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는 이야기2013.11.16 07:09


지난 17일 아내와 함께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泰華山)에 있는 마곡사에 다녀왔습니다.

 

마곡사라는 절이 세워진 역사는 두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첫번째 설은 640년(선덕여왕 9)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慈藏)이 선덕여왕에게서 하사받은 전(田) 200결로 절을 창건하기 위한 터를 물색하다가 통도사(通度寺)·월정사(月精寺)와 함께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이름이 마곡사라고 한 이유는 ‘삼대[麻]와 같이 무성했다’고 하여 ‘마(麻)’자를 넣어 마곡사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두번째 설은 신라의 승 무염(無染)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이 절을 지을 때 스승인 마곡보철(麻谷普徹)을 사모하는 뜻에서 마곡사라고 하였다는 설과, 절을 세우기 전에 이곳에 마씨(麻氏)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에 마곡사라 하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창건 이후 이 절은 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 약 200년 동안 폐사가 된 채 도둑떼의 소굴로 이용되었던 것을 1172년(명종 2)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제자 수우(守愚)와 함께 왕명을 받고 중창하였다. 보조가 처음 절을 중창하려고 할 때 도둑들에게 물러갈 것을 명하였으나 도둑들은 오히려 국사를 해치려 하였다. 이에 보조가 공중으로 몸을 날려 신술(神術)로써 많은 호랑이를 만들어서 도둑에게 달려들게 하였더니 도둑들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거나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도둑들에게서 절을 되찾은 보조는 왕에게서 전답 200결을 하사받아 대가람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당시의 건물은 지금의 배가 넘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불타버리고 그 뒤 60년 동안 폐사가 되었다가 1651년(효종 2)에 각순(覺淳)이 대웅전과 영산전·대적광전 등을 중수하였다고 합니다.

 

 

 

 

 

 

 

 

 

 

 

 

 

 

 

가을로 가득 채워진 마곡사에는 국화전시회가 끝나고 곱게 단장한 국화가 대웅전 앞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마곡사는 김구(金九)선생님과 인연이 깊은 절입니다.

김구선생님은 한말 명성왕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 쓰치다(土田壞亮)를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 나루에서 죽이고 붙잡혀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숨어서 승려를 가장하며 살았던 절이 바로 이 마곡사에서 1.2Km 산 정상에 있는 백련사라는 절입니다. 백련사에는 지금도 대광명전 앞에는 김구선생님이 심은 향나무가 있는데, 그 옆에 ‘김구는 위명(僞名)이요 법명은 원종(圓宗)이다’라고 쓴 푯말이 꽂혀 있습니다.

 

 

 

나라가 오늘날처럼 어지러운 시기를 맞으면 나라위해 한평생 독립운동위해 사시고 '해방된 조국에서 문지기가 되고 싶다'시던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마음속에 삼팔선이 무너지고야 땅 위에 삼팔선도 철폐될 수 있다.
현시에 있어서 나의 유일한 염원은 삼천만동포와 손목 잡고 통일된 조국, 독립된 조국의 건설을 위하여 공동 분투하는 것뿐이다. 이 육신을 조국이 수요한다면 당장에라도 제단에 바치겠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삼팔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나는 내 생전에 38 이북에 가고 싶다. 그쪽 동포들도 제 집을 찾아가는 것을 보고서 죽고 싶다. 궂은 날을 당할 때마다 삼팔선을 싸고도는 원귀(怨鬼)의 곡성이 내 귀에 들리는 것도 같았다. 고요한 밤에 홀로 앉으면 남북에서 헐벗고 굶주리는 동포들의 원망스러운 용모가 내 앞에 나타나는 것도 같았다. -백범일지 중에서...-

 

백련사를 나오면 선생님이 걸으시던 길을 따라 선생님을 생각합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을 받아 가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이라는 우리 국조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 믿는다.  


-「나의 소원」 중에에서


 

 

 

 

호랑이처럼 생긴 이 개는 마치 왜놈들을 향해 표호하던 선생님의 화신인듯, 백련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소원(所願)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大韓獨立)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 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 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自主獨立)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동포(同胞) 여러분! 나 김구소원은 이것 하나밖에는 없다. 내 과거의 칠십 평생을 이 소원을 위하여 살아왔고, 현재에도 이 소원 때문에 살고 있고, 미래에도 나는 이 소원을 달(達)하려고 살 것이다.

 

독립이 없는 백성으로 칠십 평생에 설움과 부끄러움과 애탐을 받은 나에게는,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 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 보다가 죽는 일이다. 나는 일찍이 우리 독립 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하였거니와, 그것은 우리 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의 가장 미천(微賤)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근래에 우리 동포 중에는 우리 나라를 어느 큰 이웃 나라의 연방(聯邦)에 편입(編入)하기를 소원하는 자가 있다 하니, 나는 그 말을 차마 믿으려 아니 하거니와, 만일 진실로 그러한 자가 있다 하면, 그는 제정신을 잃은 미친 놈이라밖에 볼 길이 없다.

 

나는 공자(孔子), 석가(釋迦), 예수의 도(道)를 배웠고, 그들을 성인(聖人)으로 숭배(崇拜)하거니와, 그들이 합하여서 세운 천당(天堂), 극락(極樂)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가 아닐진댄 우리 민족을 그 나라로 끌고 들어가지 아니할 것이다.

 

왜 그런고 하면, 피와 역사(歷史)를 같이하는 민족이란 완연히 있는 것이어서, 내 몸이 남의 몸이 못 됨과 같이 이 민족이 저 민족이 될 수는 없는 것이, 마치 형제도 한집에서 살기 어려움과 같은 것이다. 둘 이상이 합하여서 하나가 되자면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아서, 하나는 위에 있어 명령(命令)하고, 하나는 밑에 있어서 복종(服從)하는 것이 근본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일부 소위 좌익(左翼)의 무리는 혈통(血統)의 조국(祖國)을 부인(否認)하고 소위 사상(思想)의 조국을 운운(云云)하며, 혈족의 동포를 무시하고 소위 사상의 동무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國際的) 계급(階級)을 주장하여, 민족주의(民族主義)라면 마치 이미 진리권(眞理圈) 외에 떨어진 생각인 것같이 말하고 있다. 심히 어리석은 생각이다. 철학(哲學)도 변하고 정치(政治), 경제(經濟)의 학설(學說)도 일시적이거니와,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다.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武力)으로 정복(征服)하거나 경제력(經濟力)으로 지배(支配)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도 일찍이 그러한 일을 한 이가 없으니 그것은 공상(空想)이라고 하지 마라.

 

일찍이 아무도 한 자가 없기에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이 큰일은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남겨 놓으신 것임을 깨달을 때에 우리 민족은 비로소 제 길을 찾고 제 일을 알아본 것이다. 나는 우리 나라의 청년 남녀(靑年男女)가 모두 과거의 조그맣고 좁다란 생각을 버리고, 우리 민족의 큰 사명(使命)에 눈을 떠서, 제 마음을 닦고 제 힘을 기르기로 낙(樂)을 삼기를 바란다. 젊은 사람들이 모두 이 정신을 가지고 이 방향으로 힘을 쓸진댄 30년이 못하여 우리 민족은 괄목상대(刮目相對)하게 될 것을 나는 확신(確信)하는 바다.

 

정치권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살아 계셨으면 오늘날 혼란에 빠진 이 나라를 보고 뭐라고 하실까? '백범 명상의 길을 걸으며' 선생님이 우리들에게 타이르시던 나라사랑의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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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