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은 간호사를 위한 법이 아니다
간호법이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위주로 표결에 부쳐 재석의원 181명 중 찬성 179명, 기권 2명으로 가결됐다. 또한 의사 면허 취소 사유를 대폭 확대하는 의료법 개정안도 통과했다. 두 법은 정부로 이송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야 시행된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는 방침이나 시행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4월 27일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을 놓고 간호사 단체와 의사 단체( 등의 갈등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 측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간호법 공포를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고, 간호대 학생들까지 기자회견 등 행동에 가세했다. 한편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며 11일, 전국에서 2차 부분파업을 한다고 예고했다.
<간호법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에는 간호사들의 처우를 지금보다 개선하고 보다 숙련된 간호사 양성과 지역사회 간호인력 배치를 내용이 담겨 있다. 즉, 고령화 사회가 다가오면서 간호사 업무 범위 확대와 처우개선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의사, 요양보호사, 응급구조사,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간호조무사 단체 등 보건의료단체들은 보건복지의료연대를 결성해 간호법을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간호법은 간호사 특례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간호사법이 통과되면 업무 영역이 확장돼 이들의 영역이 잠식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찬성 반대 단체는 누구인가?>
-의사협회, 간호조무사, 임상병리사 결사반대-
간호법 갈등의 핵심은 ‘업무 침범’과 ‘차별’에 있다. 의사협회가 이 법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간호사들이 의사 없이 병⋅의원을 차릴 수 있는 ‘단독 개원 가능성’에 있다. 간호법 1조에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 사회에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는다’고 돼 있다. 간호조무사들은 간호법이 환자 간호업무를 간호조무사를 배제하는 차별법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이 법에선 간호조무사 국가시험 응시자격을 ‘간호특성화고 졸업자’ 또는 ‘고졸자로 간호학원을 수료한 자’로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상병리사들도 이 법이 통과되면 거리낌 없이 자신들의 일을 빼앗을 수 있다고 반대하고 있다.
- 간호사들이 간호법 찬성하는 이유 -
간호법은 간호계의 숙원이었다. 법안의 핵심 내용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들의 처우 개선을 통해 간호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환자들의 건강권도 지킨다’는 것이다. 간호법에는 ▷간호사 등의 업무 ▷간호사 등의 권리와 처우 개선 등이 담겨 있다. 통과된 법안에서는 ▷국가와 지자체, 간호사 고용기관 등의 근무 환경과 처우 개선 책무를 명시했고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으로 일·가정 양립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정했다. 또 ▷간호사에게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서는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되는 등 인권침해 금지 조항도 마련돼 있다.
<시민단체들이 간호법을 찬성하는 이유>
지난 2005년 처음으로 간호법이 국회에서 입법 발의된 후 18년 만에 본회의를 통과한 것과 관련 시민단체들과 일부 종교계는 연이어 ‘환영’ 입장을 담은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특히 간호법 통과로 인해 지역사회 돌봄체계 확립을 기대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민단체들은 간호법은 시대의 흐름이 요구하는 것으로 인구 구조 변화와 만성기 질병으로 질병구조가 바뀌면서 간호인력의 역할이 점차 커지고 있는 현실에서 의료계의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소비자 행동측은 다양한 보건의료 수요에 대응할 간호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국가적 재난·위기 대응 역량 확보를 위한 숙련된 간호인력 양성과 배치, 교육 등을 체계화하기 위한 독립된 법체계인 간호법이 필요하다고 찬성하고 있다.
<간호법은 간호사를 위한 법이 아니다>
대한간호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 1951년 의료법이 제정됐지만, 시대적 변화에 따른 보건의료 환경과 간호사 역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대한간호협회 등은 초고령 사회를 대비해 맞춤형 돌봄을 위한 간호인력의 업무 범위 등이 체계적으로 규정된 독자 법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간호법은 국민과 소비자를 위한 법이어야 한다.
낡고 허술했던 보건의료시스템은 바뀌어야 한다. 의사협회를 비롯한 간호법을 반대하는 단체들은 이기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의사들의 수를 늘리겠다면 파업으로 맞서는 협박으로 한계에 처한 만성적인 의료 시스템을 바꿀 수 없다. 간호법은 간호사들을 위한 법이 아니다. 왜 시민단체들이 ‘간호법 제정이 간호돌봄 시스템이 나날이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계기를 마련했다’고 환영하는지 의사협회는 생각해 봐야 한다. 환자들을 볼모로 잡는 의사협회의 이기적인 대국민 협박은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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