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에 해당되는 글 38건

  1. 2016.12.25 성탄절 아침, 예수님의 사랑을 전합니다 (2)
  2. 2016.05.23 철학교실, 학교는 왜 종교교육을 안하지?(기독교편) (14)
  3. 2015.12.25 예수님이 바라는 세상 우리 함께 만들어가요 (16)
  4. 2015.06.04 내가 30년간 다닌 교회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 (12)
  5. 2014.09.25 철학 없는 종교는 마약이다 (12)
  6. 2013.03.05 ‘선한 사마리아인’을 통해 본 사회지도층의 현주소 (12)
  7. 2012.10.05 허리 수술하러 갑니다 (60)
  8. 2012.09.24 전통신학과 민중신학 사이 (28)
  9. 2012.06.12 기독교의 두 얼굴, 신학 없이 성서를 만나면.. (10)
  10. 2012.04.15 예수님은 왼쪽인데 기독교는 왜 오른쪽일까? (14)
  11. 2012.03.05 제주 해군기지, 평화를 심는 사람과 전쟁을 부추기는 사람들... (37)
  12. 2012.01.23 학교가 기르겠다는 ‘이상적인 인간상’은...? (18)
  13. 2011.12.25 성탄절에 생각해 보는 마르크스와 기독교 (17)
  14. 2011.08.19 이명박 장로가 믿는 예수님은 가짜다 (21)
  15. 2011.08.12 기도(祈禱)와 주술(呪術)은 다르다 (15)
  16. 2011.05.21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10)
  17. 2011.05.10 ‘십자가 시신’, 세상을 보는 안목이 문제다. (41)
  18. 2011.02.06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면서... (29)
  19. 2010.12.28 지옥이 정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35)
  20. 2010.12.28 종교는 약인가 독인가? (28)
  21. 2010.12.16 크리스마스는 먹고 마시고 타락 하는 날? (14)
  22. 2010.12.04 '학교는 언제까지 착한 사람만 길러낼 것인가' (32)
  23. 2010.11.29 성직자가 되고 싶었던 어린시절 이야기 (10)
  24. 2010.11.23 종교란 무엇인가?(종교관)
  25. 2010.11.22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인가? (1)
  26. 2009.12.21 예수, 그는 누구인가?
  27. 2009.12.20 크리스마스인가 엑스마스인가?
  28. 2009.08.05 예수님은 살아 있다? (8)
  29. 2009.05.09 내가 만난 기독교인들(3).. 교인들은 聖徒인가? (4)
  30. 2009.04.22 내가 만난 하느님 (5)
정치/사는 이야기2016.12.25 07:25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절 아침, 여러분의 가정에 예수님의 사랑, 아카페 사랑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면 그보다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 “원수를 사랑하며 당신을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

성탄절하면 무슨 생각이 나세요? 사랑의 예수님,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가장 귀한 분이었지만 인간이 사는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와 소외되고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피한방울 남김없이 모두 주고 떠나신 분입니다. 그것도 그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까지 골고루 똑같이...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을 조건 없는 사람 즉 아가페 사랑이라고 표현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가 전하는 예수님의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요? 예수님이 가르치는 사람은 이웃 즉 도움을 받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사람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성서에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에게 전하기를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한평생 길어야 100도 못되는 삶을 살다 한 줌의 흙으로 사라지는 게 인생입니다. 우주의 나이에 비하면 찰나에 비할 수 있는 인생을 살면서 오욕(五慾-식욕, 물욕, 수면욕, 명예욕, 색욕)과 칠정(,,,,,,)의 노예로 살다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욕심의 노예가 되어 이성을 잃고 방황하다 사라지는 사람들...

사람들은 나름대로 인생을 살면서 닮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예수님을 롤모델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세상에서 기독교인들 즉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의 삶을 따라 살겠다는 사람이 가장 많습니다. 세계인구 75억 중에 기독교인구만 23억정도라고 합니다. 이슬람교인 수 17억까지 계산하면 거의 절반 이상이 사랑을 실천하며 살자는 기독교와 유대교인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닌 미움과 증오로 가득 차 서로가 서로를 죽일 무기를 지구에 가득 채워놓고 있습니다. 말로는 사랑을 외치면서 그 실은 증오과 미움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이웃을 네 몸처럼...’이 아닌 원수로 생각하며 살상 무기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 무기를 만드는 돈이면 이 세상에는 굶주리고 고통 받는 사람 없이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말입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도 많지만 성경의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들이 아닌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사람들로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살기 어려운 세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이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선생 되기를 두려워 할 줄 모르는...’ 가짜 선생님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회칠한 무덤 같은 위선자, 거짓 선지자들이 예수님이 가르친 진짜 사랑을 감추고 왜곡된 사람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애로운 예수님에게서 이런 모습이 상상이나 되십니까?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오늘날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삶을 살면서 권력은 위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며 불의를 타협하는 사람들을 향해 하는 경고가 아닐까요? 진정한 사랑은 불의와 타협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진짜 아가페 사랑은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유순한...’ 그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요? 적그리스도를 분별할 줄 모르는 기독교인들로 세상은 예수님이 전하는 진짜 사랑이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탄절 아침, 예수님의 참 사랑이 여러분의 가정이 가득 하시기를 기도합니다흔히 예수님의 사랑을 아가페 사랑이라고 하니다. 그렇다고 불의를 외면하는 순종이나 복종까지도 사랑하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사랑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유월절이 가까워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기신 예수님은 성전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사람들을 보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애로운 예수님에게서 이런 모습이 상상이나 되십니까?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오늘날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삶을 살면서 권력은 위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며 불의를 타협하는 사람들을 향해 하는 경고가 아닐까요? 진정한 사랑은 불의와 타협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불의를 몰아 내고 자유와 평등 평화가 넘치는 세상... 예수님이 실현하고자 했던 하늘나라는 그런 세상이 아닐까요? 진짜 아카페 사랑은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유순한...’ 그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성탄절 아침, 예수님의 참 사랑이 여러분의 가정이 가득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손바닥헌법책 보급운동에 함께 합시다 - '헌법대로 하라!!! 헌법대로 살자!!!



==>>동참하러가기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 추진위원이 되어 주십시오. 


==>>동참하러가기 [손바닥헌법책 선물하기 운동!!!]


"한 권에 500원 후원으로 최고의 선물을 할 수 있어요!!"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공교육의 정상화를 꿈꾸다'를 


구매하실 수 있는 사이트입니다.


교보문고 바로가기  , yes24 바로가기  알라딘 바로가기  인터파크 바로가기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사랑으로 되살아 나는 교육을 꿈꾸다'  


전자책(eBook) 구매할 수 있는 사이트 
 

☞ 교보문고 바로가기 예스24 바로가기  , 알라딘 바로가기  , 북큐브 바로가기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철학2016.05.23 06:55


제정일치시대도 아니면서 종교인들에게 세금을 받지 않는 나라... 종교단체를 건드리면 표를 잃게 된다는 계산 때문일까? 실제로 대한민국의 종교인 수는 2014년 현재 불교 22%, 개신교 21%, 천주교 7%로 나타나 대한민국 전체인구의 절반이 종교인이다. 그런데 왜 국민의 절반이나 되는 종교인을 두고 학교는 종교교육을 하지 않을까?


교회나 절에 다닌다는 학생들에게 자기가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해 물어보면 황당한 대답이 나온다. 불교신자라면서 부처님을 신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독교인 중에는 예수가 신인지 인간인지도 모르는 학생이 있다. 어른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은 종교를 마치 자기가 어려운 일을 만나면 믿고 있는 신에게 기도하면 들어 주는 대상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수학능력고사 철이 되면 일찌감치 절에 들어가 100일기도를 하거나 교회에서 철야기도를 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무엇이든지 빌기만 하면 들어 주는 신... 우리네 서민들의 정서는 종교란 마치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주는 대상이요, 그 신에게 복을 비는 것이 종교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제가 동네 아이들 모아놓고 철학을 하면서 종교과목을 가르치겠다고 시작했다.


지난 시간 불교에 대해 공부했다. 불교는 3법인. 4성제, 8정도를 통해 수행해 업인에 의해 3도 6계를 윤회하는 인간이 해탈의 길을 찾는 종교가 불교다. 이에 반해 기독교는 예수를 믿고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살면 영원한 삶을 얻는다는 종교다. 현생은 내세를 위한 준비과정이요, 내세는 근심도 걱정도 없는 영원히 죽지 않는 세상. 고통도 슬픔도 없는 세상이다. 내세를 준비하기 위한 현생은 '이웃 사랑하기르 네 몸처럼 하라'는 사랑을 실천함으로서 천국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는 게 기독교다 


기독교의 교리


하느님의 천지창조

구세주(메시아,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동정녀에게서의 출생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면 천국의 거주민이 될 자격을 얻으며, 영생(영원한 삶)을 얻을 자격이 주어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세상 마지막 때에 다시 올 것)의 약속

성령의 존재와 성령을 통한 영적인 각종 은사의 존재

인간 영혼의 존재와 천국/지옥으로 대표되는 사후세계의 존재

마지막 때의 모든 인간의 부활과 예수 재림 후 최후의 심판에 따른 영원한 판결,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완성(나무위키)


기독교의 하느님은 어떤 신인가?


기독교란 어떤 종교인가? 기독교는 천주교든 개신교든 개신교가 이단이라고 규정한 여러 종파들이 믿는 신은 유일신 하느님이다. 그 하느님이 3위일체인가 아닌가에 따라 이슬람교가 되기도 하고 수많은 종파로 분열됐지만 3위일체 즉 야훼와 예수 그리고 성령이 한 몸인 신..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무소불위의 신이 기독교의 하느님이다. 이 하느님은 본래 하느님이지만 인간의 구원을 위해 세상에 왔다가 인간에게 배신을 당해 십자가에 못박히고 죽은지 3일만에 부활해 세상 끝날에 심판자로 오실 신이 하느님이다. 


기독교의 하느님은 6일만에 우주를 창조하고 이래 째 되는 날 인간을 창조한다. 남자 혼자인 것이 외롭게 보여 남자의 갈비뼈를 취해 여성을 만들고... 그래서 시작한 인간의 역사.. 그 인간은 창조주의 뜻을 무시하고 형제간의 살인까지 하는 사악함(원죄)을 본 주물주는 온갖 방법으로 인간의 회개를 시도하지만 결국 신의 뜻을 거역하고 욕망의 노예가 된다.


보다 못한 하느님은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 스스로 죽기까지 사랑하라는 교훈을 남기도 십자가를 진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힌 지 3일만에 부활, 승천한다. 사랑의 화신이 된 예수. 인간을 사랑하다 사람들에게 목박혀 줌임을 당하면서까지 사람을 사랑한 예수. 그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을 스스로 죽기까지 하면서 원수까지를 사랑하라는 교훈을 실천한다. 이러한 예수의 삶을 기록한 책이 신약성서요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라는 사람이 기록한 4복음서다.


기독교의 종파와 교리


기독교는 유대민족의 고유신 야훼를 믿는 민족종교가 예수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후 신약과 구약으로 구성된 성경을 경전으로 삼고 삼위일체 교리에 따라 예수를 신으로 섬기는 종교다. 이슬람, 힌두교, 불교와 함께 세계 4대 종교 중 하나이며, 전 세계에 약 24억 명의 신자 수를 지닌, 현재 인구 수로 세계 1위의 종교이기도 하다.


<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


'기독교'란 그리스도의 한자 음역인 기리사독(基利斯督:)에서 유래한 말로 많은 사람들이 개신교와 혼동하여 기독교와 천주교가 다른 종교인 줄 알고 있지만 사실은 같은 예수님을 믿는 종교다. 천주교에서 자신들을 호칭할 때는 그냥 천주교라고 하고 넘어가기 때문인 듯. 그러나 한국, 중국에서 말하는 기독교는 대부분 개신교만 지칭하는 경향이 있다. 기독교는 2000년이나 되는 긴 역사 동안 무수한 분파들이 갈라져 나옴에 따라 현재는 2만 여개나 되는 무한 수의 교파들이 있으며 이에 따라 각 교파의 교리나 성경 해석도 조금씩 다른 면이 있다.


천주교와 개신교 그리고 기독교 종파들....


기독교의 원래는 하나였다. 예수께서 부활하고 승천 후 약 1,000년 동안 교회는 하나를 유지해왔다. 그러다가 1054년에 동로마제국을 중심으로 한 교회와 서로마제국을 중심으로 한 교회가 갈라지게 된다. 교회가 분열된 이유는 성령이 누구로부터 나오느냐?’에 따라 분열된다. 동로마제국을 중심으로 한 교회는 성령이 야훼부터 나오는 아버지의 영이라고 주장을 한 반면, 서로마를 중심으로 한 교회는 성령인 야훼와 예수부터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의 영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이 둘은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고 1,000년 동안 하나의 교회로 내려오던 교회가 분열된다.


결국 동서교회의 분열즉 동로마제국을 중심으로 한 교회를 동방교회, 서로마제국을 중심으로 한 교회를 서방교회라 한다. 그러다가 1517년에 서방교회가 다시 한 번 분열을 겪게 되는데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에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을 내걸고 개혁운동이 시작됐는데 이것이 종교개혁이다. 결국 루터는 교회로부터 파문당하하자 설 곳이 없어진 루터와 그의 지지자들이 프로테스탄트(대항자-protestant)교로 나누어진다. 오늘날 개신교라고 부르는 교화 즉 예수교, 감리고 성결교...는 루터의 후예들이다.


결론적으로 정리하면 기독교의 하느님은 구세주(메시아,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동정녀에게서의 출생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면 천국의 백성이 될 자격을 얻고,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 종교다. 기독교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을 믿으며 성령의 존재와 성령을 통한 영적인 은사를 믿으며 영혼의 존재와 천국/지옥으로 대표되는 사후세계의 존재를 믿으며 모든 인간의 부활과 예수 재림 후 최후의 심판과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믿는 사람들이며 이들이 믿는 종교가 기독교다.



함께 합시다.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 추진위원이 되어 주십시오. 

https://docs.google.com/forms/d/1EKGFAtCr6Z5z92VrDJHAQlJrUGNSxWuVvnTb4kkEP48/viewform?c=0&w=1 

[손바닥헌법책 선물하기 운동!!!]

"한 권에 500원 후원으로 최고의 선물을 할 수 있어요!!"

==>>동참하러가기

https://docs.google.com/forms/d/1gPNGF5nC9hFzYQvdY8pNqlTirsr6HVteiOoiIsWEx3Y/viewform?c=0&w=1


 ..................................................................


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 두 번 째 책 '교육의 정상화를 꿈꾸다'를 구매할 수 있는 사이트입니다.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공교육의 정상화를 꿈꾸다'를 구매하실 수 있는 사이트입니다.

 


교보문고 바로가기  , yes24 바로가기  알라딘 바로가기  인터파크 바로가기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15.12.25 07:0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36~40)



<이미지 출처 : 당당뉴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2015년 전 오늘 예수님이 이 땅에 탄생한 날이다. 성경을 펴면 예수님은 이렇게 가르치신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그래서 스스로 하나뿐인 자기 몸까지 세상 사람들을 위해 내놓으신분... 이 땅을 하느님의 나라로 만들어달라고 제자들에게 부탁하신분....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건을 말하라면 예수님을 만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게 어디 나만의 얘기일까?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예수를 만나면 큰 충격을 받는다. 어떤 이는 예수님의 삶을 쫓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헌신적인 삶으로 바뀌기도 하고....



개인뿐만 아니다. 세계역사에 기독교의 등장만큼 역사를 바꿔놓은 큰 사건도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원수를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는 사랑의 예수가 왜 인류의 평화가 아니라 전쟁과 피의 역사를 불러온 것일까? 성서에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10:34)를 실현하기 위해서일까? 세계 역사는 십자군 전쟁을 비롯해 수많은 살륙과 전쟁의 역사다. 예수가 하느님인가 아닌가를 두고 갈라져 수천년동안 전쟁과 피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 오늘날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IS테러 또한 그 뿌리가 기독교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21세기... 이 지구상의 기독교 인구는 21억 명이다. 전 세계 인구의 1/4~1/3을 차지하며 이는 약 38,000개의 기독교 종파를 아우르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로 볼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약 100년에 걸쳐 전 세계 인구의 약 33%를 차지해오고 있다. 이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한다면 아마 이 땅에 전쟁이란 있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예수가 원하던 이 땅에 천국건설이 이미 이루어졌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무엇이 예수의 가르침을 가로 막고 있을까?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케롤과 휘황찬란한 트리로 온통 잔치 분위기다.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크리스마스 이브는 환락과 소비지향적이고 감각적문화로 예수님이 없는 크리스마스를 맞고 있다. 사랑이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야할 기독교는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자본이 벌이는 잔치판이 되고 만다. 예수님이 실종된 크리스마스... 자본주의와 기독교는 어쩌면 처음부터 궁합이 맞지 않는 관계로 출발한다. 이기주의적인 자본주의와 이타주의적인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공존할 수 없는 관계다. 공유사상의 기독교가 어떻게 사유자산제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공생할 수 있겠는가? 엄밀하게 말하면 기독교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이념과 궁합이 맞는 종교다.


변절한 종교는 세상을 더럽히는 사회악의 뿌리다. 일제시대 신사참배로 하느님을 배신한 기독교는 그 후에도 두고 두고 권력의 시녀노릇을 마다하지 않는다. 전두환일당이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수립한 민주정의당정권을 두고 권력은 위로부터 나자 않음이 없다며 조찬기도회를 열어 전두환 일당에게 축복한게 기독교가 아닌가? 오늘날 과세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재벌이 된 대형교회가 내야 할 세금을 가난한이들에게 떠넘기는 파렴치한 행위야말로 전쟁에 나간 부하의 아내를 능욕했다가 나단선지자로부터 봉변을 당한 다윗과 무엇이 다른가?



종교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인하자는 말이 아니다. 예수가 없는 기독교는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종교가 아니다. 그들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하라',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면서 예수를 팔아 개인의 배를 채우는 것도 모자라 자기를 따르는 양떼들까지 이리떼들에게 넘겨주는 거짓선지자와 적그리스도가 아닌가? 종교가 저지르는 해악 중에는 빼놓을 수 없는 논리가 결정론적 세계관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감추고 양극화의 세계를 대물림해 주는 현실을 정당화해 주는 결정론적 세계관이야말로 반기독교적이요 반예수적인 배신의 논리다. 그들은 불의한 권력의 편에서 과부와 고아와 불치병에 걸린 병든자를 운명론자로 몰아 하느님의 뜻'이라고 정당화시키고 있지 않은가?


예수님은 지금도 교회의 강대상 앞에 십자가를 지고 피를 흘리며 걸려 있다. 그의 고통이 얼마나 계속되어야 그의 가르침이 이 세상에 이루어질까? 자본주의와 결합한 기독교는 지금이야말로 '드로르'를 선포해야 할 때가 아닐까? 예수님을 팔아 재물을 쌓는 거짓선자들이 머리에 재를 뿌리고 참회하는 대회개운동이 일어나지 않는한 자본주의와 기독교의 불편한 공생관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자본의 선은 하느님이 아니라 이윤이다. 환락의 잔치판이 된 크리스마스를 자본이 외면할리 없지 않은가? 어둠이 깊어질수록 새벽은 우리 곁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예수님이 탄생한 날 아침. 온갖 악조건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이 땅의 참 그리스도인들이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기도한다.



------------------------------------------------------------------------


2014년 4월 16일...

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 두 번째 책 '교육의 정상화를 꿈꾸다'를 구매할 수 있는 사이트입니다.

  

 




 

2012년에 썼던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사랑으로 되살아나는 교육을 꿈꾸다'에 이어 두번째 책입니다. 아래 사이트에 가시면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교육의 정상화를 꿈꾸다'를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URL을 클릭하시면 바로 보입니다.

 

-------------------------------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94502618&orderClick=LAG&Kc=

 

yes24
http://www.yes24.com/24/goods/23444324?scode=032&OzSrank=1

 

알라딘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1744885

 

인터파크
http://book.interpark.com/product/BookDisplay.do?_method=detail&sc.shopNo=0000400000&sc.prdNo=247451298&sc.saNo=003002001&bid1=search&bid2=product&bid3=title&bid4=001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15.06.04 06:59


나는 기독교 신자인가? 누가 내게 물으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사실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예수교 장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해 기독교 감리교 권사직분까지 받고 초등부 부장, 청년부부장을 지내다 개종, 천주교에서 견진 성사까지 받았다. 그런 내가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고 대답하는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전두환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9월 30일 신라호텔에서 1,300여 명의 각계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대통령취임 축하 조찬기도회를 통하여 한국기독교는 다시 한번 전두환을 축복해 주었다-출처 : 길목>

 

 

1989. 나는 지금도 그 때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민주화의 바람이 온통 나라를 뒤흔들던 그때를.... 7910·26사태로 박정희가 그의 심복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자, 전두환을 비롯한 정치군인들이 제 2의 쿠데타인 12·12를 일으켰다. 쿠데타를 반대하는 국민들의 열망을 광주항쟁으로 진압하고 등장한 전두환정권. 이를 지지한 세력들 중 대통령을 위한 조찬 기도를 주도한 단체가 기독교다. 광주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이 집권한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니..? 그렇다면 그들의 손에 죽어간 사람은 무엇인가? 

 

그들이 말한다. 권력은 위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느니라’라고... 이런 주장은 일제시대 신사참배를 정당화하고, 유신시대는 유신을 찬양, 지지하고, 전두환이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집권한 정권조차 하느님의 뜻이라며 조찬기도회를 통해 축복했다. 나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저런게 기독교라면 나는 차라리 기독교를 버리겠다고 마음 먹었다. 어떻게 불의를 찬양하고 살인집단에게 꼬리를 흔드는 종교가 하느님의 뜻일 될 수 있는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는 사랑의 하느님이 어떻게 나라를 빼앗은 철천지 원수 왜놈들의 황국신민이 되어야 하고, 그들을 위해 총알받이가 되라고 목청을 높이고, 어린 처녀들을 정신대에 나가라고 할 수 있는가? 주권을 도둑질한 박정희를 위해 하느님의 축복을 빌고 백주에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을 위한 기도를 바칠 수 있는가?

 

그래서 나는 기독교를 버렸다. 그런 교회에는 예수도 사랑도 없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마침 전교조에 가입해 활동하던 나를 못마땅해 빌미를 찾고 있던 교장이 장로였던 교회에서 몇차례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제명 당하고... 그 후 개종을 한 이유는 아내의 뇌수술과 회복과정에서 붙잡은 게 천주교였으니 아내의 간절한 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천주교로 개종...그리고는 이름만 붙어 있는 교인이다.

 

 

<이미지 출쳐 : 민중의 소리, 휴심정>

 

 

예수냐 바울이냐문동환 목사님이 졸수(卒壽)에 책을 냈다는 소식이다. 아직 읽지 못했지만 내가 맘 속에 품고 있던 의문이 제목만 봐도 채증이 내려가는 기분이다. 삼인출판사가 펴낸 이 책은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에게는 충격이다. 모르긴 하지만 아마 보수적인 고려신학을 비롯한 근본주의 교파에서는 판매중지 가처분 신청이라도 내지 않을까? 문목사의 표현을 빌리면 생전에 예수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바울이 신약 27권 중 13권을 썼다니 예수님의 가르침이 그대로 전해 졌을까?

 

책 제목을 보고 내가 느낀 생각은 기독교가 왜 이 모양(?)이 됐는지 알만하다, 기독교가 바울교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로마지배하의 교회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권력은 위로부터 나지 않은 이 없다는 바울의 변절 덕분이 아니었을까? 하긴 종교개혁이라는 이름이 붙은 후 개신교는 자본주의와 공생관계를 맺으면부터 그런 개연성을 안고 있었다. 공유사상의 예수정신이 사유사상의 자본주의와 동거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가 아니라 바울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가?

 

예수는 누군가? 신인가, 인간인가? 예수가 누군가를 탐구하는 게 신학이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신학없이 성경이나 불경만 보고 빠지다보면 샤머니즘이나 구복신앙으로 흐르게 된다. 종교가 생겨난 이유는 죽음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그런 종교가 죽음이 아니라 이승에서 축복받고 즐기기 위해 전능한 신에게 빌면 복을 얻는다는 기복으로 흐르게 됐다.

 

예수가 신인가 인간인가를 놓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이 등장한다. 근본주의자들은 성서의 일점 일획도 하느님의 뜻으로 기록돼 달리해석할 수 없다면서 귀에 걸면 귀거리 코에 걸면 코거리를 만들어 놓는다. 이웃사랑하기를 네 몸처럼..하라고 가르치고, 왼뺨을 치거든 오른뺨도 내놓아라는 가르침이 없다면 기독교가 다른 구복신앙과 다를 게 무엇인가? 신을 팔아 이승의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인간들에 의해 기독교는 피의 역사를 만들어 놓았다.

 

예수를 닮지 않은 기독교는 가짜다. 사랑이 없는 교회,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지 않는 교괴는 가짜다. 권력의 비위나 맞추고 불의한 부를 쌓아 가난한 사름들을 착취하는 교회에는 예수가 없다. 부를 쌓아 문을 잠그고 재물을 땅에 쌓아두는 교회에 어떻게 하느님이 함께 하리라고 생각하는가? 권력화한 예수는 진짜가 아니다. 사랑이 없는 예수는 가짜다. 잔인한 예수, 살상과 억압과 소외와 소름끼치는 전쟁이나 부추기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불의와 동거하는 무리들과 함께 하는 예수라면 그런 예수는 가짜다. 선과 악이 빛과 어둠이, 밤과 낯이 어떻게 동거할 수 있겠는가?

 

 

☞ 관련 글

 - 기독교 하나님은 야훼인가 예수인가??

 - 사람들은 왜 예수 없는 교회에 열광할까? 

 - 내가 만난 하느님

 - 내가 만난 성직자(2) 하느님 자리를 차지하는 성직자들

 - 내가 만난 기독교인들(3).. 교인들은 聖徒인가?

  - 교회비판 글 삭제요구, 회개가 먼저 아닌가? (다음 티스토리 블로그에서 삭제당한 글입니다) 

 - 조용기 목사님! 왜 그렇게 돈을 좋아하세요? (다음 티스토리 블로그에서 삭제당한 글입니다)

 

-----------------------------------------------------------------------------------------

 

2014년 4월 16일...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다. 아이들은 아직도 9명이나 차디찬 바다속에 잠겨 있는데 정부가, 우리가, 내가 한 일이 없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진상규명....!

 

정부는 진상규명을 할 의지가 있는가? 마지 못해 특별법을 만들었지만 그 시행령에는 조사대상자가 참여하게 만들어 놓았다. 유가족들은 삭발로 울분을 토하고 부모된 사람들은 가슴을 치지만 대통령은 마이동풍이다. 이런 비참한 현실을 두고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겠다고 남미로  떠났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살리겠다는 경제' 그 경제로 누가 살기 좋은 세상이 될까?  

 

세월호 참사 진실은 반드시 밝혀야 합니다. 그것이 억울하게 숨져간 아이들에게 속죄하는 길이요 제 2, 제 3의의 세월호참사를 막을 수 있는 길입니다.

 

4.16...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마세요.

 

 

  

 

 

교보문고
http://digital.kyobobook.co.kr/digital/ebook/ebookDetail.ink?selectedLargeCategory=001&barcode=4808994502151&orderClick=LEA&Kc=

예스24
http://www.yes24.com/24/Goods/9265789?Acode=101

알라딘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899450215

북큐브
http://www.bookcube.com/detail.asp?book_num=130900032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영광 영광 할렐루야~~"

개신교에서 부르는 찬송가다. 이 찬송가를 세월호 특별법이 웬말이냐? 전국민이 세월호 특별법을 반대한다. 종북세력들은 북한으로 가라는 프렌카드를 들고 단식하는 유가족과 시민들 앞에서 부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세월호 참사로 슬픔에 빠져 있는 가족들을 향해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 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는 목사까지 있으니 이런 행동은 모른 채 해야 할까?

 

<이미지출처 : 한희정선생님 페이스 북에서>

다른 사람들도 아닌 사랑의 종교라는 기독교인들의 이런 행동을 보면 저 사람들이 정말 종교인들이 맞는지 의심이 간다. 하긴 일제강점기 때부터 기독교인들이 우상숭배를 금지한 10계명을 어기고 신사참배를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던 사람들도 있었으니 할 말이 없다. 원죄는 공유사상의 기독교가 사유사상의 자본주의와 손잡을 때부터 비극의 씨앗이 뿌려졌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기독교의 변절사는 부끄럽고도 낯 뜨겁다.

 

일제강점기 주일예배 때 국방헌금을 갹출한 것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다. 유신헌법을 만들어 영구집권을 꿈꾸던 박정희를 권력은 하느님께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대통령을 위한 조찬 기도회를 하며 아부를 떨던 기독교다. 총알이나 탄환을 만들어 무고한 백성을 죽이라고 헌금을 요구한 기독교나 광주시민을 학살한 전두환 무리들을 하느님이 주신 권력이라며 아부를 떠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하긴 원수를 사랑하라했으니 원수를 독재자나 살인자를 사랑하는 행위라면 할 말이 없다.

 

기독교란 예수가 구세주인가 아닌가에 따라 유대교와 기독교로 나누어진다. 여호와만이 유일신이라는 신앙을 가진 유대교도 바리새파(초자연주의자), 사두개파(자연주의자), 엣센파(금욕주의자), 헤롯당(헤롯의 지지자), 율법학자(서기관), 국가 최고 의결기관(산헤드린)도 있었으니 유대교가 예수를 두고 선자냐 아니냐를 두고 유대교와 이슬람교로 나누어진 걸 욕할 수만은 없다. 정작 문제는 그 후부터다.

 

<이미지 출처 : 아이엠피터>

 

기독교는 정통 신앙의 계보를 이삭과 예수 그리스도에서 찾고 있고, 유대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슬람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한 선지자로 인정하지만, 이스마엘과 모하메드를 정통 신앙의 계승자라고 주장함으로서 분파는 끝없이 이어진다. 성지(聖地)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전개된 십자군정쟁은 무려 8차에 걸친(1096~1270) 살육이 역사는 종교라는 이름을 빌린 학살과 살육전이다. 이 기간 중 소년, 소녀 3만 여명이 모여서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지중해까지 행진하였다가 일부는 난파 때문에 죽고, 일부는 상인의 농간으로 북아프리카에 노예로 팔려갔던 사실에서 종교라는 이름 잔인성을 본다.

 

예수를 크리스트로 인정 하는가, 않는가 하는 문제로 갈라진 유대교와 이슬람교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지금도 중동을 비롯한 전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정교일치시대의 교회의 타락은 천주교와 개신교로 종교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분열되지만 개혁된 개신교가 구교인 천주교보다 더 순수하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찾아보기 어렵다. 아니 타락한 개신교 목사들을 보면 예수와는 상관없는 종교라는 생각이 든다.

 

예수가 구세주라고 믿는 천주교도 전파과정에서 로마교황을 수장으로 하는 동방교회(그리스정교회)가 천주교(가톨릭)로 갈라지지만 종교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갈라진 개신교는 우리나라로 들어 와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문제를 놓고 갈등이 시작되면서 핵분열(?)이 시작된다. 자칭 대한민국 개신교의 대표주자라는 장로교만 보더라도 소규모 교단을 포함해 170개가 넘는 교파로 분열돼 있는 상황이다. 장로교, 침례교회, 성결교회, 구세군, 여호와의 증인, 7일 안식일교회...를 비롯해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본 구원파에 이르기 까지 그 종파분열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구교인 천주교나 개신교는 똑같은 예수를 하느님이요, 삼위일체(야훼, 예수, 성령)를 믿는 종교다. 이웃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그리고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면 그보다 더 큰 사람이 없다는 그래서 이 땅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종교다. 물론 영원히 살기 위해(영생) 종교가 생겼고 3위 일체의 신, 하느님이 통치하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고 믿는 게 기독교(신구교 포함).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2013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기독교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19.4%라는 데 예수님에게 물어보면 몇 %라고 대답할까? 신학이 실종된 기독교, 예수 없는 기독교를 보면 종교인지 마약인지 헷갈린다.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전자책을 구매할 수 있는 사이트입니다.

 

교보문고 http://digital.kyobobook.co.kr/digital/ebook/ebookDetail.ink?selectedLargeCategory=001&barcode=4808994502151&orderClick=LEA&Kc=

알라딘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899450215

북큐브 http://www.bookcube.com/detail.asp?book_num=130900032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3.03.05 07:00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강도들이 그의 옷을 벗기고 상처를 입혀 거의 죽게 된 것을 버려두고 갔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 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해 지나갔다. 또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 곳에 이르러 그 사람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감람유와 포도주를 붓고 싸맨 후에 자기 말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봐주었다. 다음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주인에게 주며 '이 사람을 돌봐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소'라고 말했다".(신약성서 누가복음 10장 30-33절)

 

이 비유는 율법 교사가 예수께 질문하면서 시작되는 얘기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율법교사가 이웃을 몰라서 물었을 리 없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면 도대체 그 한계가 어디까지 입니까?”라는 의미로 질문한 것이다.

 

예수께서 율법교사에게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려준다. 이 비유에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먼저 사제(종교지도자)와 레위(지식인)인이다. 사제와 레위인은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피해서 지나가 버린다. 아마도 그들은 죽은 듯 보이는 강도만난 사람을 보면서 시체에 접촉하는 것은 부정하다는 규정(이스라엘 법 미쉬나 규정)을 떠올렸는지 모른다.

 

 

사마리아인이 누군가?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이방인들보다 나쁘다고 간주하였다. ‘사마리아인들과 함께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돼지고기를 먹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할 정도였다. 이렇게 평소 유대인들로부터 미움을 받던 사마리아인이 자기네를 업신여기던 사람이 강도를 만나 죽어가고 있는데 동족인 레위인과 사제는 외면하고 지나갔지만 평소 미움 받고 홀대받던 사마리아인은 강도만난 사람을 치료해주고 비용까지 부담하는 자비를 베푼다는 얘기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원래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 얘기의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지식인과 종교인들의 위선을 말할 때도 가끔 사례로 든다. 성서에 나오는 강도만난 사람의 성서 얘기는 너무나 유명해 이런 얘길 꺼내는 게 진부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 고위공직자 청문회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모습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 성서에 나오는 인물은 레위인이다.

 

강도만난 사람 혹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등장하는 지식인(율법교사)은 예수에게 다가 와 예수를 시험하는 가증스러운 모습에서 지식인의 위선을 읽을 수 있다. 죽어가는 강도만난 사람을 버리고 간 레위인은 우리사회로 치면 최고 지식층이다. 청문회에 등장하는 국무총리후보, 대법원장 후보 혹은 장관후보쯤으로 보면 비슷할라나? 이들 지식인들은 겉모양은 번지르르하다. 그러나 입만 살아서 진리를 말하고 도덕과 윤리를 말하면서 속은 구린내가 진동한다.

 

레위인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레위의 자손으로(예수님의 족보란 동정녀로 태어났다면서 혈통을 따지는 것 자체가 웃기는 얘기다) 이스라엘 민족의 제사장(사제)이 되는 특수한 지파로서, 모든 제사장은 레위인으로 구성되었다, 이스라엘의 첫번째 계급은 사제직이고, 둘째 계급은 성전에서 악사의 역할을 하였으며, 셋째 계급은 성전지기 및 그 문지기였다. 그 밖에 모든 레위인은 성전에서 일하는 자 외에는 백성을 가르치는 일을 맡았다.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선생을 레위(랍비, 라오니)라고 부르게 된 사연이 여기서 연유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미워한 유대인이 제사장, 레위인, 부자 순서이고 실제로 그들이 예수를 죽이는데 주역을 하였다.

 

 

모든 지식인들이 다 이중인격자라거나 부도덕하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양심적은 지식인들은 늘 권력으로부터 탄압과 소외를 받고 살아왔지만 그들이 있어 사회를 부패로부터 지키는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난 권력의 주변에서 곡학아세하는 지식인들이 있어 우리사회는 더더욱 부패하고 황폐화되고 있다.

 

둘째로 등장하는 인물이 제사장이다.

 

레위인도 그렇지만 제사장 또한 강도를 만나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하고 지나가 버린다. 제사장이 누군가?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종교국가에서 제사장이란 최고의 지위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들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사악한 인간인가를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형교회 목사와 같은 인물이 곧 사제로 비견될 수 있는 인물이다.

 

엊그제 ‘조용기 목사가 만들겠다는 천국은 어떤 것일까?’라는 포스팅에서도 지적했지만 그들은 입으로는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고 가르치지만 정작 그들이 사랑하는 것은 이웃이 아니라 ‘돈’이다. 교인들이 낸 헌금을 도둑질 해 가족들에게 나눠주고 교회를 대물림하는가 하면 사유재산 화하는 철저한 악덕상인이다. 광주시민을 죽인 전두환이나 노태우를 보고 ‘권력이란 위로부터 나지 않은 게 없다’며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나 하는 파렴치한이 그들이다.

 

돈과 하느님을 함께 섬기지 못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성직자들...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권력의 편에서 곡학아세하는 지식인들... 그들이 오늘날의 제사장과 레위인들이다. 그들의 위선과 거짓증언으로 강도만난 사람(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은 한계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예수님이 살아 있다면 왜 이들이 나쁜 짓을 하도록 구경만 하고 있을까? 심판 때까지 기다리게 한다는 신의 뜻은 강도만난 사람에게 너무 가혹하고 레위인이나 제사장에게는 너무 관대하지 않을까?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10.05 07:00


 

 

오늘은 불친님들게 작별의 인사를 드려야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지난 2010년 제가 대전에서 허리 협착증 수술을 한 이후, 참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수술과정에서 마취가 풀려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혹한 고통을 겪었는데 그 수술이 좋지 않아 걸음을 걷기 어려운 통증에 시달려왔습니다.(사실은 오랜 시간 앉아서 글을 쓴다는 것이 엄청 부담이요, 무리였답니다.) 

 

많이 생각했답니다.

이대로 견디고 살 것인가?

아니면 또 그 지긋지긋한 수술대에 다시 올라갈 것인가를....?

 

지난 해 정형외과 진단 때 의사선생님이 '나이가 들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얘길 듣고 더 늦기 전에 수술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예약을 했는데 11월 예약이 한달 정도 앞당겨졌습니다. 이번 수술은 철심을 3마디나 넣어 고정시키는 비교적 큰 수술이라고 합니다.

 

오늘 입원 해 다음 주에 수술을 하면 아마 한두달 정도는 블로그 활동을 못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아껴주시고 격려해 주신 많은 분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회복 후에는 무리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조금씩 능력이 닿는대로  써 볼 생각입니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을 한다고 했지요.

 

나이도 많고 경험도 능력도 부족한 사람이 하루에 한 편을 쓰겠다는 자신과의 약속 때문에 세련되지도 못한 다산으로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던 점을 이 지면을 통해 사과드립니다.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고 일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한편씩의 글을 썼던 점에 대해서는 스스로 만족하고 있답니다.)

 

다음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면 무리하지 않고 일주일에 한두편 정도로 알찬 글을 써 볼까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다시 한 번 격려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퇴원 후 다시 뵙겠습니다.

 

 

 

블로그 활동에서 느낀 이야기 몇마디... 

 

블로거들 중에는 참 재주꾼도 많고 능력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가슴이 따뜻한 분, 열정적인 분, 존경스러운 분들.... 

 

여러분들도 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그 많은 분들 중에 '인서체와 함께하는 불로그'를 운영하는 '耽讀'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경남진주에서 기독교 목사직을 맡고 계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단 한번도 그분을 만나본 일이 이 없습니다. 그의 블로그의 프로필에 보면 '나를 위한 인생살이가 아닌 다른 이를 위한 인생살이가 소망'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목회자가 아니면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를 하는가라고 힐란하겠지만 이분의 글을 보면 그런 삶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이 분의 글을 보면 초인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추악한 권력에 맞서 주저 없이 '광야에서 외치는 질타...'는  '耽讀'님이 아니고서는 들을 수 없는 글입니다.

 

어떻게 그 많은 자료들을 찾고 또 그렇게 많은 글을 쓸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사랑이 있으면 산을 들어 옮길 수도 있다던... 예수님의 말씀은 이를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이스라엘의 백성으로서 거대한 권력에 맞서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 편에 맞선다는 것은 사랑과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사회에서 바른말 하고 산다는 것... 옳은 것은 옳다하고 틀린 것은 틀린다...고 하는 것... 그것은 용기 있는 사람,, 기득권을 포기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인 것입니다. 

 

분노할 줄 아는 목사님,  예수님의 한탄을 듣고 실천에 옮기는 목자가 열명 아니 백명만 있다면.... 정의를 말하는 스님이 ' 열사람 아니 백명만 있다면....

 

 

모르긴 해도  '耽讀'님의 교회에는 수천명의 신도가 있는 큰 교회가 아닐 것입니다.

숫자는 적지만 이런 목사님이 인도하는 목자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분들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이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데... 그 땅이 썩고 냄새가 나는데... 이 땅에서 권력의 비위를 맞추고 그 댓가로 쾌락을 누리는 목회자는 분명히 양의 탈을 쓴 늑대로 가짜임에 틀림 없습니다.  

 

블로그는 바로 이런 용기 있는 분들에게 어울리는 마당이요, 장소가 아닐가 생각합니다.

 

'너희가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치리라!'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  목사안수를 받고 목사가 된 목회자는 아니더라도 무너지는 정치, 경제, 교육... 아니 무너지는 세상을 보고 분노하는 사람이야말로 바로 광야에서 외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줍잖게 나이가 70이 다 된 내가 블로거를 하면서 참으로 분에 넘치는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독일교육이야기를 운영하는 박성숙님.... 어떤 기자들보다 더 기자다운 아이엠피터님...

 

불의를 보고 분노할 줄 아는 사람.... 그래서 다음 세대에는 보다 정의로운 세상, 보통사람들이 사랍대접    받으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신념에 찬 사람....

 

그  이름을 일일이 거명할 수 없지만 그런 분들이 있어 불로그는 오늘도 그 건강성을 잃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격려와 사랑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수술 후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12.09.24 07:00


 

 

인도 건국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는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 없는 상인, 인간성 없는 과학, 헌신 없는 종교’를 ‘일곱 가지 사회악’이라고 했지만 철학이 없는 삶은 방황의 연속이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할 얘기가 많다. 그래서 나이든 사람은 꼰대 소리를 듣는가 보다. 오늘은 종교에 대한 얘기를 해 볼까 한다. 오늘 전개하는 얘기는 나의 개인적인 종교관일 뿐 신실한 종교인들을 비하하거나 남의 종교를 비난할 목적이 아니라는 걸 먼저 밝혀둔다.

 

요즈음은 많이 달라졌지만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은 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한두 번 절에 가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절에 가면 시주를 하고 부처님께 절을 하고 돌아오는 것.... 부처님께는 살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면 정성을 다해 빌면 비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그런 불교신자들이 많다. ‘절에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은 삼신도 모시고 조상신도 모시고 한울님...도 모시면서 산다.

 

 

 

교회에 다닌다는 사람도 그렇다. 초등학교 때 친구를 따라 다녀 본 성경학교나 커서 이성에 호기심을 느낄 나이가 되면 교회나 성당의 따라가다 기독교 신자가 되거나 아니면 부모가 신실한 기독교인이어서 배속에서부터 종교인(?)이었던 사람도 있다. 그런데 불교신자건, 기독교 신자건 종교인들에게 ‘종교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속 시원하게 ‘종교는 이런 것이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종교란 ‘죽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겨 난 것이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어떤 힘’에 자신이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신이라는 이름으로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 싱안의 대상이야 시대나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하지 못한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가 있다는 것일 믿고 의지하고 숭배하는 것.... 그런게 종교가 아니까?

 

신관(神觀)이 없는 종교란 위헌 천만이다. 기독교의 경우를 보자. 고등학생들에게 ‘기독교가 뭔가?’라고 물으면 정확하게 대답하는 학생들이 없다. 국어사전을 보면 ‘基督’이란 머리에 성유 부음을 받은 자, 곧 왕 또는 구세주라는 뜻으로, ‘예수’를 이르는 말, ‘그리스도’의 음역어‘이라고 풀이한다. 크리스트라는 말의 한자 방음이란 뜻이다. ‘기독=천주=크리스트=구세주=예수’라는 의미다.

 

기독교인이라는 학생 들 중에는 구교와 신교, 천주교, 개신교,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 에 대한 정확한 개념도 없다. 종파 얘기를 하자는 말이 아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천주교신자든, 개신교 신자든, 여호와 증인신자든 자신이 믿는 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觀)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라는 분이 사랑의 신인지 권위의 신인지 구별조차 못한다면 옳은 신앙인 아니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종교가 철천지원수가 되어 수천년간 앙숙의 관계로 이어지는 종교란 그 역사만큼이나 복잡하고 어렵다. 그 복잡한 뿌리는 어쩌면 간단하게 정리할 수도 있다.

 

 

개신교를 포함한 기독교는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를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종교요. 이슬람교는 만인의 신인 알라(야훼, 여호와)를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종교다. 유대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야훼, 여호와)을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민족종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름만 다른 ‘알라’와 ‘야훼’(신은 같은 여호와)라는 차이인 이슬람교와 유대교는 앞으로도 타협이란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원한이 깊고도 복잡하다.

 

‘신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답은 신앙인의 신관(神觀)이다. 신관에 따라 천주교와 개신교, 이슬람교..로 나눠진다. 개신교 만해도 장로교, 침례고, 감리교, 퀘이커교, 기독교 한국루터회,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 제 7일 안식재림교회...등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장로교는 다시 고려파 장로회, 기독교 장로회, 통합파와 합동파....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의 기독교는 신관에 따라 분열되었다기 보다 이해관계로 얽혀 분열된 경우가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범한 신자가 ‘어떤 종파가 진짠가’의 여부로 따진다면 신앙도 갖기 전에 실망감으로 신을 믿을 정나미가 떨어지고 말 것이다. 종교의 핵심은 자신이 신앙하는 ‘신이 누군가?’라는 문제다. 기독교의 경우 ‘예수가 누구인가?’라는 문제가 신앙의 핵심이다. 똑 같은 신을 믿으면서도 이명박장로, 뉴라이트의 김진홍목사, 서경석목사...같은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문익환목사, 문규헌, 문정현신부, 이태석신부.... 같은 분도 있다. 누가 믿는 예수가 진짜일까?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12.06.12 06:30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 어떤 책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품이나 삶의 질까지도 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해방둥이 우리또래 사람들은 참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온 불행한 사람들이다. TV는 물론 라디오도 제대로 듣기 어려운 시대... 시골 학교에는 도서관은 말할 것도 없고 신문조차 구해 보기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 왔다.

 

성경을 처음 만난 사람들이 다 그렇겠지만 진로에 대한 안내나 멘토도 없는 가난한 독학생이 만난 문고판 신약성경 한 권. 그것은 나에게 충격 그 이상이었다. 교양서적 몇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한 청소년이 읽은 신약성경은 종교서적이기 이전에 윤리서요, 교양서요, 철학서이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에는 순진한 청소년들에게 삶을 가르치기에는 너무나 빈약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정치며 경제며 사회를 보는 안목은 물론 시비를 가리며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판단력을 길러주기는 역부족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 가치도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지녀야할 품성도야에는 아예 작은 도움조차 주지 못한다.

 

청소년이 만난 성서는 죽음을 넘어 내세를 준비하는 종교의 의미보다 예수라는 분의 삶을 통해 내가 가야할 길, 설 자리, 삶의 방향을 안내해 주는 인생의 안내자였다. 참과 거짓이 무엇이며 사랑과 인내, 관용과 소망을 가르쳐 준 내 삶의 안내자이기도 했다. 그런데 신학이 없는 성경, 그 성경 속에 숨겨 있는 이데올로기를 발견할 수 있는 안목은 어린 나에게는 생각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문제였다.

 

 

 

교과서에 담긴 이데올로기를 모르고 금과옥조로 배운 사람들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간, 자본이 필요로 하는 인간 그 이상의 사람이 되기는 어렵다. 도구교과의 경우는 예외겠지만 윤리니 사회, 국사와 같은 교과서에는 그 내용 속에 체제 이데올로기며 자본이 필요로 하는 가치관을 가진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다.

 

성경도 예외는 아니다. 내가 성경을 신학 없이 순진한 눈으로 이해한 것이 성경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나이 40이 가까워서였다. 70년대 후반 감리교 속회모임에서 고만고만한 청년들이 성경을 공부하면서부터 전통신학 외에도 예수님을 보는 다른 시각도 있다는 걸 깨우치게 된 것이다. 이 모임에서 전통신학 이외에 민중신학이며 해방신학도 있다는 것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성경을 처음 만나 받은 충격만큼이나 성경 속에 담긴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다. 미친듯이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찾아 읽은 철학 서적이며 민중 신학과 해방 신학 서적속에 만난 예수님은 전통신학의 예수님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 온 것이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누가복음 6장 17- 20)’라는 성구가 왜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태복음 5장 3~5절)’라는 기록으로 남게 됐는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는 말씀의 ‘이웃’이 옆집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이 없으면 생명을 이어가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을 깨우치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참 많은 사람들,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면서 살아간다. 특히 기독교인들... 교회 안에서 양처럼 순하고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사람들이 교회 밖에서 만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충격을 받게 된다.

 

죄를 아무리 많이 지어도 교회에 가서 용서를 받으면 씻김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일까? 직장에서 만나는 교인들이며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서 그들의 삶이 교회에서 만난 사람과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물론 문익환 목사님이나 문규현, 문정현 신부님, 그리고 이태석신부님과 같은 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보고 교회에 다니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신자 한 두 사람을 보고 특정 종교를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종교가 체제 순응 이데올로기나 불의한 권력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되면 그 후유증은 예상 외로 심각하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종교가 또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운명론적 세계관을 갖도록 만드는 독약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종교가 약자의 고통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한 기독교는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만드는 마취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12.04.15 06:30


 

 

 

예수님은 오른 쪽일까 왼쪽일까? 예수님은 소외된 자, 과부, 중풍 걸린자, 문둥병자, 고아, 죄인, 이방인을 아끼고 죄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으신 분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기독교인이란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일까?

 

마태복음 산상수훈을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한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천국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한 것 보면 예수님이 추구하는 가치는 분명이 오른 쪽이 아닌 왼쪽이다.

 

가난하고 소외 받고 사는 자와 병든자와 고아와 과부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한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이 천국의 주인이라고 했다. 그런데 기독교 교인들 중에는 왜 오른쪽이 많을까?

 

<가톨릭 뉴스>가 전한 바에 의하면 18대 국회 천주교 신자 수는 62명이다.(19대 지역구 당선자, 가톨릭 58명)  평등과 복지라는 왼쪽 가치를 소중한 가치로 생각하는 천주교 신자는 통합진보당의 강기갑의원과 권영길의원 2명 뿐이다. 그런 반면 자유라는 가치, 경쟁과 효율이라는 부자들 손을 들어주는 한나라당 천주교 신자 국회의원은 무려 32명이다.

 

 

 

강승규, 고흥길, 권영세, 김세연, 김소남, 김영우, 나경원 , 박대해, 백성운, 손숙미, 신상진, 심재철, 안상수, 원유철, 원희목, 유정복, 유재중, 이애주, 이종혁, 이주형, 이학재, 이한구, 임해규, 장관근, 전여옥, 전재희, 정병국, 정진섭, 차명진, 한선교, 홍일표, 황진하의원 등 32명은 예수님의 추구하는 왼쪽의 가치가 아닌 오른쪽 가치다. 한나라당보다 더 오른쪽인 자유선진당 소속 국회의원은 김낙청, 김창수, 박선영, 이명수, 이상민, 이영애, 임명호, 심대평의원 등 8명이나 된다.

 

왼쪽도 오른 쪽도 아닌 중산층의 편을 들어주는 민주당 신자 국회의원 수도 20명이다. 김우남 김재균, 김재윤, 김춘진, 노영민, 문희상, 박지원, 백원우, 백재현 신학원, 신건, 오제세, 우윤근, 이강래, 이미경, 이석현, 이종걸, 장세황, 정동영, 조영택의원 등이 바로 그들이다.

 

 

국회의원 수만 그럴까? 통계가 없어 알 수는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이명박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와 사법부를 비롯해 사회 지도층 인사 중 기독교인 수는 엄청나게 많다. ‘한국천주교통계2010’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천주교 신자 수만 무려 520만 5589명이다. 전체 인구대비 10.1%다. 개신교인 수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어림잡아 1천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기독교인은 어떤 사람인가? 예수를 믿는자는 거듭난자(중생)이고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했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네가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기독교인 중에는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부자가 되는 걸 축복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불의를 쫒는 자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쫒는 제자들이 1천 5백만명이 넘는데 왜 나라는 이 모양일까? 우리나라 기독교는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게 분열돼 있다. 개신교만 해도 장로교, 침례고, 감리교, 퀘이커교, 기독교 한국루터회,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 제 7일 안식재림교회...등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장로교는 다시 고려파 장로회, 기독교 장로회, 통합파와 합동파....이렇게 복잡하게 갈라져 있다.

 

 

 

 

 

예수님이 변절한 것일까? 아니면 기독교가 변절했을까?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예수님과 동거할 수 없는 권력 지향적, 부자지향적인 가치를 선호해왔다. 평등이라는 가치보다 자유라는가치, 효율이나 경쟁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며 추구한 게 기독교다. 왼쪽가치를 추구하는 민중교회나 해방신학, 민중신학을 믿는 사람들은 여지없이 빨갱이로 내몰기 일쑤였다.

 

내세보다 현세의 복을 위해 예수님의 가르침을 헌신짝처럼 버린 교회, 권력과 손잡고 혹은 스스로 재벌이 되어 오외된자, 약자를 억압하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가롯유다만 예수를 판게 아니다. 오늘날 예수의 이름을 팔아 배를 불리는 사람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이다.  오늘 날 '교회에만 예수가 없다'는 말은 불신자들이 기독교를 비난하기 위해 하는 소리일까?

 

*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12.03.05 07:00



오마이뉴스 기사를 보다가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이제까지 가톨릭이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해왔는데 이번에 수백 명이 내려오면 내려가 가톨릭과 맞장을 뜨겠다'

개신교 목사가 "기독교인이 가톨릭과 '맞장' 뜨겠다"는 제목의 기사 중 일부다.

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서경석 목사 얘기다. 서경석, 그는 누구인가? 한 때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감되기도 했으며 경제정의실천시민운동협의회 사무총장을 지내기도 했던 인물이다. 경력을 보니 화려하다.

- 프린스턴 신학교
- 서울고등학교
- 서울대학교 기계학학사
2003 ~ 시민단체 조선족의 친구들 공동대표
1999 ~ 서울세계NGO대회조직위원회 부위원장
1999 ~ 희망의 행진 99 진행본부장
1998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상임집행위원장
1996 ~ 민주당 서울 양천갑지구당 위원장
1995 ~ 경제정의실천시민엽합 경제정의연구소장


1948년생. 시민운동, 거기다 선량이 되고 싶어 야당의 지구당 위원장을 맡기도 하고 그의 아버지는 서광호로 새문안교회에서 언더우드를 돕던 서경조 목사의 아들이다. 아버지 서광호는 세브란스 의전 2회로 졸업한 의사다. 격변기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온 몸으로 체험한 세대다. 목사수업을 받으면서 십자군전쟁을 배우지 않았을 리도 없는데, 새삼스럽게 종교전쟁을 부추기는 천주교와 맞장을 뜨겠다니...?

예수님이 누군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고 가르친 분이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그 보다 큰 사랑이 없다’고도 가르쳤다. 끝내는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쳐 사랑을 실천한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양떼를 인도하는 사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신자들을 인도하는 사람이 목회자다.

불의를 보면 분노할 줄 알고 그 누구보다도 약자의 편에서야 할... 목자가 성직자다. 생뚱맞게 종교전쟁을 부추기는 얘기는 여기서 접자. 시민운동의 탈을 쓰고 민주투사로 가장한 얘기는 입에 담기조차 부끄럽다. 시민운동을 가장해 작은 예수님으로 위장했던 사람.... 기독교 식 흑백논리로 말하면 이런 목사는 죽으면 천국에 갈까 아니면 지옥에 갈까?


목사란 ‘예배를 인도하며 신도들에게 교의를 가르치는 성직자’라고 한다. 성직자라고 하면 생각나는 사람. 서경석 목사를 비롯해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 김진홍목사(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전광훈목사(서울사랑제일교회 목사), 김지철 목사(소망교회 담임목사), 김홍도목사 (금란교회 동사목사)...와 같은 사람이 있다.

아프리카 수단, 가장 척박하고 빈곤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다 48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태석 신부와 온몸으로 통일을 절규했던 문익환 목사, 한상령목사(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이현주목사(아동문학가)... 생각도 나고 문규현신부(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공동대표), 문정현신부(불평등한SOFA개정국민행동 상임대표 )를 비롯한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 소속 신부들도 생각 난다.

예수님은 한 분인데 왜 이렇게 극고 극의 다른 삶을 사는 성직자가 나올까? 말이 나왔으니 제주 강정마을의 예를 들어 보자.

성직자 중 어떤 분은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야 한다고 핏발을 세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성직자는 강정마을의 평화를 위해 해군기지 건설은 한사코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제주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세운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제주는 비극의 땅이다. 제주도민 3만명 혹은 8만명이... 그것도 국군과 경찰에 의해 어린아이에서 노인까지.... 억울하게 희생됐다는 4·3항쟁. 그 제주의 비극이 일어난 지 64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 그 상흔이 아직 채 아물지도 않았는데 그 섬 제주에 4층 건물 크기의 탄약고 57개를 만들고 있다. 이지스 탄도미사일 시스템으로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과 항공모함이나 잠수함이 드나들 대형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계획과 강정 주민들의 평화를 지키려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강정마을이다.
 

도대체 강정 마을의 해군기지 건설을 두고 찬반이 계속될까?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평화가 오는가, 전쟁의 위험이 닥치는가? 강정 마을의 해군기지 건설은 단순한 군사시설이 아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전진기지로 삼기 위해 필요한 시설이 강정마을 해군기지다.

제주에 미군기지가 들어서면 미국과 중국 양자 대립이 아니라 미·중·한국의 관계로 군사적인 대립관계가 형성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과 중국과의 대립에 한국의 강정이 양국의 이해관계의 중심에 서 한·미·일과 북·중·러 신냉전 대립구도를 만들 수 있는 뇌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했던가? 미국의 동북아 전략의 촛점은 중국이다. 실제로 지난 해 11~12월 연이어 실시한 미·일 해상연합훈련, 육상자위대 훈련, 육해공 자위대 통합훈련 등도 모두 중국을 겨냥한 것이었다. 지난 해 1월부터는 한일군사협정 체결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한·미, 미·일 동맹으로 연결되는 미국 주도의 동맹체제를 한·미·일 ‘3국 안보 동맹체제’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전쟁을 원하는가? 평화를 원하는가? 성직자가 세계평화를 반대하고 일류의 종말을 앞당길  전쟁을 부추긴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해군기지 건설이 한반도의 평화는 물론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성직자는 온 몸을 던저 막아야 한다. 그게 성직자의 길이요, 예수님의 뜻이 이땅에 이루어지게 한느 길이다. 평화롭게 사는 제주 도민에게 중국의 미사일이나 핵공격의 목표가 되도록 만들겠다는 성직자는 마귀들린 사람 아닐까?  

위의 이미지들은 다음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2.01.23 06:57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성들이 원하는 신랑감 조건의 평균은 '연 소득 4348만원, 자산 1억9193만원, 키 177.51cm'. 신부감 조건의 평균은 '연 소득 3161만원, 자산 1억7193만원, 키 163.63cm'.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대한민국 2030 미혼남녀 결혼 인식‘에 관한 연구조사 보고서에 나오는 자료다.

사람 됨됨이나 인격이 아니라 소득이나 키가 신랑, 신부감의 선택조건이라니 씁쓰레 하다. 조건이 붙은 사랑은 가짜라던데... 저런 조건이 충족되면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 텔레비전의 영향 때문일까? 얼짱, 몸짱문화가 젊은이들의 우상이 된 지 오래다. 학교가 길러내겠다는 이상적인 인간상은 어떤 모습일까?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새에서>

우리나라 교육법 제 1조는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인류공영의 이상 실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학교는 분명히 얼짱이나 몸짱이 존경받는 사람이 아니라 민주시민으로서 자질을 갖춘 자주적인 인간,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는 ‘홍익인간’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보고 있다.

학교가 정말 이타적인 인간, 홍익인간을 길러내고 있을까? 천만에 말씀이다. 오늘날 출세(?)를 했다는 사람,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보면 분명히 학교가 길러내겠다는 인간상은 아니다. 아니 이타적인 인간이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게 선이요. 승자지상주의 가치관의 인간’, 이기적인 인간을 길러내고 있다고 보아야 옳지 않을까?

향락과 퇴폐적인 문화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이전의 인간적이고 순수성이 남아 있던 시대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이상적인 인간으로 생각했을까? 우리조상들이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여겼던 사람은 몸짱이나 얼짱도 아니요, 반드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도 아니었다. 옛사람들의 이상적인 인간상은 ‘신언서판(身言書判)’ 네 가지 조건을 갖춘 인간이었다. 신수(身)와 말씨(言), 문필(書)과 판단력(判)을 기준으로 사람 됨됨이를 구별했다.


신(身)이란 사람의 풍채와 용모를 뜻하는 말이다. 신은 사람을 처음 대했을 때 첫째 평가기준이 되는 것으로, 아무리 신분이 높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몸가짐이 바르지 못한 사람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말이다. 오늘날처럼 소신 없이 내게 이익이 되는 일이면 신의도 헌신짝처럼 버리고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둘째, 언(言)이란 사람의 언변을 이르는 말이다. 이 역시 사람을 처음 대했을 때 아무리 뜻이 깊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도 말에 조리가 없고, 말이 분명하지 못했을 경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셋째, 서(書)는 글씨(필적)를 가리키는 말이다. 예로부터 글씨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 주는 것이라 하여 매우 중요시하였다. 그래서 인물을 평가하는데, 글씨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글씨에 능하지 못한 사람은 그만큼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넷째, 판(判)이란 사람의 문리(文理), 곧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판단력을 뜻하는 말이다. 사람이 아무리 체모(體貌)가 뛰어나고, 말을 잘하고, 글씨에 능해도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능력이 없으면, 그 인물됨이 출중할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성현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은 표현의 차이는 없었을지 몰라도 궁극적인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자는 '군자'를 가장 인상적인 사람을 군자라고 보았다. 군자란 ‘학문적으로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걸어야할 길을 찾는 사람, 도덕적으로는 원만한 인격을 이룬 사람’을 말한다. 군자는 자기의 입장보다는 남의 입장을 먼저 고려할 줄 알고, 자기의 심성 계발과 인격도야에 부단히 노력하고 인덕(仁德)을 갖추고  도(道)를 품어 행하여 사회에 기여하는 자세를 지닌 사람을 말한다.

기독교의 이상적 인간상도 그렇다.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고 타인의 구원을 위해 희생과 봉사를 할 수 있는 헌신적인 인간이 이상적인 인간으로 보았다. 불교의 이상적 인간은 진리를 깨달아 붓다처럼, 사법인(四法印)과 사정제(四聖諦)를 통해 진리를 깨달아 지혜와 자비를 누리는 사람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보았다. 비록 표현을 달랐지만 오늘날처럼 얼짱, 몸짱도 아니요 돈이나 사회적 지위가 사람됨됨이의 기준이 되지는 않았다. 


자신의 생각은 없고 남의 생각으로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돈많은 사람, 잘생긴 사람,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이상적인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회. 얼짱이나 몸짱처럼 외모로 사람 됨됨이를 판단하는 사고방식은 건강한 사람의 생각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자식이 신의도 분별력도 없는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인간이 되기를 원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신념도 철학도 헌신짝처럼 팽개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고 존경받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학교는 어떤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가?  자주적인 생활능력을 갖춘 사람? 민주시민으로서 자질을 갖춘 합리적인 사람?  민주의식과 역사의식을 갖춘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시민? 불의를 보고 분노할 줄 아는 정의롭고 용기 있는시민.....을 길러내고 있는가? 


새해 아침에 생각해 보는 이상적인 인간상이 공허해 보이는 이유는 그런 사회가 요원하기 때문만 일까? 윤동주님의 서시가 생각나는 새해 아침에.....

민족의 대명절 설날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소원하시는 일 모두 이루십시오.
새해에는 여러분의 가정에 화평과 사랑이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11.12.25 06:20



예수. 그분은 누구인가?

오늘은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난지 2011년이 되는 해이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생애와 철학은 현재 기독교(개신교와 천주교 포함)에서 전하는 교의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천국과 지옥 그리고 가족의 행복과 평안을 추구하는 교회의 가르침과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서 전하는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아니 거꾸로 가고 있다는 표현이 옳을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예수님이 원하시는 세계,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것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기독교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꾸로 가르치게 된 것은 자본주의와 동거하면서 부터가 아닐까 생각된다. 아니 로마에서 기독교가 국교로 인정되면서부터 일게다.

오늘날 화려한 교회, 부자교회는 예수님은 없고 권위와 형식만 있는 기독교다. 가끔 예수님의 정신, 성경을 가르침대로 살자는 퀘이크교와 민중신학, 해방신학과 같은 이단(?)이 등장하지만 수명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것도 그럴것이 천당과 지옥 10일조를 강조하지 많으면 생존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만들고자 했던 세상, 예수님이 바라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예수님은 한마디로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고 가르쳤다. 이웃이란 옆집이 아니라 당신의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 당신의 도움이 없으면 생명을 부지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나눠주고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그런 예수를 닮아가는 사람, 작은 예수님들이 사는 세상이 천국이 아닐까? 그런 모봄을 보이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내놓지 않았는가?

예수님이 바라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예수님이 바라는 세계는 자신의 능력껏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세상이다. ‘구하라 주실 것이오’라고 했지만 그 구함은 가만히 앉아서 기도를 하면 모든 걸 다 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하느님’ 실천을 하지 않는 자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게 아닐까? 천국이란 남이야 죽든 말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부해 교회에 한번씩 나와 속죄를 하면 깨끗하게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이웃을 위해 나눠 주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세상, 사랑이 넘치는 세상이다. 


두벌 옷도 가지지 말고, 달라는 사람에게 거절도 하지도 말고, 오리를 가자는 사람에게는 십리를, 겉옷을 달라는 사람에게 속옷까지 벗어 줄 수 있는 사랑.... 이렇게 살지 않고는 이 땅이 하늘나라가 될 수 없다고 스스로 모범을 보이시다가 십자가라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형벌을 받고 죽어간 사람... 그분이 메시아요 구세주다. 예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사람이 늘어나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작은 예수가 되는 세상....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하나 둘 예수를 닮아 가면 이 땅이 천국으로 바뀌게 된다고 가르쳐지 않았는가?

언젠가 책을 읽다가 ‘이 세상에서 예수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이 마르크스다’라는 글을 일고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말만 들어도 소름이 돋는 가장 악마를 많이 닮은 사람으로 알고 있는 사람. 유물론이니 자본론이니 하는 말만 들어도 겁이 나는 그 사람 칼 마르크스.. 그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과 가장 많아 닮았다는 말인가? 1980년대 민주화의 바람이 불면서 조금씩 듣고 읽은 책에서 나는 왜 마르크스가 예수를 가장 많이 닮았다고 했는지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마르크스, 그는 누구인가?

"하나의 유령 -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에 떠돌고 있다."로 시작하는 공산당선언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괴물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데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왜 아직도 마르크스는 금기의 대상, 괴물이요, 악의 상징으로 그의 책이 금서처럼 되어 있는가?

1980년대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나타난 마르크스의 저서, 자본론을 비롯한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공산당선언을 읽어보지도 못한 사람이 많을까? 이미 우리나라에도 출판된 번역본 또는 해석본으로는 《공산당 선언》(남경태 옮김, 백산서당),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 선언》(강유원, 뿌리와이파리), 《새로운 공동체를 위한 운동 공산주의 선언》(박찬종, 아이세움) 등이 출간되었지만 레드 콤플렉스에 찌든 사람들은 마르크스 얘기만 해도 몸서리를 친다.

기독교와 마르크스는 공존할 수 없는가?

지금도 비슷하지만 내가 이론과 실천사에서 출간한 자본론을 읽을 때만 해도 이런 책을 읽는 사람은 사상이 불온한 사람취급을 받았다. 아니 러시아혁명이, 중국의 혁명과 북한의 주체사상, 복지를 말하고 평등을 말하는 사람치고 마르크스를 빼놓 수 없다. 오늘날 지식인들치고 자본론을, 변증법적 유물론이며 사적 유물론을 읽지 않은 사람이 누구며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누군가?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꾸는 책. 무산계급인 노동자가 읽으면 위험(?)한 책. 마르크스, 그가 원하는 세상은 평등한 세상, 노동해방의 세상이다. 경쟁을 통해 승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이 아니라 평등의 가치, 복지의 가치를 이상으로 하는 노동자들이 해방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 마르크스가 원하는 세상이다. 그가 쓴 책 속에 담긴 이념은 예수님이 원하는 내세의 평등이 아니라 현실의 평등을 실현하려 했던 사람이다.

예수님과 마르크스는 둘다 현실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꿈을 꾼 꿈쟁이다. 예수님이 꿈꾸던 천국과 노동자의 해방을 꿈꾸던 마르크스는 왜 실현불가능할까?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와 공존할 수 없듯이 변절한 기독교와 마르크스는 또한 영원히 공존하기 어렵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작은 예수가 된다면 몰라도... 오늘은 사랑의 화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이다. 모두가 예수님의 사랑으로 내일의 천국을 꿈꾸는 하루가 됐으면 좋겠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8.19 05:00



입만 열면 친서민이니 중도실용을 외치던 이명박대통령이 이번에는 ‘공생발전을 위한 새로운 시장 경제’를 외치고 있다. 4대강 사업으로 환경을 파괴하면서 지구환경보전 어쩌고 하고, 친서민 어쩌고 하면서 초등학생 무상급식을 복지포퓰리즘이란다.
이명박 대통령의 현란한 8·15경축사를 들으면 이 사람은 자신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나 하는 지. 도대체 어느 나라 예기를 하는 지 헷갈린다. 기독교 장로이기도 한 이명박 대통령... 모든 기독교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는 기독교인들의 머리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었기에 이렇게 후안무치한 짓도 마다하지 않을까?


기독교의 핵심 사상은 사랑이다. 예수는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고 했다. 그 이웃이 누군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이웃이란 ‘옆집에 사는 사람’이 아니다. 이웃이란 도움이 필요하는 사람... 당장 도와주지 않으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그런 사람을 성서는 이웃으로 표현했다. 안식일이 생긴 연유를 보면 안다. 기독교인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십계명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는 안식일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엿새 동안 일하고 하루를 쉬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노예를 보호하기 위한 하느님의 사랑에서 시작된 것이다. 안식일이니 안식년이니 희년이란 그런 의미다.

그런 사랑을 실천하자는 게 기독교 정신이다. 예수의 사랑을 실천해 이 땅을 하느님의 나라(천국)으로 만들겠다는 게 기독교인들의 임무다. 그런 예수의 제자가 되겠다는 이명박 장로가 상위 20%의 소득이 64조 원을 웃돌아 ‘20대 80의 사회’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독교인 수가 전체 인구의 25%가 된다고 하니 적어도 4명 중 한 명이 기독교인이다. 세계70억 인구 중 기독교인 수가 22억 9245만명으로 약 3분의 1이 기독교인인 셈이다. 기독교인들이 짝통이 아니라면 이 세상은 벌써 예수가 바라는 천국이 실현되고 있을 것 아닌가?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내 탓이로소이다’를 외치며 예수를 따라 살겠다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데 왜 세상은 날이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는 것일까? 기독교신자들은 이 땅을 하늘나라로 만들기 위해 예수의 고난에 동참한다고들 한다. 고통과 고난은 다르다.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고난이란 어떤 것일까? 고통이란 ‘몸이나 마음이 괴롭고 아픈 느낌’ 즉 개인적인 것이다. 그러나 고난은 ‘괴로움과 어려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자신이 아닌 이웃과 주변의 문제로 당하는 아픔’을 뜻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고통과 고난을 혼동하는 건 아닐까?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뜻은 바로 고난에 동참이다. 예수가 가장 사람한 사람은 누군가? 가난한 자와 병든 자, 눈먼 자, 과부, 소외 받은 자.... 그런 사람 아닌가? 예수는 자신이 아니라 그런 사람을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태어났고,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를 졌던 게 아닌가? 그렇게 사는 게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오늘날 이 땅에 고난당하는 사람은 누군가? 예수를 믿네 하는 사람들들은 고난에 동참하고 있을까?  


고난에 도찬하는 사람은 누군가? 역사적으로 일제시대 민족해방을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팽개치고 간도에서 혹은 만주에서 혹은 감옥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 아닌가? 박정희정권 아래서 핍박받고 굶주리며 고통 받는 노동자를 위해 자신을 불살라 그들의 고통에 동참한 전태일열사가 바로 예수의 길을 따라 가는 사람이다. 자신보다 해고된 노동자들의 아픔을 보다 못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맞서 35m 높이의 타워크레인에서 226일 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위원이 고난에 동참하는 기독교인이다.


에어컨이 잘 된 냉방 교회에 앉아 ‘제탓이로소이다’라며 가슴을 치는 사람과 찜통같은 크레인 속에서 이웃을 위해 목숨을 건 투쟁을 하고 있는 김진숙과 누가 더 기독교인 다운가? 말세가 되면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 양들을 미혹한다고 했다. 양심은 죽은 지 오랜데 욕심만 살아서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는 선지자, 목회자는 양의 탈을 쓴 늑대다. 그래서 예수는 너희는 거짓선지자를 조심하라고 했다. 거짓을 진실로 만드는 언론인, 선량한 주권자를 기만하는 정치인,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줄밖에 모르는 공무원, 권력의 주변에서 학문에는 관심이 없고 권력자의 눈도장 찍기에만 마음이 있는 학자들, 짝통 기독교인들이 주인되는 세상에는 민주주의도 복지사회도 꿈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11.08.12 05:00



교회나 성당에서 가장 강조하는 게 신도들의 기도생활이다. 성직자들은 ‘하느님은 자비하신 분이기 때문에 어떤 기도라도 기도만 하며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다 들어주신다.’고 가르친다.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1-13)."
기도를 강조하며 신도들에게 가르치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하느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누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다 아신다고 했다. 그런데 왜 기도를 해야 들어주신다고 했을까? 그렇다며 모든 기도는 전능하신 하느님이 다 들어 주실까? 그러면 천만 기독교인들이 반세기 넘게 기도하는 통일은 왜 이루어주지 않을까? 천주교에서 벌이는 4대강 반대는 기도는 왜 신이 들은 척도 안할까? 부자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 아들이 일류대학에 붙게 해 달라는 기도, 남편의 불치의 병을 낫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는 과연 신이 들어주고 있는가?

기도란 무엇인가?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이라는 책을 저술한 루이 에블리‘기도란 사람이 신에게 무엇을 간청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받아들이는 행위’ 라고 정의한다. 그는 ‘사람들이 잘못된 기도로 하느님을 제멋대로 횡포를 부리는 폭군으로 만들고 있다’면서 기도란 ‘인간은 제안하고 하느님은 그것을 결정’하는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런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아 ‘인간을 하느님의 노리개로 전락시키고, 하느님을 제멋대로 횡포를 부리는 폭군으로 만든다.’고 설파하고 있다.


교회나 천주교에서 성직자들이 가르쳐주는 기도와 왜 루이 에블리의 해석이 다를까? 애블리는 ‘그리스찬의 기도란 주문을 외움으로서 위기가 사라진다는 마술은 기독교회 기도에는 없다.’고 단언한다. 산신령에게 드리는 기도는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기슭에서 산삼을 찾는 심마니들이 입산 직전에 드리는 기도문이다. 심마니의 경우 산삼을 발견하는 일은 생존을 위한 절실한 바램이다. 이 바램이 산신령의 게시로서 꿈을 통해서 응답할 때 심령과 심마니는 서로 융화되어 그 심마니의 응답이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성서가 가르치는 기도란 ‘하느님의 뜻인 성서나 신의 계획이나 그분의 의지에 순종하려는 노력’이라고 풀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마니에게 축복이란 산신령에 의해서 자기 소원이 이루어지는 일이다. 언제나 자기 욕망이나 의지에 신령이 따라주기를 바라는 일은 무속적(巫俗的)인 기도가 된다. 그러나 ‘자기 의지가 신의 의지를 따른다’는 것은 성서에서만이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는 일을 통해 역사 속에서, 고난을 당하는 일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신도들이 하는 기도란 어떤 것일까? 그들은 기도를 ‘신의 의지에의 순종하는 것이라 보기 보다는 능력이나 권능, 불행이 없어지는 것, 물질의 번영, 성공 등,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내용들이다. 자본주의에서 도덕이나 윤리를 말하면 바보취급 당하기 일쑤다. 직장 안에서 원칙을 말하거나 잘못을 비판 하는 사람은 직장사회에서 동료로 취급받지 못한다. 직장에서는 무조건 상사의 명령에 따르고 충실하게 복종하는 게 살아남는 길이다.

이런 경우 교회에 나가 우리 상사가 회개하고 바른 마을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게 기독교인의 도리일까? 살인강도가 들어와 식구들을 죽이고 있는데 앉아서 하느님께 강도를 물리쳐 달라고  기도하면 들어주실까? 대통령이 잘못된 정치로 가난한 사람들이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는데 하느님께 대통령의 마음을 돌려달라고 기도만 하면 하느님은 들어주실까? 잘못된 교육정책으로 교육의 위기를 맞고 교실이 무너지고 있는데 교회에서 간절히 기도하면 교육이 살아날 수 있을까?
 
‘하느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하느님 스스로 역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양을 탈을 쓴 목자는 시류에 따라 혹은 하느님의 뜻을 외면하고 혹은 권력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때로는 재벌의 목소리를 신의 목소리라고 거짓증언하기도 한다. 지혜로운 양은 누가 선한 목자인지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교회에서 앉아 입술로만 하는 기도, 실천 없는 기도는 주술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11.05.21 05:00



예수님의 동생이자 초대 교회의 유력한 지도자였던 야고보는 교인들에게,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라고 경고했습니다. 지도자가 되지 말라고 한 뜻은 지도자가 받을 더 큰 심판보다 지도자 때문에 발생할지도 모를 교회 공동체의 엄청난 피해를 더 염려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역사를 돌이켜 보면, 지도자를 잘못 만났거나 잘못 선택한 바람에 불안과 공포에 떨고, 끔찍한 비극을 겪어야 했던 기억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는 물욕과 권력욕과 명예욕에 취한 교회 지도자들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소금이어야 할 교회가 병들어 가는 이유가 무엇일가요? 교회는 늘어나는데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은 왜 날이 갈수록 심해질까요?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성서에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마태복음 5:3)’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목회자들은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헌금을 강요하세요? 제정일치(祭政一致)시대 십일조관행을 제정(祭政)이 분리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바꾸지 않고 있습니까? 세금은 세무서에서 따로 내는데 소득의 십분의 일을 내는 게 맞나요? 그리고 시민들이나 기업들은 세금을 다 내는데 왜 교회는 세금을 내지 않는지요? 교회가 세금을 내지 않는 대신 가난한 사람들이 조세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양심적이지 못한 일이 아닌가요? 십일조 안내면 왜 하나님 재물을 훔치는 도둑이라고 강조하시나요?

성서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기도는 하느님이 다 들어주신다고 했는데 기도(祈禱)를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야고보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예배는 강조하고 실천을 강조하지 않는지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절) 하지 않았나요?

교회는 권력의 시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일제시대는 황국신민화에 앞장서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거치면서 왜 ‘권력은 위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며 불의한 권력을 두둔하던 아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왜 독재자를 두둔하고 살인자를 비호해야 할까요? 하느님은 가난한 자, 소외된 자, 병들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과 아픔을 함께 하셨던 분이 아닌가요?


정의보다 순종을 강요하는 게 하느님의 뜻인가요? 야훼를 강조하는가, 아니면 예수님을 강조하는가 아니면 성령을 강조하는가에 따라 하느님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는 건 상식입니다.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도 아는 상식을 목회자는 왜 역사의 고비마다 신자들에게 정의보다 순종을 강요해 불의에 침묵하도록 가르쳐 왔습니까?

교회가 하느님보다 소중한가요?
교회란 무엇입니까? 초대교회를 생각해보세요. 초대교회 예수님의 제자들은 선교를 하다 잡히면 십자가에 달리는 희생을 당해야 하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순교를 각오하는 모임이 교회의 시작이 아니었던가요? 죽음의 결의를 다지는 장소, 실천의 각오를 다지는 장소가 교회 아니었나요? 그런데 그런 교회가 하느님이 바라는 모습으로 운영되고 있나요?


유다인들의 과월절이 가까워지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인자하시고 순한 양 같으신 예수님이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과 환금상 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모두 쫓아내시고 환금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며 그 상을 둘러엎으셨습니다. 그리고 비둘기 장수들에게 "이것들을 거두어 가라. 다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꾸짖으셨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장하는 사람들의 집으로 예수님의 꾸중을 듣지는 않을 런지요?

교회는 죄를 씻어주는 세탁소가 아닙니다.
누구나 회개만 하면 다 용서해 주신다고요? 전두환처럼 수많은 광주시민을 죽여 놓고 ‘하나님을 믿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하면 속죄가 되는 걸까요? 진정한 회개란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는 것’(요나서 3장 8절)이라고 했습니다. ‘강포’란 히브리어로 ‘하마스’ 즉 ‘모든 형태의 사회적 불의를 뜻하는 말로 ‘억압과 착취와 박해 등 인간에게 저질러지는 사회적 폭력’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사회에서 행하던 일상적 폭력에서 떠나 정의와 공평의 삶을 살 때 하느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교황이 허락한 성직자들 외에는 성경을 읽을 수 없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성경을 읽을 수도 없었습니다. 오직 신부들이 전하는 것만 신자들은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은 교황의 생각이 그들의 신앙과 행위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은 어떨까요? 성서를 가르치는 신부님. 목사님. 그분들의 시각에 따라 강론이 달라지고 신자들의 신앙관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향한 ‘교회에만 하느님이 없다’는 비판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그 것은 교인들과 교회지도자가 만든 자업자득이라는 사실을 겸허하지 받아들일 때 교회는 소금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5.10 06:04



경북 문경의 한 채석장에서 예수가 처형당할 때처럼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하의는 흰 속옷차림의 시신이 발견돼 화제다. 다리와 목은 십자가에 줄로 묶여 있었으며 양손과 발에는 대못이 박혀 있었다. 김씨의 오른쪽 옆구리에는 흉기에 찔린 상처가 있어 마치 예수의 죽음을 형상화 하고 있었다....

언론에 보도된 십자가 시신 얘기다.

광신적인 종교 얘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1993년 4월19일 집단자살사건. 이 사건은 광신도들의 방화로 95명 중 86 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1993.10.28. 24:00에는 예수가 이 땅에 재림할 것이라고 예언하여 성인 남녀는 물론 청년학생들까지 학업을 포기하고 예수의 재림을 준비하고 있다가 예언이 빗나가자 가정파탄과 충격으로 자살까지 한 사람도 있었다. 몇 년 전 미국에서는 수백명의 사이비 종교인들이 집단자살한 일도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예수의 재림을 예언했다가 빗나간 사건도 있었다.

                                      <이미지 출처 : 경향신문>

신을 보는 시각뿐만 아니다. 평생 동안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이상한 종교에 빠져 전 재산을 날리는 사람도 있다. 평생을 성실하게 살다가 돈과 출세에 눈이 어두워 어느 날 갑자기 변절자가 되기도 하고 신념을 초개같이 팽개치는 사람도 없지 않다. 무엇이 사람을 종교에 현혹돼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게 하고 또 신념을 포기하고 변절자가 되게 하는가?

이러한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인식의 문제. 세계관(철학)의 문제를 살펴보자.

먼저 ‘세계는 인식(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명제를 두고 ‘인식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세계는 신의 영역이지 인간의 능력으로 인식할 수 없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다시 말하면 ’물질과 의식 중 어느 것이 선차적이냐에 따라 세계는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세계는 인식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은 정신과 물질 중 물질이 먼저라고 보는 유물론적 세계관이요, 세계는 인간의 인식 밖의 문제며, 물질보다 정신이 먼저라고 보는 사람들은 관념론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다.

유물론과 관념론을 좀 더 알기 쉽게 이해하기 위해 예를 한 가지 들어 보자. ‘내 눈 앞에 책상이 있다’고 하자. 관념론자들은 책상이란 정신이 있기 때문에 책상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유물론자들은 책상을 내가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의식과는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전자가 관념론자요, 후자가 유물론자다. 관념론자들의 생각은 사람이란 영혼과 육체(의식)가 따로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분리되어 지옥이나 천국에 가서 살게 된다고 믿는다. 그런가 하면 유물론자들은 사람의 영혼이나 정신은 뇌의 작용으로 파생된 의식으로 작용으로 사람이 죽으면 함께 소멸한다고 보는 것이다.

거칠게 표현하긴 했지만 유물론과 관념론은 세계를 인식하는 기준이 이렇게 의식과 물질이 어떤 것이 선차적인가에서 차별화되고 전자는 무신론으로 후자는 유신론과 연결되기도 한다. 관념론의 세계는 유신론뿐만 아니라 세계는 신의 피조물이요, 인간의 운명 또한 신의 뜻에 의해 좌우된다고 보는 것이다. 운명론적 세계관은 잘 생기고 못생긴 것, 부자와 가난한 자 까지도 조물주의 뜻이기에 신의 뜻에 따라 사는 게 인간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국가 특히 독재정권이나 군사정권은 세계는 인식할 수 있고 정신은 물질의 산물이라는 유물론적 세계관을 금기시한다. 특히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고 변화한다’는 변증법적 세계관이나 사적 유물론을 얘기하면 색깔 칠을 당하기 일쑤다. 이러한 세계관은 운명론을 거부하고 인간은 몰론 정치며 경제며, 사회가 무엇인지 세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학교에서 세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유물론 학생들이 배운다면 뒤가 꾸린 사람들은 자신의 실체가 드러날까 두려운 것이다.

‘십자가 시신’ 얘기로 마무리하자. ‘십자가 시신’ 주인공이 자살인지 아니면 타살인지는 수사결과를 지켜 볼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기독교(천주교든 개신교 종파를 초월해)의 성경 어디에도 자신이 예수처럼 죽으면 신이 되거나 영원히 산다는 구절은 없다.

인간의 운명이 신의 뜻에 의해 신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하고 신의 광대로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가의 여부는 자신의 세계관이 결정할 문제다. 그러나 신의 세계, 영혼의 세계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인식할 수 없고 인간은 신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맹신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는 불행한 일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번뿐인 인생, 신의 뜻에 따라 신의 눈치만 보고 살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행복을 찾을 것인가는 오직 자신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2.06 17:33



 서울이라고 왔는데 서울이 아니고 부산이나 강릉이라면 기분이 어떨까? 목표가 다른 종착역에 도달한 사람, 더구나 다시 되돌아가기는 너무 늦은 처지에 놓였다면 그 회한과 후회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소유물 중에서 진짜가 아닌 가짜라는 것이 밝혀졌을 경우에도 심정은 비슷할 것이다. 만약 내가 평생을 공들여 믿고 있던 신이 있었는데 그런 신이 없다는 것이 확인 됐을 때도 그렇다. 자신이 믿고 있는, 그리고 알고  있는 지식이나 신념에 대해 잘못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경우가 있을까?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새로운 환경에 접하면 자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지식이 잘못이었음을 깨닫고 황당해 할 때가 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지식이나 생각이 잘못됐을 때는 허탈한 심정이 된다. 필자도 그런 일을 여러차례 경헌한 일이 있다. 개신교를 다니면서 신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다가 감리교 본부에서 발행한 '역사, 예수, 교회'라는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던 일이 그렇다.


장로교 고신파에 속한 교회에 다니던 필자는 신이란 절대자이고 하늘 위에서 사람의 마음 속을 유리병 속에 든 물체를 보듯, 살피고 있는 분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 주준의 신자가 안병무선생님이 쓴 '역사와 해석'이나 서남동 선생님이 쓴 '민중신학', '해방신학'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이 얼마나 편협한 시각의 신자였던가를 깨닫게 된다. 신은 신자의 수준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으며 같은 교회에 다녀도 다른 신을 섬기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필자는 학교에서 가르쳐 준 지식이 역사의 전부라고 알고 있었던 때가 있었다. 나이가 40이 넘어서 네루가 쓴 '세계사 편력'을 읽고 난 후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함석헌선생님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와 '찢겨진 산하',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를 읽으면서 왜 교과서가 그렇게 씌어질 수밖에 없었는가를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에 비추어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지식으로는 '속 좁은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편협한 시각의 인간'을 양성할 수밖에 없음을 뒤늦게 깨달게 되었다. 


제도교육의 목적은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 양성이다. 독재권력이 교육권을 장악하고 있다면 어떤 인간을 양성할까? 이영희선생님의 '전환 시대의 논리'나 '역설의 변증'을 읽으면서 학교교육이 얼마나 체제내화 된 인간을 양성하는가를 처절하게 느낀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과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우리 역사교육이 얼마나 편협한 세계관에서 맴돌고 있는가를 알게 됐다. 

학교가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식민지시대 교육은 피교육자의 머리 속에 일본을 흠모하는 황국신민을 길러내고, 박정희 군사정권은 유신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가르쳤다. 독재권력은 그들이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양성하고, 자본은 비판의식이 거세된 시비를 가리고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을 길러 내기를 원치 않는다. '철학 에세이'나 '노동자의 철학', '세계 철학사', '철학염습'과 '철학과 세계관의 역사'를 읽으면서 학교가 왜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가를 알 수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전부라고 믿고 사는 사람이 있다. 더구나 그가 알고 있는 지식이 진실이 아닐 때는 개인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으로도 불행한 일이다. 특히 이러한 사람이 교사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위치에 있는 경우 더더욱 그렇다. 반공교육의 이데올로기에 갇힌 사람들. 현대 과학이 절대진리라고 착각하는 사람들... 착각은 자유라지만 한 사람의 착각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피해자가 된다면 문제가 다르다. 자신의 세계에 갇힌 사람들이 착각에서 하루 빨리 깨어나는 것이 본인은 물론 다수가 행복한 사회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사람아 사람아! 그대는 김남주의 처절한 시와 도종환의 사랑을.. 페다고지와 그린북이.... 정치경제학과 경제사에 빠져 울면서 자신을 뒤돌아 본 일이 있는가? 여기 차마 밝힐 수 없는 책들로 내가 거듭나는 경험을 한 사람은 안다. 정치가 왜 이 모양인지.... 왜 빈부격차를 좁히지 못하는지... 교육이 왜 사람들을 우민화시키는지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10.12.28 23:09


 -  평신도가 생각하는 천국과 지옥 -

"여러분! 지옥 있습니다. 정말 있습니다. 예수 믿고 천당가십시오"
"애수천당, 불신 지옥!"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소를 지나가다보면 자주 듣는 낯익은 소리다.

예수를 믿으라는 말인가? 아니면 ‘"지옥불이 두렵거든 교회에 나와 무릎 꿇고 지은 죄 자복하고 죽음에 대비하라!"는 협박인가?

이들이 말하는 지옥이란 정말 있을까?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평신도의 입장에서 지옥을 한번 해석해 보자.


예수는 당시 바리새인과 같은 위선적인 지식인,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세리를 향해 ‘착한 사람이 되거라, 잘못을 뉘우쳐라, 회개하라'고 타이르고 권면했지만 들은 척도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에서 그들을 향해

"너희가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아니하고......"
"마음이 완악하여 귀로는 둔하게 듣고......"
"비유로 말함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라"고 한탄하고 애통해 한 것이다.

‘이것이 진리다. 이렇게 사는 것이 옳다'고 목이 아프도록 쉬지 않고 밤낮으로 외치고 모범을 보여줘도 알아듣지 못하고 뉘우치지 않는 사람을 향해 '죄인은 지옥으로 갈 것이다' '세상 끝 날에 심판을 받을 것이다'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

어머니가 우는 아기를 달래다 못해 '호랑이 온다'고 한 말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호랑이를 강조하여 사랑하는 아들이 까무러치게 할 어머니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이 떡을 달라는데 돌을 주겠느냐?" 하신 예수다. 이웃 사랑 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예수가 지옥이 무서워 하나님의 눈치를 보면서 비위를 맞추고 사는 비열한 인간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같은 성서를 가르치더라도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중 어느 복음에 있는 성구를 강조하느냐에 따라 위로 받는 이가 다르다.

천국과 지옥, 성(聖)과 속(俗)을 이분법적으로 분류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면 모두가 거짓이요, 착한 사람이 아니면 모두가 악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함정이 있다.

천국을 보상으로 받는 조건을 붙인 선한 행위는 순수하지 못하다.

댓가를 받기 위한 선행은 선행이 아니다.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그 능력이 두려워 복종하는 것은 주체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의 가치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유치한 단계의 어린이는 부모의 명령이나 지시대로 행동한다. 융통성이란 생각할 수도 없다.

성서의 교훈적인 내용은 자기수련이나 인격도야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지만 천국이나 지옥을 강조하고, 신의 전지전능을 강조하면 신비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인간의 육체적인 사랑을 능가하는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신의 사랑을 아카페라 한다.
'인간의 악함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떡을 달라는데 돌을 주겠느냐,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의 사랑보다 크다'라고 성서는 가르치고 있다.

구약성서의 기독교 정신은 안식년, 희년, 안식일로 표현된다.

50년마다(희년) 노예된 자는 노예신분에서 해방시켜주고 토지를 팔았던 농민은 자신의 토지를 회복한다. 안식일의 정신도 마찬가지다. 매일 놀고먹는 지배계급은 쉬는 날이 필요 없다. 그러나 일주일에 하루라도 쉬지 않으면 다음 한주일 동안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안식일을 정하여 지키게 했던 것이다.

율법이나 천국이나 지옥은 사람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사랑을 가르치기에 인색한 목회자. 이 세상에 행복보다 내세를 위해 고통을 참으라고 강조하는 목회자. 이땅이 천국이라고 가르치기 보다 지옥을 강조해 하느님의 자녀를 불안에 떨게 하는 목자는 거짓선지자다.
사람을 공포나 불안에 떨게 하는 어떤 종교도 그것은 가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10.12.28 08:56


<삶이 종교에 종속된 사람들>

기독교 신문에 따르면 현재 한국 교회의 71%이상이 10%도 안되는 봉사활동 지출을 하고 있다. 20% 이상 사회봉사 비용을 지출하는 교회는 8.9%에 불과하다. "일부 목사들의 월수입이 수천만원으로 전체 예산의 3.8%가 교역자들의 생활비로 쓰여 왔고, 일부 대 사찰의 승려들이 외제 고급승용차를 타고 일년내내 특급호텔에서 지낸다"는 보도는 일반 상식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1993.10.28. 24:00에 예수가 이 땅에 재림할 것이라고 예언한 종교는 신도들이 집을 팔고 학업을 포기하고 예수의 재림을 준비하고 있다가 예언이 빗나가자 가정파탄으로 자살까지 한 사람도 있었다. 몇년전 미국에서는 수백명의 사이비 종교인들이 집단자살한 일도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예수의 재림을 예언했다가 빗나간 사건이 있었다.


도대체 종교가 무엇이기에 하나 뿐인 생명이나 전 재산 까지 바쳐 가면서 빠져 들 수 밖에 없을까?

종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좀더 상세히 알아보자.

어떤 철학자는 종교를 "무지와 공포의 소산"이라 표현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종교를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통치 수단으로 기능하며 피지배자의 억압 수단이 된다고 비난하고 있다.

<원시종교>

단군(제사장) 왕검(지배자)의 명칭에서도 볼 수 있드시 원시시대는 종교의 수장인 무당이 정치의 우두머리로 군림하던 때를 제정일치시대라고 했다.

이 시대는 특정 동식물이 특정 부족의 수호신으로 신앙하던 토테미즘이 발달하기도 하였고, 지배자의 야망이 인민의 지배수단으로서 종교를 권장하기도 하고 국교로 인정하여 현실의 고통은 내세의 영생복락을 위해 현실을 희생하라고 가르치기도 하였다.

민중의 정치의식이 낮은 시대는 원시종교나 샤머니즘이 지배수단으로서 이데올로기 역할을 했으나 점차 민중의 정치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비판의식의 향상 되면서 체계적인 신앙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삼국시대 불교는 민중의 정치의식을 마비시키고 현실세계에 대한 혐오감을 갖게 하여 내세의 준비를 위해 끝없는 희생과 인내를 강요하게 했다.

<불교는 어떤 종교인가>

불교의 교의를 한번 살펴 보자. 불교에서 붓다(Buddha)는 한자어로서 진리를 깨달는 자를 가리키는데,불교에서는 불타,즉 카필라국 정반왕과 마야부인의 사이에서 태어난 고다마 싯달타의 도움을 받아 깨닫는자(부처)가 되는 것이 신앙의 목표이다. 신앙의 대상은 국보(불,법,승)인데, 부처가 되기 위한 과정인 3법인(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숙정)과 사성제(고성제,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와 8정도(정어, 정사유, 정정, 정명, 정정진, 정염, 정견 정업)가 있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노력여하에 따라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불교가 사회와 문화 전체에 미친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고난에 찬 삶을 살면서 창조적인 세계관을 갖지 못하고 운명론적인 세계관을 갖도록 하는 것은 현실의 질서를 유지 존족하기를 바라는 지배 논리에 기여했던 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을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의 의식수준과 민중의 각성은 불교가 지배이데올로기의 한계를 노정(露呈)하자 시, 서, 악, 역, 예, 춘추 등 6가지 경전사상을 기초로 한 인(仁)의 도를 가르치는 유교가 등장하게 된다.

<유교는 종교인가?>

유교에서 논어는 공자의 교훈과 행동을 기록한 책으로 모든 경전의 근본사상인 인(仁)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

인(仁)이란 극기복례(克己復禮)로 극기는 이기심을 이기는 것이요, 복례는 예법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인의 실천강령을 삼강오륜(三綱 - 군의신강, 부의자강, 부의부강. 五倫 - 군신유의(임금과 신하간), 부부유별(부부간), 부자유친(부자간), 붕우유신(친구간), 장유유서(노소간)이라고 하는데, 상호간의 예의를 기본으로 한다. 특히, 임금과 부모를 동일시하여(군사부일체) 봉건지배 질서를 정당화하고 충효사상(忠孝思想)을 고취하였다.
 

이성적이고 전통적인 공자사상에 대립하여 나타난 삶의 현실을 의미한 도(道)의 실천을 주장한 도교는 노자와 장자가 대성시킨 종교이다. 우주의 본체가 도요, 상대 세계를 초월한 절대 평등과 무차별의 본체를 인정하는 것을 기본원리로 하고 가르치고 있다. 도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가르침으로 하는 노장철학을 받아들이고 음양오행설과 신선사상을 가미하면서 불로장생의 술(術)을 구하고 주술기도 등을 행하는 종교이다.

<도교와 샤머니즘>

민중의 입장을 강조하는 도교는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이 유교에 비할 수 없다는 약점때문에 크게 번성하지 못하고 소수의 양심적인 지식인이나 민중에서 받아들인 종교이다.

그 후 서구의 민주주의가 유입되면서 봉건적인 지배질서가 붕괴되고 그 공백을 채워주는 또하나의 지배이데올로기로서 기독교가 들어 온다.

<기독교의 본질>

유태민족의 민족종교인 유대교에 뿌리를 둔 기독교는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 들이는 개신교와 천주교로 분리되어 수많은 종파가 들어 온다.

기독교의 교의는 전통윤리가 미개문화로 매도되면서 문화라는 가면을 쓰고 침투한다.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절대자인 여호와 하나님과 구세주로 세상에 왔다가 인간에 배척당하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와 성령의 3위 일체신을 믿는 종교가 기기독교다. 

기독교는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아들로 천국을 보장받고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교리를 전한다.


                   <사진 : 원불교>

세상의 끝날 예수가 재림할 때 알곡과 죽정이를 구분하듯 죄인과 의인을 분류하고 죄인은 지옥불에 영원한 고통을, 의인은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데, 그날(재림)은 하나님 외에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항상 준비하고 살라고 가르친다. '권세는 위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느니라'와 같은 성구에서 보듯, 지배자에게 순종하는 운명론적인 삶이 곧 하나님의 뜻이요, 현실은 내세의 준비과정으로 보고 현실 긍정적인 순응적 삶을 강요한다.

<힌두교와 조르아스트교 그리고...>

그 외의 힌두교는 인도의 굽타왕조때 범서, 비서 등을 기초로 한 바라문교의 사상을 고치고 변경하여 고유한 인도 민족신앙과 결부시켜 발전한 종교로서 범신론, 다신론, 유신론, 무신론을 수용하면서 원시적인 경배와 요가를 통해 인간의 참된 자아를 추구하는 종교이다.

조르아스트교는 기원전 60년경 조르아스트가 창시한 종교로서 젠드 아베스트란 경전을 갖고 있다. 조르아스트교의 교의는 이 세상은 선(善)과 악(惡)이 싸우는 전쟁 마당이며, 아후라 마즈다라는 선신(善神)과 앙화 마이뉴라는 악신(惡神)이 대립하고 있는데, 근검 역행의 노력으로 악신을 이기고 선신이 승리한다는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

<이슬람교>

이슬람교는 회교라고도 하며, 마호메트에 의해 창시된 종교이다.

이슬람은 복종이란 뜻이며, 인간은 신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슬람교라 명명했다. 이슬람교는 아라비아 고유의 민족신앙, 그리스트교, 유대교의 교의를 흡수하여 알라를 믿는 신앙을 말한다.                                                                                     <사진 : 힌두교 신 '새미골 (toogoo12)'에서>
 
그들의 경전인 코란에 의하면 알라, 천사, 예언자, 경전, 내세 심판, 예정에 대한 신앙 등 6신과 5행(다섯가지 의무, 즉 알라예배, 모하멧트 믿음, 1일 5회 기도, 자선, 9월 단식, 메카순례)을 요구하는 종로서 4억 5천의 신도가 있다.

<유대교는 기독교의 모태>

유대교는 기원전 15세기경 모세가 애굽을 탈출하여 40년간 광야에서 생활하면서 종교적 체험에서 비롯된 종교로 모세 율법을 기초로 하여 유대인은 하나님의 선민이며, 천국이 지상에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는 종교이다.

유대교가 모태이면서 예수를 크리스도(구세주)로 믿는 개신교와 이땅에 다른 크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 유대교는 구약 성서만을 믿는다.

이제 개략적으로 살펴본 종교의 공통점은 개인의 영생과 축복에 초점을 두고 개인의 수련과 반성, 도덕적 인격의 완성 등에 관심을 둔다. 특히, 대부분의 종교는 운명론적인 세계관을 갖는 것이 특색이다. 절대자에게 복종하고 순응하며 현실 질서에 복종하는 세게관은 강자의 논리로서 창조적이고 개척의욕을 마비시키고 신의 의도를 추종하는 삶을 강제받는다.

<종교는 약인가 독인가>

종교의 현실 감각의 마비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여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저해 요소가 된다는 점에서 민중중심의 종교가 양심적인 신앙인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해방신학이나 민중교회나 민중불교 등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는데, 이들은 지배권력에 의해 반체제 세력 또는 전통에 대한 도전세력이라는 이단(異端)으로 분류되어 탄압을 받는다.

기독교 발생 당시의 이스라엘 상황을 신학의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해석하려는 시도 없이 전통신학이란 이름으로 다른 해석을 거부하는것은 종교의 경직성을 보여 주는 또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사진:힌두교 신 '소망노트' 블로그에서>

전통신학에 대한 도전은 식민지적인 상황에서 예수의 정신을 오늘날 다시 살려 내야 한다는 시도로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데 해방신학이나 민중불교와 같이 신의 본성을 현실에 맞게 재해석하여 지배논리가 아닌 민중시각에서 신앙화하려는 시도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민중종교의 공통점은 내세를 위한 준비단계로서의 현실이 아닌 이 땅이 하나님의 나라요, 극락으로서 구현시키려는 노력이 종교의 당면한 과제로 받아 들이고 있다.

이제 신의 노예로서 현실 감각의 마비나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종교의 역할은 당연히 거부되어야 하고,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의 해방과 인간의 주체적인 삶을 위한 인격 수양의 과정으로서 재정립할 단계에 있다.

목사나 승려의 교세확장이나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자기논리는 상대종교를 적대시 함으로서 또 하나의 38선을 긋는 민족의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10.12.16 19:01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크리스마스가 열흘이나 남았는데 교회는 물론 창원시청 광장에는 화려한 성탄 장식을 하고 성탄을 맞을 준비에 분주하다.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하느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민족의 명절처럼 들뜨고 있다.

기독교인들의 명절인 크리스마스가 왜 나라의 축제 날이 됐을까? 크리스마스를 명절처럼 들뜨는 사람 중에는 크리스마스의 뜻을 제대로 알기나 할까? 크리스마스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즐길 의미가 있는가? 해마다 온 누리를 떠들썩하게 하는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구세주 탄생이라는 의미의 크리스마스는 영어로 Christmas,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고대 영어인 ‘Cristes Maesse’에서 유래했다고 전하고 있다.

로마역사에서 보면 크리스트교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B.C. 336년경 로마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12월 25일일까? 성탄절이 12월 25일이 된 데에는 많은 설이 있다.

'가장 유력한 설은 12월 25일설이 하나님인 예수가 사람의 몸으로 태어난 날이 아니라 고대 로마에서 지키던 동지 날을 채택한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당시 로마의 이교도들은 동지절(12월 24일 ∼ 1월 6일)을 하나의 대축제적인 명절로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고대 교회의 로마 주교는 기독교가 이교도들을 정복했다는 의미에서 이교의 축제일인 동지를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채택했다. 
               
 
                 <사진 : 창원시청광장>

크리스마스를 교회가 교리적으로 지키기 시작한 것은 B.C. 4C 후반부터라고 한다. 어원으로서의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와 ‘미사’가 합쳐 ‘크리스마스’로 변한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예수가 세상에 태어났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순진하게 예수가 12월 25일 태어났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난센스다. 탄생한 날이 12월 25일이냐 아니냐는 것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문제는 '예수라는 분이 하느님이냐 아니냐?'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가 삼위일체신의 한 분으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전통신앙이다. 그러나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에서는 전통신학에서 주장하는 예수의 신성을 상당부분 부인하고 있다.

예수가 신인가 인간인가에 대한 논란은 수천년간의 논쟁거리였다. 《신약성서》기록 외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록은 그렇게 흔치 않다. 성서가 아닌 역사에 기록된 예수는 로마시대 역사가 C. 타키투스에 의해 기록된 짧은 기록이 있다. 그가 예수에 대해 기록한 것은 당시 총독 본디오 빌라도(폰티우스 필라투스) 때 그리스도 처형에 대하여 짧게 언급하고 있을 정도다(연대기 15:44).

또 다른 기록은 로마의 저술가 수에토니우스는, 크레스투스의 꾐에 빠져 끊임없이 소동을 일으킨 이유로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하였다고 쓰고 있다.(《황제전》 클라우디우스 25:4), 그런데 이 크레스투스가 그리스도를 지칭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한다.

유대의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의 형제 야곱이 돌로 맞아죽은 형(刑)에 관하여 말하고 있고《유대고대지》유대교의 랍비 전승에는 예수가 마술을 행하여 이스라엘을 미혹시키고 배교(背敎)하게 하였으므로, 유월절 전날에 처형되었다(《탈무드》 산헤드린 43a)고 적혀 있을 정도다.

예수의 신성여부를 여기서 논쟁거리로 삼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해마다 성탄절을 보내면서 성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을 예수님의 제자들, 자녀들이 그대로 지키고 있느냐는 문제에 대해 살펴보자. 전통신학에서 예수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사랑이다.

그는 신(神)을 배반한 인간을 구원하러 인간 세상에 나타났고(聖誕) '원수를 사랑하라', '너 이웃(여기서 이웃은 가까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해석하는 게 정설이다)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 너와 오리를 같이 가자는 사람에게 십리를 같이 가주고 겉옷을 달라는 사람에게 속옷까지 벗어 주라'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다.

예수를 ‘빨갱이’ ‘국가보안법의 희생자’로 비유한 김정란 상지대 교수가 네티즌들의 호된 비판을 받은 일이 있지만 예수가 오늘날 사회주의 사상과 가깝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신약뿐만 아니라 성서의 일관된 사상은 '공유사상'이며 공상적 사회주의자였던 생시몽이나 프리에는 기독교 사상인 공유사상을 실천하려 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기독교의 경제관은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요 인간은 하느님의 것을 잠깐 빌려 쓸 뿐이라고 했다.

본질적으로 기독교와 자본주의는 궁합에 맞지 않은 게 사실이다. 사용가치보다 효용가치가 더 큰 제도에서는 타협이 있을 수 없으며 욕망의 충족이나 감각적인 기준 위에 세워 놓은 집이 자본주의다.


대표적인 예가 성탄절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지은 집이 깔고 앉은 땅까지 개인의 소유로 인정하는 자본주의와 기독교는 코드가 맞지 않다.

두 벌 옷을 가지지 말고 내일 먹을 것을 염려하지 말라는 성서의 가르침과 오늘날 부자가 된 교회와는 전혀 궁합이 맞지 않는다.

엄밀하게 말하면 예수는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살 수 있는 체질이 아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는 오늘날 그 화려한 교회에 오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올 수 없다는 것이다. 올 수 없는 예수를 왔다고 성탄을 축하하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기만이요 지극히 자본주의적 발상에 다름 아니다.


세계 6,888,108,765(2010년 12월 14일 현재)명의 세계인구 중에 12억 명이 하루에 미화 1불로 연명하고 있고 1억 5000만 명의 어린이가 굶주리고 있으며 그 중 8,000만명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게 오늘날 지구촌의 모습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기독교 국가인 미국은 무기를 팔아 부를 축적하고 이라크를 침공해 노약자와 임신부 그리고 어린이를 학살하고 있는 것이다.  

'네 앞에서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기독교 십계명 중 첫 번째 계명이다. 그러나 기독교인 중 이 계명을 지키고 살아가는 교인이 얼마나 될까? 돈이라는 신(우상)을 섬기면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온 크리스마스. 만약 예수가 이 땅에 온다면 뭐라고 할까?

사랑은 없고 상업주의가 만연한 세상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마3:7)” 회칠한 무덤 같은 인간들..."이라며 진노하지는 않을까? 수십만원인가 수백만원인가 들여 거대한 트리를 만들고 징글밸을 울리는 교회. 예수는 사랑은 없고 겉치레에 바쁜 교회를 좋아 하기나 할까? 먹고 마시고 타락하는 명절(?)이 되어가는 크리스마스. 구세주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날 하루만은 가족끼리 손잡고 불우이웃을 찾아가 따뜻한사랑을 나누는 하루를 만들면 어떨까? 올해는 구세주가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는 뜻 깊은 크리스마스가 됐으면 좋겠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0.12.04 21:29


아래 글은 운영자가 학교에 재직하고 있을 때 학생들에게 틈틈히 들려줬던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학교는 어떤 인간을 양성하고 있을까? 우리나라 교육이 기대하는 인간상은  '홍익인간(홍익인간의 핵심은 '이타주의')의 이념' 아래 '지덕체를 겸비한 조화로은 인간의 양성'(교육법 제1조)이다. 그렇다면 학교가 길러내고자 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은 어떤 사람일까? 통계를 내보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학교의 교훈이나 급훈은 '근면한 사람' '정직한 사람' 또는 '성실한 사람'이다. 

정직, 근면, 성실한 인간이 학교가 길러낼 이상적 인간인가? 인간이 사회적 존재인데 개인만 도덕적이기를 바라거나 완벽하기를 바라는 교육은 옳은 교육이 아니다. 타락한 사회, 부도덕한 사회에서 '착하기만 하다거나 정직하기만 한 사람을 키우는 것은 민주적인 교육이 아니다. 불의한 사회에서 개인이 성실하기만 하거나 정직하기만 한 사람, 착하기만 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일찍이 예수 당시의 사회는 오늘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순박한 사회였지만 예수님은 '비둘기처럼 유순하고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오늘날같이 눈뜨고 코 베어 가는 세상에 학교가 길러내는 착하고 정직한 사람, 성실하기만 한 사람을 길러내도 좋을 까? 

예수님은 2000년 전에 '비둘기 같은 사람, 뱀같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 왜 그렇게 가르쳤을까? '이웃(자기 집 근처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하라'고 가르친 예수다.

죄인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은 예수님이 뱀같은(뱀은 마귀를 상징한다) 사람이 되라고 했을까? 아마 예수님은 사람이란 인간다운 인간, 정정당당한 인간으로 살기를 원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현실을 보자. 학교에서 착하기만 한 학생이 어떤 대접을 받는가? 가정에서 끝없이 희생만 하던 아내는 인간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인정 받았는가? '개도 무는 개를 돌아 본다'든지 '우는 아이 젖 준다'느니 하는 말이 왜 생겼을까? '오른 뺨을 치거든 왼 뺨을 내놓아라'는것은 상황 논리지 오른 뺨을 치고 손이 근질근질한 사람에게 다른 뺨을 대주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학생은 '품행이 방정하고 온순한' 학생이 모범생으로 포상을 받았다. 그 '품행이 방정하고...' '정식하고 성실한....' 인간은 혹시 자본이 요구하는 인간상이 아닐까? '오리를 같이 가자는 사람에게 십리를 함께 가 주고 겉옷을 달라는 사람에게 속옷까지 내 주어라. 구하는 사람에게 거절하지 말라'던 예수다. 그런 성현이 착하기만 하고 성실하기만 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가르친 이유는 무엇일까? 



허세를 떨거나 과장하는 사람은 수치를 당한다. 그러나 일한 대가를 받지 못해도 운명으로 아는 착하기만 한 사람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자신이 노력한 만큼 정당하게 대접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하고도 침묵하는 것은 건강한 시민이라고 할 수 없다. 학교는 무조건 성실하고 정직하고 의무에만 충실해 자신의 권리를 찾지 못해서는 안 된다. 민주시민은 자신의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하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정당하게 대가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을 사는 사람은 비둘기처럼 유순해야겠지만 자신의 소유나 권리를 지킬 줄 아는 뱀같은 사람이기도 해야 한다. 노동자의식이 없는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라 일하는 기계다. 의무는 있고 권리는 없는 사람은 노예일 뿐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다소곳하고 순종적이고 소극적이어야 한다는 논리는 시대에 뒤떨어진 논리다. 자신은 없고 평생 남편의 시중을 드는 그래서 남편의 자식을 낳아주는 그리고 자식을 위해 끝없이 희생하는 것을 위대한 어머니라 해서는 안 된다. 일방의 희생으로 상대방이 누리는 행복은 진정한 행복일 수 없다. 의무는 없고 권리만 있는 사람을 노예라고 하듯이 권리를 두고도 행사할 줄 모르는 사람 또한 바보다. 학교는 언제까지 착하고 정직하기만 한 사람, 성실하기만 한 인간을 길러낼 것인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0.11.29 15:14



-성경을 처음 만난 충격-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던 일이지만 필자가 성경을 처음 읽으면서 받은 충격(?)은 '경이로움' 바로 그것이었다. '책에 씌어진 모든 것은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던 중학교시절, 신학이니 그런 게 있다는 것도 모르고 개신교 장로교회의 고려신학파 목사님이 가르쳐 준 성경은 나의 삶의 모든 것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나에게는 '죽음'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는 열쇠로 받아 들였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죽은 후에 그 무시무시한 지옥에 갈 수도 있는데 왜 하느님을 믿고 천당에 가려하지 않느냐? '무서운 하느님, 공포의 하느님. 이게 내가 처음 만난 하느님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걸 믿지 않을까?' 그런 생각과 함께 독학을 하던 나는 하루종일 일에 지친 몸으로 새벽기도와 아르바이트, 그리고 야간 공부를 계속했다. 순진하기도 하고 단순할 수밖에 없었는 청소년기의 나는 '성서가 나의 삶의 모든 것'이었고 '성서대로 사는 것'이 나의 전부였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나이가 들면서 험한 일, 억울한 일도 만나면서 '이게 아닌데...' 하는 회의에 빠지기 시작했다. '세상은 혼자서 사는 게 아닌데... 나만 행복할 수 있는가? 나의 행복을 위해 누군가는 어려움과 힘든 일도 만나야한다는 것,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로 인해 상처를 받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기주의는 나쁘고 개인주의는 좋은 것'이라는 논리는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라는 것을 이해 하면서 뭔가 잘못된 이론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깨닫게 된 것이다.

-종교의 이데올로기성-

착하게 사는 사람이 고통을 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으로 덮어버리기에는 이해가 안 되는 일도 보게 된 것이다. 전두환이 광주항쟁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대통령이 됐을 때 '권력은 위로부터 나지 않은 게 없다'면서 목사님들이 그를 위해 조찬 기도회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몸서리를 쳤다. 종교가 본질적인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종교가 권력과 결탁할 수 있다는 사실과 종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로서의 기능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훨씬 뒤에나 알았다. 또한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이 왜 독재권력 사회에서 뿌리내릴 수 없는 가를 알지 않고 믿는 종교는 맹신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1995년 현재 한국사회에서 종교를 갖고 있는 인구의 비율은 무려 50.72%나 된다고 한다. 한국인 2명중 1명은 어떤 신이든지 간에 믿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인구중 45.67%는 불교를 믿고 있다. 개신교와 천주교 신도의 비율은 각각 38.77%와 13.06% 였다. 한국사회의 종교인구의 절대 다수가 이 세 종교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땅에 천국'을 세우겠다는 신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날이 갈수록 흉악 범죄가 늘어나고 돈이 되는 일라면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다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감각주의 향락문화가 비뚤어진 소비문화를 주도하고 그 가운 데 깊숙이 종교인들이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추수감사절이면 칠면조를 특별사면 해주면서 죄 없는 이라크 국민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미국대통령을 보면서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를 생각한다. 박홍신부의 모습과 보안법폐지를 결사적으로 막겠다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성경에서 사랑을 가르치는 하나님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한 손으로는 군수산업으로 돈벌이를 하면서 한 손으로 사랑을 말하는 종교인은 예수의 제자가 아니다. 물론 문익환 목사님이나 문규현신부님과 같은 분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도 예수라는 분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약자의 아픔을 나누어 지겠다는 가장 사람답게 살다 가신 의로운 분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는 예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가진 것이 너무 많아 그것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끊임없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며 살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거룩하게 폼나게 살기 위하여 가롯 유다처럼 돈과 예수를 바꾸면서 겉으로는 가장 선한 채, 회칠한 무덤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교회에만 예수가 없다'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 예수님이 가장 가난하고 천대받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좋아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과 돈을 사랑하든지 예수님을 사랑하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세상을 사랑하면서 예수의친구가 되겠다는 것은 예수를 십자가에 다시 못박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