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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학생들이 하교하는 시간에 통학버스를 타고가다 보면 저 아이들이 학문을 탐구하고 윤리를 배우는 학생들이 맞는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몸이 불편한 노인이 가까스로 손잡이를 잡고 힘겨워 하고 있어도 고개를 돌리고 못 본채 하는 아이들. 남이야 듣던 말든 목청껏 자기학교 선생님 험담을 하는 아이들. 듣는 사람이 오히려 얼굴이 뜨거워지는 남자 친구와 관계를 주고받으며 희희낙락하는 용기(?)에 어안이 벙벙하다.
통학버스 안에서뿐만 아니다. 교실에서 수업장면을 들여다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수업은 사회시간인데 영어 문제집을 풀고 있는 아이들. 다른 공부를 하는 학생은 차라리 낫다. 수업을 시작하자말자 여기저기서 졸기 시작하던 아이들. 수업 중반쯤 되면 거의 반 수 이상이 아예 엎드려 잔다. 나밖에 모르는 아이들. 수업시간에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보내거나 짝꿍과 잡담을 그칠 줄 모르는 아이들. 자신이 기분 나쁘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거나 왕따를 시키는 일도 다반사다.
자녀가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부모의 분신으로 생각하는 자녀관은 아이들을 병들게 한다. 하나 아니면 둘, 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딸에게 힘든 일, 거슬리는 말을 할 수 있겠느냐는 지극한 사랑(?)이 아이들을 하여금 버릇없는 이기적인 인간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좋은 것’이 선(善)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친구나 이웃에 대한 배려를 하거나, 나의 언행으로 주변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 것에는 관심을 가질리 없다.
내 아들딸은 어떨까? 학교에만 보내놓으면 훌륭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어도 좋을까? 일등만 하면 예의도 윤리도 모르고 자신밖에 모르는 인간으로 자라도 좋을까. 머리는 있어도 가슴이 없는 아이들을 키우는 학교. 일류대학이 교육목표가 된 학교에서는 ‘옳고 그른 것,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출세를 위해, 성공을 위해서라면 친구가 적이 되는 학교에서는 더불어 사는 가슴 따뜻한 인간을 키워낼 수 없다. 대화가 없는 가정, 인간교육이 실종된 교육으로 아이들은 방향감각을 잡지 못하고 있다. 승자지상주의의 입시교육에서는 승자는 없고 모두가 피해자일 뿐이다. 학교는 철학도 예의도 버릇없는 아이들을 언제까지 양산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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