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돌아가는 꼴이 말이 아니다. 이를 두고 종교인들은 말세라고 하며 예수의 재림이 가까웠다며 회개하고 믿으라고 한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도 말세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정의감이 강한 사람들은 제도를 바꿔야 한다며 진보정당을 만들기도 하고 술을 한잔 하면 세상을 한탄하고 좌절과 실의에 빠져 울분을 토해내는 사람도 있다.
종교인들이 기대처럼 예수님이나 미륵불이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열망 때문일까? 비상도가 나타났다. 보통사람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초인이 나타나 세상의 불의와 맞서 법이나 경찰이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는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깨부수고 정의를 세우는 홍길동, 비상도가 나타났다.
이 시대의 홍길동.... 변재환이 쓴 의협소설 비상도<책보세>가 그 주인공이다. 독립투사의 자손인 비상도는 친일의 대가로 대를 이어 사회적 존경과 부를 독점하고 대물림하는 현실을 보다 못해 팔을 걷어붙이고 악의 무리와 맞선다. 이 작품의 줄거리를 보면 주인공 비상도(조동해)에게 전통무예 비상도를 가르치는 큰스님, 비상도의 사형 백남재, 비상도의 제자 용화, 무예를 배오고 싶어 자청한 송철과 백원익, 비상도의 후원자 성여사, 그리고 천경장과 정기자가 평치는 흥미진진한 의협소설이다.
소설은 물론 연극이든 영화든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말초신경을 자극해 기준도 원칙도 없는 막장드라마나 숨겨놓은 아들이나 뻔한 재벌가에서 벌어지는 찌질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식상한 백마 탄 왕자님이나 신델렐라 같은 그런 재미없는 재미가 아니라 친일후손, 조직폭력배, 매판자본, 상업스파이, 일진회의 폭력을 척결하는 우리사회의 불의를 척결하고 사회정의를 세우는 통쾌방쾌한 카타르시스와 힐링의 책이다.
책이 참 외면 당하는 세상이다. 안방극장에 빠지고 SNS에 눈을 떼지 못하고 식품첨가물로 범벅이 된 먹거리에 현혹돼 재미없는 세상에서 재미를 찾아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구세주로 등극하고도 남을 그런 재미를 주는 책이다. 처음 쇼셜디자이너 임현철씨로부터 이 책을 받고는 사실 부담이 되어 덮어뒀던 책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더운 여름에 보기만 해도 답답한 446쪽짜리 묵직한 책이니 책장을 열어보고 싶겠는가?
가을바람이 제법 시원하게 불기 시작하면서 아침저녁 TV만 끄면 가까이 있는 책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필자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국립세종도서관이 개관해 그 많은 장서들을 입맛에 따라 볼 수 있어 이런 부담스런 책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블로그를 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책을 보내준다. 어떤 책은 책사에서 구해 읽고 싶은 책도 있지만 필자의 전공과는 거리가 먼 책을 받으면 보내준 정성을 생각해 읽지 않을 수 없어 건성으로 읽고 서평을 써주기도 한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소설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읽고 나면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에는 고전에 빠져 책벌레라는 소릴 듣기도 했지만 일에 빠져 살다보면 직업과 관련 된 책, 교육도서를 주로 읽는다. 그렇다고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나 막심 고리키의 장편 소설 어머니같은 소설은 읽지 않고 베길 수 없었다. 이런 소설은 소설이라기보다 차라리 전공서적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 아껴가며 읽었다. 그런 후로는 소설을 읽은 지 한참 오래됐다. 동병상린일까? 정년퇴임 후 실업자가 된 후 최근에 정운현선생님이 쓴 ‘실업자’ 정도가 소설로 기억에 남는 책의 전부다.
비상도는 참 특이한 책이다. 나이 들어 돋보기를 끼고 책을 읽는게 여간 부담이 아니다. 그러나 전날 저녁부터 읽기 시작해 이튿날 아침에 다 읽었다. 아니 책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재미에 푹 빠지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책이다. 뻔한 의협소설이라면 보다 덮거나 며칠을 두고 읽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기독교인이나 미륵을 기다리는 불도의 심정이 이럴까? 우리가 사는 세상 구석구석 하나도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게 없다.
정치며 경제며 사회며 언론이며 교육이며 종교며... 법도 신의도 상식도 도덕도 윤리도 사라지고 목소릴 큰 사람, 거짓말 잘하는 사람, 허세를 떨고 혹은 돈으로 혹은 외모로 학벌로.. 자랑질하고 떠벌이는 꼴볼견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이성을 가지고 살아가기가 힘든 세상이다. 시비를 가리면 왕따를 당하거나 승진이며 출세도 포기해야 될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속 시원하게 대리 만족시켜주는 책이니 책을 놓을 수 있었겠는가?
현실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에 종교가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비상도도 현실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모순을 제거하고 정의를 세우는 그것도 통쾌하게 불의를 쳐부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볼 수 있었던 책... 1953년생으로 태어나 이 책 한권을 남기고 지난해 세상을 떠난 저자가 유일하게 남기고 간 책... 어쩌면 저자는 이 책을 남기기 위해 이 땅에 온 사람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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