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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역사

오늘은 '5·16군사정변’ 63주년입니다

by 참교육 2024.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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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 '군사정변'인가 ‘혁명’인가

"오늘 아침 미명군부(미명 군부)서 반공혁명”...동아일보는 신탁통치오보사건주인공답게 장도영 중장이 총지휘, 장면 정권을 불신임”...이라고 5·16반공혁명으로 호외를 발행했다. 조선일보는 군부 무혈쿠데타 완전 성공이라고 제목을 뽑고, 부제목은 “16일 하오부터 정식 시무, 혁명 완수에 만진이라며 일제 강점기 천황폐하만세!”를 불렀던 조선일보답게 썼.

올 것이 왔구나.” 쿠데타 소식을 들은 4·19혁명 정부 윤보선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자이며 국가원수임에도 불구하고 정통성을 지닌 합법 정부를 수호하지 않았다. 1961516일 새벽. 반란 세력들은 예비사단 병력과 포병단, 해병대와 육군 제1공수특전단 등을 동원하여 1961516일 새벽 서울을 비롯 대구시, 부산시 등의 방송국 등 주요 시설을 무력으로 점거함으로써 4·19혁명으로 세운 대한민국 제2공화국은 출범 9개월 만에 무너졌다.

친애하는 애국동포 여러분!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오늘 아침 미명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해,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서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했습니다.“ 1961년 아침 눈을 뜬 국민들은 KBS를 비롯한 모든 공중파 방송을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에 아연실색했다.

반공이라는 무기로 쿠데타를 정당화하다

박정희를 비롯한 반란세력들은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이 이상 더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혁명을 일으켰다며 군사혁명위원회 위원장 육군 중장 장도영의 이름으로 ‘5·16 혁명공약발표했다. 반란 세력들은 국민교육헌장을 만들어 공중파를 통해 귀가 아프게 들어야 했고 초등학교 학생들까지 외우지 않으면 하교시켜주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도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혁명공약을 외우고 있는 사람이 많다.

나라를 지키라 했더니 그 총구를 거꾸로 돌려 국민을 협박하고 4·19혁명 정부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도둑질한 군사반란 세력들은 19791026일까지 장장 18년간 철권통치를 계속한다.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국가보안법과 함께 박정희가 정적과 양심적인 지식인을 빨갱이를 만들어 제거하던 카드였다. 그는 영구집권을 위해 재임 중 헌법을 두 차례나 개헌한다. 박정희는 3권분립을 무력화시키고 통일이 될 때까지 지방자치를 하지 않겠다며 주권자인 국민 위에 군림한 이름만 대통령이지 사실상 전제군주나 다름없었다.

입법과 사법부의 상부기관인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대통령을 뽑고 이산가족 상봉이며 7·4남북공동합의서까지 통일에 이용했던 박정희. 박정희가 키워낸 유신세력들은 장기집권을 위해 남북이 유엔에 동시에 가입하는 것도 반대하지 않았다. 18년간 군사정권으로 철권통치를 하던 박정희는 19791026일 궁정동 지하에서 차지철 경호실장과 가수 심수봉을 비롯한 연예인을 불러 술판을 벌이다 김재규 중앙보부장의 총에 맞아 죽는다. 그러나 놀랍게도 유신시대는 끝나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국립현충원에는 묻힌 반란세력들...

대한민국 국립현충원에는 친일파 63명을 비롯해 군사반란 세력들이 죽어서도 국민의 혈세로 호사를 누리고 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1948.7.24.~1960.4.27)516 군사쿠데타를 통해 19년간 장기집권한 박정희(1963.12.17.~1979.10.26), 그리고 3당 합당으로 정권을 잡은 김영삼(1993.2.25.~1998.2.24), 헌정사상 최초로 선거를 통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일궈낸 김대중 대통령(1998.2.25.~2003.2.24) 등 네 명의 전직 대통령이 안장돼 있다. 4·19혁명으로 하와이로 망명했다가 죽은 이승만도, 4·19혁명을 무너뜨린 군사반란의 주인공인 박정희도 죽으면 애국자가 되어 국립묘지에 안장되는게 민주공화국인가.

박정희의 묘지는 국립서울현충원의 중심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독재자의 권위주의적인 재임시절 모습을 자연스럽게 연상케 한다. 묘의 크기도 580로 다른 대통령 묘소와 비교를 불허한다. 전두환과 함께 12·12군사반란으로 집권한 광주학살의 공범자 노태우는 “12·12 사태와 5·18 민주화운동 등과 관련된 역사적 과오가 있으나 직선제를 통한 선출 이후 남북기본합의서 등 북방정책으로 공헌하고, 형 선고 뒤 추징금을 납부한 노력 등이 고려해 국가장으로 치렀다. 그의 딸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으로 대통령까지 지내고 광주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은 국민의 반대로 죽은지 반년이 지난 지금도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자택에 임시 보관되어 있다.

박정희 그는 누구인가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로 시작한 혁명공약은 <인민혁명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동백림 사건, 울릉도 간첩사건, 미법도 간첩사건, 심문규 간첩사건, 이수근 간첩사건, 11.22 사건, 문인간첩단 사건, 형제 간첩사건, 삼척 고정간첩단 사건, 유럽간첩단 사건, NH회 학원침투 간첩사건,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등의 수많은 간첩조작사건을 만들어 사법살인을 저지르고 무고한 사람들을 해친 공안정국을 조성하였다.

이 정도가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박정희의 공포정치에 보고도 못 본채, 귀가 있어도 들어도 못들은 채, 입이 있어도 말도 못하는 공포정치에 떨어야 했다. “고려대 NH회 사건, 정인숙 살해사건과 같은 민간인 암살사건, 김상진 할복 사건과 전태일 분신사건이며 국가재건최고회의 설립, 굴욕적인 한일협정, 언론탄압,...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부산 마산시민들은 부마민주항쟁으로 저항에 나서기 시작했다. 결국 그의 충성스런 부하 김재규의 손에 생을 마쳤지만 박정희시대는 우리역사에서 두 번 다시 있어서 안될 공포정치의 주인공이였다.

‘5·16혁명은 현재진행형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사회 혁명 다시 제대로 배우겠습니다’, 20대 대통령 윤석열은 후보유세에서 박정희의 생가를 찾아가 이렇게 방명록에 썼다. 또 문재인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풀려 난 박근혜 생가를 찾아가 명예 회복을 위해 힘쓰겠다면서 박정희가 어떻게 국정 운영을 했는지 배우고 있다박정희와 박근혜의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했다. 뇌물과 직권남용 국정농단으로 탄핵을 당해 22년형을 받아 49개월만에 문재인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경북 달성군 사저에서 이루지 못한 많은 꿈을 꾸는 박근혜는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식에 초청까지 했다.

5·16은 군사 반란은 민족사의 치욕이다. 대한민국 제 20대 윤석열 대통령도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사회혁명을 지금의 시대에 맞춰 다시 꼼꼼하게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대한민국 역사에서 둘도 없는 불통대통령 철권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수행 중이다. 오늘은 5·16군사반란이 일어난 지 62년째를 맞는 날이다. 정의·상식·공정을 입버릇처럼 말하는 대한민국 제 20대 윤석열 대통령은 어떤 나라를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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