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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4·19혁명 앞에 부끄러운 51주년’을 맞으며...

by 참교육 2011.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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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 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다시 4·19를 맞으며 신동엽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는 시가 생각난다.

오늘은 51번째 맞는 4·19다.  4·19는 아직조 미완의 혁명이다.
4·19혁명은 ‘정부수립 이후, 허다한 정치파동을 야기시키면서 영구집권(永久執權)을 꾀했던 이승만(李承晩)과 자유당정권(自由黨政權)의 12년간에 걸친 장기집권을 종식시키고, 제2공화국(第二共和國)의 출범을 보게 한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사전에는 이렇게  4·19를 정의하고 있지만 주권자인 민중은 아직도 소외되어 있고 권력의 주인은 소수 기득권자들이 독점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피흘려 쟁취한 자유도 정의도 현실에서는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껍데기만 민주주의인  4·19  51주년.  오늘의 4·19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3·15부정선거에 항거한 마산시민의 시위는 김주열군의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의 시신이 바다에 떠오르자 언론에 대서특필된다. 성난 군중은 부산, 대구, 광주... 서울로 이어지면서 드디어 이승만이 하야함으로서 12년간의 독재정치를 마감하게 된다.

4·19혁명 반세기를 지난 지금은 혁명정신을 꽃피우고 있는가? 4·19를 일컬어 미완의 혁명이라고 한다. 21명의 사망자와 172명의 부상자를 내고 독재를 타도한 혁명은 혁명정부가 수립되기 바쁘게 이듬해 5월, 식민지시대 일본군 장교였던 박정희일당의 쿠데타로 4·19는 부정되고 만다.

5·16군사정권은 유신헌법으로 18년간 철권통치로 민주주의를 유린하다 박정희를 아버지로 모시던 정치군인 전두환으로 계승된다. 전두환일당에 처절하게 저항하던 광주시민은 참혹하게 학살당하고 전두환, 노태우일당은 민주주의를 유린한다.


4·19혁명 51주년을 맞으며 인하대학교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을 다시 세우기로 했다고 한다. 사단법인 ‘건국대통령 이승만박사 기념사업회’(회장: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는 지난 3월 22일 일간지 광고를 통해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기념관과 광화문동상을 세우기 위해 벌여온 서명운동에 100일간 40만 4722명이 서명했다고 밝혔다.

기념 사업회는 “김구 임시정부 주석의 기념관은 국비로 건립되어 효창동에 서 있는데, 임시정부 초대대통령의 기념관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다”며 “대한민국 국격을 논하기 전에 먼저 대한민국 건국대통령의 동상과 기념관부터 짓는 것인 순서”라고 주장했다.
(뉴데일리 3월 22일)


독재자의 망령을 살려내는 게 어떻게 국격을 높이는 일인가?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이승만 독재, 유신독재, 살인정권의 하수인들이 들끓고 있다. 그들은 보수라는 가면을 쓰고 식민지배에 대한 향수를... 독재자의 망령을 살려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역사는 살아 있다’고 한다. ‘역사는 왜곡할 수 있어도 그 역사 속에 담긴 진실은 왜곡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반동의 세월. 식민지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출발한 건국.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를 끼울 구멍이 없다던가? 박정희 군사정권은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고 문민정부를 가장한 김영삼으로 이어지지만 민주주의는 아직도 요원하다.   

4·19 혁명은 살아 있는가? 해방 66년, 혁명 51주년이 지났지만 민주주의는 아직도 껍데기뿐이다. 투표만 끝나면 주객이 전도되는 민주주의. 다시 4·19를 맞으며 자유와 정의와 공정성은 그 어디에도 없다. 역사를 살려내는 일은 산자의 몫이다. 다시  4·19를 맞으며 미완의 혁명을 사는 우리는 4·19영령들에게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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