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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관련자료/교사

교사에게 권위란 무엇인가?

by 참교육 2012.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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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키가 2m가 넘고 몸무게도 100Kg이 넘을 정도의 거구의 선생님. 수업에 들어갈 때면 손에는 언제나 출석부와 길이가 1m 정도 되는 몽둥이를 들고 들어가신다.

인상도 정말 무섭게 생겼다. 수업시작하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교실에 없거나 엎드려 자면 예의 그 몽둥이로 교탁을 한 두 번 치면서 눈만 부릅뜨면 아이들은 완전히 얼어 버린다.

수업시간에 떠들거나 자는 아이는 눈 닦고 찾아봐도 없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몽둥이로 아이들을 때리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업계 학교에서 60명의 교실에 열 명도 채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잠을 자거나 잡담을 하는 다른 선생님의 수업시간에 비하면 기적 같은 모습이다.

                                                        <이미지출처 :  EBS에서>

사례 #.2

수업에 들어 올 때는 늘 ‘훈화자료’라는 선생님이 직접 만든 자료집을 들고 다닌다. 그렇다고 덩치가 커서 위압적이거나 ‘야 임마!’ ‘이 자식 저 자식...’ 그런 말은 입 밖에도 내지 않지만 학생들은 선생님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목소리도 크지 않고 다정다감하다. 이 선생님이 들어와 수업을 시작할 때 자고 있는 친구가 있으면 깨워주기도 한다.

교실에 들어 와 수업을 시작하기 전 흑판에 ‘인내’ 혹은 ‘채무자’... 이렇게 쓰고 삶에 대한 얘기로 수업을 시작한다. 어떤 날은 ‘자성예언’ 또 어떤 날은 ‘연단’... 이렇게 흑판에 쓰고 난 다음 얘기를 시작한다. 선생님의 수업시간에는 당연히 그런 훈화로 시작한다는 걸 학생들은 다 안다. 어떤 날을 시를 읽어주기도 하고 어떤 날은 자신이 감동 깊게 읽었던 고전을 들려주기도 한다.

그러다 교과서 단원을 흑판에 적고 “공부합시다” 하면 여기저기서 “선생님~ 계속해요!” 이렇게 나오면 못이기는 척 학생들에게 지고 한 시간 내내 얘기를 할 때도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말썽이다. 학생들에게 인권을 찾아주자고 시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자 보수적인 교사단체인 교총이나 조중동같은 수구언론들이 야단이다. 교사들에게 권위가 무너지면 교사들이 설 곳이 없다는 것이다. 수업을 진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교육희망에서>

학생도 학생이기 전에 한 사람의 국민이니까 당연히 국민으로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주장과 그렇게 학생들에게 권리를 주면 어떻게 학생들이 교사의 통제를 받아들이겠느냐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학생들을 어떻게 보느냐는 하는 ‘학생관’의 차이다.

학생들을 ‘통제의 대상, 또는 단속의 대상으로 보는가?’ 아니면 '인격적인 만남을 통한 가치 내면화의 대상으로 보느냐?'의 차이다.

교사에게 권위가 없어지면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다. 권위란 무엇인가? 사전에 찾아보니 권위란 ‘다른 사람을 통솔하여 이끄는 힘’이라고 적어놓았다.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을 통솔하여 이끌기 위해 필요한 힘이라는 뜻이다.

                                                      <이미지 출처 : 교육희망에서>

그런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 앞의 사례#.1의 선생님 같은 모습에서 나오는 게 권위일까 아니면 사례 #.2의 선생님 모습에서 나오는 것일까?

권력과 폭력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다만 행사를 정당하게 하는가 아니면 부당하게 하는가의 차이다. 권위도 마찬가지다. 미숙한 인격자를 교사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가, 그렇지 않는가의 차이다. 힘으로 이끄는가 아니면 학습자 스스로 마음을 열고 변화를 하도록 도와는 주는가의 차이다.

교육은 순치(馴致)가 아니라 스스로 잘못을 깨우치거나 시행착오를 통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행동을 수정하는 과정이다. 폭력이나 강제로 행동을 수정하려면 이중인격자를 만들어 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감동이나 각성을 통해 변화하도록 이끌어 피교육자는 스스로 자기수정을 통한 행동의 변화가 가능한 것이다.

아무리 수확이 급해도 벼 포기를 뽑아 올려서는 못쓴다. 좋은 결실을 맺게 하려면 김을 매주고 거름을 주어 스스로 자라게 해줘야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불신과 통제와 억압으로 단 한 거루의 벼도 열매를 맺게 할 수 없다.

- 이 기사는 충남도청인터넷신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ttp://news.chungnam.net/news/articleView.html?idxno=78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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