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수술, 소개팅, 아르바이트, 다이어트, 운전면허증 따기, 여행가기, 술먹기, 알바하기, 애인 만들기, 염색하기......
무슨 얘길까?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고 3 학생들에게 ‘수능이 끝나면 하고 싶은 게 뭔가?’ 라는 설문에 대한 답입니다. 창살 없는 감옥(?)에서 억압당하며 살아 온 세월에 대한 반항일까요? 그런데 그 반항치고는 뭐가 좀 이해 안 되는 게 있습니다. 여행을 하고 싶다든지... 읽고 싶은 책을 싫건 읽겠다든지가 아니라 성형수술. 소개팅이라...?
오늘 글은 지난 2001년 12월 3일, 경남도민일보'에 썼던 칼럼을 보다 이 글을 다시 올려 봅니다 13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학교는 아직 그대로 입니다. 신분은 학생인데 모습은 전혀 학생이 아닌, 그렇게 금과옥조로 여기던 교칙은 온데간데 없고 공납금은 내지만 배우는 게 없는 학교!.... 이렇게 잘못된 교육현장을 언제까지 이대로 방치하고 있어야 할까요?
잘못은 고쳐야 하고 비뚤어진 것은 바로 잡아야 하는 게 세상이치인데 왜 유독 교육분야는 고질적인 모순을 방치하고 있는 것인까요? 2001년과 2013년의 학교 어떻게 다른지 한 번 보십시오.
<수능이 치러지는 날 팔공산 '갓바위 부처' 앞 풍경 - 이미지 출처 :오마이뉴스에서>
거국적인 행사인 수학능력고사가 끝났다. 새벽같이 일어나 도시락을 두서너 개씩 싸 가지고 등교하면 밤 12시가 가까워야 집으로 돌아오던 고통의 세월이 끝난 것이다. 세시간 자면 붙고 네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냉엄한 살아남기 작전(?)의 수능이 끝나자 거리는 갑자기 젊은이들로 넘친다. 자유를 찾은 해방의 기쁨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도시는 그들로 하여금 갑자기 젊어진 기분이다.
성급한 학생은 사복도 교복도 아닌 복장에 머리까지 염색하고 이성친구와 손을 잡고 걷는 학생도 있다. 운명의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 것. 성적발표 따위는 신경 쓸 이유가 없는 듯이 보인다. 묶였던 세월을 한꺼번에 보상이라도 받아야겠다는 듯한 모습에서 자유의 소중함을 확인한다.
고3 학생들은 수능시험이 있기 하루 전, 배우던 교과서나 참고서는 쓰레기장에 폐기처분(?)했다.
그들은 졸업시험까지 끝나고 학생생활기록부 성적처리도 끝난 상태다. 출석부 정리까지 마친 고3 학생들은 교사들의 통제권에서 벗어난 지 이미 오래다. 학교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아침 10시가 넘어 책가방도 없이 학생복장이라고 보기 어려운 자율복 차림으로 어슬렁어슬렁 학교에 나타난다.
어제까지 서슬 퍼렇던 학생부의 단속은 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말이 학생이지 실질적으로는 졸업한 지 오래다. 오전 수업을 하는 날이 있지만 교과서까지 폐기 처분한 그들에게 정규수업이란 말도 안 된다. 가끔 특별강의가 있지만 자신들이 관심 없는 분야는 아예 통제 불능이다.
교육과정은 대통령령이다. 학교는 교육과정이 교육의 지침서다. 연간 수업시수와 이수과목 등을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어 학교나 교사의 자율성은 조금도 없다. 그러나 수능고사가 끝난 순간부터 졸업생에게는 예외다. 그토록 서슬 퍼렇던 교칙이나 교육과정 따위는 그들에게는 구속력이 없다.
실제로 4개월에 가까운 세월을 세상수업에 무작정 팽개쳐 두고 있는 셈이다. 물론 대학설명회에도 다니고 수시 모집에 대비해 논술준비를 하는 학생도 없지 않다. 부족한 영어회화나 컴퓨터 실력을 쌓는 학생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학생의 개인적인 필요에 의한 판단이지 대부분의 학생은 방랑자(?)들이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 뉴스>
분명한 사실은 그들은 아직도 학생신분이라는 것이다. 법이나 다름없는 대통령령도, 교칙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치외법권자로 묵인하고 있는 것이다. 치외법권자가 된 그들에게는 사회를 배울 수 있는 체계적이고 의도적인 프로그램이란 없다. 학교도 교육인적자원부도 그들에게 교육다운 교육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교과서를 폐기 처분할 때 교육과정도 함께 폐기 처분했다. 공납금은 내지만 수업도 받지 않으면서 왜 납부해야 하는지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도 없다. 물론 여유 있는 가정에서는 이러한 자유가 자기도야를 할 수 있는 호기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졸업 예비생들은 갑자기 닥친 무진장한 자유 앞에 감당할 수 없는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지키지도 못하는 법은 개정하든지 폐기 처분해야 한다. 어제까지 귀밑 몇 센티는 학생답고 그렇지 못하면 불량학생으로 취급받던 교칙은 필요할 때만 지켜도 된다는 기회주의자를 키운다. 수능시험이 끝나면 법도 교칙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교육적이지 못하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 뉴스>
책가방의 색깔이나 양말까지 통제를 받던 서슬 퍼렇던 교칙이 수능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무용지물이 되고 만 것이다. 교칙은 학생들을 위해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학교를 위해 존재했던 것인가. 학생의 신분이면 당연히 지켜야 할 법이나 교칙을 폐기처분 한다면 후배들에게 어떻게 준법정신을 가르칠 것인가.
법을 지키는 사람이 손해 본다는 풍토를 가르쳐서는 안 된다. 준법정신과 원칙을 가르쳐야 할 학교가 엄연히 교육과정이 정한 수업일수와 교칙을 무시한다는 것은 교육의 포기다. 지키지도 못할 법이나 교육과정은 현실적으로 개폐해야 옳다. 불법이나 범법을 모른 채하고 묵인하는 학교도 행정관청도 똑같은 방관자들이다.
수능고사가 끝나면 학교가 할 수 있는 사회적응 교육과정을 다시 만들든지 차라리 조기 졸업시키는 것이 옳다. 학생도 사회인도 아닌 어정쩡한 신분으로 인생을 낭비하도록 묶어두는 일은 경제적이지도 교육적이지도 못하다. 소중한 젊음을 4개월 동안 방황케 하는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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