해 이 같은 일을 한다. 이후 '아빠 가시고기'의 몸빛은 바래지고 주둥이는 헐어간다. 1년 전 자신을 낳아준 가시고기가 그랬듯, 자기 몸을 새끼들에게 주기 위해서다. 1㎝도 안 되는 새끼들은 이런 아빠고기의 희생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무심하게 '아빠고기'의 몸을 뜯어먹는다.

<옴두꺼비, 사마귀, 연어, 여우의 새끼 사랑>

 지극한 부성애는 가시고기뿐만 아니다. 유난히 등이 우툴두툴해서 옴두꺼비라고 불리는 두꺼비가 있다. 이 옴두꺼비는 알을 품게 되면 평소에는 이리저리 피해 다니던 독사에게 스스로 찾아간다. 그리고 독사와 죽을힘을 다해 싸운다. 어미두꺼비는 지겹고 오랜 싸움 끝에 결국 독사에게 잡아먹히고 말지만 뱀의 뱃속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독을 뿜어 독사와 함께 죽는다. 이후 옴두꺼비의 알들은 독사의 뱃속에서 부화하여 뱀의 몸을 자양분으로 더욱 튼튼한 새끼두꺼비로 태어나게 된다.

 어미두꺼비는 평상시 피해 다니던 독사에게 왜 자청하여 다가가 죽기까지 싸운 것일까.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독사에게 다가간 것은 바로 새끼를 위해서였다. 비록 자신은 죽더라도 나중에 새끼를 잡아먹을지도 모를 천적을 죽여야만 자식의 목숨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새끼는 어미의 희생으로 자유와 해방된 새 날을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마귀(당랑)도 예외는 아니다. 사마귀란 놈은 암놈이 알을 배면 수놈은 그 알을 키우기 위해 왕성해진 암놈의 식욕을 위해 머리 째 암놈에게 먹히기까지 한다. 아프리카 개미 중 어떤 개미는 새끼가 알에서 부화되자마자 먹는 첫 음식이 엄마개미의 몸이라고 한다. 암놈이 낳아놓은 수정란을 수놈이 입에 머금어 부화시키고 입안에서 기르는 도화돔의 사랑이며 빙판 위에 알을 낳을 수 없어 수놈 발등 위에다 알을 낳아 두 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꼼짝없이 빙판에 서 있어야 하는 펭귄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연어는 평생을 바다 생활을 하다가 알을 낳을 때가 되면 모천으로 먼 길을 돌아오며, 알을 낳고 바로 죽어버린다. 동물은 붉은배새매. 비바람이 불면 온 힘을 다해 어미는 새끼들을 날개로 감싼다. 잠시 바람이 잠잠해지면 나뭇잎을 꺾어 새끼들을 덮어준다. 그러나 약육강식의 법칙은 냉정하다. 붉은배새매 새끼들은 호시탐탐 다른 동물들의 표적이 된다. 어미는 자신의 몸을 바쳐 새끼들을 지켜낸다.

 야생 여우는 새끼들에게 강자로 살아남기 위한 훈련을 시킨다. 사냥을 위해 점프력을 키우고 먹잇감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시킨다. 낭떠러지에서 밀어내 기어오르게 할 것처럼 냉정한 어미지만, 새끼여우를 노리는 독수리 앞에서는 새끼를 지켜내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어버이의 사랑이 위대한 이유>

 사랑을 노래한 시나 문학 작품의 주제에서 볼 수 있듯이 ‘위대한 사랑‘하면 어머니의 사랑을 꼽는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셨기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이 위대한 것일까? 어버이날 ‘어머니 은혜’란 노래 가사에 담긴 ’은혜‘의 뜻이란 과연 뭘까? 가사 내용처럼 낳으실 때 괴로움과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었기 때문 만일까? 부모가 단순히 동물적 본능에 따라 길러주는 정도라면 하등동물의 새끼 사랑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렇다면 어머니 사랑이 위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초등학교 어린이 4명중 1명이 정서나 행동에 문제가 있다‘는 언론보도는 충격적이다. 정서 행동이나 학습장애, 인터넷 사용문제, 정신신체증상 등 주로 환경적 요인에 의해 나타난 문제들이다. 어떤 사회학자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청소년기에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이 하루 1분 미만'이라고 한다. 77년 미국의 한 사회학자가 조사 발표한 사실에 따르면,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아빠와 자식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은 겨우 38초에 불과하다는 보도도 있었다.

 진정한 부모사랑은 낳아서 건강하게 잘 먹이고 잘 입혀 키워줬기 때문만이 아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으로서 구실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눈뜨게 해 주는 것.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별할 수 있도록 분별력을 길러주지 못한다면 어버이 은혜를 그토록 찬양할 가치가 있을까? 더구나 어설픈 과학(?)의 발달로 아이에게 건강을 지켜주지 못하고 아토피나 성인병을 물려주는 어머니라면 어떻게 감사의 대상, 존경의 대상으로 또 위대한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세상에 부모치고 자식을 대충 키우겠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환경의식이 없는 부모는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울 수 없다. 배 굶기지 않게 키우면 부모 역할을 다했다는 시대는 지났다. 쓰레기 만두사건에서 보듯 시중에는 도저히 아이들에게 먹어서는 안 될 오염식품도 버젓이 팔리고 있다. 수입품 식자재가 얼마나 안전할까? 얼마 전 ‘과자의 공포’라는 TV 프로그램이 말해주듯 아이들이 먹는 과자조차 안심하고 먹일 수 없는 세상이다.

<댁의 자녀는 안녕하세요?>

 과자만 그럴까 상품성이 있는 농수산물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농약이며 항생제며 방부제는 아이들이 먹는 식품으로부터 안전이 보장되는가? 콜라를 비롯한 탄산음료며 장기보관 판매를 위해 만든 캔 음료는 아이들이 마셔도 괜찮은가? 학교급식을 하면서 식중독 사고만 일어나지 않기 위해 먹이는 튀김음식이나 볶은 음식은 과연 안전한가? 수입품인지 국산인지 GMO 식품인지 조미료는 얼마나 사용했는지 알기나 할까?  

 음식만 아니다. 아이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만화방에서 보는 만화는 그들의 정서를 해치지 않은가? 청소년들이 보는 책이나 영화는 보드라운 속살과 같은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허무주의자가 쓴 소설을 일고 자란 아이는 과연 건강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폭력이나 음란물을 읽으면서 자란 아이는 또 어떤가? 자기성적이 친구보다 뒤지지 않기 위해 친구의 노트를 찢어버리는 아이들이 있다는 걸 어머니는 알기나 할까?  

 한달에 수십만원씩 하는 학원에 보내기만 하면 내 아이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 부모는 과연 부모의 노릇을 다했다고 믿어도 좋은가? 조기유학만 보내주면 부모역할을 다한 것일까? ‘내 아이만 건강하게 유능하게 잘 자라면 된다?‘ 과연 그럴까? 세상의 공기가 다 더러워져도 우리집 방안공기만 깨끗하면 그만이라고 문을 닫아 잠근다고 해결 될 일인가?

 사람은 혼자서 사는 개인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다.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치지 못하는 부모는 부모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내가 소중하면 남도 소중하다는 걸 가르쳐 주는 건 부모가 가르쳐야 할 몫이다. 내가 먹은 과자 봉지나 휴지를 아무 곳에나 버리는 것. 상대방의 입장은 생각하지도 않고 가시 돋친 말로 친구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행동. 나의 행동으로 상대방이 고통을 당하건 말건 상관없다는 아이들의 태도. ‘공부만 잘하면 그런건 대수롭지 않다고 대범(?)하게 키우는 부모는 부모역할을 다 했다고 할 수 있을까?

 빼어나게 잘생기지 못해도 인상이 좋은 사람이 좋다고들 한다. 아는 것은 완벽하지 못해도 가슴 따뜻한 사람. 설사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더라도, 일류대학출신이 아니더라도, 따뜻한 대화로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 돈이 많아 재벌은 아닐지라도 돈 앞에 비굴하게 신념조차 포기하지 않는 사람. 더 높은 지위와 더 많은 부와 지위와 명예를 쫒아 허겁지급 살지 않는 사람 그런 여유로 힘겨운 이웃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으로 키울 수는 없을까?  

<지금부터라도 성인교육 시작해야> 

 학교만 탓해서는 안 된다. 교육을 학교에만 맡기면 사람을 만들어 줄 거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물론 학교가 그렇게 해주기만 한다면 오죽 좋을까? 그러나 학교는 모든 아이들을 다 만족하게 키워줄 능력도 없지만 그렇게 키워주지도 않는다. 가슴 따뜻한 사람.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것은 부모의 몫이다. 나는 ‘바담풍‘ 하더라고 너는 ’바람풍‘ 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 부부야 어떻게 살던 무슨 짓을 하든, 아이들만 좋은 학교 보내고 잘 먹이고 잘 입히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바라서는 안 된다. 부모가 이중인격생활을 하는데, 도덕적이지 못한데, 자식은 위대한 인격의 소유자로 자라기를 바랄 수 없다.

 가정교육이 무너지는데 학교나 학원교육이 건강하리라 기대할 수 없다. 시민의식이 없는 부모가 키운 아이는 민주시민으로 자랄 수 있는가? 환경의식이 없는 부모는 건강한 아이를 키울 수 없다. 학교를 살리기 전에 무너진 교육을 살리기 전에 부모교육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교육이 필요한 부모일수록 자신은 배울게 더 없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산다. 내일의 주인공이 될 청소년들을 건강하게 키우려면, 무너진 학교를 살리려면, 우선 성인교육부터 필요하다. 아니 천민자본주의를 지탱하게 하는 상업주의며 순진한 국민들을 마취시키는 신문부터 고쳐야 한다. 교육이 없는 가정에 어떻게 건강한 아이들이 자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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