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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는 이야기

내가 '대책없이 착한 농부시인'의 강의를 듣고 열받은 이유

by 참교육 2011.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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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사 정덕수님이 찍은 합천 명소블로거 탐방단입니다>
 

'이랑을 만들고
흙을 만지며
씨를 뿌릴 때

나는 저절로 착해진다'

서정홍 시인의 시 '내가 가장 착해질 때'라는 시다.

서정홍 하면 착한 시인, 농민시인... '개구리, 풋고추, 감자, 배추를 섬기는 시인, 가난한 시인, 시인의 집을 턴 도둑을 걱정하는 대책없이 착한 농부다'(이응인 시인의 추천사에서). '나무실 마을, 시처럼 정겨운 이름을 가진 마을에서 마치 나무처럼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 정일관시인은 서정홍시인을 이렇게 말한다. 낮은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시 속에 담아 놓고....사는 사람.

그런 시인을 만났다. 합천 명소블로거 탐방단 일행은 10월 29일 합천군 대방면 별바라기 팬션에서. 저녁 저녁 9시부터 시작한 '합천 사는 농부시인 서정홍과의 대화시간은 12시가 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대책없이 착한 사람. 그는 시인이라기 보다 농부냄새가 몸에 베인사람... 내가 만나 본 시인 서정홍은 정말 대책없이 착한사람이라는 정일관시인의 표현처럼 그런 사람이었다. 

서정홍 시인은 1958년 마산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황매산 기슭 작은 산골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열매지기 공동체와 강아지똥 학교를 열고 『내가 가장 착해질때』,『부끄럽지 않은 밥상』-농부 시인의 흙냄새 물씬 나는 정직한 인생 이야기,『농부시인의 행복론』을 쓰며 농촌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놓은 문화. 욕심이 죄를 낳는다'는 성경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그의 강의는
'욕망을 버려라, 죽으면 한평도 안되는 땅에 뭍혀 흙이 되고말 존재가 왜 끝없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서로 헐뜯고 짓밟고 원한을 쌓고 사느냐'라고 절규하는 선지자 같았다. 

"착한 사람이 되거라!"
"농촌으로 돌아 오라!" "농민이 되거라!"

자신이 살아 온 과거가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는 내용의 강의를 시작해 '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살고 사람이 산다'는 내용의 강의였다. 

토론은 여기서부터 불붙기 시작했다.  

'착하게 사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악한 사람이 우글거리는데 착하게 만 살라는 말은 나쁜 놈의 밥이 되라는 말 아닌가?'

내가 착한사람 콤플렉(complex)에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학교마다 교실 입구에 걸려 있는 교훈... '정직, 성실, 근면' 때문이다. 
정직하다는 건 착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통하는 명제다. 상대방을 못 속여 안달을 하는 사람들이 우굴거리는 세상, 눈만 뜨면 코 베어 가는 세상에서.. 그런 세상에서 '선인지 악인지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착하기만 한 사람'을 길러 놓으면 어떻게 되는가? 

사기꾼이 우굴거리는 세상에서 착하기만 한 사람은 사기꾼의 밥이다. 
성경도 말한다.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유순하라고... 비둘기처럼 유순하기만 한 사람은 안 되다는 성인의 말씀이다. 

또 한가지... 

'농촌으로 돌아 오라... 농민이 되라는 말씀...'

이 땅에 농민의 누군가? 어머니처럼 한없이 희생만하고 자기가 가진 모든 걸 다 내주고 자신은 아무것도 없는 빈털털이가 된 어머니의 마음처럼 휑한 빈터에서 찬바람으 맞으며 사는 사람.... 그들이 농부다. 

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농촌에 있는 사람도 농산물도 땅도 다 내어주고 처절하게 가난을 안고 사는 이가 농부 아닌가? 농민의 희생으로 살찐 도시가 있지만 끝없이 희생만 강요받고 결국은 가난과 병든 몸만 남은 곳이 농촌이요 농부다. 

이런 농촌에 돌아가라고...? 그런 희생도 모자라 또 농부가 되라고...?
내가 열받은 이유가 바로 그렇다. 이제 한미FTA 체결을 코 앞에 두고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져 팽개쳐야 할 농민이 되라는 건 차라리 저주 아닌가? 

노동력도 쉐진해 늙고 병들고 갈 곳없는 농부는 누가 먹여주고 누가 병을 고쳐주고 누가 빚을 갚아 줄 것인가? 그들의 아픔을 누가 위로하며 그들의 고통을 누가 대신 아파해 줄 것인가? 

이런 농촌으로 돌아가라고....?


내가 물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자좀심마져 팽개처야할 풍전등화와 같은 농촌에 착하기만 한 사람들을 보내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어디든 씨앗만 뿌리면 정직하게 열매를 맺고 거짓없이 소충을 내는 고만운 땅이 있지 않습니까?"

"먹고 살기는 살아야겠고 낡아빠진 노동력으로 견디다 못해 땅에다 금비를 뿌리고 농약 투성이로 만든 비틀거리는 땅에 거짓없이 소출을 낸들...  그게 값이 얼마나 된다고... 먹고 실기만하면 된디고요? 천만에요. 반찬도 사먹어야 하고 자식들 공납금도 내야하고, 아프면 약도 사 먹어야지요. 쌀 몇 됫박을 팔아야 커피 한잔 값도 안되는데... 그런 농사를 골병들어 지어면 돈이 됩니까? 

시간이 없이 이 말까지 차마 다 묻지 못했지만 나는 대책없이 착한 농부시인에게 할 말이 더 있다. 

정운현 선생님, 선비 홍성운님의 뜨거운 질문도 쏟아졌다. 
농부시인의 말씀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이 대책없이 악하기만 한 세상에 대책없이 착하기만 한 사람을 만들려고 하는 순진한(?)  농부가 이해할 수 없다는 질문이다. 

그렇다고 농부시인 서정홍님이 하시는 결코 적은 일이 아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자연을 노래하는 시인은 있어야 하고 교육이 아무리 무너저도 선악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러나 시인이 아니라 교육자나 혁명가라면 착한 노래만 불러서는 안 된다. 불의에 분노할 줄 아는 사람. 민주시민의식, 역사의식, 정치의식을 가진 사람, 정의감에 불타고 용기 있는 사람도 길러내야 한다

농촌에서 땅에 씨앗을 뿌리고  사는 동안 날짐승이 와서 씨앗을 쪼아 먹으려면 그걸 막을 수 있는 지킴이도 필요하지 않은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강의. 대책없이 착한 시인이 있어 우리는 희망을 노래할 수 있지 않은까? 

열을 받은 시간이었기는 하지만 대책없이 착하기만 한 가난한 농부시인과의 대화시간은 마음을 열고 가슴에 담아뒀던 묶은 얘기를 꺼내 서로를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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