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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자료

부모의 욕심이 아이들을 망친다

by 참교육 2011.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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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욕심이 아이들을 망친다

몇 년 전 일이다. 퇴근 시간에 창원에서 좌석버스를 타고 마산으로 오는 길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퇴근 버스에는 하루의 피로가 가득 담겨 있다. 버스에서 집까지 오는 동안 잠간의 휴식은 보약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시간이다.

그런데 이 귀한 시간을 빼앗은 작은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창원역 근처쯤 왔을까? 어느 정류소에서 젊은 아주머니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을까말까 한 형과 두서너살 아래로 보이는 동생을 데리고 함께 차에 올랐다.

                           <모든 이미지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자리를 잡아 앉는 가 했더니 금방 아이들은 차 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총놀이를 시작했다. 당연히 어머니가 “차 안에서는 장난치면 위험해” 하고 꾸중을 할 줄 알았다. 아이들이 계속 차 안을 뛰어다니자 보다 못한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 한분이 “이 놈들, 차 안에서 장난하면 안돼!” 그랬고 그 한마디로 아이들은 주눅이 들었는지 금방 조용해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아이 엄마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못 볼 것을 본 것이 아닌가?’ 하고 내 눈을 의심했다. 아이들을 꾸중한 어른에게 감사하다는 말은 못할망정 노골적으로 인상을 쓰면서 못마땅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아마 ‘당신이 뭔데 내 귀한 아들의 기를 죽이느냐?’는 항의 표현인 듯 했다. 주변 사람들의 눈이 없었다면 아마 그 말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을듯한 그런 얼굴이었다.


아이들이 조용해지자 차 안은 다시 잠시 전의 고요가 찾아왔고 언제 그런 일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나의 행동이나 생각으로 다른 사람이 고통스러워하거나 피해를 보게 한다는 건 죄다.

그러나 산업사회 이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지켜야 할 도리나 예의쯤은 팽개쳐도 좋은 것쯤으로 되고 ‘나에게 이익이 되면 선’이라는 계산적인 이기심이 지배하는 사회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도덕군자 같은 소릴 한다고 힐난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들조차 그런 감각도 없이 아이들을 키우면 사랑하는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자랄까?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무엇이든 사 주면 아이는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될 수 있다고 오해하면서 자랄 것입니다. 아이가 나쁜 말을 사용할 때, 그냥 웃어넘기면 재치를 키워 장차 더욱 나쁜 말로 이웃에게 상처 줄 것입니다.

잘못된 품행을 야단치지 않고 스스로 잘 할 것이라고 내버려 두고 훈계나 훈련이나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무식해서 용감한 독불장군이 되어 사회로부터 격리 될 것입니다. 아이가 어질러 놓은 것을 모두 정돈해 주면, 쓰레기를 몰래 버리고 모든 잘못된 일은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무책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스프라이즈에 ‘시골훈장’이라는 분이 쓴 ‘자녀를 망치는 열 가지 방법’이라는 글 중의 일부다. 젊은 분들이 들으면 ‘꼰대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요즈음 결혼할 젊은 부부들이 한번쯤 새겨 들어야할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육을 감당하는 교사에게 자격증을 주듯 ‘신랑 자격증’, ‘신부 자격증’, ‘어머니 자격증’ 이런 걸 주면 어떨까? 가끔 이런 생뚱맞은 생각을 하고 실소를 하기도 한다. ‘결혼 대비 이혼율이 47.4%가 넘었다’는 보도도 그렇지만 요즈음 부모들의 자녀양육모습을 보면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자식 교육을 위해서라면 기러기 아빠며 이민도 불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게 과연 진심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일까? 그렇게 양육하면 부모가 원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까?


이혼율뿐만 아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또 아내가 남편에게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 자녀가 부모에게. 또한 이웃에게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은 찾아보기 어렵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

오늘날 우리사회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다. ‘사회적 존재’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 담겨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당연히 가정이나 학교는 내일의 주인공이 될 아이들에게 개인적인 존재가 아닌 사회적인 존재로 자라도록 양육해야 옳지 않을까?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고,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선’이라는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모든 이들이 함께 누릴 행복이란 존재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희생의 대가로 누리는 나의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은 어떻게 돼도 좋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사회는 모두가 만족하는 행복한 사회란 영원히 도래하지 않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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