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동학농민혁명 127주년이다. 2019년 동학농민혁명을 처음으로 국가기념일로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사람을 하늘처럼 받드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의로운 혁명이 125년 만에 비로소 합당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은 대한제국 시절과 일제강점기에 비적이나 폭도의 반란으로 매도되기도 하였으며 해방 후에도 국정교과서에는 동학혁명을 ‘동학란’으로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다 4·19혁명 이후에도 ‘동학혁명’, ‘동학농민운동’, ‘갑오농민혁명’ 등으로 평가가 뒤섞였다. 그 후 2004년 국회의 특별법 제정으로 비로소 ‘동학농민혁명’이라고 명명하게 되었고 2019년 처음으로 황토현 승전일인 오늘 5월 11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 국민이 우리 역사를 잘 모른다?>
6월항 쟁 이후 한 때 ‘거꾸로 읽는 역사’책이 유행이었던 때가 있었다. 당시의 역사책은 국정교과서로 우리나라 역사는 현대사를 가르치지 않았다. 뒤돌아 보면 친일사관의 학자들이 기록한 역사를 배운 세대들은 우리역사가 부끄러운 역사로 세뇌시켰다. 동학이 난(難)으로 기록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세계역사상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가장 먼저 주장한 나라가 동학 외에 어디 있는가? 미국이나 독일에서 공부한 사학자들은 민주주의의 역사를 르네쌍스(Renaissance)운동이나 종교개혁에서 찾지만, 그들이 주장했던 인본주의 사상은 동학의 사상인 모든 사람이 아니다. 자랑스러운 우리역사를 덮어두고 사대우의 중화사상이나 친일사관으로 쓴 역사를 우리역사로 알고 살아 온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의 발단>
동학농민혁명은 전라도 고부군에서 일어난 민란에서 비롯되었다. 전라도는 물산이 풍부한 곡창지대로 국가재정도 이 지역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 전시대에 걸쳐 수탈의 대상이 되었던 농민들은 탐관오리의 가렴주구에 시달리고 있었다. 1894년 2월 10일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의 지나친 가렴주구에 항거하는 광범한 농민층의 분노가 폭발하여 민란이 일어났다. 민란의 직접적인 불씨가 된 것은 만석보(萬石洑)의 개수문제에 따르는 수세징수사건에서 비롯되었다.
1892년 말 고부군수로 부임해 온 조병갑은 탐관오리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기회있는 대로 갖가지 명목으로 수탈을 자행하였는데, 농민에게 면세를 약속하고 황무지 개간을 허가하여 주고도 추수기에 강제로 수세(收稅)하였다. 또한 부민(富民)을 체포하여 불효·불목·음행·잡기 등의 죄명을 씌워 그들의 재물을 강제로 빼앗은 것만도 2만여 냥(兩)에 달하였으며, 자기 아버지의 공덕비를 세운다고 강제로 거둔 돈이 1,000여 냥이나 되었고, 대동미를 정미(精米)로 받는 대신 돈으로 거두고 그것으로 질이 나쁜 쌀을 사서 상납하여 그 차액을 착복하기도 하였다.
<제폭구민(除暴救民)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깃발을 세우다>
「① 사람을 죽이지 말고 재물을 손상시키지 말 것, ② 충효를 다하여 제세안민(濟世安民)할 것, ③ 왜적을 몰아내고 성도(聖道)를 밝힐 것, ④ 병(兵)을 몰아 서울에 들어가 권귀(權貴)를 진멸(盡滅)시킬 것」 동학혁명군이 내건 ‘농민군 4대 행동강령’이다. 그들은 ‘우리가 의(義)를 들어 이에 이른 것은 그 본 뜻이 다른 데 있지 아니하고 창생을 도탄 가운데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의 위에다 두고자 함이라. 안으로는 탐관오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내쫓고자 함이라. 양반과 부호에게 고통을 받는 민중들과 방백과 수령의 밑에 굴욕을 받는 소리들은 우리와 같이 원한이 깊을 것이나, 조금도 주저치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하여도 미치지 못하리라.’라는 격문을 내걸었다.
전봉준, 손화중을 비롯하여 태인의 김개남, 최경선, 정읍의 손여옥, 차치구, 고부의 정익서, 김도삼 등은 갑오년 3월, 약속의 땅인 동진강가에 있는 백산 기슭에는 고창, 부안, 금구, 태인, 무장, 정읍, 김제, 영광, 함평, 무안, 흥덕, 장성 등 각지에서 4000여명의 농민군이 몰려들어 “서면 백산(白山)이요, 앉으면 죽산(竹山)”이라는 흰옷 입은 농민들이 서 있으면 온 산이 하얗게 보이고, 앉아 있으면 그들이 들고 있던 대나무 창이 온 산을 이룬다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농민군은 머리에 띠를 두르고 베옷을 입었으며, 무기로 화승총이나 죽창을 들고 붉은 바탕에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안정시킨다’는 뜻으로 ‘보국안민’이라고 쓴 큰 깃발을 앞세웠던 것이다.
1차 동학농민운동(반외세 < 반봉건)고부봉기 → 백산봉기 → 황토현, 황룡촌 전투 승리 → 전주성 점령 → 정부가 청에게 도움 요청 → 청나라군 상륙(아산) + 일본군 상륙(인천) → 전주화약 |
<동학농민혁명의 전개과정>
1894년 1년간 전개되었던 동학농민혁명은 조선 봉건사회의 부정·부패 척결 및 반외세의 기치를 내걸었던 대규모 민중항쟁이었다. 1892년에서 1893년까지 동학교단의 조직적인 교조신원운동과 1894년 1월 고부 농민봉기를 도화선으로 3월 전라도 무장에서 전면적으로 시작되었다. 피지배 계층의 사상적 견해를 반영하고 있던 동학사상과 전국적 조직이던 동학교단을 매개로 광범위한 농민 대중이 참여하였는바, 개화파가 주도했던 갑신정변이나 독립협회운동, 재야유생이 주도했던 위정척사운동이나 의병 항쟁 등은 위로부터의 개혁이었으나, 동학농민혁명은 피지배 계층을 중심으로 아래로부터 진행된 민중항쟁이었다.
2차 동학농민운동(반외세 > 반봉건)일본의 경복궁 점령 → 청·일전쟁 → 교정청폐지, 군국기무처 설치(동학농민군 진압 명령) → 우금치전투 |
종래 군·현 단위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졌던 항쟁을 전국 차원의 항쟁으로, 일시적 투쟁에서 장기 지속적인 항쟁으로 발전해 나갔으며, 조선 후기 빈발 했던 농민봉기 단계에서 나타났던 민중의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의지를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대규모 농민 대중에 의한 혁명이었다. 일본의 침략 야욕과, 부패·무능한 조선왕조 봉건 지배층의 외세 의존 및 보수 유생의 체제 수호의 벽에 좌절하였으나, 1894년 이후 전개된 의병항쟁, 3·1독립운동과 항일 무장 투쟁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회개혁 운동과 자주적 국권 수호운동으로서 한국의 근대화와 민족민중운동의 근간이 되었다.
고부민란으로부터 1년여에 걸쳐 전개되었던 동학농민혁명은 비록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으나, 19세기 후반 우리나라와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를 변화시키고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을미의병 등 항일의병항쟁의 중심세력이 되었고, 3·1운동,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모태로서 오늘날 평등사상과 자유민주화의 지평을 연 근대 민족사의 대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의>
동학농민군이 실패한 이유는 민씨정권은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군과 일본군을 번갈아 끌어들여 결국, 훈련된 관군을 대적하기는 여러 가지 면에서 역부족이었다. 비록 실패한 반쪽혁명이었지만 불의에 저항한 농민들의 저항운동은 신분제의 타파와 “반봉건적, 반외세적 농민항쟁”으로 당시의 실패경험을 바탕으로 농민층의 반일애국주의가 다음 시기의 의병운동에 양반유생과 더불어, 함께 참여하는 성숙성을 보여주게 되었으며, 농민들의 내정개혁요구는 갑오개혁에 부분적으로 반영되는 성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뿐만아니라 농민군이 주장한 내용이 폐정개혁에 반영되어 ‘과부의 재가 허용과 신분제 폐지’라는 역사발전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농민군이 패전한 이유는 관군에 비해 열세인 무기를 비롯해 그러나 이 개혁에는 농민들의 소망이었던 토지 개혁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김개남 등 일부 과격파의 국왕 참칭이라던가, 전봉준 등 일부는 흥선대원군 등과 내통했던 점 역시 대중에게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하면서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없는 하나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동학 농민군의 혁명은 이와 같이 실패하였으나, 그 끼친 영향은 매우 컸다. 밖으로는 일본이 조선을 무력으로 침입할 구실을 삼아 대군을 파견하여 마침내 청⋅일 전쟁을 일으켰고, 안으로는 갑오경장이 추진되는 계기를 이루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성리학적 전통 사회가 붕괴하기 시작하여 새로운 근대 사회로 전진하는 중요한 계기를 이룬 점은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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