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에 예속되는 철학
자기 돈 몇십만원만 사기를 당하거나 뺏기면 눈에 불을 켜고 찾는 게 세상 사람들의 정서다. 그런데 자기 권리는 왜 처절하게 유린당하는데도 분노하지 않을까. 돈에 대해서는 소유권이 철저하지만 권리의식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민주시민으로서 권리에 대해 둔감하다는 것은 주권자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민주시민이라면 민주의식이나 권리 의식을 가져야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권리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은 편이다.
■ 폐지되는 각 대학의 철학과
우리나라는 4년제 대학 207개, 전문대 136개 등 총 343개 대학이 있다. 이 들 대학 중 철학과가 있는 대학은 42개 대학뿐이다. 가뜩이나 인기가 없는 철학과가 하루가 다르게 폐지되고 있다. 학생 충원의 어려움으로 경남대학교는 2013년 철학과가 폐지된데 이어 대전지역 사립대 가운데 유일하게 철학과를 유지해 오던 한남대까지 철학과를 폐지했다. 지금은 폐지하지는 않고 있지만 학생모집이 어렵다는 이유로 인문계 대학조차 철학과 폐지 위기를 맞고 있다.
학문이 시장원리에 휘둘려서는 안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인문학과 순수 기초과목 폐강 속출, 경영학과 취업 관련 과목 학생 몰림 현상이 최근 신학기마다 각 대학에서 예외 없이 나타나고 있다. 철학은 홀대받아도 좋은 교양과목에 불과한 학문이 아니다. 취직 관련 전공이나 학과는 날로 그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지만, 철학이란 대학에서 교양과목 점수를 채우기 위한 학문정도로 취급받는 현실에서는 취업과 무관한 학문에 학생들의 관심이 멀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 자본에 종속되어 가는 학문
사관(史觀)이 없는 역사, 신관(神觀)이 없는 종교, 철학(哲學)이 없는 인생은 미로를 헤매는 방황자를 길러낸다. 독재자나 자본에 예속된 종교지도자들은 민중이 각성되는 걸 가장 싫어한다. 실제로 이승만이나 박정희를 비롯한 독재자들은 국민들의 머릿속에 세상을 보는 안목이 생겨나는 것을 가장 두려워 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그랬고 박정희가 그랬다.
■ 우리나라에 유입된 서구의 4대 철학 사조
우리나라에 유입된 서구 철학의 대표적인 철학은 실용철학(Pragmatism)과 실존철학, 분석철학(신실증철학), 신학철학 등 4대 철학 사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실용주의 철학이란 ‘이기주의를 찬양하고 절대화’하는 대표적인 철학으로 인간의 이기심을 천성으로 본다. 실용주의에 점령당한 교육은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미국식 민주주의, 미국식 생활양식을 정당화하는 철학이다. 오늘날 '내게 이익이 되는 게 선'이 되는 상업주의와 이기주의 인간을 길러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실존주의는 어떤가. 실존주의 철학이라고 하면 중고등학생들이 윤리교과목 시간에 키에르케고르나 야스퍼스 하이데크나 샤르트르라는 철학자 이름이나 달달 외우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솔직히 말하면 실존주의철학이란 죽음을 미화하는 철학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죽음을 미화하던 철학이 실존주의 아닌가. 실용철학이 인간의 이기심을 절대화하는 철학이라면 실존철학은 죽음을 절대화하고 이상화하며 예찬하는 철학이다.
스콜라철학, 신토마스철학이란 운명론적 세계관을 정당화하는 신학철학이다. 분석철학이니 과학철학, 신실증주의 철학이란 꽁트가 철학을 거부한다는 뜻에서 과학철학이니 분석철학, 논리적 실증철학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은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지식만 믿을 수 있으며 감성의 세계를 벗어난 지식은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철학을 거부한다. 학적 세계관을 배우지 못한 서민들은 이기주의와 허무주의에 빠져 자본의 충실한 소비자로 혹은 운명론자로 살다 인생을 마치게 된다. 과학적 세계관이 없는 인간은 사람을 자본의 소모품에 불과한 존재로 만들어 놓는다.
■ 관념철학만이 철학이라고 가르치는 학교
중등학교에서는 철학을 가르치기는커녕 윤리교과목에 몇몇 철학자 이름을 넣어 ‘너 자신을 알라’느니 ‘눈물 없는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참맛을 모른다’느니 하며 관념철학이 철학의 전부라도 되는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실제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체제 수호라는 명분으로 관념론 철학이 철학의 전부라고 호도해 세상의 근원이 물질이요 변화와 연관의 법칙의 유물철학이란 접근조차 할 수 없다.
철학 없는 삶은 방황이요, 인생의 황무지다. 목적지 없는 경기에서 우승이 무의미하듯 철학 없는 인생은 무지와 부끄러운 삶을 자초한다. 철학을 가르쳐 주지 않은 사회에서 그 사회구성원들은 이성이 아닌 힘의 논리가, 정의가 아닌 상업주의 논리가 지배하는 막가파 사회로 바뀐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지도자들의 삶을 보면 그렇다. 국가에서 가장 많은 시혜를 받은 지식인들이 자신의 성공이 자신이 똑똑해서 출세하고 대접받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사회적 지위로 얻은 정보를 자신의 사익을 위해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 그들의 오만과 후안무치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내가 누구인지, 왜 사는지, 부모와 나, 민족과 나, 역사와 현실을 인식하는 안목도 없이 감각적으로 좋은 것이 선이라는 사고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자본의 논리가 사회지표나 되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 민주주의에서 민주의식없이 산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배우면서도 민주의식이 없고, 노동자로 살면서도 노동자 의식도 없고, 역사를 배우지만 역사의식이 없고 종교를 배우면서 종교의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본주의에 살면서도 자본주의 윤리도 모르는 사람들로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향락과 감각이 지배하는 황량한 사회로 바뀌어 가고 있다.
세상을 보는 안목도 그렇다. 변화와 연관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지 못하고 감각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이기적이고 퇴폐적인 독선이 지배하는 사회로 바뀌고 있는데 철학은 정말 배우지 않아도... 몰라도 괜찮은 학문일까.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들 때문에... 신(神)을 팔아 자신의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은 종교지도자들 때문에.... 권력을 훔친 독재자들 때문에... 나라의 주인을 청맹과니로 만드는 사회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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