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정치2018.04.02 06:30


전관용이 쓴 단편소설 꺼삐딴 리의 주인공은 이인국이라는 의사다. 친일분자였던 그는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에, 광복 후 분단시대는 소련에, 1·4후퇴 후 서울로 내려와서는 권력층과 재벌과 미국인에게 아첨한다. 소설에 나오는 얘기만이 아니다. 선거철이 되면 어느 날 갑자가 변절자 기회주의자가 애국자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독재권력에 맞서 처절하게 앞서 싸웠던 사람들은 뒷전이 되고 자기네들이 주인공이 된다. 당시를 살지 않았던 사람들은 이런 기회주의자들을 투사로 알고 지지하고 성원을 보낸다.



4.1912·12, 10·26 그리고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을 겪으며 살아오면서 독재권력에 맞서 온몸으로 싸운 투사들도 보고 기회주의자, 배신자들도 볼 수 있었다. 민주화운동은 탄압의 칼바람이 한반도를 몰아치던 때 민족운동, 노동운동, 교육운동...은 권력에 맞서 더 격렬하게 처절하게 싸웠다. 특히 나의 칼 나의 피를 쓴 김남주, ‘껍데기는 가라의 신동엽, ‘한라산의 이산하시인, 그리고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리영희선생님, 꿈을 비는 마음의 문익환목사님, ... 과 같은 문인들이 없었다면 독재자들에 맞설 수 있었을까?

촛불승리로 맞는 개헌정국이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던가? 민주주의니. 평등이나 복지, 북한 같은 얘기만 나오면 거침없이 빨갱이 딱지를 붙이던 시절, 용기 있는 문인들은 두려움도 없이 글을 썼다. 아니 자신의 한 몸을 제물로 내 놓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런 분들이 없었다면 그 암흑의 시대를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권력의 이름을 빌린 폭도들이 가장 처절하고 잔인하게 국민들을 학살하는 현장을 지켜보면서 하나같이 모두가 외면했다면...? 오늘의 이 정도의 민주주의가 가능했을까?

꺼삐딴 리의 소설에서만 아니다. 선거철만 되면 기회주의자, 변절자가 판을 치고 있다. 김지하, 박노해. 이재오, 김문수, 양성우, 황석영, 경실련의 서경석(목사)... 변절자의 낙인이 찍힌 사람 중에는 별나게 문인과 노동계 인사들이 많다. 그만큼 문인들의 세계, 노동자들의 삶은 춥고 소외받으며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난세에는 수많은 애국지사 투사도 나오지만 그에 못지않은 배신자도 등장한다. 배신자 하면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 할 사람이 김영삼이다. 이재오, 김문수, 하태경이 그랬고, 이부영 또한 변절의 대오에 막차를 탄 사람이다.

기회주의자나 변절자에 못지않은 정치인이 있다. 당적을 밥먹듯이 바꾸는 철새정치인이 그들이다. ‘철새 정치인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은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이인제다. 그는 공천을 받기 위해 당적을 무려 13번이나 바꾼 인물이다. 무소속을 포함하면 14번이나 옮긴 철새정치인의 신기록 보유자다. 그는 자신이 살아 온 철새소리가 듣기 싫었던지 난 철새 아닌 불새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어디 이인제뿐일까?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인물이 한 둘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노동운동의 새 역사를 쓰게 한 전태일열사를 비롯해 학살자 전두환, 노태우의 단말마적인 발악에 자신을 던져 산화해 간 김기설, 김귀정, 이정순, 김철수, 정상순...은 온 몸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려 했다. 이러한 애절한 죽음을 본 김지하는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칼럼에서 젊은 벗들나는 너스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며 비아냥거리던 글을 사람들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정의사회, 제대로된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유사애국자, 변절자, 기회주의자...가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어쩌랴 이런 자들일수록 위장의 명수다. 이들은 민주화된 사회에서도 민중의 피흘린 대가로 얻은 경제력과 권력으로 사회경제적으로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 그들은 화려한 스팩으로 혹은 연고주의로 정치를 흙탕물로 만들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온갖 요설로 유권자들을 기만하고 있다. ‘민중을 개돼지로 여기는 그들을 가려내 퇴출하는 길은 없을까? 그들이 길들여 놓은 마취에서 깨어나는 방법은 스펙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반추해 봐야 한다. 기회주의자, 변절자 철새로 살아 온 사람을 가려내지 않고서야 어떻게 참된 주권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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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사는 이야기2017.11.11 06:30


사랑하는 친우(親友), 받아 읽어주게.// 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리고 만약 또 두려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더욱 좋겠네.// 좌석을 마련했으면 내 말을 들어주게.//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18] 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외치면서 죽어간 사람 그것도 스스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뜨겁게 산화해 간 노동자 전태일 열사가 마지막 남긴 유서다. 요즈음 사람들, 아니 오늘을 사는 노동자들에게 전태일을 아는가?’라고 물어 보면 아마 전태일이 누군데?’ 하며 반문하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평화시장에서 16살부터 시다로 시작해서 재단사가 되기까지 6년여를 일하다가 19701113일 스물 둘의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온몸에 석유를 끼얹고 불살라 죽은 사람. 인간답게 살 권리를 외치면서 세상을 향해 한 송이 불꽃이 되어 죽어간 사람이 전태일 열사다.


옛사람들은 말한다. ‘이 설음 저 설음 다 겪어보아도 굶는 설음만한 것이 없다...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이런 소리 하면 은행에 가서 찾으면 되지...?’라거나 아니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면 되지 않나...?’ 라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196~70년대는 정말 배고픈 시절이었다. 허기진 창자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먹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당시 한계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바램이요, 꿈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약점을 이용한 자본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자선을 베풀지 않는다.


한 달 월급은 15백 원이었다. 하루에 하숙비가 120원인데 일당 오십 원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다니기로 결심을 하고, 모자라는 돈은 아침 일찍 여관에서 손님들의 구두를 닦고 밤에는 껌과 휴지를 팔아서 보충해야 했다. 뼈가 휘는 고된 나날이었지만, 기술을 배운다는 희망과 서울의 지붕 아래서 이 불효자식의 고집 때문에 고생하실 어머니 생각과 배가 고파 울고 있을지도 모르는 막내 동생을 생각할 땐 나의 피곤함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짜장면 한 그릇 값이 오십 원이었던 시절, 전태일같은 노동자들은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짐승처럼 일해 받는 품삯이 달랑 오십 원이었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예같은 아니 짐승같은 대접을 받으면서 일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당시의 노동자들의 삶의 전부였다. 거짓말 같은 이런 현실 앞에 그것도 주인 맘에 들지 않으면 당장 그만 두어야 했다. 한 달에 두 번, 첫째와 셋째 일요일만 놀고 나머지는 점심시간에 30분을 제외하고는 햇볕도 안 드는 다락방에서 꼼짝없이 일에 매달려야 했다.



존경하시는 대통령 각하 옥체 안녕하시옵니까? 저는 제품(의류) 계통에 종사하는 재단사입니다. 각하께선 저들의 생명의 원천이십니다...로 시작하는 그의 탄원서는 탄원서라기보다 오히려 절규었다. 노동운동을 하면 빨갱이 취급받던 시절 그는 어렵게 재단사가 되었지만 열서너살 어린 동생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짐승처럼 사는 모습을 보다 못해 박정희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쓰기도 하고 관계기관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모든게 허사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갈 차비로 굶주리는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한시간도 넘는 집으로 걸어 다니기도 했던 사람... 전태일.


그가 떠나고 난후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양심적인 지식인들은 내탓이요를 외치며 노동현장으로 들어가 노동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노동자도 사람이다라며 피맺힌 절규를 한지 반세기기 다가오고 있지만 현실은 어떤가? 오늘날 노동자들은 전태일열사가 바라던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 약자도 사람대접 받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은 우연히 오지 않는다. 19701125일 조선호텔 노동자 이상찬의 분신 기도, 19719월 한국회관(음식점) 노동자 김차호의 분신 기도... 아직도 민주노총 한상균위원장은 감옥에 있다.


노조 조직률을 높이기 위해 정부도 정책적으로 노력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새 정부 중요한 국정목표 중 하나가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조 조직률을 높여가겠다는 것이다. 전태일열사의 분신 후 반세기. 이제 노동자도 사람 대접받는 세상.... 약자를 배려하는 세상이 열릴까? 노동자들의 삶이 질이 1970년 당시보다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전태일열사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세상을 향해 외친 마지막 절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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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정치2014.11.12 06:57


아파트 경비노동자 이아무개(53)씨가 끝내 숨졌다. 이씨는 지난달 7일 오전 자신이 일하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진 차 안에서 온몸에 인화물질을 뿌린 뒤 불을 붙여 자살을 기도했다. 이씨는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이씨는 분신 직전 한 입주민한테서 폭언을 들었다. 평소에도 이 입주민은 음식물을 먹으라고 이씨에게 던져주는가 하면 침을 뱉기도 하는 등 모욕을 줘왔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미지 출처 : SBS>

 

가난은 죄다. 노동자가 사람 취급받지 못하는 한국사회에는 그렇다. 노동자란 사전적 의미로는 근로 계약에 따라, 자신의 노동력을 고용주에게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급료를 받는 피고용자지만 우리사회에서 하층 노동자는 사람이 아니다.노동은 신성하다면서 블로칼라와 화이트칼라로 구분하는가 하면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시간계약을 맺고 일하는 노동자는 똑같이 일하고도 임금이 다르다. 연금은커녕 일자리조차 보장되지 않는 하루살이다.

 

최근에는 사라졌지만 오죽하면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라는 학교급훈까지 있었을까? 연차나 월차는커녕 공휴일도 없이 일하는 노동자들... 노동법이니 최저 임금제가 버젓이 있지나 이 땅에는 갑질하는 사람들의 인신공격에 모멸감을 느끼면서도 죽지 못해 사는 막장 노동자들이 수없이 많다.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노동자가 아닌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 80만명의 실업자 중에도 860만명의 저임금 비정규직을 사는 이 땅의 노동자들... 그들은 인권을 보장받는 노동자일까?

 

지금부터 44년 전인 19701113... 재단사로 일하던 청년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시너를 뿌리고 노동자도 사람이다. 근로기준법을 준시하라고 외치면 스스로 죽어갔다. 봉제공장의 재단사로 일하던 이제 겨우 스물두살의 청년이다. 

 

전태일이라는 이 청년은 목숨을 내놓고 일해야 하는 열악한 작업환경, 비인간적인 처우와 병영식 통제, ... 멸시와 천대의 상징인 '공돌이''공순이'(공장에서 일하는 어린 남녀 노동자를 이렇게 불렀다)들이 밥도 먹지 못하고 굶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돌아갈 버스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차비가 없어 20리 길을 걸어서 퇴근하기도 했던 청년이다.

 

 

근로기준법이 있다는 걸 알고 팔방으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주장했지만 누구도 그의 말에 귀기우려 주지 않자 끝내 하나뿐인 목숨을 던져 노동자도 사람이다라고 세상을 향해 외치고 이 세상을 하직했다. 1948826일 대구에서 태어나, 19701113, 서울 평화시장 앞 길거리에서 스물둘의 젊음으로 몸을 불살랐다. 그의 죽음을 사람들은 '인간선언'이라 부른다.

 

전태일은 병상에서 임종 전 "배가 고프다..."라는 말로 22년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배가 고프다...!"

삶의 질을 말하고 보편적 복지는 말하는 2014년을 사는 이 땅의 노동자들은 어떤가? 국민총소득(GNI) 26천달러시대 실업자 1000만 시대를 살아야 하는 이 땅의 노동자들에게는 아직도 유효한 말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고 목숨까지 노동자들에게 던지고 간 청년 전태일... 그가 떠난 지 44년이 지났지만 아파트 경비원과 같은 노동자가 사는 이땅의 노동자들에게는 아직도 유효한 말이다.

 

친구여..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뇌성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거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이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못 다 굴린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전태일 유서 중에는 너오는 절규다. 그의 분신 후 이 땅의 지식인들, 양심세력들은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내가 전태일을 죽였다고....’ 대학생들이 공부를 그만두고 노동현장으로 뛰어들었고 나도 노동자가 되어야겠다면 그들과 고통을 나누고, 교사들은 성직이 아닌 스스로 노동자가 되어 전교조의 씨앗을 뿌린다. 기독교인들, 목회자들은 민중교회를 세우고 성직을 내려놓는가 하면, 스스로 전태일이 되려는 거국적인 회개운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돈밖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의 눈에는 그가 떠난지 반세가가 가까워 오지만 노동자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전태일이 부활하지 않는 한, 이 땅의 노동자는 아직도 노예다. 아니 깨어나지 못하는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라 노예일뿐이다. 노동자가 사람대접받는 세상은 언제쯤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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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7.21 05:00



전교조가 결성될 무렵 사회는 오랜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봄처럼 여기저기서 겨울이 무너지는 불협화음이 터져 나왔다. 여성은 다소곳하고 순종적이어야 한다는 불문율을 깨고 ‘암탉이 울면 알을 낳는다.' 며 전통 가치에 반기를 들기도 하고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운명적인 틀, 금기의 틀을 깨기 시작했다.

당시 학교에서 전교조에 가입하는 교사들에 대한 교장선생님 쪽이나 사립학교재단의 저항은 예상보다 완강했다. 이런 와중에 나온 얘기. 전교조 교사들을 일컬어 ‘의식화교사’라는 재미있는 별명이 붙게 된 것이다.

                               <이미지 충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의식화란 ‘어떤 대상에 대하여 깨닫거나 생각하게 함. 특히, 계급의식을 갖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당시 전교조 교사들에게 붙여졌던 이 ‘의식화’란 ‘학생들의 정상적인 생각을 비뚤어지게 만드는 잘못된 교육‘이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의식불명‘이라는 말이나 ’식물인간’이라는 말은 몸은 멀쩡한데 생각하고 판단할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의식이 없는 사람은 살아도 죽어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교육이란 곧 무의식에서 자기 생각을 갖게 하는 의식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살면서 ‘민주의식’이 없이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졌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사람은 대화와 타협이란 의미가 없다. 주인의식도 없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살아야 한다는 그런 사람이다. ‘평등의식’이 없는 사람은 어떤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은 인격까지 높다고 보고 공과 사에 대한 구별을 하지 못한다. 건강의식이 없는 사람은 또 어떤가?

새집 증후군이니 환경 호르몬이니 그런 건 안중에 있을 리도 없다. 식자재에 농약이나 방부제가 얼마나 들어 있건 말건, 먹는 음식이니까 많이 먹으면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인권의식’이 없는 사람은 힘이 곧 인권이라고 보고 자기중심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으로 일관할 것이다. 몸이 아프면 팔자소관이나 운명으로 보고 운명이란 거역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전교가 이런 별명이 붙은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독재권력과 군사문화가 만들어 놓은 전근대적인 가치관에 대한 도전. 봉건잔재와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거대한 도전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여상이 근무했던 필자도 이러한 시대 흐름에 함께 하게 됐다. 당시의 실업계 학교는 나름대로 실업교육의 기능을 감당하고 있었던 시절이었으니까 가난하지만 똑똑한 아이들도 많았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과 운명적 세계관을 강요 받아 온 아이들에게 ‘여자이기 이전에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의식화'를 시작했다.

인문학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 주름살투성이의 어머니 판화 그림이 걸리고, 낫을 든 농부 그림이 운동권 학생들의 걸개 그림으로 나타나던 그 무렵이었다. 미사어구로 덧칠한 시와 아름다운 색깔로 그려진 그림이 좋은 그림이라고 알고 있던 미적 관념에서 주름 속에 담긴 어머니의 고결한 사랑을 읽어낼 수 있는 사고의 전환이 전통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 시작한 것이다. 욕설이 가장 아름다운 시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김용택의 ‘섬진강에서, 문익환님의 통일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시로 읽혀지기 시작하면서 국민적 사고의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한겨레신문과 전태일의 등장, 공포에 숨죽이고 살던 지식인이 온실의 보호를 거부하고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인 흐름은 전근대적인 유습과 반민족 세력에 의해 만들어졌던 이데올로기의 벽을 허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유교의 전통 그리고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관습에 찌든 가부장 문화를 지키겠다는 세력들은 눈이 뒤집혀 반발했다. 권력에 기생하던 언론과 종교세력, 식민잔재 청산을 하지 못하고 살아남은 권력과 독재자의 편에 서던 인간쓰레기며 군사문화에 기생해 살아남은 정치세력들까지 한통속이 되어 저항하는 힘은 가히 위력적이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했던가? 그러나 이러한 양심세력과 지식인이 빼든 칼은 이들에게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던 것이다.



80년 후반의 변혁은 어는 특정분야 특수층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가 아니었다. 정치경제 사회, 문화, 노동, 언론, 종교 등 사회의 각계각층에 걸친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수업 중에 교과서는 뒷전이었다. 이미 의식화의 경전이 된 ‘스스로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뿐만 아니라 노철(노동자의 철학)이며 철학에세이며 러시아 혁명사까지 공공연하게 교실에서 전해지기 시작했다. 시로 통일과 민족해방을 말하고 노동해방과 여성해방이 시작된 것이다. 의식화는 특정한 분야의 전유물이기를 거부했다. 대학생이며 노동자며 여성에 이르기 까지 교회에서, 노동현장에서, 교실에서, 민중교회에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폭푸이 되어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수업 중 문익환 시가 읽혀지고 김용택의 농민시를 읽어줬다. 니체나 칸트와 같은 철학자가 한 말 몇 마디가 아니라 사람됨의 철학이니 세계사철학을 듣고 길거리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책가방을 가게에 맡겨두고 치마에 보도블록을 깨 담아 나르는가 하면 한겨레신문 무료 배달을 자청하고 나서는 여학생도 있었다. 여상에서 꿈이던 은행에 취업한 학생이 사표를 내고 노동현장에 뛰어들고 전교조 선생님을 지키겠다고 밤새워 징계장소를 지키며 유인물을 돌리던 학생들은 결코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다.


시장실패가 수정자본주의를 불러왔듯이 민중의 의식화는 자본의 단결을 부추기고 급기야는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의 논리가 노동운동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자본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국면에서는 변절자와 기회주의자를 양산하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게 된다. 생존권을 놓고 선택을 강요해 양심을 실험했던 게 전교조 탈퇴각서 사건이었다면 생존과 취업을 미끼로 노동운동을 무력화시키고 있는 게 자본의 공격이다. 이제 자본은 국내 재벌이 아니라 거대한 다국적 자본이 FTA라는 이름으로 국경을 무너뜨리고 있다.

전체 노동자의 50%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바뀌고 청년 실업자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사회 양극화는 80대 20이 아닌 90대 10의 사회로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후반에는 민중의 신뢰와 순수성이 있었고 권략의 모순이 가시적으로 확인될 수 있었기게 민주화라는 개혁이 가능했다. 그러나 정보화시대에는 다수의 민중이 자본의 모순조차 확인할 수 없는 사회로 바뀌고 있다.  여기다 노동운동이며 교육운동, 시민운동을 하던 사람들의 배신과 변절....


지식과 기술은 가르쳐도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 이러한 교육이 길러 낸 사람들이 맡은 정치며 경제며 사회가 온당할리 없다. 이성도 도덕도 종교도 아닌 힘이 지배하는 세상. 최근 세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돈이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지식이며 양심이며 민족이며 그런 건 하루 아침에  다 내다 버릴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돈이면 양심도 변절도 만다 않는 자본에 마취된 사람들에게 지금이야말로 제 2의 의식화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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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자료2011.05.31 05:30



공부를 하는 목적이 ‘나를 사랑하는 길이요, 나를 찾는 길’이라는 것은 학교에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한 개인은 역사의 흐름에 조응(照應)한다.

학교는 역사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특히 현대사의 경우는...  역사의 변혁은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지식을 주입하고 존경받기를 원하던 한 교사에게도 부끄러운 모습도 달라지는 계기가 됐다. 1970년11월13일 전태일 열사의 분신자살 사건은 우리 역사에 잠자던 양심을 깨우는 기폭제가 된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임미지 검색에서>

전태일열사의 분신사건은 지식인과 종교인의 양심선언과 노동운동의 거대한 변혁의 흐름으로 깊은 잠에 빠진 역사를 깨우기 시작한 것이다. 1985년 ‘말’지 창간에 이어 1989년 한겨레신문의 창간, 87년 노동자 대투쟁, 89년 민주화 대투쟁과정은 우리역사의 거대한 혁명기였다. 전두환 노태우의 군사정권이 민주주의 숨통을 조이고 있을 때 나타난 민주화운동은 정치적인 변혁뿐만 아니라 언론이며 교육 민중의 각성 등 거대한 변혁의 회오리바람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민중의 각성은 외부의 민주화바람에 발맞춰 이른바 의식화운동은 노동현장에서 혹은 민중교회에서 혹은 학교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다. 당시 노동자의 성서로 불릴 만큼 많이 읽힌 책으로는 ‘민중의 함성.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 못다 가르친 역사, 스스로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 등이었다.

같은 책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와 읽기고 또 읽혔다. 이 과정에서 역사, 철학, 정치경제, 경제사, 노동법과 갈은 류의 책들이 필독서였다.
당시 사회과교사였던 나는 광주민중운동에 충격을 받고 사회과학서적 특히 역사공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네루의 세계사편력에서 충격을 받은 나는 현대사를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 교사였던가를 절감한다.


오장 마쓰이를 위한 사모곡을 쓴 서정주를 비롯한 이광수, 최남선, 정비석, 모윤숙, 주요한, 유치진, 김동인, 노천명, 이인직, 유진오... 행적을 보며 분노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당시 마창지역에서 노동자교육(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 강사로 참여하면서 참여할 기회를 얻기도 했다.

미국을 알면 내가 보인다. 우리역사가 보이고 분단이 보이고 6·25가 보이고 동족이 보이고 내 아버지의 가난이 보인다. 우리역사를 공부하면 우리나라의 모순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보인다.

가쓰라·테프트밀약에서 미국의 음모가 시작되고 미국의 의지에 의해 38선이 그어지고 군정과정에서 미국의 의지에 따라 신탁통치반대와 분단이 영구화되는 과정이 보인다. 왜 그 많은 양민들이 미군에 의해 학살당했는지 왜 건국 후에도 미군이 이 땅의 주인노릇을 하게 되는 한미행정협정(SOFA)이 맺어지고 이 땅을 쓰레기와 맹독성 물질의 매립장으로, 비행기 사격장으로 영구대여 하는지를....


현대사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 해방 70년이 가까워 오지만 왜 친일청산이 안 되는지, 언론과 재벌이 왜 민중의 억압자가 되어 있는지, 주권자인 백성들이 왜 주권행사를 하지 못하고 노예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안다. 학교가 현대사를 제대로 가르치기를 꺼려 하는지, 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가난하게 사는지, 통일 교육을 왜 안하는지, 통일이 방안이 왜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지, 형법으로도 충분히 처벌할 수 있는 범법자를 왜 국가 보안법이 있어야 한다고 강변하는지를...

브루스커밍스의 저서 ‘한국전쟁’을 읽으며 분노해 보지 못한 사람은 우리민족의 분노와 애환을 알 수 없다. 못다 가르친 역사(김남선-석탑)에서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1, 2, 3 박세길-돌베개),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정인-거름) 읽으면서 분노의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은 민족의 비극과 슬픔을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도 나의 책꽂이에는 그 당시 주먹을 쥐고 울먹이며 읽었던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는 책이 있다. 한국 민중사(1, 2 풀빛), 한국현대사(1, 2, 3, 4, 5-풀빛),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소나무), 해방 전후사의 인식(1, 2 한길사) 분단시대의 한국사회((변형윤-까치), 사료로 보는 한국현대사(동아대학교출판사), 분단시대의 역사인식((강만길)...

사료국사(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청산하지 못한 역사(1, 2 청년사), 한국의 역사인식(이우성, 강만길-창작과비평사), 발굴한국현대사인물사료(한겨레신문), 한국현대사(강만길-창작과비평사), 항전별곡(거름), 우리역사 이야기(돌베게), 청산하지 못한 역사(1, 2, 3-청년사), 사료로 보는 우리역사(1, 2-동베개), 한국 현대사 연구(이성과 실천), 한국근대민중운동사(돌베개)...


그밖에도 직접 내 눈으로 직접 읽어보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했던 미제 침략사((남녘)며 수배 중에 대학교수가 제공해 준 골방에서 숨어서 읽었던 조선통사(오월), 조선문화사(오월)며 이름조차 꺼내기 두려운 근대조선역사(일송정), 현대 조선역사(일송정)는 우리역사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는 작업이 아니다.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나의 삶을 얼마나 인간답게 보람 있게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인가를 안내해주지 못하는 역사는 학문으로서 가치가 없다.

역사는 구경꾼을 좋아하지 않는다. 고대사, 중제사, 근대사, 현대사를 달달 외워 남보다 몇 가지를 더 암기해 등수를 앞서는 게 아니라 오늘의 내가 살고 있는 삶이 선조들의 투쟁의 결과라는 걸 아는 것이 진짜 역사공부다. 그것이 역사의식이다. 역사의식을 갖게 하지 못하는 역사공부는 낱말을 몇 개 더 아는가와 같은 지식 그 이상이 아니다. 이러한 역사의식은 역사의 방관자가 아니라 치열한 역사의 현장에서 불의에 맞서 정의를 위해 분노하고 처절하게 싸우지 못한다면 역사에서 나는 낙오자일 수밖에 없다. 현대사를 알면 내가 보이고 세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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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러운 이야기 하나.

부끄러운 얘기부터 하나 해야겠다. 정년퇴임이 가까워오자 교무부장이 찾아와 훈장을 받는데 필요한 자료를 요구했다.

“저는 훈장을 받을 일을 못했는데요.”

“다 받는 훈장인데... 훈장을 거부하면 포기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차마 그것까지 거절 할 수 없어 훈장 포기서를 제출했다.

훈장을 포기하고 소회를 개인 홈페이지에 올렸더니 조,중,동을 비롯한 신문과 방송들이 야단법석을 떨었다. 마치 훈장을 거부한 나는 용기 있는 양심적인 교사요, 훈장을 받는 교사는 그렇지 못한 교사로 분류해 곤욕(?)을 치러야 했다.

내가 훈장을 거부한 이유는 단순했다. 학교가 이지경인데 정년퇴직을 하면 개근상처럼 받아들이는 세태를 질책하기 위해서였다. ‘해방 후 지금까지 수십만명이 훈장을 받았는데 왜 교육이 이 모양인가?’라는 항의 표시이기도 했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훈장을 거부한 사람이 아니라 훈장 받는 사람이 기사거리가 돼야할 텐데 내가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 부끄러운 이야기 둘.

교실 배식을 하는 학교에 근무하다 식당에서 공동식사를 하는 학교에 발령을 받았을 때의 일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식당이 없어 체육관에 식탁을 만들어 놓고 학생과 교사들이 함께 밥을 먹었다. 며칠이 지나면서 이상한 현상을 발견하고 너무 놀라서 이 사실을 고쳐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행동에 나섰다. 그 ‘이상한 현상’이란 밥값은 학생과 교사가 똑같이 내는데 반찬의 가짓수가 달랐던 것이다. 학생이 곁에서 함께 밥을 먹는 식탁에서 학생은 반찬이 3~4가지 정도였는데 교사는 5~6가지였다.

생각다 못해 몇몇 선생님들에게 문제제기를 했더니 이런 현상은 옛날(학교급식을 시작한 3,4년 전)부터 있었던 일로 그런 현상을 당연시 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어떤 선생님은 그 꼬라지(?)가 보기 싫어 학교식당에서 아예 밥을 먹지 않고 바깥에서 사먹든가 아니면 아예 도시락을 사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밥값은 똑같이 내는데 반찬의 가지 수가 다르다’는 것은 학생이 낸 돈으로 자식 같은 제자들의 반찬을 빼앗아 먹는다는 얘기다. 그것도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딸 같은 제자들이 낸 돈으로 만든 반찬을 교사들이 빼앗아 먹는다?’

더 이상 그 ‘이상한 현상’을 묵과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다음 날부터 교사 줄이 아니라 학생들의 줄에 서서 배식을 받았다. 한 달 가까이 돌연변이 짓(?)을 하는 그런 ‘이상한 현상’(교사가 학생 밥을 먹는...)을 그 어떤 교사도 동참하지 않았다. 혹시난 백 명 가까운 선생님들 중에는 나와 같이 학생 줄에 서서 학생과 같은 반찬을 먹자며 동참하기를 기다렸던 내가 순진했던 것이다.

생각다 못해 교장선생님을 만나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상에 대해 해결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교장선생님 왈 “고생하시는 선생님들께 특별한 배려도 못해주는데 그 정도를 가지고 뭘 시끄럽게 구느냐?”는 것이었다. 기막힌 현실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나의 객기(?)는 선생님들께 설문지를 만들어 여론화시켰지만 ‘너만 양심적이냐?’ ‘학생과 선생님들의 식습관이 다는데...’라며 별난 놈 취급만 받고 500원을 올리는 것으로 타협해야 했다.

<사진 : 오마이뉴스에서 - 지난 11일 오후 서울시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에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씨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어있자 지나가던 학생들이 발길을 멈추고 글을 읽고 있다.>
#. 부끄러운 이야기 셋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말로 시작한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씨의 대자보는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이 시대를 향한 경고요, 최고(催告)다. 아니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질서를 향한 질타요, 꾸중이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그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과 좌절감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 20대의 한 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로 시작하는 그의 글은 대학을 '자격증 장사 브로커'로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라 규정한다. 국가는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2년간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질타한다.

김예슬씨의 자발적 자퇴선언이 있은 지 한달이 가까워 오고 있다. 그런데 칼날 같은 논리로 정치를 말하고 경제를 분석하던 언론관계자들. 제자로부터 장사꾼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교수님들. 대학과 야합해 교육을 이 지경으로 교육관료님들. 뭐라고 변명이라도 좀 해야 하지 않을까? 변명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인정하겠다는 뜻인지 아니면 말 같잖은 소리에 대꾸를 하지 않겠다는 묵살인지 아무도 밝히는 이가 없다.

돌이켜보면 숨 쉴 공기도 마실 물도 안심하고 먹을 먹거리도 없는 기막힌 세상이 됐다. 아니 그런 세상이 된지 오래다. 대학이 졸업장을 팔아먹는 장사꾼이 된 세상. 근대화를 외치고 경기전망을 논하고 정세를 분석하던 그 똑똑하신 학자님들.. 그 덕분에 특혜를 받고 살아오면서 권력 앞에는 알아서 비위를 맞추고 약자들의 절규에는 같잖은 인간(?)들의 하잖은 소리로 묵살해 왔다. 양심을 가르치는 이 땅의 교육자님들. 사랑과 신의 자비를 외치는 종교인들. 진리를 말하고 선을 말하던 그 입은 어디로 갔는가?

‘노동자도 사람이다’라고 외치던 전태일. 그의 절규는 이 땅의 잠자는 양심을 깨우고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아름다운 메시지로 화답했다. 그는 죽었지만 이땅의 노동자를 살리고 잠자던 양심을 깨워 시커멓게 더러워진 세상을 정화하는 카타르시스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예슬은 어떤가? 어쩌면 그의 당찬 저주(?)는 부끄러워해야할 사람에게 비수를 꽂았지만 아무도 비수를 맞은 사람이 없다. 내가 싫어하는 말이 몇가지 있다. ‘군대 갔다 오면 사람이 된다’는 말과 ‘가난은 나랏님도 못구한다’는 말이 그것이다. ‘폭력이나 권력 앞에 순종하는 가치관’을 내면화시키는 과정이 군대라면... 군 생활에서 ‘권력이나 폭력 앞에 알아서 기는...’ 사람으로 바뀐다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학교는 왜 교칙이라는 이름으로 ‘통제와 규제’를 일상화 하는가? 왜 국정 교과서로 국가가 골라 모은 지식을 금과옥조로 내면화 하는가? 이예슬씨의 지적처럼 자본의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노동자에게 자본가의 논리를 주입시키기 위해, 돈 앞에 꼬리는 감추는 인간을 양성하자는 것은 아닐까?

어떤 논객이 말했던가? ‘돈만 아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경쟁자가 적이 되는 세상은 더러운 막가파 세상이다. ‘양심이 법먹여 주냐’며 기고만장하는 세상에 도덕이나 윤리를 말하지 말라. 더 좋은 집에 더 고급 옷을 입기 위해 더 높은 지위를 위해 권모술수도 마다않는 사회는 더러운 세상이다.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약자 가슴에 못을 박으면서 통쾌해 하는 세상은 더더욱 더러운 세상이다. 김예슬선언 앞에 침묵하거나 외면하는 사회에서 희망을 말하지 말라.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참을 수 없는 더러운 세상을 원하는 사람은 누군가?

부끄러운 논리를 정당화 해 온 대가로 특혜를 누리면서 그것이 능력으로 착각하는 지식인이 사는 사회는 후진사회다. 권력에 양심을 팔고 돈 앞에 비굴하게 사는 것이 능력으로 보이는 세상을 바꾸지 않고서는 김예슬은 반항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권력의 이름으로 돈의 위력으로 신의 이름으로 약자의 눈을 감기고 짓밟는 세상은 진위가 뒤집힌 더러운 세상이다. 그런 사회가 아무리 국민소득이 높아도, 학력이 높아도 삶의 질은 그림의 떡이다. 부끄러워해야할 사람이 떳떳하게 사는 세상에 진실을 말하는 이는 부끄럽고 또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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