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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자료

올바른 판단을 위하여

by 참교육 2010.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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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옮겨놓을 '훈화자료'는 필자가 고등학교 재직시절 학생들에게 세상을 보는 안목을 길러주기 위해 수업 시작 전, 혹은 수업 중에 들려 주던 얘깁니다. 인성교육이 실종된 교육,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도록 가르치지 않는 교육을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세상을 보는 안목을 길러주자는 고육책으로 학생들의 눈치(인문계에서는 교과서 밖의 얘기를 하면 어김없이 '선생님 공부합시다'라는 항의를 받게 된다)를 봐가며 해줬던 얘깁니다.

 
여기 옮기는 글들은 제가 교단에서 시간날때마다 들려줬던 얘기라서 진부한 면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변화의 사각지대인 학교에는 2~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별로 없습니다. 제 홈페이지(http://chamstory.net/)를 닫으면서 여기에 옮겨 놓습니다

 


사람들은 매일같이 갖가지 복잡한 일들을 만나면서 살아간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영역에 걸쳐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겉모양은 보이지만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학생들에게 신문스크랩을 만들고 자신의 생각을 적어 오게 했던 일이 있다. 어떤 학생이 조선일보의 기사 중 (1995년3월 21자 신문) '일본 자민당 의원의 부전 결의안 반대' 에 대한 내용을 적고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썼다. '국회에서 다투기나 한다' '일본국회도 우리나라 국회처럼 시끄럽다' '사회당과 자민당이 시국의 문제를 두고 공리공론을 일삼는다'

'부전 결의안(不(戰 決議案)을 반대하는 자민당이 옳다' …… 등등의 내용이 대부분이고 한두 사람은 '전쟁을 하지 말자는데 반대하는 자민당을 이해할 수 없다'는 내용을 적어 온 학생도 있었다. 왜 전쟁을 하지 말자는 제의를 거부하는 자민당을 옳다고 판단했을까?
말할 것도 없이 사실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못한 결과다.

현상(現狀)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는 본질(本質)에 대한 인식(認識)이 불가능하다. 6·25 사변 때 피난살이를 하면서 전쟁의 공포와 참화를 겪었다고 전쟁을 모두 이해한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자신이 전쟁을 겪으면서 보고 들은 전쟁의 일부분 즉 현상은 보았지만 '왜 전쟁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전쟁을 일으킨 목적이 무엇인지... 전쟁으로 이익을 보는 쪽과 피해를 보는 쪽은 누군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전쟁의 참상을 직접 체헙은 했지만 6.25전쟁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역사를 아는 것도 마찬가지다. 역사적인 안목 즉' 사관(史觀)'이 없이 부분적인 '사실'을 안다고 해서 역사를 객관적으로 이해한다고 볼 수 없다.

예를 들면 사극에서 연산군과 대왕대비와의 갈등이라는 부도덕한 부분만 보고 폭군으로 규정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준종반정으로 중종의 록을 먹는 사관이 기록한 역사는 중종반정의 정당성을 위해 연산의 삶은 상당 부분 왜곡되게 기록될 수밖에 없는 것이이다.

물론 훈구파와 사림파의 권력투쟁의 관점에서 해석하지 않으면 사극은 그림구경을 한 것이나 다름 아니다.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만 안다'는 차원을 넘는다.
똑같은 사실을 놓고서도 사람에 따라 다른 인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노동쟁의가 일어나 파업에 들어간 사업장을 보고 경영자들은 "노동자들의 과격성"을 목소리를 높여 비난할 것이고 노동자들은 사업주(事業主)들의 노동법을 무시한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경영 방식"에 분노할 것이다. 소위 '계급성을 배제한 본질의 인식'없이는 문제의 근본적인 이해는 불가능한 것이다. 매스컴의 '공정 보도' 또한 그렇다.

공정이라는 외피를 썼지만 사실은 어떤 특정 계급에 대한 이해의 반영이지 모두에게 공정함이란 있을 수 없다. 오늘날의 T. V를 비롯한 메스 미디어는 의도적이든 무의도적이든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객관적 진실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니다.

특히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메스 미디어의 편파성은 교육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교육법에서는 '지식의 중립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지식의 중립성이란 도구적인 지식 이외는 있을 수 없다.' 입장이 없는 교육'은 '목표가 없는 행위'와 다름이 아니다.' 교육이 목표로 하는 인간상은 특정한 입장에 설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오늘날 가치판단의 문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T, V를 비롯한 매스 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독재정권의 길들이기에 순치된 메스미디어는 언론 수용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는 권력과 결탁하여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해 왔던 사실을 부인 할 수 없다. 또한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상업주의나 광고주의 영향을 받아 상당 부분 객관적인 사실 보도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 도 간과(看過) 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필연적으로 선량한 다수의 대중 즉 수용자가 피해자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다수 피해자의 희생의 대가로 소수의 기득권자가 반사 이익을 차지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실한 사람, 정직한 사람이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현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안목이 필요한 것이다.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는 첫째, 사안에 대한 객관적인 충분한 정보를 가져야하고, 둘째, 전체와 부분, 혹은 내용과 형식을 함께 생각하고 판단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판단의 결과가 사회적인 영향을 미칠 때는 더욱 그렇다.

좋은 사회란 물질적인 풍요 여부로 판단할 수 없다. 그 사회 성원들의 건강한 가치관이나 정서적인 안정 그리고 올바른 가치판단 능력의 유무가 그 사회의 수준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회란 그 사회성원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1996.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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