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 청와대서 퇴거…탄핵 이틀만에 사저로’, ‘서울 삼성동 사저에 도착...’, ‘박, 대통령이 서울 삼성동 사저 안으로 들어간 직후...’, ‘김평우, 박前대통령 사저 돌연 방문..,’, ‘박근혜 '올림머리' 미용사 사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삼성동 사저 바로 앞 초등학교가...’ 어쩌고 한다.
이 무슨 망발인가? 사저(私邸)라니.... 한두 개 신문사나 공중파 방송사가 아니다. 무슨 약속이나 한 것처럼 너도 나도 사저(私邸)다. 이들 언론들은 사저라는 뜻을 알고 있기나 할까? 박근혜씨가 청와대에서 쫓겨나 간 집이 강남구 삼청동에 있는 자신의 집이다. 그런데 연합뉴스를 비롯한 KBS 등 대부분의 언론들이 박근혜의 집을 사저라고 표현하고 있다.
우리국어 사전에 사저(私邸)란 ’개인의 저택. 또는 고관(高官)이 사사로이 거주하는 주택을 관저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해 놓았다. 박근혜 대통령이었을 때는 그런 용어를 쓸 수도 있다. 그런데 그는 대통령에서 탄핵인용을 받아 사인이 됐다. 보통 사람들의 집은 사저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박근혜가 사는 집을 ’사저(私邸)라고 표현할까?
노컷뉴스는 사저(私邸)란 '현직에 있는 공직자의 개인 집'이라는 뜻이라고 잘못된 표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저의 연원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는 왕자군, 의정, 찬성, 참찬 등 벼슬아치의 집을 사저라 했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장관급 이상의 직책을 가진 자의 집을 사저라고 한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장관급 이상의 집을 관저(官邸), 장관급 이하의 집을 관사(官舍)로 불렀다‘고 한다.
사람이 사는 주거의 공간을 ‘집, 주택, 자택, 저택, 관사, 사저....’라는 표현을 한다. 외국인들이 왜 우리나라 말이 어렵다고 하는지 이해할 것 같다. 그러나 정확한 언어문화를 보급하고 가꿔 나갈 언론사가 왜곡된 언어를 생각도 없이 남용한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 요즈음은 거의 쓰지 않고 있지만 대통령령의 관저 또는 대통령과 관련된 행정기구를 통털어 말하던 청와대도 이승만 시대는 경무대라고 불렀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전 사용하던 ‘각하’라는 말도 권위주의 표현이라는 지적에 따라 대통령님으로 바뀌 부르고 있다.
의식은 제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더니 관저니 사저라는 말도 언어 속에 포함된 권위주의 문화는 아닐까? 제도가 바뀌면 문화도 따라 바뀐다. 봉건제 사회의 언어와 민주주의 사회의 언어가 같을 수 없다. 그런데 언어 속에 담긴 권위주의 관습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아서일까? 사저라는 용어도 마찬가지다. 언론사들이 하나같이 사용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표현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생활 속에 남아 있는 권위주의 언어는 어떤 것이 있을까? 지역에서 서울로 가는 것을 ‘올라간다’고 하고 서울에서 지역으로 가는 것을 ‘내려간다’고 한다. 서울이 상경인 시대가 지나갔지만 여전히 서울중심의 문화는 쉬 고쳐지지 않는 것 같다. 권위주의는 민주주의를 어렵게 하고 소통과 대화를 가로 막는 방해물이 되기도 한다. 특히 지배질서를 공고히 하기 위한 권위주의가 말 속에 녹아 아부의 뜻으로 이용되는 언어는 언어오염에 다름 아니다.
<사진출처 : 동아일보>
‘전대통령 박근혜의 사저...!’ 얼마나 권위적인가? 탄핵인용으로 민간인이 된 박근혜 특히 실정법을 어긴 범법자에게 그런 존칭을 사용하는 것은 권력에 자발적 복종을 해 오던 언론의 관습이 체화된 결과가 아닐까? 박근혜씨가 탄핵인용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경찰이 에스코트를 하고 지지자들이 그를 개선장군처럼 환호하고 있다.
잘못은 고쳐야 하고 비뚤어진 문화는 바로 잡아야 한다. 왜 그냥 ‘박근혜씨의 집’이라고 해도 될 말을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라는 표현을 할까? 그가 기억하고 가지고 있는 정보가 얼마나 크고 소중한지는 몰라도 대통령에게 주어지는 특혜는 보통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광주학살의 주범으로 보통사람이 된 전두환과 노태우는 여전히 국민의 세금으로 그의 안전을 호위무사(?)들이 지켜주고 있다.
실정법을 어겨 전과자가 될 박근혜도 같은 길을 밟겠지. 그러고 보니 언어뿐만 아니라 아직도 우리사회 속에는 평등은 뒷전이고 사회적 지위가 인격까지 차별하는 유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과로 승패를 가리는 전근대적인 가치관은 언제 바뀔까? 정확한 언어 아름다운 말을 보급해야 할 언론이 ’사저‘와 같은 잘못된 표현은 빠른 시간에 바로 잡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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