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사악한 자본주의의 실체를 해부한다

by 참교육 2011. 3. 12.
반응형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나오는 구절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통해 달성할 민족의 지향점이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다. 정부수립 후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국민소득이 천문학적으로 향상되고 평균학력이며 사회문화의 모든 면에서 놀랄 만큼 달라지고 국력도 신장되었다. 그러나 막가파식 정치문화며 사회양극화 문제, 비정규직문제, 환경오염이며 청년실업...
 


문제를 두고 헌법의 정신이 구현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당연히 대통령이 되면 '나는 헌법을 수호하고...'라고 국민들 앞에 선서를 한다. 역대 대통령들은 과연 헌법전문에 나와 있는 이러한 정신을 실현해 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가?

'효율과 경쟁'만이 살 길이다, 패자는 낙오자가 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자가 되면 정의가 되는 힘의 논리가 정당화되는 사회에서 사회정의니 기회균등이 실현되고 있다고 믿어도 좋은가? 헌법을 수호한다고 국민 앞에 선서한 대통령이 과연 홍익인간 이념과 4.19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는가? 그렇다면 사회지도층 인사의 도덕 불감증은 무엇이며 사회의 부패구조는 어떻게 뿌리 내리게 되었는가? 사회양극화는 교육양극화로 이어지고 계층대물림까지 정당화되는 현실은 대통령의 직무유기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있는가?

대통령은 임기를 얼마 남겨놓지 않고 헌법을 고치겠다고 한다. 헌법을 고치면 헌법전문에 명시한 사회가 가능해 질까? 그 유명한 지식인들, 학자들은 헌법을 개정하면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사회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믿고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일까?


‘착각은 자유다.‘ 사람들은 농담 삼아 이런 말을 곧잘 한다. 그런데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농담이 아니라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 착각이 한 두 사람이 하면 개인적인 오해라고 덮어들 수 있지만 이것은 집단 착각이다. 그 착각이란 게 뭘까? 우리가 사는 사회 즉 ’자본주의 사회에는 자유와 권리가 보장된다고...‘ 그리고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나도 열심히 노력만 하면 재벌도 될 수 있고 계층상승도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자본주의의 본질을 모르고서는 그런 착각이 가능하다. 그러나 착각은 어디까지나 착각에 불과하다.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사회학을 전공한 학자가 아니라도 자본주의는 부르주아들이 만든 사회다. 부르주아는 누군가? 중세 상공업을 통해 부를 축전한 상공인들이다. 그들이 혁명을 통해 만든 사회가 자본주의요, 자유민주주의가 아닌가?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경제적으로 부르주아들이 지배하는 사회. 그게 자본주의 체제요 자유민주주의라는 거다.

이러한 체제를 가능케 하는 이데올로기가 종교요, 법이다, 생각해 보자. 기독교나 불교는 자유보다 평등이라는 가치를 지향한다. 극락이며 천국이라는 세계는 차등 없는 평등세상을 말한다. 그런데 왜 종교가 자유보다 평등을 지향하는 그들의 이상세계보다 자유를 더 상위개념으로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손을 들어 주는 것일까?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조를 분석해 보아야 한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다 보면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의 분석에 무릎을 칠 때가 있다. 마르크스는 역사의 각 시기는 특정한 ‘생상양식’을 가지는데 생산양식이란 토대와 상부구조에 의해 규정되어 진다고 정의하고 있다. 토대란 ‘생산력과 생산관계’로 이루어져 있고 생산력은 원자재, 도구, 기술, 노동력 등을 말하고 생산관계는 계급관계를 뜻한다. 상부구조는 제도라고 말할 수 있으며, 정치, 법, 문화, 종교 등을 뜻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자본주의란 그 제도를 유지케 하는 제도에 의해 계급과 그에 맞는 인간을 양성해 내고 있다는 얘기다.


자본주의란 근본적으로 이익의 극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자본을 증식함으로써 생존이 가능한 체제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어 자기 증식을 할 때만 존속이 가능하다. 자본이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리기아의 왕 미다스의 손처럼 무엇이든 만지기만 하면 금이 되는 마술이다.

자본주의라는 마술에 걸리기만 하면 모든 것이 정당화되고 합리화된다. 법이 있지만 ‘유전무죄, 무전 유죄‘가 되고 엄연히 민주공화국이라고 정의한 헌법조차 민주는 있지만 공화는 없다. 돈이면 안 되는 것, 못하는 게 없는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다. 왜 '대중문화가 음란을 부추기고 폭력을 미화 하는가'  이것 하나만 보아도 자본의 속성을 이해할 수 있다.

자본이란 이익이 되는 건 모두 선이다. ‘구두 광택용 색소를 넣어서 만든 김치...’ 썩어서 버려야 할 단무지로 만든 만두를 팔아 돈을 버는 사람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뿐만 아니다. 자본은 부패구조 위에서 기생하는 독버섯처럼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조차 공업용 알코올로 만든 술이 시판되고 쓰레기두부니 포르말린이 함유된 오렌지 잼 등 믿기지 않은 현실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주의혁명이 성공 후 사라졌던 축첩이 부활되고 사회 양극화가 다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게 중국이다. 온갖 자본이 그렇지만 부패구조에서만 기생할 수 있는 자본이 있다. 군산복합체가 대표적인 예다. 전쟁이 있어야 하고, 사람을 죽이는 살상무기를 만들어야 살아남는 자본도 있다.

자본가가 만든 사회는 원론적으로 도덕적일 수 없다. 도덕과 상업주의는 공존할 수 없다. 미다스왕의 손처럼 종교도 윤리도 도덕도.... 자본과 공존하기만 하면 변질하기 마련이다. 대안은 없는가? 자유가 아닌 평등이라는 가치를 우선으로 하는 사회주의는 망했다. 그렇다면 인간은 자본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적인 존재인가?

같은 자본주의라도 유럽의 자본주의와 영미식 자본주의는 다소 차이가 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공존. 유럽자본주의는 상당부분 사회주의 색깔을 띠고 있다. 이른바 사민주의라고 한다. 자본의 지배하는 사회에서 최소한 인간이 자본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 그 사민주의가 대안이라는 사람도 있다.

전경련이 교육부와 합작해 '고등학교 경제'교과서를 만들었다. 이들이 바라는 교과서에 담긴 내용은 무엇일까? 그렇잖아도 현행경제교과서 안에는 노동 분야는 거의 다루지 않고 있으며, 다룬다고 해도 노동과 직업에 대한 귀천 의식을 조장, 노동자는 여전히 폭력적인 집단과 계층으로 묘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의 단체행동에 대한 부정적 편견,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에 대한 일방적인 찬양, 정부 개입에 대한 부정적 서술, 기업의 생산과 이윤에 대한 왜곡된 이해 등과 내용을 담고 있다. 자본은 만족이 없다.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켜 줄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