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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학교의 우등생이 사회의 열등생이 되는 이유

by 참교육 2011.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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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건강한 생각을 가진 사람의 판단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중1아들이 아버지의 꾸지람에 반발해 집에 불을 질러 부모와 할머니, 9살 여동생 등 4식구가 불에 타 죽었다는 뉴스에 경악한다. 부모고 뭐고 자기 생각밖에 못하는 아이. 아이들뿐만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상대방이야 손해를 보든, 피해를 입든 상관없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는 사람까지 나타나고 있다. 


 갈 곳이 없어 돈 200원을 훔치고 교도소로 가겠다는 청년이 구속됐다는 소식이 있는가 하면 스와핑이라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돈이 많아 감당을 못해 온갖 기발한 향락으로 빠지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살기 어려워 가족이 동반자살 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

일간지 사회면을 장식하는 폭력과 살인, 마약과 약탈, 성매매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고 있다.


집단이기주의 집단으로 전락한 정당이며 후안무치한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성에 대한 회의감마저 든다. 기준이나 원칙이 없는 사회. 이기주의와 쾌락이 판을 치는 사회에서는 사회정의란 그림의 떡이다.

겉으로는 법과 도덕과 윤리로 포장되어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동물적인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누가 얼마나 사악하고 영악스럽게 상대방을 속이고 살아남는가 하는 적자생존의 논리가 판을 치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내일의 주인공이 될 아이들에게 학교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학교가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키우고 있는 범생이는 분별력도 융통성도 이해심도 없는 청맹과니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사진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사악한 사회에서는 남이 모르는 지식 몇 개를 더 아는 것보다. 옳은 것과 그른 것, 귀한 것과 천한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줘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학교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영어 단어 몇 개 현실과는 거리가 먼 수학 문제풀이에 서열매기기에 바쁘다.

식민지시대, 독재정권시대, 군사정권시대를 거치면서 교육권을 장악한 정권은 시비를 가리고 비판할 줄 아는 인간이 아니라 순종하는 인간 '정직', '성실', '근면'한 개인을 길러냈다. 나만 성실하면 좋은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나만 착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 그런 인간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가? 인간을 사회적인 존재라고 하면서 나만 아는 사람을 키워놓으면 필연적으로 이기적인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다 상업주의까지 가세한다면 좋은 사회란 기대할 수 없다.


악한사회에서 근면하기만 하거나 성실하기만한 사람은 악한 사람의 이용물이 되기 안성맞춤이다. 불의한 방법으로 권력을 장악한 세력들은 시비를 가리고 비판할 줄 아는 사람보다 순종하는 사람을 좋아 하는가?정의감에 불타고 신의를 가진 인간을 길러내지 않을까? 자라서 근로자가 될 아이들에게 인간의 존엄성과 노동자의식을 가진 인간을 기러내지 않으려는 속셈이 무엇인가? 말로는 공교육의 정상화를 외치면서 시험문제만 풀이하는 입시제도를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인간의 존엄성도 자아존중감도 가르치지 못하는 교육은 우민화교육에 다름 아니다. 교육이 성숙하지 못한 인간을 길러내는 한 성숙한 사회를 기대하기 어렵다. 말로는 민주시민을 양성한다면서 점수 몇 점 차로 사람을 서열매기는 교육은 민주교육이 아니라 계급교육이다. 성숙한 민주시민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학교가 지식뿐만 아니라 지혜(철학)를 가르칠 때 가능한 일이다. 교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말하면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에는 왜 침묵하는가? 가치혼란의 시대 학교가 길러내고 있는 범생이는 정말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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