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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관련자료/학부모

건강보다 성적이 중요하다는 엄마, 황당하다

by 참교육 2012.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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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선생님이시죠?”

 

“그런데요, 누구신지요?”

 

“저기억하실런지 모르겠습니다만. 7~8년 전에 OO고등학교 같이 근무했던 이××입니다”

 

“아~! 선생님이 웬 일로 제게 전화를 다하시고...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예, 선생님을 꼭 만나 뵈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저를요, 전화를 하시면 안 될 얘깁니까?”

 

“예 꼭 만나 뵙고 말씀드릴게 있어서요, 바쁘시겠지만 시간을 꼭 좀 내주십시오”

 

오래 전 얘기다. 전임지에서 특별히 친하게 지낸지도 않았던 선생님이다. 다인구 학교에서는 같은 학교에 근무해도 같은 과목, 같은 학년이 아니면 지나치면서 인사나 할 정도다. 나이차이도 있었지만 여선생님이라 특별히 가깝게 지낼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선생님이 좀 보자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냐며 전화로 말하면 안 되겠느냐고 했지만 기어코 저녁 약속을 하고 식당에서 마주 앉았다.

 

 

남편이 대학에 근무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교육자 집안에서 공부 잘하는 아들 하나 딸 하나... 남부러울 게 없는 행복한 가정이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 아들이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현재 1학년 A반 반장이라고 했다. 공부도 잘하고 반장까지 맡아하는데... 중학교까지 반에서 줄곧 1, 2등을 도맡아놓고 했던 애란다. 고등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차츰 성적이 떨어져 10등, 15등으로 밀려나더니 2학기 중간고사를 치고 나서는 아예 성적표조차 감춰놓고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말하기가 무척 힘들었던 모양이다. 아들의 성적에 대해 얘기하는 게 자존심 상해 쉽지 않은 듯 했다. 이성문제도 아니라고 했다. 남편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앓다, 내가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근무한다는 걸 알고 어렵게 전화를 한 것이다. 아들의 성적이 떨어지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단다.

 

놓으면 꺼질 새라, 불면 날아갈 새라 하자는 것 갖고 싶은 것 원하는 대로 다 해줬다. 엄마의 그런 사랑은 성민이(가명)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능력을 앗아갔다. 공부도 시간표를 짜준대로 학원이며 학교를 개미쳇바퀴 돌듯 오갔다. 헛말로도 반항 한번 할 줄 모르는 모범생(?)이었다고 한다. 덩치는 훤칠하게 컸지만 마음은 자라지 못하고 엄마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나약한 마마보이로 자랐다.

 

 

성민이가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안절부절했다 그런 어머니의 눈치를 보고 아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안절부절했다. 학교도 가기 싫어 할뿐만 아니라 시험을 치는 날은 배가 아파 시험 도중에 병원으로 실려 가야 했다. 집안의 분위기가 어떨지 짐작이 가고 남았다.

 

나를 찿아 온 이유는 시험을 망쳤으니 병원에 간 날 시험성적을 구제할 수 있는 길이 없느냐는 것이다. 시험을 치지 않았으면 지난 번 친 시험 점수의 몇 %를 받을 수 있지만 중간에 병원에 갔으니 0점 처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럴 수가....! 엄마라는 사람이, 아이 건강보다 점수걱정이라니... 이대로 가다가는 SKY는 물론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내기도 힘들겠다는 것이다. 차라리 만나지 말았으면 좋을 법한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얘길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 차이도 있고 진정으로 아이를 위하는 길이 어떤 것인지 바른대로 말해주는 게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민이가 이렇게 된 건 엄마 책임이 더 크네요! 지금은 점수가 아니라 아들의 정서가 묹입니다. 이렇게 아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면 무슨 일이 생길지...”

 

성민이 엄마는 내가 자기 말에 동조해 시험을 치다 병원에 간 날 점수 걱정을 해줄 줄 알았던 모양이다. 내친김에 할 말을 다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말을 이어갔다.

 

“잘 아시겠지만 성민이는 지금 한계상황까지 와 있습니다. 아들의 인내심이 어디까지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성민이가... 잘못되면....성민이 엄마의 생각부터 바꿔야 합니다!”

 

 

단호하게 말하고 끊었다. 더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성적이나 체면이 아니라 아들의 건강을 걱정한다면 당연히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여야 옳다. 그런데 선생님은 아들에 대한 지나친 기대, 자신의 사회적 체면, 남편이 알게 될까 그게 두렵고 무서은 것이다. 아들을 여기서 포기하면 자신이 믿고 기대했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다 무너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 후 성민이와 여러 차례 상담을 했지만 엄마의 가정교육에 순치된 아들은 담임도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영향력에는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성민이 담임과 상담도 하고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시도를 다 해봤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결국 성훈이 엄마는 학년말 고사를 다 보지 못하고 자퇴를 시키고 말았다.

 

상대방이 싫다는 데 일방적으로 좋다고 속을 다 보이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진정으로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좋은 듯 안 좋은 듯, 적당히 애태우며 다가가는 게 성공의 비결이다. 상대방의 기분도 모르고 속을 다 드러내고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싫증나게 하는 어리석거나 모자라는 사람이다.

 

연인간의 사랑뿐만 아니다. 부부간의 사랑도, 부모의 자녀 사랑도 속을 다 보여주는 건 지혜롭지 못하다. 조상들의 자녀 사랑 법을 보자. 그들이라고 자식사랑이 요즘 사람과 다를 리 없겠지만 겉으로 드러내놓고 사랑표현을 하지 않았다. 아니 어른 들 앞에서 혹은 남 앞에서 그런 표현을 했다가는 여지없이 푼수취급을 받았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고 했던가? 세상에 자기 자식이 밉게 보이는 부모가 있을까? 밉기는커녕 자식을 키우다보면 가끔 '내 자식이 천재가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게 되고 하는 짓이 하나같이 귀엽고 예쁘다. 사랑에 취하면 사물이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더니... 그런 자식을 옛날 사람들은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절재해가며 자식을 매로 키웠던 것이다.

 

사랑은 독이기도 하고 약이기도 하다. 잘못된 사랑은 자식을 망친다. 요즈음 젊은 분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을 가끔 본다. 자식이 하자는 데로, 좋다는 건 뭐든지 다 해주고 행여나 남에게 뒤질 새라 좋다는 유치원이며 학원이며 고액과외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무슨 빚을 내서라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기어코 하고 만다. 내 자식이니까, 내 욕심대로 키우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부모 때문에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힘들어 하고 지쳐가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랑은 다 선(善)이 아니다.

 

- 이미지 출처 :다음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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