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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역사

제주 4·3항쟁 특별법 통과로 제주항쟁 피해보상이 끝난게 아니다

by 참교육 2021.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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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했는데... 국가가 저지른 폭력... 그것도 10살도 안되는 어린아이 희생자가 770명이다. 그들이 빨갱이라서 죽였는가? 1947년 3월 1일~1948년 4월 3일 대한민국 아니 제주도는 지옥이었다. 제주 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공식 발표한 사망자 14,363명... 미국과 미국의앞장이이승만이저지른착혹한 범죄는 73년이 지난 이제 와서야 '제주4ㆍ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사과 한마디 없고 미국을 혈맹운운하는가 하면 이승만을 국부로 만들지 못해 안달이다. 사가들 중에는 14,363명이 아닌 제주도 인구의 3분의 1인 30만명이 학살당했다고 한다. 제주 4, 3행쟁의 진정한 명예회복과 보상은 아직도 끝난게 아니다.  

 

오늘은 제주 4·3항쟁 73주년이 되는 날이다.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그리고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 미군정기에 발생하여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이르기까지 7년여에 걸쳐 지속된, 한국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이 ‘제주 4·3항쟁이다.

 

 

1947년 3월 1일, 제 28주년 3·1절 기념 제주도대회가 열렸고, 제주읍에서는 북국민학교의 3·1절 행사가 오후 2시에 끝나자 군중들은 가두시위에 나섰다. 시위대가 관덕정을 거쳐 서문통으로 빠져나간 뒤 관덕정 부근에 있던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치여 다쳤다. 이때 기마경찰이 다친 아이를 그대로 두고 지나가자 흥분한 군중들이 돌을 던지며 항의했고 관덕정 부근에 포진하고 있던 무장경찰은 군중을 향해 총을 쏘았다. 경찰의 발포로 주민 6명이 희생되었고, 이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그때까지 큰 소요가 없었던 제주사회가 들끓기 시작했다. 제주4·3의 도화선이라 불리는 ‘3·1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947년 3월 1일~1948년 4월 3일’>

제주 4·3항쟁은 미군정기간인 ‘1947년 3월 1일~1948년 4월 3일’에 일어난 사건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기록에는 제주 4·3 항쟁은 남조선로동당과 대한민국 유군과 해병대 그리고 제주 경찰의 충돌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미군정기라는 사실을 빼놓고 제주 4·3항쟁을 말하면 가해자가 보이지 않는다. ‘1947년 3월 1일을 시작된 제주 4·3항쟁은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기에 이른다. 제주 중산간마을을 초토화시키면서 본격적인 학살은 1948년 4월 3일로 끝난게 아니다. 한국전쟁기간이 1950년 6월 25일부터 전쟁이 끝나는 1953년 7월 27을 지나 1954년 9월 21까지 토벌이 계속 된다. 미군정기에 시작된 제주양민학살은 이승만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발단은 기마경찰의 말에 다친 어린아이에 대한 항의였지만 제주민도들의 핵심적인 구호는 ‘단선(單選)·단정(單政)반대!’, "같은 민족에게 총을 쏠 수 없다", "미제 침략 반대"였다. 2차세계대전의 전범국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해방의 기쁨을 누릴 틈도 없이 조선의 지배자는 조선총독부에서 미군사령관으로 바뀌고 1945년 9월 8일은 미국은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명분으로 4만5천명에 달하는 전투기의 엄호 아래 장갑차를 앞세우고 나타나 “오늘 북위 38도선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면서 나타난다.

 

 

<북촌리는 조천면 북촌초등학교 옆 젖먹이 어린아이들의 너븐숭이무돌무덤>  

 

<가해자는 누구인가?>

‘죽어 마땅한 빨갱이들...’이었기에 억울해도 입도 열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 제주 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공식 발표한 사망자 14,363명... 그러나 학자들은 제주 도민의 8분의 1이 죽거나 행방불명된 희생자는 3만 명에서 8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희생자 중에는 10세 이하가 770명이다. 11~20세가 2,464명, 21~30세 5,461명, 31~40세 2,291명, 41~5-세가 1,383명... 70세 이상이 344명이나 된다. 젖먹이를 포함한 걸음마를 하는 애기들은 지금도 무덤도 없이 북촌리 너븐숭이 돌무덤에 무심한 장난감만 여기저기 널려 있다. 유가족은 이렇게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 사과한 2003년까지 무려 58년의 세월을 숨죽이면서 속으로 울어야 했다.

 

사람들은 제주 4·3항쟁의 가해자를 대한민국의 국군과 서북청년단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은 미군정기간의 점령군이었던 미국의 육군, 공군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동족을 학살하는데 동원을 거부한 여순항쟁을 아직도 반란이요,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 반민족 세력들은 ‘빨갱이’라는 무기로 분단을 고착화하고 외세와 결탁 주권자로 군림하고 있다.

 

일제에 은혜를 입은 세력들은 ‘친일이 애국’이라는 막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니며,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의 가치관으로 무장한 대한민국의 지배층들은 미국을 천사의 나라로 찬미하고 있다. 제주 4·3항쟁 72주년. 제주에 평화공원이 건설되고 4·3평화재단과 4·3평화기념관이 건립됐다고 ‘사건’이 ‘항쟁’이 되는 것이 아니다. 4·3항쟁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유족들에 대한 진정한 보상은 아직도 먼 꿈같은 얘기다. 제주 4·3항쟁의 가해자들은 돌아오는 4·15총선에서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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