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에 해당되는 글 38건

  1. 2017.01.22 일제 잔재, 차렷, 경례! 아직도... (1)
  2. 2017.01.05 헌법이 보장한 인권 학생은 왜 못 누리지? (6)
  3. 2016.07.24 세상은 왜 갈수록 살기 어려워 질까? (4)
  4. 2016.06.12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에는 아직도 민주주의가 없다? (4)
  5. 2016.05.05 청소년의 달에 생각해 보는 청소년인권 (9)
  6. 2016.05.01 학부모들은 왜 무너진 학교에 목을 매는가? (4)
  7. 2016.02.21 인권은 없고 생활지도만 있는 학교... 교육맞나? (19)
  8. 2016.01.13 교육... 이제 학교에만 맡겨둘 수 없어요 (16)
  9. 2015.08.01 매들면 공교육 산다? (4)
  10. 2015.05.28 헌재의 해괴한 논리, 전쟁에서 부상당하면 군인 아니다? (6)
  11. 2015.05.15 정부가 인권교육 못하게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5)
  12. 2014.08.21 곽노현, 그의 ‘징검다리 교육감’에 반하다 (5)
  13. 2014.07.08 학교 살리기, 인권교육이 먼저다 (6)
  14. 2014.02.20 민주주의는 왜 학교 교문 앞에서 멈추는가? (15)
  15. 2014.01.02 서울시 교육청은 역사를 거꾸로 돌리고 싶은가? (18)
  16. 2013.12.12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에 민주주의가 없다? (16)
  17. 2013.11.12 차렷, 경례!, 지금부터... (13)
  18. 2013.09.13 두발·복장만 자율화하면 학생 인권 실현될까? (15)
  19. 2013.01.31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학생생활지도가 어려워졌다고...? (26)
  20. 2012.06.21 아이들과의 만남, 소통이 교육이다 (11)
  21. 2012.05.13 목표 따로 현실 따로... 거꾸로 가는 세상 (8)
  22. 2012.05.11 학교폭력과 사회폭력... 어느 쪽이 더 심각한가? (12)
  23. 2012.05.10 0교시, 강제야자.보충수업, 아직도 한밤중인 학교.... (33)
  24. 2012.04.29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시대착오적인 학생관 어이없다 (6)
  25. 2012.03.19 진보교육감 죽이기? 서울시교육감에 이어 전남교육감까지... (19)
  26. 2012.02.15 교권조례 반대하는 교총, 교원단체 맞나...? (37)
  27. 2012.02.14 학교폭력, 경찰이 해결하겠다고? (33)
  28. 2012.01.31 인권존중 교총, 왜 학생인권조례 반대할까? (27)
  29. 2012.01.26 학생인권허용 못하겠다는 이상한 나라 (100)
  30. 2012.01.18 학교폭력, 왜 언론마다 보는 시각이 다를까? (32)
분류없음2017.01.22 07:05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제가 방송에 출연했던 원고, 신문 사설이나 칼럼대학학보사일간지우리교육역사교과모임국어교과모임우리교육...등에 썼던 원고를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1999년 5월 27~ 6월 2일, '창원신문' '김용택교사칼럼'에 썼던 글입니다. 신문사가 문을 닫아 스크랩한 글을 여기 올려 놓습니다.  

 

 

문화지체현상라는 말이 있다. 급속도히 변화라는 물질문화와 비교적 완반하게 변하는 비물질문화간에  변동속도의 차이에서 생겨나는 사회적 부조화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문화지체 현상는 특히 가치관의 경우 부조화의 폭이 수백년이 흘러도 계속되기도 한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에서 지적했듯이 우리사회는 1200년전의 중국 남송의 주자네 가정의 가정의례를 아직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고 산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한마디로 '식민지 잔재 미청산'을 꼽는다. 해방이 된지 70년도 더 지났지만 우리사회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식민지시대 잔재는 피부의 색깔처럼 지워질 줄 모른다. 식민지시대 향수를 잊지 못하는 친일세력들이 필요해서일까? 아직도 우리사회의 문화 특히 교육부문의 친일잔재청산은 세기를 넘겨도 달라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물질문화의 속도에 비한다면 제가 18년에 썼던 글이 지금도 유효하다면 믿어지겠는가? 조선사람을 일본국민으로 만들겠다는 황국신민의 야망이 제도를 통해 뿌리를 내리고 그 제도는 민족의 자존심까지 좀먹었지만 바꾸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틀린것은 고치고 잘못은 바로잡아야겠지만 왜놈들이 짓이겨 놓은 상처는 치유 될 줄 모른다. 그 아픈 상처의 민낯을 조명해 보자.  


많이 바뀌긴 했지만 인권의 경우를 보자. 학생의 인권이 따로 있고 일반 국민의 인권이 따로 있을 수 없지만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학생의 인권을 찾아주자면 펄쩍 뛰는 사람들이 있다. 왜놈들이 우리국민에게 써 먹던 '조선 놈은...'이라는 가치관이 학생지도를 위해 필요하다는 논리는 헌법보다 상위의 가치관이 됐다. 어디 인권 뿐일까? 18년 전의 글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보자.

           



일제 잔재, 차렷, 경례! 아직도...

1999. 5. 27~ 6. 2.


지금부터 직원모임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일어서 주십시오. 차렷! 경례!”

학교의 직원회의는 이렇게 시작한다. 출근하는 교문에는 선도생들이 버티고 서서 지각생이나 복장위반학생들을 단속하고 있다가 선생님이 출근하면 성실!’하는 구호와 함께 거수경례를 한다.

 


거수경례를 하는 선도생들의 훈련된 모습을 보면 학교로 온 것이 아니라 군대의 위병소를 통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학교는 아직도 군국주의 시대의 문화를 많이 간직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 씩 전교생을 모아놓고 애국조례라고 하는 전체 조례를 한다. 상장을 전달하거나 학교장이 10여분 동안 훈화를 하기 위해 40~50분 이상의 시간을 소비한다. 물론 여기서도 예외 없이 차력! 경례! 라는 구호와 함께 학생들은 군대식 거수경례를 한다. 심한 경우에는 학교장에 대한 경례!’라는 구호와 함께 팡파르가 울려 퍼지고 학교장은 군인처럼 거수경례로 답한다.


학생들에게 학교생활에서 가장 자존심 상하는 일이 뭐냐라고 물으면 하나같이 두발검사에 걸려 머리카락을 잘렸을 때라고 한다. 머리카락이 잘린 순간 죽고 싶엇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다. 가위로 잘린 자국은 이발소에 가서 단장을 해도 가위 자국은 그대로 남는다. 어떤 때는 학부모들의 심한 항의 전화를 받거나 지도 받던 학생들이 노골적으로 반항하기도 한다. “왜 머리카락을 기르자고 학생회에서 의논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런 결정은 해도 필요 없어요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지도교사인 학생부장의 한마디로 거절당하기 때문이다.


학교의 주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하나 같이 학생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주인이 자신의 일을 결정하지 못하면 주인이 아니구나?“ ”..“.?” 학생들은 대답을 못한다. 머리카락에 염색을 하거나 런닝샤스를 입지 않고 교복을 입는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수십 년 전부터 정해 내려 온 교칙. ‘학생은 단정한 머리와 복장이라는 성역(?) 규정에 용기도 용의도 없다.


학교비젼 2002, 새학교문화창조 추진 계획에 따르면 학교토론문화의 형성과제 중에서 학교공동체의 공동관심사항을 교원 학생 학부모 들이 한자리에 모여 토론하고 합의함으로써 구성원 모두가 자기 할 일을 분명히 인식하고 자기 몫을 다하는 풍토를 조성한다.’고 규정하고 학생회 일동의 활성화를 중심과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학교는 학생들의 최고의 관심사인 두발 자유화니 '교복자율와 같은 성역에 대해서는 불가침의 영역으로 남겨 두고 있다. 학교가 민주주의를 수련 하는 장이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둘이 아니다, 자율이 없는 간섭과 통제는 교육이 아니라 순치나 노역일 수밖에 없다.


보수주의로 무장한 사상가가 민주주의를 가르칠 수 없다. 전통가치가 절대적인 가치로 자리 잡은 사회에는 변화나 민주주의는 외면당한다. 책임과 자율을 전제로 하는 생활의 습관화는 새학교문화를 창조하는 교육개혁의 핵심이다 학교는 아직도 민주주의를 체험하는 교육의 장으로서 한계가 많다.


직원회의가 지시전달의 장이 아니라 의결기구로 바뀌고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이 활성화 되는 것! 민주주의는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지시와 통제에 익숙한 교사는 학생들을 민주적으로 가르칠 수 없다. 교과서에는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가르치고 자유를 배우지만 교문 안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통제와 간섭으로 민주주의는 질식 상태에 있다. 관념적인 지식은 시합용으로는 쓰일지는 몰라도 삶을 바꾸어 놓지는 못한다. 실천하지 못하는 지식인을 양성하는 학교는 머리만 있고 행동이 없는 기형인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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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은 일류가 지향하는 가치요, 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이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인간 그 자체로서 존중받을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뜻으로 신분, 성별, 신체적 조건 등과 관계없이 존중 받아야 한다는 인류 보편적 가치다. 이러한 가치는 그리스의 인간 중심 사상 르네상스 종교 개혁 사회계약설(기본권 사상) 계몽 사상 시민 혁명 입헌주의(민주주의)’를 거쳐 오늘날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가치다.

이러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헌법 제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제 12조 신체의 자유, 13조 죄형법정주의, 14조 거주·이전의 자유, 15조 직업 선택의 자유, 16조 주거의 자유, 17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18조 통신의 비밀, 19조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어른들이 누려야 할 인권과 학생들이 누리는 인권이 다를 수가 있는가? 헌법 제 10조가 규정해 놓았듯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라고 해 연령의 차이로 대상에서 제외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인간으로서 누리는 기본적 가치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장치가 헌법이요, 법률이요, 명령이요, 조례요, 교칙이다. 상위법 우선의 원칙에 비추어 차별받지 않을 권리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는 학생이기 때문에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학생인권조례...? 학생의 인권이 따로 있다..? 참 이해할 수 없는 말이 현실이라는게 슬프다. 학생이기 때문에.... 재한 받아야 한다는 조항은 헌법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에는 학생이기 때문에 옷이며 머리모양이나 신발, 양말까지 규제당해야 하는 신라시대 골품제를 연상케 한다. ‘교육상 필요하다고...’라는 이유만 붙이면 헌법을 어겨도 불법도 합버이 된다. 체벌이 정당화되고 인격적인 모독도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당에도 교육상 필요하다면 말 한마디로 정당화되는게 대한민국의 교육이다.

학생인권조례도 그런 여건에서 탄생한다. ‘헌법에 버젓이 모든 국민이러고 명시하고 있지만 교육상 필요하다면...’ 조건에 묶여 정당화 됐다. 그런데 웬일일까? 이런 반헌법적(?)이요, 반 시대적(?)인 학생인권조례조차 학생이기 때문에 예외가 되어 온갖 이유로 제한하고 또 제한해 인권교육에 앞장서야 할 교육부가 제동을 걸고 경우 대법원에서 살아남았지만 그것조차도 만든 시도가 4개시도 뿐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시도의회에서 꺼냈다가 빨간 딱지가 붙어 부결의 쓴 맛을 봐야 했다.

학생인권조례란 학교 교육과정에서 학생의 존엄과 가치가 보장될 수 있도록 각 지역 교육청에서 제정한 조례다. 2010년 경기도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시작으로 현재 전국 16개 시·도 중 경기도, 광주광역시, 서울특별시, 전라북도 4개 지역에서 공포해 시행하고 있다. 지자체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학생인권조례의 주 내용은 학교 내 체벌 금지’ ‘두발·복장 등에서 개성을 실현할 권리’ ‘양심·종교의 자유 보장’ ‘강제 야간자율학습·보충학습 금지해 정규교과 이외 교육활동의 자유 보장’ ‘학생 동의 없는 소지품 검사 금지’ ‘학생인권옹호관 설치’... 등이다.

20121월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서울학생인권조례에는 집회의 자유가 처음 포함됐다.(헌법 제21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조례가 통과되고 공포됐지만 학교인권조례가 시행 되까지는 우여곡절을 겼었다. 그 이유는 교육부가 학생인권조례 의결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10만명의 주민발의로 제정 공포된 학생인권조례를 교육부의 제동에 걸려 대법원에까지 갔으나 대법원은 두발과 복장의 자유, 체벌 및 야간자율학습 금지 등을 규정한 학생인권조례의 효력이 유효하다며 "인권조례의 구체적인 내용이 법령에 어긋나지도 않는다"고 판시했다.

학교는 민주주의 훈련장이다. 미래 민주시민으로서 자유와 권리를 행사하는 주권자로서 살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곳이다. 계급사회 가치관으로 민주시민을 양성하면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가? 규제와 통제 그리고 지배와 복종을 체화한 학생이 어떻게 민주시민으로서 권리의 주체로서 살아 갈 수 있는가?

그렇지 않아도 분단국가의 국민으로 태어난 죄 아닌 죄 때문에 군대생활에서 온갖 군국주의 정신무장을 체화하는 국민들이 사는 나라다. ‘군대 갔다 온 남자가 진짜 사나이가 되는 나라에 학교에서 배운 순종 시너지까지 겹쳐 대민민국국민은 아직도 민주시민으로 가는 과정에서 방황하며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헌법대로 배우고 헌법이 보장한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받고 사는 날은 어제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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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인터넷을 열었더니 "재산 줄 테니 보러와라"..효도 계약서 '씁쓸'이라는 기사가 뜬다. '지난해 말 대법원은 2층짜리 한옥을 물려받고는 부모를 홀대한 불효자에게 증여받은 집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면서 이러이러한 조건을 써 두어야 논란의 여지가 없다는 자상한(?) 안내까지 한 기사다.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성주군민들이 불순세력이 됐다는기사. 삼성이건희회장의 성매매 동영상이야기, 냉장고 시신 보관 살인범 이야기, 우병우민정수석의 국정농단 이야기.. 자칭 일등신문이라는 조선일보는 메인기사를 '청사복도에 ×싸고, 길가는 여성보며 음란행위 하고..'라는 기사를 메인기사 제목으로 뽑았다. 어디를 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세상이 갈수록 힘들고 어렵다. 아니 사는게 무섭다.

우리가 땀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뭘까? 내가 힘들게 고생해도 내 다음 세대, 우리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사람이 사람대접받는 세상, 상식이 통하느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런데 갈수록 좋아지기는커녕 점점 살기 힘든세상, 상식이 통하지 않는세상, 막가파세상, 멘붕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정치는 정치대로, 경제는 경제대로, 교육은 교육대로... 어느 것 하나 희망적인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학교를 왜 다니느냐고 물어 보면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고 한다. 부모들에게 물아봐도 대답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학교는 훌륭한 사람을 길러내고 있을까?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우리나라 교육법 기본법 제 2조다. 

초등학교의 교육목적은 "초등학교는 국민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초등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교육법 제38조)라고 규정하고 중학교의 교육목적은 "초등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 중등보통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교육법 제41조). 초ㆍ중등교육법, 제45조에 고등학교 교육은 '중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 중등교육 및 기초적인 전문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초중등학교가 교육관련법에 명시하고 있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을까? 

법율만 고고하게 그렇다. 현실은 그런 목적과 관계없이 '더 좋은 상급학교를 진학'하기 위해서다. 원하는 상급학교를 몇명 더 입학시키느냐의 여부에 따라 명문학교여부가 가려진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현실은 법 따로 현실 따로다. 교육과정을 어기고 교육관련법을 어겼다고 처벌 받은 학교를 본 일이 없다. 왜 학교는 물론이요, 교사와 학부모들조차 어기고 있는 실정법. 그 누구도 이의 제기초차 하지 않고 있을까?

도로교통법을 어기면 득달같이 벌금을 내거나 보험료가 올라간다. 그런데 한법을 어긴사람은 왜 처벌조차 받지 않을까? 실정법을 어겨도 처벌받지 않는 것은 학교뿐만 아니다. 유행가 가사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갈수록 요지경이다. 대통령이 공약을 어기고 삼권분립이란 법전에나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지만 우리나라 지도자들의 사전에는 그런 것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사람이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사회다. 힘있고 돈많은 사람, 잘생긴 사람...만 잘 사는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한 세상, 정의가 살아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정치가 필요한 이유가 그렇다. 법이 필요하고, 교육이, 종교가 필요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하루가 다르게 거꾸로 가고 있다. 

오늘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은 참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모여 만든 결과다. 나라를 찾기 위해 목숨을 헌산짝처럼 버린 사람들, 노동해방을 이해 초개같이 목숨을 던지고 혹은 단식으로 감옥에서 온갖수모와 고통을 당하면서 지켜 온 나라다. 

언론인들은 해직을 감수하고 전교조교사들은 파면을 당하면서 종교인들이 거리로 뒤쳐 나가 짓밟히고 찢겨져도 멈출줄 모르고 싸워온 결과가 안니가? 지난 1월 경찰의 살인적인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백남기씨는 경찰의 살인적인 물대포에 맞아 아직도 혼수상태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으로, 권력을 가지 사람은 권력으로, 지식인과 언론은 자식이 가진 힘으로 탈세와 범법을 밥먹듯이 하는 사회는 살만한 사회인가? 말로는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법앞에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하루하루를 힘겸게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꿈같은 얘기다. 언제쯤이면 사람이 사람대접받는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상식이 통하느 세상, 정의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오래 전에 썼던 글을 여기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2001년 06월 12일 (바로가기▶) '학생을 이중인격자로 키우는 학교'라는 주제로 경남도민일보에 썼던 글입니다.


학생을 이중인격자로 키우는 학교


김용택(마산여고 교사) 2001년 06월 12일 화요일


‘여학생은 검정색 단화를 신고, 굽 높이는 4cm 이하여야 하며 앞이 뾰족하거나 올라간 것, 각이 지거나 금속장식이 붙은 것은 금한다. 양말은 무늬가 없는 흰색으로 하고, 동복 착용 시에는 살색 스타킹에 검은 양말을 덮어 신는다. 목도리는 혹한기의 등.하교시에만 착용 할 수 있고, 색상은 검정색이어야 하며, 교내에서는 착용할 수 없다.’ 

<이미지 출처 : 부산일보>

군인이나 교도소의 재소자가 지켜야 하는 수칙이 아니다. 이른바 교칙이라고 불리는 중.고등학교의 ‘학생생활지도규정’이다. 군인이나 교도소 재소자들이 지켜야 하는 수칙보다 더 까다롭다. ‘위의 제 규정을 위반하면 <학생생활지도 일지>에 기록하고, 5회 이상 기록되면 <행동관찰기록부>에 기재되는 동시에 별도의 선도규정에 따라 생활지도부의 지도’를 받는다. ‘학생생활기록부’에 기록으로 남겨 대학진학에 불이익을 주는 협박성(?) 교칙을 지켜야 하는 학교도 많다. 

교복은 말할 것도 없고, 남학생의 두발은 스포츠형이어야 하고 여학생의 두발은 귀밑 3cm를 고집하는 학교도 있다. 아침마다 학생들이 등교하는 교문에는 학생들의 두발이며 복장을 확인하고 위반 사항이 없는지 샅샅이 확인 후 통과가 허용된다. 선도완장을 찬 선배들에게 ‘성실’, ‘단결’, ‘협동’이라는 구호와 함께 거수경례를 해야 한다. 복장을 위반하거나 5분이라도 지각을 하면 사정없이 ‘운동장 돌기, 토끼뜀 뛰기, 엎드려 뻗쳐’와 같은 군대식 벌을 받기도 한다. 

‘삐삐.휴대전화.전자 게임기의 소지를 금한다. 화장품.반지.팔지.목걸이.귀걸이 등 기타 학생 신분에 맞지 않는 장신구는 금한다.’와 같은 규정도 수두룩하다. 요즘 고등학생 치고 휴대폰을 소지하지 않은 학생은 거의 없다. 자녀들과 연락이 용이하다는 편의성 때문에 부모님들이 사주는 경우도 많다. 학생은 휴대폰을 소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불량한 학생’취급을 받는다. 지킬 수도 없는 규정을 그대로 두고 대부분의 학생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는 ‘학생생활지도규정’은 폐지해야 한다. ‘재수(?)가 없어 들킨 학생’만 처벌받는 교칙은 학생들로 하여금 기회주의자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소수의 부진학생을 지도하기 위해 다수의 학생을 희생시킬 수 없듯이 소수의 범법 예비생(?)들 때문에 선량한 다수 학생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학교는 ‘교육적’이라는 명분으로 헌법에 보장된 학생의 ‘신체의 자유’와 ‘사유재산권’을 침해해 왔다. 민주주의를 가르치면서 전혀 민주주의답지 못한 비민주적인 관행이 학교에 수없이 남아 있다. 내면 감화를 통한 행동의 수정이나 자아 정체성의 확립이 아니라 ‘힘 앞에 복종’하도록 하는 순치가 자행돼 왔다. 형식과 권위가 지배하는 학교, 지킬 수도 없는 교칙이 있는 학교는 학생들을 이중 인격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정보화사회를 맞아 학교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교육비전 2002, 새학교 문화창조’라는 창의적인 교육, 토론문화의 정착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면서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되고, 자립형 사립학교, 영재학교 설립 등 수월성(秀越性) 교육이 추진되고 있다. 능력 있는 사람이 대접받는 새로운 인간을 양성하겠다는 특기적성 교육을 시도하고 있다. 탈산업사회라고 일컬어지는 정보화사회에는 정보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면서 교실마다 컴퓨터를 설치하고 프로젝션 텔레비전을 완비했다. 세계에서 최초로 전국의 학교에 인터넷망이 연결돼 유럽이나 미국을 앞질러 선진교육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변화를 주도하고 민주주의를 가르쳐야 할 학교가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복종을 미덕으로 강요하는 교칙이 바뀌지 않는 학교에서는 창의적인 교육도 민주적 교육도 불가능하다. 다원주의 사회를 살아가야 할 2세들에게 통제와 복종을 강요하는 폐쇄적인 교육은 마감해야 한다. 한번도 읽어보지 못한 교칙을 입학식 때 학생대표가 선서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졸업 때까지 학생의 인권이 저당 잡혀 있어서는 안 된다. 식민지시대 유산인 교칙을 바꾸지 않고는 민주적인 교육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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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시계는 몇점이나 될까? 아니 학교의 민주주의는 몇점이나 될까? 민주주의의 산실이 되어야 할 '학교에는 민주주의가 없다'느니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는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헌법에 버젓이 명시하고 있는 신체의 자유는 '교육'이라는 이유로 보장받지 못하고, 성적이 뒤떨어진다는 이유로 다른 학생과 비교를 당하거나 부당한 차별을 받는경우도 허다하다. 아직도 학생회장 선거에 피선거권 자격을 성적으로 차별당하고 개인의 시험성적이 다른 학생 앞에서 공개되는 경우도 있다. 



학교는 아직도 민주주의의 사각지대다.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폭력방지법까지 만들었지만 대부분의 시도에서는 학생인권조례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공부를 해야할 학생이 인권운운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이유다. 도대체 학교가 하고자 하는 교육이 무엇이이기에 민주주의를 체화시켜야 할 학교에 인권까지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교사문화는 또 어떤가? 최근 진보교육감 당선 지역에서 혁신학교를 만들어 학교의 자율성, 민주성 그리고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교육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의견수렴과 토론문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교장 교감 수석교사 평교사, 기간제교사 강사로 이어지는 계급문화가 그렇고 교사들의 모임인 교사회조차 법정기구가 아닌 임의기구다. 이런 학교현실에서 경기도 교육청이 '민주주의 지수평가를 하겠다는 흥미있는 시험을 시작해 하교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 


경기도교육청은 민주주의가 실종된 학교에 '자율과 자치의 학교 문화'를 만들기 위해 각급 학교의 문화, 제도, 민주시민 교육 등의 수준을 계량화한 '민주주의 지수'를 만들겠다는흥미 있는 조사를 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경기도 교육청은 '민주주의 지수를 학교 평가가 아니라 '학교가 스스로 변화하고 발전하기 위한 진단과 해법찾기'라고 설명했다. 혁신학교를 시작하고 학생인권조례 등 학교민주주의 실현의 선두주자였던 된 경기도 교육청이 이번에는 각급 학교 '민주주의 지수' 측정으로 한발 앞선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할 수 있을 지 기대된다.   



아래 글은 교장왕국이었던 학교에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가장 먼저해야 할 일이 교원의 승진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취지에서 13년 전에 오마이뉴스에 썼던 글이다. 병원의 원장은 의사 면허만 있으면 되고. 법원의 부장판사도 판사면 누구나 할 수 잇는데 왜 학교에는 교장이 자격증을 받기 위해 가르치는 일이 뒷전이 되어야 하는가? 이번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사건에서 보듯이 도서벽지 점수를 얻기 위해 오지를 전전하는 승진점수 모으기는 정말 교육적일까? 그리고 벽지에 사는 아이들은 왜 승진교사들의 점수따기 시험용이 되어야 하는가? 교원승진제도는 이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왜 교장자격제를 폐지해야 하는가?

- 교육개혁, 교장자격제 폐지부터 -


2003.02.11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평교사보다 교감이나 교장이 더 훌륭한 인격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교장 중에는 교사보다 훌륭한 사람도 있고 교사 중에는 교장보다 더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도 있다. 사회적 지위와 개인의 인격을 구별하지 못하는 전근대성이 남아 있는 사회에서는 교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교장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교장이 되기 위해서는 점수를 모아야 하고 점수를 모으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희생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교육 현실이다. 


모든 사회가 다 그렇지만 직장에서 책임자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구성원들 모두에게 이익을 줄 수도 있고 불이익을 줄 수 있다. 특히 시행착오를 최소화해야 하는 교육분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만약 1천명 중 한 명이라도 투철한 교육자적인 사명이나 철학도 없는 사람이 교장을 맡게 되면 그 피해는 구성원 모두의 몫으로 돌아간다. 더구나 그런 사람이 사욕을 채우겠다는 생각을 하고 의도적으로 투명하지 못한 운영을 한다면 그 피해는 심각하다. 교장의 자질은 점수가 아니라 교육철학과 인품과 봉사와 헌신적인 사랑을 갖추고 있느냐의 여부에 있다.


그런 교장이 없어야겠지만 과거 학교경영에 문제를 제기하는 교사들을 '강제 내신'(본인이 원하지도 않는 학교에 교장의 직권으로 이동을 시킬 수 있는 권한)한 교장들이 있었다. 학교운영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거나 개선을 건의하는 교사조차도 자신의 시각에서 문제교사로 낙인찍어 불이익을 준 사례도 많다. 뿐만 아니라 교장선생님이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비판적인 교사에게 얼마든지 불이익을 줄 수 있다.(근무평가권을 활용해 낮은 점수를 줄 수 있다. 근무평가점수를 낮게 받은 교사는 승진이나 이동에 불이익을 받을 뿐만 아니라 부장교사라는 보직을 얻지 못하고 소외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교사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학교장은 직장사회의 지도자로서 자질부족이다.


지금은 학교장은 중임(현재 교장의 임기는 4년으로 중임할 수 있다)으로 끝나지만 과거에는 한번 교장이 되면 정년 퇴직을 할 때까지 교장을 한다. 일본 식민지가 끝나면서 교직경력 2-3년이던 젊은 교사가 교장이 되어 40여년을 교장생활을 했노라고 자랑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사회에서는 '교장은 훌륭한 사람이고 교사는 교장이 못된 사람'쯤으로 평가된다. 


학교장에게 교사의 생사여탈권인 근무평가권이 주어진 상황에서는 학교문제에 의의를 제기 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더구나 공립의 경우 한 학교에 5년을 근무를 하다보니 언젠가는 함께 근무했던 교장선생님과 다시 만나게 된다. 교장선생님에게 한번 찍힌 교사는 언제든지 불이익을 받기 마련이다. 이동을 하다 만나든지 다시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지 않더라도 동료교장들에게 소문이 나면 문제교사(?)는 교직사회에서는 영원히 왕따 신세를 벗어나기 어렵다. 


장기집권이란 민주주의의 적이다. 역사적으로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시대가 그랬다. 권력의 양지를 찾아 다니던 사람, 독재권력의 편에 서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던 사람들은 정치계에만 있었던 것아니다. 학교에도 승진을 위해 교장의 시녀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다. 위로는 국정교과서라는 이름으로 권력이 선택한 지식을 가치 있다고 강변하던 사람이 그렇고 유신독재를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가르치라고 목청을 높이던 사람들이 그렇다. 한번 교장이면 영원한 교장(임기 4년의 중임, 8년의 임기를 마치면 대부분 정년으로 교직을 떠난다)인 교직사회에서 교장에게 잘 보이는 것이 교직에서 출세가 보장된다는 것은 영악스런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안다.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발전이란 기대할 수 없다. 학교사회도 그렇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식이하의 일들이 변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나서면 손해본다'는 보신주의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과 상호비판이 허용되는 사회는 살아 움직이는 사회다. 학교운영은 그 구성원인 교사나 학생들의 의사가 반영되어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적인 상식조차 허용되지 않는 곳이 학교 사회다. 운영위원회나 직원회의에서 바른 말 몇 번으로 문제교사가 되는 사회에서 민주적인 교육이 가능할 리 만무하다.


형식은 그럴듯하게 참 많이도 갖추고 있다. '직원회의'라는 것이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회의'가 아니라 '지시전달'시간이다. 인사위원회라는 것이 있어 교사의 보직이나 학년담임 배정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기구가 있지만 있으나 마나한 자리다. 학교운영위원회라는 기구(공립은 심의기구, 사립은 자문기구)가 있지만 특색 있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진지한 토론이란 기대하기 어렵다. 학교장의 절대권(교원근무평가권)을 두고서는 학교운영위원회란 유명무실할 수밖에 없다. 교과협의회를 비롯한 그럴듯한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내용은 없고 형식만 있는 기구로는 민주적인 교육도 투명한 운영도 기대할 수 없다. 



학교장은 군림하는 권위주의자가 아니라 학교사회에서 존경받는 인격자여야 한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찾아가 의논하고픈 사람, 학생지도를 하다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가면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니 스스로 교사들을 만나 도와줄 일이 없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학생들의 불만을 받아 소화시키고 서로가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도록 배려하고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능력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단위학교에 좋은 교장이 있다는 것은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무두가 행운이다. 아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럴 권리가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있다. 돈많은 학모들의 수다를 들어줄 시간에 소외된 학생들, 마음의 상처를 받은 학생들이 없는지 살피는 가슴 따뜻한 교장이 있는 학교는 무너지는 교실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그런 교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에 대한 무한한 열정과 사랑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그들을 지키고 사랑하는 가슴 뜨거운 교사들이 학교 안에는 얼마든지 있다. 


점수 몇 점으로 만들어 낸 교장들이 만들어 놓은 학교가 어떻게 됐는지 눈 있는 사람들은 다 안다. 더 이상 무너지는 학교를 만들지 않으려면 학부모와 학생과 교사들이 그런 교장을 찾아 일을 맡겨야 한다. 초등학생도 학급을 이끌어 줄 지도자를 선출할 줄 아는데 하물며 대학을 졸업한 지성인들이 누가 교장선생님으로서 인품과 자질을 갖춘 적절한 인물인지 판단 못할 리 없다. 학교를 살리는 길은 교장자격제를 폐지하고 교사들이 학교장을 선출해 신명나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한사람의 손해로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제도라면 당연히 바꿔야 옳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오래 전에 썼던 글을 여기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2003년 02월 11일 (바로가기▶) '왜 교장자격제를 폐지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오마이뉴스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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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좋은 부모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 부모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뭐라고 답할까? “, 저는 좋은 부모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선 듯 대답하는 부모들이 얼마나 될까? 물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에게 한없이 베풀어 줘도 더 주고 싶은 부모 사랑이 라는 대답을 망서리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방정환재단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가정에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혹은 '외롭다고 느낀다'고 생각하거나 2~30%의 학생들이 '성적에 대한 압박''학습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뿐만 아니라 초등학생 14.3%ㆍ중학생의 19.5%ㆍ고등학생의 24.0가 목숨을 끊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고, 초등학생 44.0%ㆍ중학생 44.4%ㆍ고등학생 36.0'부모와의 갈등' 때문에 자살 충동을 경험하기도 했다고 한다.


선생님들에게 같은 질문을 해보면 어떨까? “, 나는 좋은 선생님,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까? 나는 내가 맡은 아이들에게 삶의 안내자로서 깊이고민하고 그들의 인생멘토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일류학교에 많이 진학시켜주는 선생님이 유능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에서 훌륭한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삶의 안내자로서 이기보다 어떻게 하면 일점이라도 더 받게 해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이 원하는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하는가에 더 관심이 많다.


이런 학교 분위기 탓일까? 학원이 된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인권을 가르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실제로 선생님들에게 어떤 선생님이 가장 좋은 선생님이냐?’고 물어보면 공부를 잘 가르쳐 주는 선생님(실력 있는...)’을 가장 훌륭한 교사라고 생각한다. 부모들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아이 점수 몇 점이라도 더 받게 해 더 좋은 상급학교, 더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게 해 주는 실력(?) 있는 선생님이 가장 좋은 선생님이라고 믿고 있다.


어디 성적뿐일까? 학생생활지도를 보면 학교가 왜 무너졌는지 알만하다. 울산 A고등학교는 입시공부 말곤 아무 것도 하지 마!’ 라는 믿어지지 않는 교칙이 있다.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가 조사한 불량학칙 공모전을 보면 이 학교에서는 ‘3학년 학생의 도서대출 기록을 확인한 후 책을 빌린 기록이 있으면 체벌을 한다.’ ‘점심시간에 나가서 운동을 하는 것도 고3은 금지라고 명시한 교칙도 있다. 부산 C고등학교는 속옷까지 규제하고, 학교 비판하면 처벌을 당해야 하고, 학생회 출마도 성적순이며 사적인 인간관계도 규제 대상이 되는 학교도 있다.


특정학교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학생들에게 인권을 말하면 교권부터 걱정하는 교원단체도 있다. 그래서 일까?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한창 논란이 됐을 때 우리나라 최대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교총이라는 단체는 교권을 보호하지 않으면 교사들이 설 자리가 없다며 교권보호를 위한 법을 만들어야 하다며 교원지위항상에관한특별법을 만들도록 강요해 업적자랑이다. 학생의 인권과 교권은 다른 차원의 가치인가?


민주주의란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성립한 사회다. 우리헌법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고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 10)고 명시하고 있다. 심지어 규율을 위반하여 금치 처분을 받은 수형자라도 인간으로서 가지는 기본적인 존엄과 가치를 훼손할 수 없다는게 헌법정신이요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가치다.


학교는 어떤가? 학교는 민주시민을 길러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현재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고 있는 지역은 경기도(201010월 공포)와 서울특별시(2012126일 공포) 그리고 광주광역시(201211일 시행)와 전라북도(2013712)가 전부다. 인천광역시와 충청북도 그리고 경상남도, 강원도, 전라남도는 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지만, 부산광역시·대전광역시·울산광역시·세종특별자치시·충청남도·경상북도는 인권조례 제정에 대한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학생의 인권을 말하면 교권이 무너진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학생은 사람이 아닌가? 헌법이 보장하고 유엔청소년헌장을 비롯한 우리나라 청소년헌장에 명시한 인권은 왜 학생이라는 이유로 보장해주지 못하는가? 놀랍게도 94회어린이 날을 맞아 보건복지부가 아동은 생명을 존중받고 학대와 방임, 폭력과 착취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휴식과 여가를 누리며 자유롭게 의견을 말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내용을 담은 아동권리헌장을 발표했다.


그런데 왜 학생인권조례는 안 되는가? 헌법에 보장된 학생인권을 왜 학생이라는 이유로 보장 받지 못하는가? 학생이라는 이유로 인권은커녕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기본적인 권리까지 유보당하는 사회는 민주사회가 아니다. 점수 몇점이 헌법보다 중요한가? 민주주의보다 상위의 가치인가? 이제 더 이상 학생이라는 이유로 가만 있으라는 교육은 그쳐야한다. 민주주의학교에는 민주주의를 가르쳐 민주시민을 양성해야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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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살리겠다고 아우성이다. 

정부는 교육위기가 교원의 자질부족 때문이라고 진단, 교원의 자질향상을 위해 교원능력개발평가제를 도입했지만 효과가 없자 교원들의 수업을 공개해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원끼리 상호평가를시키고 이제는 임금과 연계한 성과급제까지 도입했다.


<이미지 출처 : 교육부>


학생들이 학교를 거부하고 학교폭력이 사회문제가 되자 정부가 나서서 학교폭력과 전쟁을 선포하고 학교 구석구석까지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학교폭력방지법이니 인성교육진흥법까지 만들었다. 학생들의 인권문제가 대두되면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고 교사들의 권위가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며 교원지위향상법까지 만들어 놓았다. 책가방이 학생들을 힘들게 한다며 자유학기제까지 도입했지만 그 결과는 보나마나 마찬가지라는 우려의 목소리부터 들린다. 


정부의 교육정책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눈치 챈 국민들은 전국 17개시도 중 13개시도의 교육감을 진보교육감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진보교육감들은 혁신학교를 만들고 마을교육공동체를 통한 교육살리기가 답이라며 학교교육만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나서서 학생들을 돌봐야 한다며 팔을 걷고 나섰다. 이제 학교교육과 가정교육, 그리고 사회가 교육의 장이 되는 마을이 나서선 '마을교육공동체사업'은 성공할 수 있을까? 


이 정도라면 할 걸 다 거의 다해 본 셈이다. 진보교육감 임기 반이 지났다. 이 만 때쯤이면 학생들이 학교 생활이 즐겁다며 학교 담장밖으로 웃음소리가 나올 때도 됐는데.... 그런데 달라진게 별로 없다. 가끔 혁신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부모들은 진보교육감의 정책에 박수를 보내고 있지만 밤늦도록 불이 켜진 교실. 학교가 파하면 학교정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학원차로 학원으로 향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달라진게 없다. 


학원은 여전히 성업 중이며 SKY로 향하는 부모들의 애끓는 학원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환자의 병인을 진단 못한 의사를 환자의 병을 고치지 못한다. 교육도 그렇다. 학교 살리기 앞에 가로놓인 거대한 벽. 수학능력이라는 괴물은 여전히 건재하고 진보교육들의 혁신을 비웃고 있다.  ‘서울형 혁신학교’, 경기도의 ‘혁신학교’, 강원도의 ‘행복더하기학교’, 전라남도의 ‘무지개학교’, 광주광역시의 ‘빛고을혁신학교’, 전라북도의 ‘혁신학교’ 충청남도의 ‘행복공감학교’ ...는 성공할 수 있을까? 


병인은 따로 있다. 교육을 시장에 내놓은 정책. 이른바 교육시장화정책이다. 경쟁를 통한 효율성의 추구. 교육이 상품이 되어야 한다는 자본의 목소리다. 자본주의와 종교가 공존하기 어렵듯이 교육과 상품은 함께 갈 수 없는 한 지붕 두 가족이다. 상품이란 경쟁이나 효율을 통해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키지만 교육은 수요자들이 함께 누려야할 가치다. 경쟁을 통해 적개심을 키우고 친구가 적인 되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폭탄이다. 소수의 우수자를 길러내기 위해 다수의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고 패배감을 안겨주는 경쟁은 교육의 본질을 이탈한다.

   

상품이 된 교육... 그 경쟁이나 효율이라는 가치를 위해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반교육을 중단하지 않는 한 그 어떤 학교살리기 정책도 백약이 무효다. 보라! 갈수록 경쟁의 벽은 놓아지고 부모의 사회경제적인 지위로 자녀들에게 대물림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이런 현실을 놓고  진보교육감들의 혁신교육은 결국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조소와 승리는 예고되어 있지 않은가?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은 가난한 사람들을 비웃고 자본의 독식, 재벌의 세상을 만들고 있다. 교육은 거대한 지본의 괴력 앞에 시합 전에 승부가 결정난 게임에 쾌재를 부르고 있지 않은가? 이제 남은 일은 진보교육감들이 무릎을 꿇고 교육을 을 개방해 자본이 행복한 세상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자본이 주인인 세상에는 제자 출세시키겠다는 선생님과 자본에 마취된 학부모들의 눈물겨운 희생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교육을 상품이라고 착각하는 세상에는...!    




교직사회 혼란 방치 안된다


2001.10.15 09:03


교육정책 잘못으로 교직사회가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20대 80의 사회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강행하려는 교육인적자원부와 이를 반대하는 교원단체들간의 힘겨루기가 그칠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교육분야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된 교육정책은 일선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교원단체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고 있다. 며칠 전 교원들에게 지급을 강행한 교원성과상여금에서 보듯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강행하고 있는 졸속행정으로 곳곳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하거나 무산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95 교육개혁조처 후 교육계는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교직사회의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으로 도입한 교원성과상여금은 7만명이 넘는 교원들이 반납을 결의하는 등 교육부에 대한 항의가 그칠 줄 모른다. 


여기다 중등교사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1년에 70학점을 이수하면 초등학교에 발령을 내겠다는 '교대 학점제' 방침은 초등교원의 전문성을 침해하는 졸속정책이라며 전국의 교육대학이 동맹휴학에 들어갔다. 교육계의 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생에서>


열린교육으로 시작된 교육개혁은 교원정년단축, 교육비전2002 새학교 문화창조와 BK21, 7차교육과정, 교사대 통폐합, 교직발전종합대책 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다. 


한 줄로 세우겠다는 경쟁논리는 자립형 사립학교, 이상적인 학교, 영재학교, 일반고, 실업고로 서열화시키고 그것도 부족해 교원들까지 성과급으로 서열화시키고 있다. 고등학교를 서열화시키면 중학교에서 입시교육이 시작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는 곧 학부모들의 사교육비부담증가로 이어지고 학교가 입시학원으로 전락하게 된다. 성과상여금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도입한 교직사회의 경쟁논리는 결과적으로 교원들에게 과중한 업무부담이 지워지고 유능한 교원은 교단을 떠나게 된다. 


이러한 교육실패는 영국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교원이 부족해 주5일 수업이 4일로 단축하고 다른 나라에서 교사모집 공고를 내고 있다. 


교원의 91%가 '7차교육과정은 문제가 있다'고 의의를 제기하고 교원을 위한다는 교직발전 대책이 교원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 교원의 자존심을 짓밟은 성과상여금문제에 대해 의의를 제기한 교원들의 소리를 겸허하게 들을 생각은 않고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이다. 


교직사회의 혼란은 교육부의 교원정책의 부재에 있다. 정책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학생들이나 교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 교육을 살리는 길은 신자유주의교육정책을 포기하는 길이다. 이를 모르고 있는 곳은 오직 교육인적자원부뿐이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옛날 썼던 글을 여기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2001년 10월 15일 (바로가기▶) '교직사회 혼란 방치 안된다'라는 주제로 오마이뉴스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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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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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에서 가발, 모자는 허용하지 않음 귀걸이, 목걸이, 반지, 팔찌 등의 장신구, 피어싱을 일체 금하여, 학생다움을 유지함 단정한 손톱, 발톱 이외의 매니큐어를 바르거나 어떤 장식도 금함 성인용 화장품(향수, 색깔있는 립클루즈, 파운데이션, 비비크림, , 파우더, 각종 화장도구 등)을 휴대하거나 하지 않음 속눈썹이나 아이참을 부착하거나 눈화장을 하지 않음 서클 렌즈를 착용하지 않음...'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교가 만든 교칙이다. 아직도 학교는 이런 금지 일변도의 학생생활지도규정을 만들어 학생들의 삶을 옥죄고 있다. 이런 방법으로 삶을 규제하는게 교육일까 아니면 순치일까? 


헌법 제12조 ①은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문규정을 두고 있지만 이런 헌법은 교칙 앞에서 무력화된다. '신체의 자유란 법률과 적법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신체의 안전성과 자율성을 제한 또는 침해당하지 아니하는 자유를 말한다. 신체의 자유는 헌법이 지향하는 궁극적 이념인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기본적인 자유로서 기본권보장의 핵심이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학생이기 때문에 자유권을 유보당해도 좋다....? 


교육적인 목적이 헌법보다 상위의 가치일까? 우리는 지금까지 학생이라는 이유로 혹은 교육이라는 이유로 학생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유린한 수많은 탈법을 저질러왔다. 인권의 가치가 sns를 통해 초등학생들까지도 알게 되는 정보화사회에서도 학생이라는 이유로 인권이 침해 당해도 좋은가? 


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규제가 교칙이나 생활지도 규정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하게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다. 인권은 영국대헌장(1215), 권리청원(1628), 권리장전(1689), 버지니아권리장전 및 미국독립선언(1776),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1789), 헌법, 청소년헌장, 학교인권조례... 등등을 통해 수없이 보장하고 있지만 아직도 학생인권조례를 말하면 교권이 누너진다느니 교육위기를 불러 온다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권은 없고 통제만 하는 학교.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반인권이 만연한 학교에 과연 학생들은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시민으로 길러질까? 아래 글은 2001년 6월 12일 경남도민일보 칼럼으로 썼던 글입니다. 강산이 두번 바뀔 세월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학생이라는 이유로 인권을 통제하는 교칙이 시퍼렇게 살아 있습니다. 정말 헌법가치조차 무시하는 교칙은 정말 교육적일까요?






학생을 이중인격자로 키우는 학교



김용택(마산여고 교사) 2001년 06월 12일 화요일



‘여학생은 검정색 단화를 신고, 굽 높이는 4cm 이하여야 하며 앞이 뾰족하거나 올라간 것, 각이 지거나 금속장식이 붙은 것은 금한다. 양말은 무늬가 없는 흰색으로 하고, 동복 착용 시에는 살색 스타킹에 검은 양말을 덮어 신는다. 목도리는 혹한기의 등.하교시에만 착용 할 수 있고, 색상은 검정색이어야 하며, 교내에서는 착용할 수 없다.’ 


군인이나 교도소의 재소자가 지켜야 하는 수칙이 아니다. 이른바 교칙이라고 불리는 중.고등학교의 ‘학생생활지도규정’이다. 군인이나 교도소 재소자들이 지켜야 하는 수칙보다 더 까다롭다. ‘위의 제 규정을 위반하면 <학생생활지도 일지>에 기록하고, 5회 이상 기록되면 <행동관찰기록부>에 기재되는 동시에 별도의 선도규정에 따라 생활지도부의 지도’를 받는다. ‘학생생활기록부’에 기록으로 남겨 대학진학에 불이익을 주는 협박성(?) 교칙을 지켜야 하는 학교도 많다. 


교복은 말할 것도 없고, 남학생의 두발은 스포츠형이어야 하고 여학생의 두발은 귀밑 3cm를 고집하는 학교도 있다. 아침마다 학생들이 등교하는 교문에는 학생들의 두발이며 복장을 확인하고 위반 사항이 없는지 샅샅이 확인 후 통과가 허용된다. 선도완장을 찬 선배들에게 ‘성실’, ‘단결’, ‘협동’이라는 구호와 함께 거수경례를 해야 한다. 복장을 위반하거나 5분이라도 지각을 하면 사정없이 ‘운동장 돌기, 토끼뜀 뛰기, 엎드려 뻗쳐’와 같은 군대식 벌을 받기도 한다. 


‘삐삐.휴대전화.전자 게임기의 소지를 금한다. 화장품.반지.팔지.목걸이.귀걸이 등 기타 학생 신분에 맞지 않는 장신구는 금한다.’와 같은 규정도 수두룩하다. 요즘 고등학생 치고 휴대폰을 소지하지 않은 학생은 거의 없다. 자녀들과 연락이 용이하다는 편의성 때문에 부모님들이 사주는 경우도 많다. 학생은 휴대폰을 소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불량한 학생’취급을 받는다. 지킬 수도 없는 규정을 그대로 두고 대부분의 학생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는 ‘학생생활지도규정’은 폐지해야 한다. ‘재수(?)가 없어 들킨 학생’만 처벌받는 교칙은 학생들로 하여금 기회주의자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소수의 부진학생을 지도하기 위해 다수의 학생을 희생시킬 수 없듯이 소수의 범법 예비생(?)들 때문에 선량한 다수 학생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학교는 ‘교육적’이라는 명분으로 헌법에 보장된 학생의 ‘신체의 자유’와 ‘사유재산권’을 침해해 왔다. 민주주의를 가르치면서 전혀 민주주의답지 못한 비민주적인 관행이 학교에 수없이 남아 있다. 내면 감화를 통한 행동의 수정이나 자아 정체성의 확립이 아니라 ‘힘 앞에 복종’하도록 하는 순치가 자행돼 왔다. 형식과 권위가 지배하는 학교, 지킬 수도 없는 교칙이 있는 학교는 학생들을 이중 인격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정보화사회를 맞아 학교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교육비전 2002, 새학교 문화창조’라는 창의적인 교육, 토론문화의 정착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면서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되고, 자립형 사립학교, 영재학교 설립 등 수월성(秀越性) 교육이 추진되고 있다. 능력 있는 사람이 대접받는 새로운 인간을 양성하겠다는 특기적성 교육을 시도하고 있다. 탈산업사회라고 일컬어지는 정보화사회에는 정보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면서 교실마다 컴퓨터를 설치하고 프로젝션 텔레비전을 완비했다. 세계에서 최초로 전국의 학교에 인터넷망이 연결돼 유럽이나 미국을 앞질러 선진교육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변화를 주도하고 민주주의를 가르쳐야 할 학교가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복종을 미덕으로 강요하는 교칙이 바뀌지 않는 학교에서는 창의적인 교육도 민주적 교육도 불가능하다. 다원주의 사회를 살아가야 할 2세들에게 통제와 복종을 강요하는 폐쇄적인 교육은 마감해야 한다. 한번도 읽어보지 못한 교칙을 입학식 때 학생대표가 선서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졸업 때까지 학생의 인권이 저당 잡혀 있어서는 안 된다. 식민지시대 유산인 교칙을 바꾸지 않고는 민주적인 교육은 불가능하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옛날에 썼던 글을 여기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2001년 06월 12일 (바로가기▶)'학생을 이중인격자로 키우는 학교'라는 주제로 쓴 경남도민일보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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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6.01.13 06:56


혁신학교가 화두다. 교사의 자발성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학생에게 희망을, 학부모들에게 교육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공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혁신학교라는 모습으로 다가 오고 있다. 경기도에서 시작한 혁신학교는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일보다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입시학원이 된 학교를 소통과 대화로 민주적인 학교, 교육하는 학교로 만들어 보자고 시작한 학교다.


<이미지 출처 : 한국일보>


경기도에서 시작한 혁신학교가 학교 주변에 집값이 오르고 인구 유입이 늘어난다는 보도로 인기가 높아지자 진보교육감지역에서 너도 나도 혁신학교를 시작했다. 경기도와 전북, 세종시의 혁신학교’, 서울의 ‘서울형 혁신학교’, 강원도의 ‘행복더하기학교’, 전라남도의 ‘무지개학교’, 광주광역시의 ‘빛고을혁신학교’, 충청남도의 ‘행복공감학교’....등 이름은 다르지만 같은 혁신학교다.


혁신학교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105(자율학교)에 의해 운영되는 공립학교로, 획일적인 커리큘럼에서 벗어나 학생들로 하여금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학습을 위해 새롭게 시행되는 학교의 형태다. 일반의 공립학교와는 달리, 혁신학교는 학급당 2530명정도, 학년당 5학급 이내의 작은 학교로, 2009년에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취임하면서 등장했다. 당시 김상곤교육감은 입시 위주의 획일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학습능력을 높이고, 공교육을 정상화시키자는 취지에서 선생님들에게는 학교 운영과 교과 과정의 자율권을 주고 학생들에게는 토론을 하게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학교 살리기를 시도하였다.


혁신학교가 진화하고 있다. 학교의 민주화바람이 학부모들로 하여금 무너진 학교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게 마을교육공동체. ‘마을교육공동체는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학교.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에 민주화의 바람을... 입시문제만 풀이하는 학교가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공부를 시키자며 지역사회에서 학부모들이 함께하는 조용한 교육혁명이다.


혁신학교와 함께 일어나고 있는 마을교육공동체는 교육을 학교에서만 맡겨둬서 안 된다는 절박감이다. 가정과 지역 사회 그리고 학교가 함께 나서지 않으면 혁신교육도 제대로 성과를 거둘 수 없다는 의도에서 내 아이, 우리아이들을 지키자며 함께 나선 운동이 마을교육공동체. ‘우리아이들은 우리가 나서서 지키고 키우자는 것이 마을교육공동체 정신이요 학부모들이 바라는 꿈이다. 이런 운동을 경기도 교육청이 시작하면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교육청이 추진하고 있는 마을교육공동체꿈의 학교 추진팀 교육공동체지원팀(협동조합담당, 교육자원봉사센터담당) 학부모지원팀으로 분야를 나누어 설치, 운영되고 있다. 운영주체는 지역의 대학, 기관과 단체, 사회적 기업 등 지역 기업체 그리고 교육이 가능한 전문 인사를 중심으로 쉼표학교, 계절학교, 방과 후 학교 형태로 설치운영하되, 기존에 시행해 오던 방과 후 학교를 넘어 다양한 문, 사회참여, 학술연구 등 프로그램의 운영을 맡아 추진하고 있다.



다른 한 축은 마을교육공동체의 기반이 되는 ‘경기교육협동조합은 학교와 학생생활에 필요한 매점 운영교복공동구매 또는 친환경급식자재의 구매와 공급 등을 포함하여 학교버스 운영을 위한 사회적 기업으로서학교 및 지역의 사회적 협의과정을 거쳐 교육지원청 산하에 설치했다조합원은 지역의 학교와 관련한 학부모교사 또는 지역사회 인사와 졸업생을 중심으로 ‘자율적운영을 원칙으로 구성운영해 오고 있다. ‘경기교육 자원봉사센터 경기도의 25개 교육 지원청에 설치해 학교교육 및 학생지원을 위한 퇴임 교사나 교직원은 물론 지역의 다양한 인재들을 영입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제한적인 학교교육, 입시교육을 뛰어 넘는 대안적인 교육기회의 제공어쩌면 이런 혁신적인 마인드가 학교 살리기에 가속도를 붙일 수 있지 않을까? 경기교육청의 꿈의 학교는 마을교육공동체가 주축이 되어 방과후(방과후 꿈의학교), 방학기간(계절형 꿈의학교), 학업유예기간(쉼표형 꿈의학교) 등을 활용하여 학생들에게 다양한 문예체 활동 및 진로탐색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강원도교육청의 행복성장평가제 및 충남교육청의 학생성장발달 책임교육제는 서열화 중심의 평가체제를 넘어 학생의 전면적인 발달과 성장 과정을 지원하는 평가체제는 진보교육감지역의 새로운 학교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진보교육감들은 마을교육공동체를 비롯한 학교 살리기를 위해 어떤 일들을 하고 있을까? 전라북도의 경우 '학생인권조례 시행규칙의 제정과 학생참여위원회, 학생인권심의위원회를 구성, 운영하는가 하면 민주적 학교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학교자치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식주입으로 관념적인 인간을 길러내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방과후 학교에서 전통놀이과정을 개설하고 중간놀이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고등학교 등교시각 30분 늦추기, 진로직업교육 강화를 위한 진로직업체험지원센터를 구축하는가 하면 핵발전소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탈핵교재를 발간하는 등 학교문화를 바꾸기 위한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혁신학교, 마을교육공동체는 무너진 학교를 살리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혁신학교지역, 마을교육공동체가 진행되고 있는 지자체는 우리나라의 모든 학교가 아니다. 우리나라 초중고 1만여 학교 중에서 혁신학교는 그 십분의 일도 안 된다. 이런 학교로 우리나라 교육이 당면하고 있는 학교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미 학교를 살려야 한다는 범국민적인 요구가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도 학교도 그리고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일선학교의 교사들도 이러한 변화의 물결을 외면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혁신학교란 입시학원이 된 학교를 교육하는 곳으로 바꾸겠다는 공교육 정상화. 입시문제를 풀이하는 학교가 아니라 대화와 소통을 통한 민주적인 운영과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공교육정상화가 곧 혁신학교요, 마을교육공동체다. 엄연히 대통령령으로 공포한 교육과정이 있지만 그런 건 뒷전이고 일류대학 입학한 학생의 수로 좋은 학교가 서열화되는 현실을 본래의 교육하는 모습으로 돌려놓자는 게 혁신학교다.


공교육정상화를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이 무엇일까? 혁신학교, 고육정상화를 가로 막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은 교육을 보는 철학의 차이다. 교육을 보는 관점에는 교육을 물과 공기처럼 공공재로 보는 관점과 교육을 상품이라고 보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핀란드를 비롯한 유럽의 교육선진국들은 교육을 누구나 마음대로 누릴 수 있는 공공재 즉 권리로 본다. 이런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학교에는 일류대학도 경쟁교육도 없다.



일류대학이 없으니 경쟁교육도 사교육도 있을리 없고 자신의 적성에 맞는 공부를 스스로 찾아 공부를 한다. 모든 대학이 특성화 되어 서열이 없기 때문에 일류대학이 있을 수가 없다. 일류대학이 없으니 입시교육이 없고 입시교육이 없으니 사교육비 마련을 위해 학부모가 허리띠를 졸라맬 이유도 없다.


또 하나의 교육관. 우리나라나 미국처럼 교육을 상품으로 보는 관점이다. 효율의 극대화는 경쟁을 통해 이룰 수 있다는 경쟁지상주의 관점이다. 일등지상주의, 성적만능주의라는 경쟁과 효율, 신자유주의 세상은 이러한 교육관이 만든 결과다. 학교폭력, 자살, 가출, 청소년 성인병과 비만이 이러한 교육관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는가? 혁신학교란 교육을 상품으로 보는 교육관을 공공재로 바꾸자는 운동이다.


또 있다. SKY출신자가 정치, 경제, 사회를 비롯한 교육계, 종교계까지 인맥을 형성해 연고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혁신학교가 아니라 혁명을 해도 어려운 게 공교육정상화다. 공교육정상화 앞에는 입시라는 벽, 인류대학이라는 벽, 학벌이라는 벽, 연고주의라는 벽, 취업...이라는 엄청난 벽이 가로 막고 있다. 교육에 몸담고 있는 교육자. 학부모 그리고 지자체는 당면한 문제를 풀어야할 시대적 과제를 피해 갈 수 없다. 그것이 학교를 살리는 길이요,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길이요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길이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무너진 교육을 남의 일처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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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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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기고글2015.08.01 06:59


이 기사는 2002년 7월 5일 경향신문에 썼던 글입니다. 옛날 얘기지요. 그런데 학교는 인성교육을 한다면서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인성교육진흥법'을 통과시켜 2015년 7월 21일부터 전국의 모든학교가 시행하도록 강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경기도에서 제정 공포된 후 지금도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고 있는 지역은 서울특별시광주광역시, 전라북도 등 4개 지자체에서만 학생인권조례가 시행(201410월현재)되고 있을뿐입니다체벌이 교육이다, 아니다’..며 논쟁이 한창이던 시절에 썼던 글입니다.

 

체벌부위는 둔부로 한다. 단 여학생은 대퇴부로 제한한다. 체벌도구는 지름 1.5㎝ 내외로 길이는 60㎝ 이하의 나무로 하며, 직선형이어야 한다. 체벌하기 전에 교사는 학생의 신체적·정신적 상태를 점검해서 이상이 없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하며 이상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체벌을 해서는 안된다’


 


교육부가 지난 26일 발표한 체벌규정을 포함한 학교생활규정 예시안의 일부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 3월 발표한 공교육내실화를 위해 체벌을 허용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그 후속조치로 이번 초·중·고등학교 생활규정 예시안을 발표했다. 이 예시안은 생활지도협의회를 두고 폭력예방 계획수립을 비롯한 학생생활지도 전반에 대한 지도를 하겠다고 한다. 교육부의 생활규정 안에는 교내외생활을 비롯한 학생생활에 관한 지도, 학생회의 부서조직과 체벌의 종류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해 발표했다.

교육부는 공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체벌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이는 교육현장의 의견과 자율성을 전혀 고려치 않은 행정편의적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교육부의 방침이 발표된 이후 교원단체를 비롯한 학부모단체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교육부의 발표는 교육의 위기가 마치 체벌을 금지해 교사의 권위가 떨어지고 교육의 위기를 초래케 했다는 투다.

더더구나 놀라운 일은 교육부의 교육관이다. 교육부가 마련한 생활지도 규정 예시안에서 교사와 학생간의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통한 민주적인 지도란 찾아보기 어렵다. ‘복장에 부착물은 소정의 위치에 패용한다’ ‘가방은 학생 신분에 맞는 것으로 한다’. 그리고 ‘교내에서 휴대전화기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사용하지 않는다’ 등등 규제 일변도다.

체벌의 기준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교사의 훈계나 반복적인 지도에 변화가 없는 경우’ ‘남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신체·정신·인격적 피해를 입히는 행위’ ’다른 학생을 이유 없이 괴롭히는 행위’ ‘학습태도가 불성실한 경우’ ‘남의 물건 및 물품을 의도적으로 손상시키는 경우’ 등등 지도교사가 자의적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농후한 규정이 대부분이다.


 

체벌이 교육적인가에 대한 논란도 끝나지 않았다. 체벌은 개인적인 책임감을 발전시키고 자기규율과 도덕성의 발달을 도와주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보는 것이 체벌 찬성론자들의 주장이다. 이러한 체벌 옹호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체벌은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공포심을 자극하여 자발적인 탐구정신을 억압함으로써 오히려 학습과정에 지장을 초래케 한다는 분석도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고 부정적인 자아개념을 형성하기 때문에 체벌은 허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공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체벌을 허용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없다. 교육부는 1996년 11월 27일 학교 내의 비민주적인 요소를 없애고 학생들에게 민주적인 시민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민주시민교육의 방향과 개혁과제’를 발표해 체벌을 불허한 바 있다. 개성과 창의성을 살리는 교육은 국제적인 추세다. 군사문화의 잔재인 체벌이 손쉬운 통제수단이기 때문에 부활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제가 방송에 출연했던 원고, 경남도민일보 논설위원 시절에 썼던 신문의 사설, 대학학보사, 일간지, 우리교육, 역사교과, 국어교과모임, 우리교육..등등에 썼던 원고를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2002년 7월 5일 경향신문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경향신문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301&artid=200207052007001

 

21C 전남교육포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ttp://cluster1.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xWL&fldid=JDL&datanum=324&openArticle=true&docid=xWLJDL324200207071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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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참사가 일어난 지 1년 하고도 4개월이 가까워 온다. 아이들은 아직도 9명이나 바다속에 잠겨 있는데 정부가, 우리가, 내가 한 일이 없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진상규명....!

 

정부는 진상규명을 할 의지가 있는가? 마지 못해 특별법을 만들었지만 그 시행령에는 가해자가 진상조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만들어 놓았다. 유가족들은 삭발로 울분을 토하고 가슴을 치지만 대통령은 마이동풍이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살리겠다는 경제, 그 경제는 누가 죽인 것인가? 재벌경제를 살리면 민초들도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가?   

 

세월호 참사...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합니다. 그것이 억울하게 숨져간 아이들에게 속죄하는 길이요, 제 2, 제 3의의 세월호참사를 막는 길입니다.

 

4.16...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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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단체/전교조2015.05.28 07:00


1. 해직교사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교원노조법2조는 합헌이다.

2. 전교조에 노조아님을 통보의 근거 조항인 노동조합법 시행령 92항과 해고자를 배제하라는 노동부의 시정요구에 대해서는 헌재가 판단할 사항이 아니라 법원에서 판단할 사항이므로 각하(기각이 아님)한다.

 

<이미지 출처 : THE FACT 라이프>

 

말이 참 어렵다. 법률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은 알아듣지도 못할말... 이런저런 신문에 찾아보고 나서야 겨우 "해직된 조합원은 전교조 조합원으로 볼 수 없다"는 말이구나 라고 겨우 이해하게 된다. 전쟁을 하다가 부상을 당한 군인은 군인이 아니다? 이 무슨 해괴한 법리인가?

 

그게 끝이 아니다. 헌재는  노동부의 노조아님통보에 대한 적법성 여부는 법원에서 결정하라‘고 판결해 헌재는 '손에 피를 뭍일 수 없으니 정부의 손을 들어준 법원이 알아서 하라'는 말이다. 예상은 했지만 그것도 창립 26주년 전교조 탄생 기념일(528)에 내린 판결 치고는 참으로 악의적이고 잔인하다.

 

20131024일 고용부는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통보했다.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상 조합원 자격이 없는 해직자 9명이 전교조에 속해 있는 점을 지적, 시정요구를 했지만 전교조가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고용노동부의 이러한 요구에 대해 전교조는 같은 해 102일 법외노조 통보는 법적 근거가 없으며 헌법이 보장하는 단결권을 침해하는 등 위법하다며 법원에 행정소송을 냄과 동시에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의 이러한 판결에 따라 전교조의 운명은 다시 법원에 맡겨지게 됐다. 전교조 창립 26주년...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26년 전인 1989528일 참교육 실현과 사립학교 민주화라는 기치 아래 노동조합을 선언하면서 탄생한 전교조는 출발부터 정부의 모진 탄압을 받았다. 교사가 노조를 결성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이유로 전교조 소속 교사 1600여명이 파면·해임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오마이뉴스>

 

 

김대중정부 때인 199916, 창립 10년 만에 교원노조법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같은 해 71일 조합원 62654명으로 노동부에 설립신고서를 제출, 전교조는 합법노조로 공식 인정받기에 이르게 된다. 전교조는 합법화 이후 강력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교원 처우와 교육환경 개선, 그리고 학생인권 신장을 위한 단체교섭 활동과 함께 각종 노동·사회현안에 대해 할발한 황동을 벌여왔다

 

전교조는 왜 미움받고 사는가?

 

전교조는 정말 교육파괴의 주범인가? 그런데 왜 전교조 말만 나오면 정치선동교사니 종북세력이니 히면 온갖 비난이 쏟아지는 것일까?

 

한 마리 해충이 온 산을 붉게 물들일 수 있고 전국적으로 퍼져 나갈 수 있다. 이번 날치기법(사학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노무현 정권과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는 이를 수단으로 사학을 하나씩 접수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051215, 서울 신촌 일대에서 사학법 개정 무효를 촉구하는 시민 선전전을 하던 중 내뱉은 말이다. 그는 전교조를 한마리 해충으로 비교해 우리교육을 망치는 주범으로 비하했다. 박근혜뿐만 아니다.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세력들은 전교조가 눈에 가시였다. 이들이 전교조를 미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치관 차이 때문이다. 지난 뉴라이트교과서 사건에서 볼 수 있었듯이 친일의 역사를 옹호하고 5·16을 혁명으로, 10월유신을 정당화하겠다는 그들은 전교조의 참교육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뉴시스>

 

그들은 전교조를 미워하는 이유는 또 있다. 무너진 공교육이 살아나고 부패와 비리의 온상이 된 사립학교가 정상화되면 사립학교 마피아, 사교육마피아들이 설 곳을 잃게 된다. 사교육과 사립학교 마피아들이 만드는 반교육의 구조를 깨뜨려 교육을 살리겠다는 전교조를 그들이 그냥 둘리 없다.

 

또 있다. 그들은 입만 열면 '전교조가 정치적이어서 학생들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학생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학생인권 조례를 만들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는 누가 만드는가? 무상급식법을 만들어야 학생들이 무상급식을 할 수 있는데 법으로 그런걸 만들어 달라는 게 너무 정치적인가? 교권보호며 인성교육법은 국회를 통과하지 않고 만들 수 있는가?

 

교육은 정치다. 삶을 가르친다는 것은 학생들을 의식화시키는 일이다. 정치의식, 민주의식, 역사의식이 없는 교사가 어떻게 아이들의 삶을 안내할 것인가? 장래 제자들이 살아 갈 세상을 교실 안에서 목소리를 높인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학교도 돈이 있어야 운영을 한다. 학교에서 필요한 돈은 국회를 통과한 국가 예산이 아닌가? 아이들이 보다 양질의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서는 교육예산을 높이라는 게 왜 정치적인가? 솔직히 말해 교사는 교육행위 자체가 넓은 의미의 정치인 것이다. 정부가 바라는 것은 전교조와 같이 바른말 하는 집단이 아니라 정부가 시키면 시키는대로 순종하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과같은 단체가 되라는 말이다.

 

교육을 살리겠다고 일선에서 싸우다 해직된  9명의 교사를 쫓아내지 않으면 전교조는 인정할 수 없다? 전쟁에 나가 싸우다 다친 군인을 군인으로 인정하면 군대라고 볼 수 없다...? 정부의 이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논리로 눈에 가시같은 전교조는 사라질 것인가? 그들이 착각하는 것은 전교조는 법의 보호를 받거나 말거나 관계없이 사라지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전교조 교사들이 정말 교육을 망치는 주범인지 학생이나 학부모들에게 물어보라.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 그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보다 좋은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것학생들의 인권과 인간다운 대접을 받으며 살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왜 죄가 되는가? 학교를 민주화하고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촌지를 거부하는 것이 왜 죄가 되는가? 학교를 교육하는 곳으로 만들자는 것이 죄라면 그런 전교조를 해체하기 위해 안달하는 정부는 무엇인가? 학교가 제대로 교육하는 곳이 된다면 전교조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정부가 전교조를 해체하고 싶으면 교육부터 살려내라. 그것이 전교조를 미워하기 전에 먼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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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다. 아이들은 아직도 9명이나 차디찬 바다속에 잠겨 있는데 정부가, 우리가, 내가 한 일이 없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진상규명....!

 

정부는 진상규명을 할 의지가 있는가? 마지 못해 특별법을 만들었지만 그 시행령에는 조사대상자가 참여하게 만들어 놓았다. 유가족들은 삭발로 울분을 토하고 부모된 사람들은 가슴을 치지만 대통령은 마이동풍이다. 이런 비참한 현실을 두고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겠다고 남미로  떠났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살리겠다는 경제' 그 경제로 누가 살기 좋은 세상이 될까?  

 

세월호 참사 진실은 반드시 밝혀야 합니다. 그것이 억울하게 숨져간 아이들에게 속죄하는 길이요 제 2, 제 3의의 세월호참사를 막을 수 있는 길입니다.

 

4.16...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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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인권교육을 앞장서서 해야 할 정부가 학생인권 교육을 못하게 소송까지 냈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체벌을 금지하고 복장과 두발의 개성을 존중하며 소지품 검사를 최소화하고 야간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을 강요하지 못한다'

 

 

이 조항이 교육부가 상위법 위반이라며 대법원에 무효확인소송을 낸 이유다. 교육부가 이러한 내용이 담긴 전북학생인권조례를 20137월 전북도의회가 학생인권조례를 의결하자 재의를 요구하라고 요구했다.

 

<이미지 출처 : 연합뉴스>

 

전북교육감이 교육부의 요구를 거부하고 조례를 공포하자 교육부는 대법원에 무효확인소송을 냈으나 대법원 2(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지난 14일 교육부장관이 전라북도의회를 상대로 낸 학생인권조례 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조례의 효력이 유효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우여곡절 끝에 전부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안의 법적 효력이 유효하다는 판결을 받아 인권 교육을 시행할 수 있게 됐지만 교육부의 처사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며 각계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오죽했으면 재판부가 "인권조례는 헌법과 관련 법령에 따라 인정되는 학생의 권리를 확인하거나 구체화하고, 그에 필요한 조치를 권고하고 있는데 불과해 교사나 학생의 권리를 새롭게 제한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인권조례의 구체적인 내용이 법령에 어긋나지도 않는다"는 판단까지 했을까?

 

 

<이미지 출처 : 노컷뉴스>

 

 

20157월부터 전국의 초··고등학교에서 인성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한다
인성교육 교과목 수업시간이 법으로 정해지고 학교는 총 예산의 일정 비율을 인성교육에 써야 한다.
교육감은 기본계획에 따라 자체 세부계획을 세우고, 학교장은 매년 학기초 인성교육 계획을 교육감에게 보고한 뒤 이를 연말에 평가받도록 한다.
교사들은 인성교육 연수를 의무화해서 관련 연수를 강화하고, 교원 양성 기관에서는 인성교육 필수과목을 개선한 뒤 임용시험에서 검증을 강화하도록 한다.
가장 혁신적인 점은 미국처럼 인성교육 예산을 정부정책과 예산으로 뒷받침되도록 의무화

 

 

지난 해 1229일 국회 여야 102명이 공동 발의해 199명 전원일치로 통과시킨 인성교육진흥법 주요골자다. 이 법이 시행되는 오는 7월부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학교에 인성교육 의무가 주어지게 된다. 교육부에 묻고 싶다. 인권없는 인성교육이 가능한가를.... 학교폭력이 난무하자 인성교육법까지 만들면서 인권교육을 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도대체 교육부의 인권시계는 지금 몇시인가? 인성교육법까지 만들면서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학생인권조례의 핵심내용에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정규교과 이외의 교육활동의 자유, 두발, 복장 자유화 등 개성을 실현할 권리, 소지품 검사 금지, 휴대폰 사용 자유 등 사생활의 자유 보장, 양심·종교의 자유 보장, 집회의 자유 및 학생 표현의 자유 보장, 소수 학생의 권리 보장, 학생인권옹호관, 학생인권교육센터의 설치 등 학생인권침해 구제와 같은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기본적인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학생인권이야 말로 학생들의 인성교육의 핵심이요, 민주시민으로서 누려야할 기본권이다. 진보교육감이 학생들의 인권부재가 학교폭력을 유발한다며 낸 학생인권조례가 우여곡절 끝에 시·도의회를 통과했는데 이를 시행하지 못하게 제의를 요구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학생인권조례는 모든 학교 학생들이 누릴 수 있도록 정부가 앞장서서 나서야 한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학생인권조례가 통과, 시행되고 있는 시도는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서울과 광주, 전북 등 네 곳에 불과하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인권조차 인정받지 못하면서 어떻게 성인이 된 후 민주시민으로서 권리행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가? 솔직히 말해 오늘날 학교가 이 지경이 된 것은 교육부의 책임이다. 학교폭력이 얼마나 심각했으면 정부가 학교폭력과의 전쟁까지 선포하고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까지 제정했을까? 교육하는 학교에 교육은 없고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입시학원이 된 게 누구의 책임인가? 교육부는 현재 인권교육조례가 시행되는 시도 외에도 전국의 모든 학교가 인권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한다. 인권교육없는 학교에 어떻게 인성교육이 가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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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다. 아이들은 아직도 9명이나 차디찬 바다속에 잠겨 있는데 정부가, 우리가, 내가 한 일이 없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진상규명....!

 

정부는 진상규명을 할 의지가 있는가? 마지 못해 특별법을 만들었지만 그 시행령에는 조사대상자가 참여하게 만들어 놓았다. 유가족들은 삭발로 울분을 토하고 부모된 사람들은 가슴을 치지만 대통령은 마이동풍이다. 이런 비참한 현실을 두고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겠다고 남미로  떠났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살리겠다는 경제' 그 경제로 누가 살기 좋은 세상이 될까?  

 

세월호 참사 진실은 반드시 밝혀야 합니다. 그것이 억울하게 숨져간 아이들에게 속죄하는 길이요 제 2, 제 3의의 세월호참사를 막을 수 있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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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으면서 가슴 속 깊이 밀려오던 그런 감동같은 곽노현의 징검다리교육감(메디치)을 읽으면서 그런 감동과 공감으로 몇 번이고 책장을 덮고 생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무너진 우리교육을 살릴 수 있는데... 감탄하며 읽었던 감동적인 책....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분이 우리 교육계에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요, 축복이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습니다.

 

 

교육계에는 교육관련 전문가도 많고 교육에 관련 책도 참 많습니다. 교육관료들, 교육학박사님들, 교장, 장학사, 교사들... 그렇게 많은 교육전문가들이 있는데 왜 우리교육은 왜 날이 갈수록 이 모양인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습니다. 어쩌다 출마한 교육감 후보들의 토론을 듣다 보면 답답할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학교현장이나 교육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답답함 때문입니다. 스펙은 왜 그렇게 화려한지... 일류대학에 외국 유명대학의 학박사에 교육계에서 온갖 경ㄺ을 싸았던 분들이 정작 교육현실은 왜 그렇게 모를까 하는 답답함 때문이었습니다. 

 

교육을 살린다고 큰소리치던 사람들이 지역교육의 수장이 됐지만 하나같이 달라진 게 없습니다. 그런데 701일간 서울시교육감을 지낸 곽노현같은 사람이 있었다니...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감동한 이유는 대학에서 평생 살아 온 사람이 아니고는 공감할 수 없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책의 전면을 흐르고 있는 그의 아이사랑과 교육의 공공성에 대한 그의 철학에 고대가 저절로 숙여졌습니다.

 

유권자들은 어떤 사람을 지역교육감을 선출할까? 일류대학을 나온 사람...? 유명한 사람...? 고위공직을 맡았던 사람...? 그렇게 판단하고 지지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일수록 따지고 보면 속빈 강정입니다. 경력은 화려하지만 막상 몇 마디만 대화를 나눠보면 우리 교육이 왜 이 모양이 됐는지 금방 알 것 같습니다. 교사나 학부모들이 당하는 고통과 초··고등학교의 현실, 교육정책, 사학의 문제, 인권문제, 승진제도문제... 등등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교육 관료들에게 포위돼 자신의 신념도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임기를 마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그가 왜 교육감자리에서 중도하차 했는지 이 책을 읽으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타협을 거부하고 바른길을 가겠다는 사람. 신념을 굽히지 않고 외곬으로 살겠다는 사람에게는 적이 많습니다. 불과 701일간의 서울시교육감자리에서 그가 이루고자 했던 꿈은 교육을 시장판에 맡기겠다는 정부의 정책과는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그를 그 자리에 두면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의 무서운 지지를 어떻게 감당할까 하는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그가 꿈꾸던 세상, 그가 실현하려 했던 학교는 어떤 학교였을까? 책머리에 내가 물려받은 우리교육의 현실’에서 고백했듯이 우리교육이 당면하고 있는 교육의 참담한 현실. 그 핵심을 가감없이 진단, 분석해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관료제의 병폐, 교육부와 교육청의 정책, 승진제도의 문제점, 교육보다 행정중심의 학교체제, 관료주의에 의해 작동되는 교육현실...등 교육현장의 문제점을 속속들이 지적해 놓았습니다. 문제의 원인 분석이 잘못되면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필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이 책에 감동했던 첫 번째 이유는 우리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진단과 분석이 너무나 예리하고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2부는 곽노현의 교육정책의 핵심이요, 그의 철학의 실현이기도 한 공교육의 새 표준을 향하여는 교육계에서 40년 가까이 지내오면서 내가 그렇게 꿈꾸고 바랐던 나의 이상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징검다리 교육감'은 비록 짧은 그의 임기동안 우리교육계의 개혁해 보겠다는 철학이요, 감동적인 역사였씁니다. ··체교육의 필요성이며, 입시경쟁을 넘어 전인교육을 위한 학생인권조례 제정, 학교폭력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해법, 친환경무상교육 진로교육, 수학하는 수학여행, 선행학습 근절, 장애학생교육....등등... 우리교육의 뿌리 깊은 병폐를 근본적으로 도려내려 했던 그의 꿈을 실현한 교육혁명신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정부가 하는 폭력근절 쇼만 보다가 곽전교육감이 학생 눈높이에서 시도한 학교폭력 근절 대안을 보면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학생들의 건강을 우선적인 교육으로 보고 친환경무상교육을 실천에 옮기는 그의 의지와 노력을 읽고 있으면 그의 아이들 사랑에 박수가 절로 터져 나옵니다. 사랑이 없는 교육자는 교육문제를 교육이 아닌 경제문제로 풀려고 합니다. 사람을 인격으로 보지 않고 돈으로 보는 천박한 인간관, 그것이 신자유주의 교육관입니다. 그러나 곽전교육감의 교육관은 교육의 공공성에 대한 회복, 인간에 대한 사랑,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교육현안을 풀어 나갑니다. 그의 진정성이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해묵은 문제들을 풀어내는 해결사 역할을 했던 기록을 읽고 있노라면 그의 중도하차가 속상하고 성이 납니다.

 

필자가 저자의 징검다리교육감에 공감하는 특별한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운좋게도 저는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공립학교, 사립학교, 남자학교, 여자학교, 도시학교, 농촌학교...를 골고루 근무했던 경험에 비추어 학교들이 당면하고 있는 구조적인 병폐와 모순을 옆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거기다 교육운동이랍시고 하다가 해직과 복직, 그리고 지역의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자교육운동에 함께 하기도 하고 지역신문과 대학신문,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노릇을 하면서 교육관련 칼럼을 쓸 수 있는 기회가 남들보다 많았던 행운(?)이 있었습니다.

 

 

학교를 떠나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작은 힘이 되어보겠다고 퇴임 후 공립대안학교TF팀에 참가하기도 하고 선생님들과 함께 탈학교학생들을 위한 사설 대안학교를 운영하면서 무엇이 올바른 교육정책인지를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됐습니다. 교육의 모순을 현장에서 온몸으로 경험한 사람이기에 그의 철학이나 실천이 꿈쟁이의 이상이나 공리공론이 아닌 그의 철학이 얼마나 신선하고 감동적인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방과후 학교는 사교육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학교교육을 너무나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는 주범입니다. 방과후학교가 학교평가에 들어가 많은 교사가 방과후 수업을 해야 합니다. 교사의 노동 강도는 말할 수 없이 세지고 정규수업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방과후 학교는 학생을 죽이고, 교사를 죽이고, 학교교육을 죽이고 있습니다.”(P. 141)

 

방과후 학교의 문제점하나만 봐도 사교육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는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사교육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인다고 했을 때 참으로 안타깝고 속이 상했습니다. 사교육문제의 본질이 학벌에 있는데 학벌문제를 두고 사교육문제에 손을 대는 것이 너무나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7.30진보교육감선거에서 당선된 진보교육감들이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는 혁신학교도 교육위기를 구할 근본적인 대책이 아닐텐데... 혁신학교를 학교를 살릴 대안처런 추진하는 것은 또 다른 표퓰리점이 아닐까 걱정됩니다. 

 

경쟁교육의 질곡에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방과후 시간을 단체활동, 봉사활동, 문화활동, 야외체험활동 등 다양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경험할 수 있도록 전환한 그의 정책에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3부의 공교육 새 표준을 향하여에는 문··체교육, 입시경쟁을 넘어 전인교육으로 체벌금지, 학생인권, 학교폭력의 해법, 혁신학교, 직업체험교육, 제길찾는 특성화고, 수학여행을 소규모 테마여행으로, 장애학생통합교육....에 대한 그의 교육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철학이 녹아 있습니다.

 

4부에 교육행정편에는 교육격차해소를 위한 노력과 실천, 학교자율성 회복, 교원업무정상화, 새로운 학교평가, 관료독주의 대안, 민주주의를 살리는 원탁회의, 학생의 학교운영에 참여, 사회교육과 대외협력, 투명한 행정, 교육감직선제...등에 대한 혁명적인 교육대안을 실천한 기록이 적혀 있습니다. 특히 교육계의 고질병인 사학비리에 대한 그의 시각은 문제의 근본을 분석, 개선하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징검다리 교육감의 내용을 부족한 제 식견으로는 감히 서평을 한다는 게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지만 책을 읽은 사람으로서 부채감같은 느낌 때문에 이런 글을 씁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이 땅에 교사지망생과 현직교사 그리고 교육관료, 교육감, 교육전문직... 등 교육관련 종사자들은 반드시 이 책을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이와 더불어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필수교과로 이 책을 배우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가 다시 복권 돼 못다 이룬 꿈을 맘껏 펼칠 기회가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힌 마음으로 이 글을 접습니다. 곽노현 선생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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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학교 교문 앞에서 멈춘다’는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교문에 들어서는 순간 학생의 인권은 사라지고 헌법보다 더 높은 교칙이 학생들을 규제한다. 학교폭력을 말하지만 성적순으로 한 줄을 세워 등급을 매기고 체벌, 언어폭력, 두발, 복장, 학생자치, 복장 규제, 차별까지... 학교는 아직도 인권 사각지대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하고 있는 서울·경기·광주라고 해서 학생인권 문제가 완전하게 해결된 것은 아니다. 학생인권조례 운동 연대체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오죽하면 '학교가 감옥처럼 느껴'지고(48.0%), '학교에 있으면 숨이 막히고(34.2%)',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40.6%)고 응답했을까?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제10조)고 했다. 인권이란 학생을 제외한 국민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누릴 권리다. 또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혹은 약자라는 이유로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제37조)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학교를 일컬어 인권 사각지대라고 하는 이유가 뭘까? 경기도를 비롯해 일부 지역에서는 학생인권 조례가 제정 공포되어 시행 되고 있지만 아직도 학생이라는 이유로 인권이란 금기 사항이다. 인권을 말하면 교권을 걱정하지만 인권이 없는 학교에 교권이 보장받을 수 없다. 학생들의 인권이 무시당하는 이유는 인권의식이 없는 교육자들이 교육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 인권조례를 제정하자고 하면 난리가 난다. 인권조례가 시행될 경우, 교권이 무너지고 동성애가 확산될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의 성윤리가 문란해질 것이라며 정부와 수구언론뿐만 아니라 교총까지 나서서 한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2009년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우려했던 일은 나타나지 않았다.

 

차이와 차별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회는 불행하다. 다르다는 이유로 존엄성을 인정받아야할 사람이 차별받는 세상...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나이나 출신, 지역, 국가, 신체조건, 가족관계, 인종,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학생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인권이란 특별한 사람들이 누리는 권리’가 아닌 ’모든 사람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어떤 권리가 모든 사람에게 있으면 인권, 어떤 사람에게만 있으면 특권이라고 했다. 학교는 특권이 아닌 권리를 가르치고 배우고 실천 하는 곳이어야 한다. 헌법에 보장된 교육받을 권리도 국민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다. 인권도 모든 사람이 함께 누려야 권리다. 함께 누려야할 권리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인권은 개념이나 이론도 필요하지만 체험을 통해 체화된다. 한 번도 인격적으로 대접받아보지 못한 사람이 자신의 인격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 리 없다. 가정에서 혹은 학교에서 어릴 때부터 사랑받고 인권을 존중받으면서 자란 사람은 남의 인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민주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학교는 아직도 인권 사각지대?

 

학생이라는 이유로 인권은 유보되어도 좋은가? 집단 따돌림이나 학교폭력도 따지고 보면 인권의식의 실종이 만들어 놓은 결과다. 학생들의 성적에 따라 차별받는 분위기,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체벌이 상존하고 두발의 길이나 복장검사 그리고 소지품검사가 용인되는 분위기에서 진정한 인권교육이란 불가능한 일이다.

 

헌법에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 즉 인권을 보장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권, 행복추구권, 평등권을 바탕으로 한 자유권적 기본권 즉 신체의 자유, 사회적·경제적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주거, 통신, 재산권의 보장, 정신적, 종교의 자유가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양심(신념)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언론·출판·집회·결사·표현의 자유와 생존권적 기본권을 보장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살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인권을 유린하는 학교에 어떻게 민주적인 교육, 교육다운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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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교육청의 반인권적인 '학생인권조례안'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학교에 민주시민을 양성할 수 있을까? 서울시교육청이 ‘교사의 학생생활지도권 강화’를 주요내용으로 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안’을 입법예고했다. 현재의 학생인권조례가 지나치게 학생개인의 권리만 강조해 학생지도권을 제한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프레시안>

 

서울시교육청은 법적 논란을 핑계로 서울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탄압을 가하다 지난해 11월 28일, 대법원의 학생인권조례 무효 확인 소송이 각하 결정을 내림으로써 법적 논란은 더 이상 문제제기를 할 수 없게 되자 이번에는 그 대안으로 조례를 개정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교육청은 이번 개정안이 "학생인권조례를 수정, 보완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다. 서울시교육청이 입법예고한 조례개정안을 보면 학생인권조례의 상징이었던 ‘두발 자유 조항에 규제를 가능하게 하고 학생의 의무에 학칙 준수조항을 삽입하거나 반인권적인 학칙에 대해서도 학생들이 학칙의 의무를 따를 수밖에 없도록...’해 학생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놓고 있다.

 

그 밖에도 차별금지 조항에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임신 또는 출산'을 배제함으로써, 성소수자 및 미혼모 학생에 대한 역차별을 조장하고 있으며, 일괄적 소지품 검사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학생들의 사생활을 심각하게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를 개악하는 이유 중의 하나로 '교권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학생인권과 교권은 분리해서 생각할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교권을 빙자해 학생들을 통제할 목적으로 이미 제정된 교권보호조례도 수용하지 않으면서 인권조례를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모든 인간은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기본적 권리를 가지며...

 

이러한 권리와 지위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보편적인 것이며, 학생의 인권도 역시 이 안에 속한다. 학생은 본질적으로 한 인간이며 동시에 한 사회의 구성원이므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가 있다....

 

이에... 가정, 학교, 사회 그리고 국가는 학생이 즐거운 학교, 행복한 교실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여건과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한다.

 

경기도 학생인권선언의 일부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모든 국민은 기본권의 주체임을 천명하고 있으며, 인간이기에 누구나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권리를 향유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천명하고 있다.

 

우리 헌법에서뿐만 아니라 유엔아동권리협약,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까지 보장하고 있는 학생인권은 단지 학생들에게 두발이나 복장, 사생활의 자유 등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로만 제정된 것은 아니다. 교육기본법 제2조,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 함양’이라는 교육목적을 달성해 민주시민을 양성하기 위해서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평등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게 인권이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 권리’를 유지할 수 있는 삶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길이 곧 인권의 실현이다. 인권은 민주사회가 추구하는 자유, 평등과 함께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인 권리이기도 하다. 그것은 학생이기 때문에 혹은 여자라는 이유로 혹은 신체적인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에 민주주의가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학생 생활지도에서 대화와 토론으로 서로 소통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찾아 볼 수 없기에 듣는 소리다. 학교에는 교칙이 있고 생활지도규정이라는 것도 있지만 그런건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과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 진 게 아니다. 학생들은 이미 만들어 진 교칙이나 규정에 따르겠다는 선서를 함의로서 일반적인 의무를 지게 된다. 민주주의가 실종된 학교에 어떻게 민주시민을 양성할 것인가?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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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 있는가? 진보한다고 했던가? 서울시의 인권시계를 보면 그런 진리가 사실인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서울시 교육청(교육감 문용린)은 2013년을 이틀 남긴 지난 30일, '서울특별시 학생인권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하 학생인권조례)을 입법예고 했다. 이번 서울시가 추진하겠다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를 보면 문교육감은 인권의식이 있는 사람인지 의심이 간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역사를 거꾸로 돌리겠다는 학생관으로 어떻게 21세기의 인간을 길러내겠다는 것인가? 그동안 서울시교육청은 법적 논란을 핑계로 서울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탄압을 해왔지만, 지난 11월 28일, 대법원의 학생인권조례 무효 확인소송 각하 판결로 법적 논란은 종식되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법률적으로 더 이상 제동을 걸 수 없게 된 문용린교육감은 이번에는 그 대안으로 조례를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서울시교육청이 입법예고한 조례개정안을 보면 학생인권조례의 상징이었던 ‘두발 자유 조항에 규제를 가능하게 하고 학생의 의무에 학칙 준수조항을 삽입하거나 반인권적인 학칙에 대해서도 학생들이 학칙의 의무를 따를 수밖에 없도록...’해 학생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놓고 있다.

 

그 밖에도 차별금지 조항에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임신 또는 출산'을 배제함으로써, 성소수자 및 미혼모 학생에 대한 역차별을 조장하고 있으며, 일괄적 소지품 검사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학생들의 사생활을 심각하게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미지 출처 : 참세상>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평등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게 인권이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 권리’를 유지할 수 있는 삶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길이 곧 인권의 실현이다. 인권은 민주사회가 추구하는 자유, 평등과 함께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인 권리이기도 하다.

 

서울시육감이 하겠다는 교육은 어떤 것인가? 인권의식이 없는 성인들의 시각에서 보면 두발도 교복도 학생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학생답지 않음으로서 교사가 수업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고 학생생활지도가 어렵다는 것이다. 학생들과의 대화와 소통을 통한 학생지도가 아니라 교사중심의 ‘지시와 복종’에 따르는 것이 교육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의 인권이란 ‘통제와 훈육을 통한 보호’에서 ‘참여 보장과 자기결정 존중’의 개념으로 바뀌어 왔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혹은 투표권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와 차별을 받고, 학생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사회는 후진 사회다. 두발자유와 용의복장, 강제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 등 학생들의 의사에 반하는 관행과 생활규정은 버려야 할 전근대적인 가치다. 교권과 학생인권은 다른 개념이 아니다. 교권이 필요해 학생인권을 규제하겠다는 것은 구차한 변명에 다름 아니다.

 

서울시 교육청이 진정으로 학생들의 교권을 보호할 의지가 있다면, 이미 제정된 교권보호조례부터 수용해야 한다. 교권보호조례를 재의 요구도 부족하여 대법원에 제소까지 한 교육당국이 교권을 빙자해 학생인권조례를 바꾸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은 얘기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학생인권 조례가 제정된 것은 경기도 김상곤교육감이 당선되면서다. 2011년 3월 1일 경기도에서는 당선 교육감의 선거공약으로 최초로 학생인권조례 제정되었다.

 

                                           <이미지 출처 : 참세상>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우리 헌법을 비롯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은 ‘모든 국민은 기본권의 주체임을 천명하고 있으며, 인간이기에 누구나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권리를 향유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천명하고 있다.

 

우리 헌법에서뿐만 아니라 유엔아동권리협약,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까지 보장하고 있는 학생인권은 단지 학생들에게 두발이나 복장, 사생활의 자유 등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로만 제정된 것은 아니다. 교육기본법 제2조,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 함양’이라는 교육목적을 달성해 민주시민을 양성하기 위해서다.

 

이미 학생인권조례는 경기도와 전북을 비롯한 진보교육감당선 지역에서는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돼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인권교육이 실행중이다. 문용린교육감은 이러한 학생들의 자발적 운동과 주민발의, 서울시의회의 의결을 통해 제정된 학생인권조례를 훼손하려는 시도는 멈춰야 한다.  

 

학생들의 인권 보장이라는 책무도 지키지 않으면서 조례를 개악할 궁리만 하는 교육청이 존재할 이유가 무엇인가? 민주적이고 법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는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조례를 개악해 반인권적인 교육을 하겠다는 서울시 교육청의 시대착오적인 폭거는 중단해야 한다.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책 보러 가-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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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례는「대한민국헌법」,국제연합「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교육기본법」,「초․중등교육법」에 근거하여 학생의 인권이 학교교육과정과 학교생활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함을 목적으로 한다.(전북학생인권조례 제 1조)

 

인권조례 제3조(학생의 인권 보장원칙)는

 

①학생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② 학생의 인권은 법령의 범위 안에서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최소한으로만 제한될 수 있으며, 이 조례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 한다.

③ 학생의 개성과 자율성은 학교생활에서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전북교육청 학생인권조례의 일부다. 그렇다면 학교현장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전리북도에는 학생인권조례가 공포, 시행된 지 4개월이 지났다. 학교현장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머리색깔 : 염색, 코팅, 파마, 고데기, 붙임머리, 칼라서클렌즈 등 금지, 무스, 스프레이, 젤 등 사용금지, 상투형태(뽕머리)금지, 성인용 악세사리 착용 금지

용모 : 자연적인 상태로 유지,

마스카라, 아이라인, 눈썹 화장 금지 얼굴 및 손톱 화장 : 모든 형태의 색 화장 금지, 손톱이 지나치게 길거나 매니큐어 사용 금지,

 

치마길이 : 무릎 위 1cm이내 길이(여), 무릎 위 1cm 이상 금지(여), 휴대폰 충전기, 고대기, MP3충전기, 전열기구는 허용하지 않음, 발견즉시 접수하여 1주일 이내 보관’

 

전북교육청 산하 00고등학교의 학생생활지도규정이다.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하게 된 목적은 ‘「대한민국헌법」,국제연합「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교육기본법」,「초․중등교육법」에 근거하여 학생의 인권이 학교교육과정과 학교생활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학교현장에서는 왜 헌법과 전북학생인권조례에 보장된 신체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을까?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된 ‘모든 어린이들은 안전하고, 행복하며 충족된 환경에서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보장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왜 외면하고 있을까?

 

 

학생인권이 부분적으로 실천되고 있다고 민주교육이 이루지는 것은 아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선언적으로 공포, 시행되고 있다고 학교에서 민주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없다. 학생회가 법제화되어 있지 않은 학생회는 이름만 학생회일 뿐, 민주적인 학생회운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학생회뿐만 아니다. 교직원회의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름은 교직원들이 참가한 회의지만 주제를 놓고 토론하고 결정하는 민주적인 절차나 과정은 찾아볼 수 없다.

 

교직원회의가 명실상부한 민주적인 결정과정을 거치지 못하는 이유는 교직원회의가 법적기구가 아닌 임의기구이기 때문이다. 단위학교에서 교직원 회의는 교장, 교감 그리고 각부서의 부장과 행정실장이 모여 협의한 내용을 전달할 뿐 학교운영에 관한 토의나 결정 과정은 없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 뉴스>

 

민주주의는 교문 앞에서 멈춘다고 했던가? 위의 00고등학교 학생생활지도규정에서 볼 수 있듯이 학교는 아직도 한밤중이다. 학교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곳이다. 사회구성원으로서 한 인간이 민주사회에서 보다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줘야 한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은 지금 기성세대들이 살아갈 세상과는 다르다. 변화된 세상에서 보람 있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은 어떤 것일까?

 

 

민주시민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시비를 가릴 줄 아는 지혜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가릴 수 있는 분별력을 길러줘야 한다. 교육다운 교육이란 자발성에 근거한 가치내면화로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자유를 기본원리로 성립된 사회에서 자유를 부인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자기부정에 다름 아니다. 이제 학생들에게 빼앗은 인권은 학생들에게 되돌려 줘야 한다. 민주주의가 실종된 학교에서 어떻게 민주교육을 할 수 있겠는가?

 

이 기사는 전북교육신문 '열려라! 행복한 교육' 2013년 13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책 구매하러 가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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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교직원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일어서 주십시오.”

“차렷, 경례!”

 

학교의 교직원 회의는 이렇게 시작한다. 출근하는 교문에는 선도생들이 버티고 서서 지각생이나 복장위반학생을 단속하고 있다가 선생님들이 출근하면 “성실!” 하는 구호와 함께 거수경례를 한다. 거수경례를 하는 선도생들의 훈련된 모습을 보면 학교가 아니라 군대의 위병소를 통과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 이미지 출처 : 오마이 뉴스 >

 

학교는 아직 군국주의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수학여행, 주번 제도, 교훈 체제(급훈-주훈), 등교지도, 규율부, 복장검사, 두발검사와 같은 식민지 교육 잔재가 그대로다. 학교에 따라서는 일주일에 한번씩 전교생을 모아 놓고 애국조례라고 하는 전체조례를 한다.

 

상장을 전달하거나 학교장이 10여분동안 훈화를 하기 위해 4~50분 이상의 시간을 소비한다. 물론 여기서도 예외 없이 “차렷, 경례!”라는 구호와 함께 학생들은 군대식으로 거수경례를 한다. 심한 경우에는 ‘학교장에 대한 경례!’라는 구호와 함께 팡파르가 울려 퍼지고 학교장은 군인처럼 거수경례로 답한다.

 

학생들에게 ‘학교생활에서 가장 자존심 상한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하나같이 두발검사에 걸려 머리카락을 잘렸을 때라고 한다. 머리카락이 잘린 순간 ‘죽고 싶었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다. 가위로 잘린 자국은 이발소에 가서 단장을 해도 가위자국은 그대로 남는다. 어떤 때는 학부모들의 심한 항의를 받거나 지도받던 학생들이 노골적으로 반항하기도 한다.

 

“왜 머리를 기르자고 학생회에서 의논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그런 결정은 해도 필요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지도교사인 학생부장의 한마디로 거절당하기 때문이다.

 

“학교의 주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하나같이 “학생입니다.” 리고 대답한다. “주인이 자신의 일을 결정하지 못하면 주인이 아니구나” “?” 학생들은 대답을 못한다. 머리카락에 염색을 하거나 런닝 샤스를 입지않고 교복을 입는다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다. 수십년 전부터 정해 내려온 교칙 ‘학생은 단정한 머리와 복장’이라는 성역(?) 규정에 도전할 용기도 용의도 없다.

 

                                                < 이미지 출처 : 오마이 뉴스 >

 

교육비젼 2002, 새학교 문화창조 추진계획에 의하면 「학교토론문화의 형성」 과제 중에서 ‘학교공동체의 공동 관심사항을 교원·학생·학부모들이 한자리에 모여 토론하고 합의 함으로써 구성원 모두가 자기할 일을 분명히 인식하고 자기 몫을 다하는 풍토를 조성한다’고 교정하고 학생회 일동의 활성화를 중심과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학교는 학생들의 최고 관심사인 ‘두발자유화’니 ‘교복자율화’같은 성역에 대해서는 불가침의 영역으로 남겨 두고 있다. 학교가 민주주의를 수련하는 장이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하느 둘이 아니다. 자율이 없는 간섭과 통제는 교육이 아니라 순치나 노역일 수밖에 없다.

 

민주의식이 없는 교사는 민주주의를 가르칠 수 없다. 전통적인 가치가 절대적인 가치로 자리잡은 사회에서는 변화나 민주주의는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책임과 자율을 전재로 하는 생활의 습관화는 새 학교문호를 창조하는 교육개혁의 핵심이다. 학교는 아직도 민주주의를 체험하는 교육의 장으로서 한계가 많다.

 

직원회의가 지시전달의 장이 아니라 의결기구로 바뀌고 학생들의 동아리활동이 활성화 되는것. 민주주의는 여기서부터 시작해야한다. 지시와 통제에 익숙한 교사는 학생들을 민주적으로 가르칠 수 없다. 교과서에는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가르치고 자유를 배우지만 교문 안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통제와 간섭으로 민주주의는 질식한다.

 

관념적인 지식은 시합용으로는 쓰일지 몰라도 삶을 바꾸어 놓지는 못한다. 실천하지 못하는 지식인을 양성하는 학교는 머리만 있고 행동이 없는 기형인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사는 1999년 5월 27~ 6월 2일 주간지 창원신문에 썼던 글입니다.

지금의 학교 모습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한 번 비교해 보십시오. 세상은 바끼어도 학교는 별로 달라진게 없습니다. 10여년 전의 학교 모습. 지금은 어떤지...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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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헌법 11조)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는 게 학교다. 학교는 교육을 통해 천부적인 인권을 가르치고 체화해 민주시민을 길러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학교는 어떤가? 민주주의는 학교교문 앞에서 멈춘다는 말이 있다. 군대의 위병소를 방불케 하는 교칙이 지키고 있는 곳. 그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신체의 자유도 평등의 가치도 저당 잡혀 있다.

 

 

청소년도 학생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사람으로서 누려야할 기본적인 권리를 누릴 자유가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그게 허용되지 않는다. 인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남의 인권을 존중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귀에는 그런 말이 들리지 않는다.

 

2010년 10월, 경기도가 처음 제정한 학생인권조례는 현재 4개 시도에서 시행 중에 있고 광주가 지난해 3월, 전북이 6월에 각각 제정해 시행에 들어간다. 진보교육감 지역의 인권 조례 안에는 ‘▲야간자율학습·보충수업 강요 금지 ▲모든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학교 교육과정에서 체벌 금지 ▲복장·두발의 개성 존중 ▲소지품 검사·압수는 긴급한 경우에 한해 최소화 ▲개인 정보 보호 ▲양심과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보장 ▲학생자치활동 보장 ▲소수 학생 권리 보호 ▲인권상담 및 인권침해 구제 ▲인권교육 의무화...와 같은 진일보한 내용이 담겨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됐을 때 이제 학교에서는 민주적이고 인권이 존중되는 행복한 학교가 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과연 그럴까? 학생인권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학생인권은 권리에 반해 의무가 따른다는 권리와 의무관계라는 억지논리와 인권과 교권이 대립된다는 주장으로 학교 안에는 처음 기대로 차 있던 분위기와는 전혀 딴판이다.

 

학교인권조례가 통과된 후 각 학교에서는 ‘학교생활인권규정’이라는 걸 만들었다. 학생교사, 학부모 등 교육 3주체가 협의와 합의의 과정을 거쳐 규정을 만들라는 지침에 따라서다. 이제 조례와 규정이 만들어졌으니 학교는 민주적인 분위기에서 학생들의 인권이 존중되는 학교가 됐을까?

 

 

학생인권조례가 통과, 시행 되고 있는 학교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학생들은 아침 등교하면서부터 교문에서 선도생의 검열을 통과해야하고 교실에서는 교사들의 폭언과 폭력에 익숙해져야하며 복도에서는 CCTV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우리교육 ‘길들이기로 대신한 인권감수성) 예상했던 일이지만 학생인권조례가 선언적으로 통과됐다고 하루 아침에 인권이 실현되는 학교가 됐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인권이 존중되는 민주적인 학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학생들의 인권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권이 무엇인지 인간의 존엄성이 어떤 것인지, 학교나 사회나 국가의 정체성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나 가치를 이해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교사들의 인권 의식도 없이 조례가 바뀌었다고 하루아침에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교사로 바뀌지 않는다. 인권의식도 없이 학생관도 달라지지 않은 교사들이 어떻게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학교가 될 수 있겠는가?

 

 

퇴학과 강제전학 그리고 자율이라는 이름의 강제학습은 학생들의 삶을 옥죄는 또 다른 폭력이다. 말로는 수요자중심의 교육이라지만 수요자들에게는 교과목 선택권도 없다. 나는 경제를 공부하고 싶은데 경제과목이 아닌 정치과목만 개설되어 있다든지 학교폭력에 연루된 학생이 사법적인 처벌을 받고 난 후 또 다시 학교생활기록부에 남겨 불이익을 당하는 이중처벌, 본의의 의지와 무관하게 위탁교육기관에 격리 수용시키거나 위클레스나 위스쿨로 전전하게 하는 것은 인권 침해가 아닐까?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됐다고 인권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인권교육은 학교부터 먼저 민주화되어야 하고, 복종의 내면화가 아니라 교사와 학생들이 인격적인 만남이 있어야 한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개성도 소질도 무시하고 오직 점수 몇점을 더 얻기 위해 수학문제까지 달달 외우는 학교에 어떻게 인권이 살아있는 학교가 되겠는가? 공교육의 정상화로 학교가 교육다운 교육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인권이 살아 있는 학교가 되지 않을까?

 

-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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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들의 자발적인 주민발의안으로 시행되고 있는 서울학생인권조례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임기 1년 반을 앞두고 취임한 문용린 새 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 담당 국장과 과장을 전격 교체하면서 인권조례를 대폭 수정할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인권조례가 정착도 되기 전에 누더기 조례를 만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이 인권조례를 수정하겠다는 이유는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교권실추와 학생생활지도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서울시와 경기도 등 진보교육감들이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것은 ‘입시경쟁력을 위해 처벌과 지시에만 의존한 전통적인 생활지도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통제와 단속이 아니라 상호존중을 핵심가치로 놓고 ‘인권’을 중심으로 소통하는 학교문화를 구축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지시와 감독, 통제와 단속이라는 군사문화의 잔재를 버리지 못하고 계속해 왔다.

 

이러한 모순을 바꿔 학교가 교육적인 차원에서 학생들의 인권교육을 제대로 해보자는 차원에서 시작한 게 학생인권조례다. 서울학생인권조례해설서를 보면, 인권이 자기중심적 권리 주장이 아니라, 타인 존중과 자기 책무 실천의 윤리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역시 학생의 자유와 권리만을 내세워 「학생의 권리 대 학교·교사의 의무」라는 이분법적 대립의 구조를 만들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학생인권조례는 전체 구성원들의 상호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그동안 학교현실에서 볼 수 있었던 폭력이나 억압, 획일과 타율 등의 비인간화의 모습들이 사라지고 보다 인권친화적인 학교문화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서울학생인권조례 해설서 일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생활지도의 어려움을 학생인권조례 탓으로 돌리는 것은 교육당국의 무책임함과 능력의 부재를 드러낸 조치다. 상호존중을 가르치는 인권교육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학생들의 버릇없음을 탓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울시교육청 학생참여단의 설문조사(10월15일~, 학생345명)에서 “서울학생 60%가 인권조례를 잘 모른다.

 

서울학생 98%가 인권교육을 따로 받은 적 없다”는 것으로 나타난 것은 이를 반증한 것이다.

시행 1년이 되도록, 인권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을 외면한 채 ‘생활지도가 어려우니 인권조례를 뜯어 고치겠다’는 것은 문교육감의 인권의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하고도 남는다.

 

2%밖에 인권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서울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고 “인권교육부터 제대로 해서 인권조례가 정착되도록 노력 해야겠다”는 의지도 없이 “학생인권조례부터 손 봐야 겠다”는 것은 학생을 인권의 대상이 아닌 순치의 대상으로 보는 위험한 학생관이다.

 

교권실추 논쟁도 그렇다.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을 실추시켰다고 주장은 ‘학생인권과 교권을 대립적’으로 보고, 교사가 말하면 무조건 순종했던 권위주의적 시대의 교권을 연상케 한다. 교사가 억압적으로 지시할 때, 겉으로는 잘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기보다 교사를 원망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것을 우리는 교사의 권위, 교권이라 할 수 없다. 민주화 시대의 교권은 학생과 상호 호혜적 관계와 소통의 관계 속에 발현되는 것이다.

 

진정한 교권이란 외면상의 복종이 아니라 학생과 교사의 상호인격적인 관계에서만 교권의 본질이 제대로 구현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학교는 교사의 통제를 통해 권위주의적인 국가권력과 무한경쟁으로 입시를 중심으로 생활통제를 강요해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교사-학생간의 갈등이 깊어져 온 것이다. 교사-학생을 통제적 관계로 만들고, 공동의 피해자로 만드는 것은 진정한 교육이 아니다.

 

오늘날 교권이 실추되고 학생들의 생활지도가 한계상황에 처한 것은 국가가 교육의 핵심인 교육내용 편성권과 평가권을 장악하고 국가수준교육과정과 일제식 평가체제로 일관해 왔기 때문이 아닌가? 지금까지 권위적, 시장적 교육정책을 쏟아냈던 교과부가 교권침해의 실질적 주범이 아니가? 교권실추의 탓을 학생과 학생인권조례로 돌리는 사람들은 여전히, 교사-학생의 관계를 대립적으로 보고 교권을 둘러싼 외부환경에 애써 눈감는 것이다.

 

 

생활지도의 어려움 뒤에는 MB정권의 학교다양화정책이 숨어 있다. 교육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교육을 상품으로 규정, 우열반을 편성해 수준별 수업의 ‘하반’, 비평준화 지역의 ‘비선호 학교’, ‘전문계 학교’, 대도시 ‘다인수 학급’으로 차별화했기 때문이 아닌가?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을 모아 놓는 분리정책과 대규모화 시키는 통폐합 정책이 생활지도를 어렵게 만든 요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교권침해와 생활지도의 어렵게 만든 정책을 쏟아내 놓고 대법원에 학생인권조례 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학교에서는 학생인권조례를 적극적으로 정착시키고 노력하는 학교들이 있다. 수업, 학급운영, 특강을 통해 인권교육을 생활화하고, 학기 초에 교사 ․ 학생 ․ 학부모가 오랫동안 치열하게 토론하면서 실천 가능한 생활규약(규정)을 만들면서 소통이 있는 학교문화를 정착시키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 교육청은 학교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바람직한 현상을 돕지는 못할망정 서울시교육청 학생참여단과 학생회가 주장하는 인권교육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인권교육이 현장에서 뿌리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인권조례 수정이 아니라, 이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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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광고 글이 아닙니다. 제가 읽고 좋아서 소개하는 글입니다.

 

안준철선생님이 쓴 책. ‘오늘 처음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를 읽었다. 중고등학교 때 고전을 읽고 며칠 동안 머릿속에 남아 있던 진한 감동. 그런 감동이 내게 다가 왔다. 교사였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또 부럽기도 한 그런... 그래서 이 책은 처음 교단을 밟는 선생님이 아니라 이 땅에 교육을 걱정하는 모든 선생님, 아니 모든 부모들도 읽어 봤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은 저자의 생명이다. 책 속에는 저자의 사상과 철학과 삶의 편린들이 녹아 있다. 책사의 모든 책은 다 좋은 책일 수만은 없다. 상업주의에 편성해 감각을 충동질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폭력을 미화하는 책도 많다. 그런 책들 중에 청소년들을 방황을 부추기는 책도 있고 두고 두고 보관해놓고 다시 읽고 싶은 좋은 책도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좋은 책, 좋은 사람, 좋은 교사를 만난다는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운 좋게 나는 그런 책, 그런 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교사로서 내 관심사는 아이들이 아침에 학교에 왔을 때보다 다만 조금이라도 더 자기 자신을 좋아하게 하여 오후에 집으로 보내는 것이다.’

 

자신이 소중하다는 걸 깨우치게 하고 싶어 하는 교사. 그러면서도 강제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우치게 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교사. 그는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꿰뚫고 있었다.

 

 

‘아이들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

 

프롤로그에 쓴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바로 이거다’ 교육이란 ‘아이들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다. 만난다는 것은 곧 소통이다. 교육이란 소통이다. 만나지 않고 어떻게 교육이 가능할까?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철없는 아이들을 회초리로 이끌어야지 인권 찾고 뭐 찾고 그래서 언제 교육이 가능하겠는가?’라고 한다. 교육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야 그런 말도 할 수 있겠지만 교육전문가라는 사람, 교과부 장관, 교육감, 장학사, 수구교원단체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학생들에게 인권을 허용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것은 교육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진배없다.

 

뚜껑을 닫아놓고 물을 부어 보라. 물이 담기는가?

 

교육이 무너졌다고 야단인 세상이다. 교실에 사랑이니 정이니 그런 것은 눈 닦고 찾아봐도 없는... 사방이 지뢰밭인 교실에는 이미 스승과 제자의 만남은 아니다. 의무와 권리,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삭막한 이해타산으로 만나는 교실. 그런 교실이 오늘날 학교의 현실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소통을 말하고 인권을 말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고 철학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그는 요지부동인 적진(?)에 서서 철벽같이 마음의 담을 쌓은 아이들과 만나고 있었다. 그는 ‘3월에 아이들을 잡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아이들을 잡는다는 말은 소통을 거부하겠다는 뜻이요,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교육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잡으면 편하다는 걸 모를 리 없겠지만 그는 편하기 위해 잡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그가 아이들과 만남을 가능케 해준 이유를 살펴보니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사랑이 없는 교실에 교육이 가능하기나 할까? 사랑하는 방법이야 각양각색이겠지만 안준철선생님의 사랑법은 남다르다. 그는 교실에서만 아이들과 만나지 않는다. 비오는 날 우산 속에서 혹은 복도에서, 벚꽃나무 아래서, 퇴근길에서, 등산을 함께 하면서 만난다. 졸업 후에도 제자들과 만나 수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교육은 교실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지식전달은 여러 가지 교구가 있는 교실이 편하고 유리할지 모르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소통은 35명이 앉아 있는 교실이 아닌 어디서도 가능하다. 그는 그것을 알기 때문에 교실이 아닌 교정에서 혹은 도서실에서 혹은 야외에서 아이들과 만나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은 무서운 사람이다.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놀다 선생님을 만나면 피한다. 닫혀 있는 선생님을 반길 리 없다. 하던 말도 끊고 마음을 닫아 버린다. 그런데 안준철선생님은 다르다. 아이들이 스스로 다가온다. 아니, 다가오게 만들고 있었다.

 

“선생님 요즈음 왜 그렇게 보기 어려워요?”

“왜 항상 선생님만 옳다고 생각하세요?”

“선생님은 현실을 너무 몰라요”

“선생님은 문제아들만 사랑하는 것 같아요”

 

이건 아무선생님이나 들을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소통하는 교사, 교육다운 교육을 하는 교사들만이 들을 수 있는 보석과 같은 말이다.

 

고함을 지르고 권위(?)를 세우고 쇼맨십(허세)을 하고... 그런 교사에게는 이런 행운이 찾아오지 않는다. 꽁꽁 언 얼음장보다 차가운 아이들의 닫힌 마음을 열고,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자신이 소중하다는 걸 일깨워 주는 사람,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을... 사랑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는 교사, 그래서 무너진 학교에서도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을... 사랑을 실천하는 교사. 그런 선생님의 마음이 담겨 있는 책을 통해 그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 내게는 행운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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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2012.05.13 06:30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이 만든 정당이 ‘민주정의당’이다. 이 정당을 만든 사람들이 ‘민주’니 ‘정의’의 뜻을 모르고 만들었을까? 만약 자기 가족이 광주에서 희생을 당했다면 민주정의당에 가입했을까? 하긴 전두환을 ‘구국의 영웅이라고 추앙하는 ‘전사모’(전두환을 사랑하는 모임) 까지 있으니 할 말이 없다.

 

 

조선일보 사시(社是)가 ‘정의옹호'다. ‘황국의 위무선양(威武宣揚)과 동양평화를 양 어깨에 짊어지고 제일선에 선 출정장병으로...’라고 외치던 게 조선일보다. ‘내선일체를 실천해 황국신민 된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던 조선일보가 민족지로 둔갑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유신정권을 찬양하고 살인자를 구국영웅으로 칭송하던 신문이 정의사회 구현이니 정의옹호라면 지나가는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인권과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 개인의 자유와 창의가 발현되는 사회, 중산층이 두터워지는 사회, 소외계층의 생활 향상을 위해 자생적 복지정책을 추진하여 사회양극화가 해소되는 사회를 추구하겠다’

 

새누리당의 당헌 총칙이다. 새누리당이 만들겠다는 ‘중산층’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한 일로 미루어 보면 한나라당이 소외계층의 생활향상이니, 복지니, 사회양극화해소니.. 하는 소리는 중산층이나 소외계층을 약 올리는 말로 들린다.

 

‘불평등과 억압, 착취와 수탈에 저항하고 사회 진보를 바라는 모든 이들이 함께하는 대중정당이며, 선거에 매몰되지 않고 기성 제도의 벽을 뛰어넘어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운동정당’, ‘기득권에 기반 한 일체의 권위주의와 관료주의를 배격하고 당의 운영에서 민주주의를 철저하게 실현한다’

 

 기성제도의 벽을 깨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는 통합진보당은 제 갈 길을 가고 있는가? 부정투표로 몸살을 앓고 있는 통합민주당을 보면 그들이 지향하는 민주주의나 진보는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 나는 학생을 사랑하고 학생의 인권과 인격을 존중하며, 합리적인 절차와 방법에 따라 지도한다.

- 나는 학생의 개성과 가치관을 존중하며, 나의 사상·종교·신념을 강요하지 않는다.

- 나는 학생을 학업성적·성별·가정환경의 차이에 따라 차별하지 않으며, 부적응아와 약자를 세심하게 배려한다.

 

우리나라 최대의 교사들의 집단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다. 이 단체의 교원윤리강령의 ‘우리의 다짐’ 일부다. 그런데 이 단체는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자는 ‘학생인권조례제정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교육의 본질을 구현하는 것을 최우선적 가치‘로 생각한다는 교총 ‘인간의 자아실현과 학생의 전인교육 활동에 우선적 가치’로 안다는 교총이 그런 노력을 하고 있다고 믿어도 좋을까?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敎育)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 등을 가르치고 배우는 활동이다. 그런 지식이나 기술을 배우는 이유는 피교육자가 갖고 있는 능력을 끌어내, 새로운 지식이나 기능을 습득하도록 도와줘,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교육법 제1조에는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공민으로서의 자질을 구유하게 하여 민주국가 발전에 봉사하며 인류 공영(共榮)의 이상 실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 ‘보다 나은 삶’...? ‘홍익인간’...? 지금 학교가 이런 교육을 하고 있다고 믿어도 좋은가?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게 사람답게 사는지, 오늘의 내가 여기 이렇게 살고 있는 게 우연(偶然)이 아니라 선조들의 피땀이 만들어 준 결과라는 역사의식도 가르쳐 주지 않은 채, 오직 점수 몇 점을 더 받기 위해 하루 20시간 가까이 강제로 교실에 잡아두는 게 그런 목표를 달성하는 길일까?

 

아이들에게는 ‘거짓말을 하면 나쁜 사람이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어른들은 왜 거짓말을 밥먹듯이 할까? 그것도 금방 들통 나고 말 뻔한 거짓말을... 세상 돌아가는 게 요지경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다. 대학진학률이 86%를 넘고, 일류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법관이며 경찰, 학교며 교회며 절이 갈수록 늘어나는데 세상은 왜 자꾸만 살기 어려워질까? 말 따로 현실 따로.. 양심 없는 지식인들의 거짓말로 세상은 갈수록 답답하기만 하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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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악성 뇌종양(교모세포종)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던 이윤정(32·여)씨가 지난 7일 오후 경기도 부천에 있는 한 요양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과 LCD공장 등 생산라인에서 일하다 백혈병과 뇌종양 등 암에 걸려 사망한 55명째 노동자다.(오마이뉴스)’

 

지난해 산재로 사망한 사람은 2114명으로 하루 6명꼴로 사망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우리나라 산재사망 노동자는 2만5천여명이다. 매년 2500여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인해 사망하는 셈이다. 이는 OECD국가 중 1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지난해 자살한 학생 수는 모두 150명이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최근 6년간 자살한 학생은 885명으로 2006년 108명에서 지난해는 150으로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안민석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자살 사망률 1위이며 자살이 10대 청소년 사망원인의 2등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학교성적이나 가정불화, 학교폭력에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들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한다. 이 학생들이 행복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랐거나 학교의 성적지상주의 풍토가 아니었다면 자살을 했을까?

 

공사기간 단축을 위한 철야작업이나 안전을 위한 충분한 시설을 마련했더라면 노동자들이 산재를 당해 죽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까? 입시제도의 잘못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산재로 죽은 사람은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요, 사회적 살인이다.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월급 받고 살기 위해 일하다가... 혹은 성적 때문에 자살한다면 대한민국에서 자살 안할 학생 어디 있어?”라고 하겠지... 산재가 발생한 기업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특별법을 만들고 학교가 성적지상주의나 일류대학 입시준비만 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많은 자살자가 생겨날까?

 

대통령이 거짓말을 해 욕을 먹고 있다. 노동자의 권익을 지켜줘야 할 고용노동부가 자본의 편을 들어 노동자를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 학생들의 인권을 지켜줘야 할 교과부가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을 허락할 수 없다면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민과 한 약속을 어기고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가 논문을 표절해 곤욕을 치르는가 하면 약자의 권리를 지켜줘야 할 검찰이 범법자를 두둔래 사회정의가 무너졌다고 아우성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법을 어길 수밖에 없다’, ‘나를 때리면 나도 때리는 것이 정당하다’

청소년들의 법의식이다. 청소년들은 ‘가장 법을 안 지키는 집단으로는 ‘정치인, 고위공무원’(78.51%)을 꼽았고 중고생 2명 중 1명은 ‘고국을 떠나 외국에 살고 싶다’고 한다.

 

지금 정부는 학교폭력과 전쟁 중이다. 텔레비전에서는 학교폭력이 단골 메뉴다. 학교는 물론 정부와 경찰, 그리고 지자체까지 나서서 폭력과 맞서 보지만 학교폭력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니 더 잔인해지고 더 은밀해지고 더 흉포(兇暴)해지고 있다. 쫓고 쫓기는 미로 찾기 게임을 방불케 한다. 혹자는 말한다. ‘학생들이 왜 이렇게 잔인해지고 사악해지는가? 라고...

 

생각해 보자. 학생들이 무얼 보고 배우겠는가? 자본이 노동자를 나락(那落>으로 네 모는 것은 폭력 아닌가? 학생들에게 일류대학이 사는 길이라면 성적지상주의로 내모는 교육은 폭력 아닌가? 월급이 21억을 받는 사람에게 100만원도 못 받는 노동자에게는 폭력이요, 열살 미만의 어린이가 10억이 넘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현실은 끼니는 걱정하는 사람이나 노숙자들에게는  잔인한 폭력이다.

 

 

고용노동부가 조사한 진로교육 실태조사서에 따르면 ‘중학생의 34.4%, 고등학생의 32.3%가 장해희망이 아예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학교폭력이 우연일까 아니면 희망을 잃은 아이들의 절규일까? 세상이 이성이 아니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데, 청소년들에게만 ‘바람풍’하라고...?

 

청년실업자 수가 120만명이나 되는 나라에 어떤 청년이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가? 학교가 싫어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가? 정부가 진정으로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의지가 있다면 재벌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진정으로 학교폭력을 줄이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자본이 저지르르는 폭력, 권력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사회폭력부터 줄여야 한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대물림되는 사회에서 하루 20시간 가까이 교실에 가둬놓고 ‘너도 열심히만 하면 재벌도 되고, 의사도 되고 변호사도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다. 아이들보다 더 잔인하고 더 포악한 어른들이 사는 나라에 아이들에게만 ‘바람풍’하라는 것은 양심 없는 소리 아닐까?

 

 -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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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교시, 모의고사 성적 순 좌석배치, 밤 11시 40분까지 강제학습...’ “모두 제가 다니는 수원외고에서 일어나는 현실입니다.”,

 

“학생회장이 되면 가장 첫 번째로 하고 싶은 것은 강제 보충수업 시간에 말 그대로 ‘자습반’을 만들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것이 학생회장에 출마한 이동준(18)군의 포부다.
<민중의 소리>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에서는 0교시, 강제야자.보충수업 등을 금지하고 있다. 인권조례가 시행되고 잇는 경기도에서 아직도 이런 학교가 있다니... 수원외고뿐만 아니다. 교육의 목표가 일류대학 몇 명을 더 ㅇ비학시켰는가의 여부로 결정되는 현실에서는 학교교육은 점수 몇점 더 올리기 위해 온갖 편법을 동원, 학생들의 인권을 짓밟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글을 쓰면 ‘철없는 아이들 붙잡아 공부시키겠다는 게 뭐가 나쁘냐?’며 악플이 달릴 게 뻔하다. 그런데 생각 해 보자. 독자들은 연수에 참가해 흥미도 없는 딱딱한 강의를 8시간 들어 본 경험이 있는가? 그 8시간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참혹한(?) 시간인가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학생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38년 전 제자들과 함께...>

 

지난 달, 대전에서 38년 전 초등학교 6학년 때 제자들을 만났다. 38년이란 세월이 자신의 이름을 대고 몇 가지 설명을 덧붙이고서야 겨우 옛날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었다. 시험문제를 철필로 끍어 일일이 손으로 등사를 해서 시험을 치르던 시절이었다. 시험을 치고 그 결과를 학급별 한년 별, 개인별로 게시판에 붙여놓았다. 중학교가 의무교육도 무시험제도도 아니었기에 시절, 일류(?) 중학교를 보내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선생님! 그 때는 우리들을 성적순으로 앉힌 거 기억하십니까?”

“? ? ?....!”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성적순으로...?

“난 그런 기억은 없는데....!”

 

강하게 부인했지만 제자들은 그 때의 일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성적이 비슷비슷한 학생끼리 자리를 배치하거나 소시오그램(교우도)를 만들어 배치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데....’

 

 

                                                      <수원외고 홈페이지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잘된 건지 못된 건지 구별조차 못하던 시절.... 교과부나 교장선생님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며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학생들의 성적만 잘 받게 해 주는 게 교사들이 해야 할 최고의 책임이요, 임무로 알았던 시절..... 그때 제자들을 만나면 부끄러운 이유가 바로 그렇다.

 

어른들은 말한다. 학생은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그런 건 커면 다할 수 있다고... 아이들은 맞아가면서 커는 거라고... 두발이며 복장은 학생다워야 하고 교사가 때리는 건 다 제자들 잘되라고 하는 건데 왜 문제가 되느냐고 말한다. 학생들이 자신의 주장을 하면 어린 게 버릇이 없다고 한다. 교문에서 복장단속에 걸면 운동장을 돌리고 ‘엎드려 벋쳐’를 시키는 것도, 위로 머리를 자르는 것도 다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이다. 학생들은 그냥 선생님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순종하고 고분고분하는 게 모범생이라고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 수원 시민신문에서>

 

인권의식, 민주시민의식, 역사의식은 저절로 생겨나는 게 아니다. 학생들이 학교생활에서 잘잘못을 분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비판의식이 없는 학생이 어떻게 민주시민으로 자랄 수 있는가? 이들이 민주시민으로서 권리행사를 떳떳하게 하기 위해서는 학교행사에 스스로 기획하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하고 학교운영에 참여해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집살이를 호되게 한 며느리가 자기 며느리에게 시집살이를 모질게 시킨다고 한다. 폭력을 당해 본 사람이 폭력을 행사한다는 말이 있다. 0교시, 모의고사 성적 순 좌석배치, 밤 11시 40분까지 강제학습을 하면 성적은 다소 좋아질지 몰라도 그들이 잃어버린 민주주의는 언제 배울 수 있을까? 민주주의가 없는 학교, 체벌을 당하면서 자란 아이들을 어떻게 민주시민이 되기를 기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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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에 휴대전화 통화를 하고, 교실을 이탈하고, 교사에게 욕설·폭언을 해도 제지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학생지도가 어려우며, “교내에서 학생들이 집단으로 담배를 피거나 주먹다툼을 해도 교사들이 선뜻 나서서 말릴 수 없는 게 오늘의 실정이다.”

 

진보교육감지역의 학생인권조례 실시에 대한 새누리당의 논평이다.

 

새누리당의 논평이 아니더라도 무너진 교실을 들여다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수업시간에 교실을 들어다 보면 이게 정말 공부를 하는 교실이 맞는지 의심이 들 지경이다. 수업에 열중하는 학생은 몇몇 학생밖에 없고 엎드려 잠을 자거나 옆 사람과 잡담을 하는 학생, 책상 속에 손을 넣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학생.... 보다 못한 교사가 복도에 쫓아내도 반성하는 기색이란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다 교실이 이 지경이 됐을까? 성적이 나빠졌다고 좌절하고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 학교폭력에 견디다 못해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는 아이들... 공부를 못한다고 왕따시키고, 공부를 잘해도 왕따당하고.... 아이들끼리 대화를 들어보면 욕설이며 은어(隱語)로 듣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다.

 

학생들의 이러한 현실을 보다 못해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어 자존감을 키우고 인권을 존중해주자고 진보교육감들이 내놓은 대책이 학생인권조례다. 그런데 학생인권을 보는 시각은 대화와 타협이 불가능한 극과 극이다. 한쪽은 학생들에게 인권을 허용하면 새누리당의 학생관처럼 교사들이 손쓸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됨으로 강압이나 통제, 체벌을 해서라도 잡지 않으면 안 된다고 걱정하고 있다.

 

 

 

 

체벌을 반대고 학생인권조례를 찬성하는 쪽은 누굴까?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과 같은 정당,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 전교조와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와 같은 진보적인 성향의 단체들은 학생인권조례를 지지하고 있다. 새누리당이나 교과부 그리고 조중동이나 뉴라이트계의 학부모단체들은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하면 학교는 되돌릴 수 없는 무법천지가 되고 학생들은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각각의 주장에는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한쪽에서는 ‘현상’을 보고 내린 진단이요, 한쪽에서는 본질을 보고 내린 결론이다. 원인을 덮어두고 현상을 본질이라고 진단한 사람들은 철없는 학생들에게 강압적인 방법으로 윽박지르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보는 반면, 한쪽에서는 교육위기니 학교폭력은 교사의 지도능력이나 학생 개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 낳은 결과라고 진단하다.

 

학생인권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대로 철없는 학생들을 통제와 단속, 체벌을 강행해서라도 윽박지르고 지도하면 학교도 살리고 폭력문제도 해결될까? 교과부가 내놓은 학교살리기나 폭력근절 대책이 하나같이 효과가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당연히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 낳은 결과를 폭력 가해자에게 불이익을 주고 교사에게 책임을 물으면 해결될 것이라 했지만 결과는 달라진 게 없다.

 

 

 

학교가 무너진 이유는 개성이나 소질조차 무시하고 오직 국영수로 사람의 가치를 서열매기는 입시위주의 교육이 만든 결과요, 학교폭력은 개인의 도덕성 결여보다 학생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결과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군사문화의 잔재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폭력을 미화하는 상업주의가 순진한 아이들로 하여금 죄의식 없이 흉내를 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폭력배가 되기도 하는 현실을 왜 애써 부인하는가?

 

잘못은 반드시 고쳐야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겉과 속이 다른 주장을 하는 단체를 보면 어이가 없다. 말로는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말하고 민주주의를 말하고 인권을 말하고 준법을 말한다. 그러나 엄연하게 헌법에 명시한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기본권을 왜 학생이라는 이유로 유보당해야 하는가?

 

‘나는 학생을 사랑하고 학생의 인권과 인격을 존중하며, 합리적인 절차와 방법에 따라 지도한다.’고 다짐을 하는 교원단체가 왜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어 학생인권을 존중하자면 반대하는가?

 

 

 

 

20만 교원이 가입한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