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이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면직된 지 닷새만에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로 검사 출신인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을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부장, 중앙수사부장 등을 역임한 특수 검사 출신이다. 2007년 서울중앙지검 3차장 때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비비케이(BBK) 주가조작 의혹을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했던 인물이다. 김 후보자는 윤 대통령이 '존경하는 검찰 선배'로 꼽는 인사다.
대한민국 검사(檢事) 수는 약 2100명이다. 이 2100명의 검찰이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름하여 검찰 공화국이다. ‘피의자를 조사하는 수사권, 그리고 그 피의자를 재판에 넘길지 말지 결정하는 기소권을 모두 가진 검찰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굵직한 정치·경제·사회 이슈마다 검찰이 칼을 뽑거나, 혹은 뽑지 않았다. 과거 ‘중수부’ ‘특수부’ 같은 검찰의 특정 부서는, 그 자체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언젠가부터 검사는 자칭 타칭 ‘칼잡이(劍事)’라 불렸다.
윤석열 정부에 검찰 출신 136명 들어갔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이완규 법제처장도, 박민식 국가보훈처장(국가보훈부 장관 내정자)도 검사 출신이다. 권력 핵심부인 대통령실 주요 보직, 국가정보원의 핵심 보직, 국무총리실 일부 보직도 검찰 출신이 줄줄이 꿰찼다. 여당에서도 검사 출신의 약진이 도드라진다. 지금 검찰의 위세는 군사정권 때 군부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신임 방통위원장으로 특수부 검사 출신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이 내정됐다는 보도에 “신군부 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재벌공화국’, ‘삼성공화국’에 이어 ‘언론공화국’, ‘검찰공화국’...이 됐을까?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선열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다. 친일파를 앞세워 정권을 유지하려했던 이승만 정권과 싸웠고, 박정희 유신 독재 정권과도 싸웠으며 광주를 피로 물들였던 전두환 군부 독재 정권과도 싸워왔다. ‘민주’, ‘자유’, ‘주권’에 위협이 있을 때마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분연히 나서 싸웠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와 자유는 그분들의 피흘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윤석열 정부 100대 요직 중 관료 출신 29명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청와대 및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근무했던 인사들이다. 검사나 검찰 수사관 등 전·현직 검찰공무원이 136명이나 차지하고 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 원희룡 국토부 장관 등과 검찰 출신이 맡는 검찰총장,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을 제외해도, 윤석열 정부 100대 요직 중 검찰 출신이 총 11명이다. 전·현직 검사는 117명, 전·현직 검찰공무원은 19명이다. 이들이 윤석열 정부에서 맡은 역할을 분류해보면, 선출직과 임명직 공무원이 24명, 법무부 외 국가기관 파견이 57명, 법무부 파견이 55명이다. 가히 ‘검찰공화국’이란 말을 실감케 한다.
<한겨레21>이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에서 입수한 자료를 보면, 2022년 5월10일부터 2023년 3월16일까지 윤석열 행정부에는 대통령을 포함해 24명의 검찰 출신 인사가 선출·임명됐고, 이 가운데 22명이 현직에 남아 있다. 먼저 윤석열 대통령과 장관 4명이 검사 출신이다. 장관급으로는 권영세 통일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있다. 이 가운데 한동훈 장관은 윤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그리고 권영세·한동훈·원희룡 세 장관은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동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총장 출신이다. 공직 평생을 검찰에 몸 바쳤다. 검찰은 상명하복 조직이다. '아래로부터 민주주의' 같은 건 검찰 사전에 없다. 지시하는대로 따라야 하고, 일사불란 움직여야 한다. 대한민국의 3권 분립은 행정부 중심의 비대칭 권력 분립이다. 그런 그가 권력의 가장 큰 축인 행정부 권력을 잡았다.
검사들과 검찰수사관을 법무부는 물론 방송통신위, 고용노동부, 금융위원회, 교육부 등 정부 각 부처에 대거 파견하고 있고, 그 숫자가 집권 초에 비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방송통신위나 환경부, 교육부와 같은 정부부처에 왜 검사가 파견되는지 알기 어렵다. ‘교육범죄를 수사했으니 교육전문가’라고 주장할지도 모르지만 각부서에 파견된 이들이 검찰의 정보수집 통로이자, 일종의 ‘감시자’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의심을 떨쳐 버리지 못할 것이다.
검찰이라고 모두 권력의 해바라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퇴행적 언론관과 정부의 언론탄압 이면에는 검찰 권력의 비호가 도사리고 있다. ‘재벌공화국’, ‘삼성공화국’에 이어 ‘언론공화국’, ‘검찰공화국’이 된 대한민국의 국민은 언제 주인의 자리를 다시 되찾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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