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용기가 있으면 무슨 짓을 못해?”
“그만한 일로 죽으면 이 세상에 살 사람 몇이나 있겠어?”
자살한 학생의 얘기가 뉴스에 나오면 시청자들의 반응이다.
“우리도 학창시절에는 다 그런 고생들 하고 살았어!, 그렇게 의지가 약해 어려운 세상을 어떻게 살아 갈거야!”
어른들은 자기 기준에서 청소년들을 본다. 어려웠던 시절, 가난하고 헐벗었던 시절, 군대생활에서 겪었던 힘겨운 일들을 떠올리며 요즈음 청소년들의 무기력함과 인내심 부족을 개탄한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혹은 한계상황에 내몰린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은 없다.
이른 봄 동네를 산책하다보면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 옆에 어떻게 피웠는지 진달래꽃이 수줍은 듯이 피어 있다. 진달래는 진달랜데 진달래 같지 않다. 얼마나 지치고 힘겨웠는지 심산유곡에서 피어난 진달래와는 크기며 모양이며 색깔부터가 다르다. 매연과 소음 그리고 자동차의 경적소리에 시달리면서 피워낸 꽃, 병든 아이 얼굴처럼 제 색깔이 없다. 매연과 소음 속에 저렇게 꽃을 피웠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가엽게 꽃을 피워낸 진달래를 보면 목에 아파트 열쇠를 걸고 다니는 어린아이들이 연상된다. 학교를 파하면 집으로 돌아오면 반겨줄 엄마가 없다. 책가방을 놓기 바쁘게 학원을 가야한다. 태권도 학원, 영어학원, 미술학원, 피아노학원.... 이렇게 서너개 혹은 대여섯개 학원을 마치고 나면 아이들은 파김치가 된다.
“100점을 받아야 해!, 지면 죽는다. 의가가 돼야해, 판검사가 돼야 해!”
1등을 해야 해!, 영어는 필수야, 영어를 공부하지 않으면 안 아무것도 못해!, 컴퓨터는 필수야!..., 떠밀리고 쫓겨 어느새 아이들은 만신창이가 된다. 파김치가 되어 돌아 온 아이에게 부모의 훈계가 기다리고 있다.
“다 너를 위해서야!, 우리가 이 고생 하는거... 다 너 때문이야! 조금만 참으면 돼, 학창시절은 눈 깜박할 사이에 다 지나가! 사내자식이 그만그만한 일로 지치고 힘들어해서야 쓰겠어!....”
기저귀를 찬 아이에게 수십만원씩 하는 영어학원에 보내는 어머니, 아니 배속에 있는 아이에게 태아교육을 시킨다며 이어폰을 배 위에 올려놓고 산다는 어머니 얘기를 들으면 차라리 허탈하다. 미국국적을 얻기 위해 원정출산이며 영어 발음을 잘하기 위해 혓바닥 수술도 마다않는 어머니, 영어 조기교육을 위해 기러기 아빠도 불사하는 아버지...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한다. 내 한 몸 희생해 우리아들 딸이 출세하고 성공만한다면 아까울 게 뭐 있어! 대학 그것도 일류대학을 보내고 박사학위는 필수야! 해외유학, 그것도 하버드나 캠브리지여야 해! 토익은 900점 이상은 받아야 해!, 자격증에 박사학위에 스펙을 쌓고 또 쌓고...
외우고 또 외우고.. 100점을 받을 수만 있다면 일등만 할 수 있다면... 이렇게 수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청소년기에 진정 갖추어야할 소중한 것을 잃고 있지는 않을까? 고전을 일고 감동을 받기도 하고 명화를 보면서 눈물도 흘리고 여행을 통해 삶의 지혜를 터득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가족 구성원들과 소통하며 대화를 통해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고 상호이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잃고 있는 건 아닐까?
‘지면 죽는다’는 철학으로 무장한 부모들... 이런 부모들은 자기 자녀가 어떤 인간으로 자라기를 바랄까? 돈? 사회적 지위? 판검사? 국회의원? 의사? 변호사?.... 이렇게 밀어붙이면 부모가 원하는 행운을 모두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신기루를 잡기 위해 앞만 보고 살아 온 아이들이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꾸어 온 꿈이 허상임을 깨닫고 좌절감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부모들은 알기나 할까?
이 땅의 부모들 중에는 자기 자녀를 인격체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다. 사랑하는 자식이 나의 분신, 우리가문을 일으켜 세워 줄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다. 자녀의 소질과 특기를 살려 성취감을 맛보며 살게 하기보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부모들도 없지 않다.
부모의 과욕으로 이 땅의 청소년들은 하루가 다르게 지치고 힘겨워하고 있다. 행복이란 어느 보장되지 않는 날의 순간이나 모든 날을 희생해 특정한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대로, 이 순간이 소중한 나의 삶을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는 것이다. ‘내 자식이기 때문에... ’ ‘내 제자이기 때문에...’ 그들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욕심 때문에 우리사회는 날이 갈수록 공동체 사회는 무너지고 삭막한 경쟁과 이기적인 사람들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내가 아닌, 내 자식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위해 서로 사랑하며 살 수 있는 길은 없을까?
-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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