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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라는 모임에서 창녕 우포늪에 갔습니다. 모임을 시작한 것은 벌써 20년이 지났습니다. 처음에는 지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모였으나 각자의 직업 특성상 친목모임으로 바뀌었습니다.
모처럼 경남도민일보의 김주완편집국장만 빠지고 모두 함께 했습니다.
<우포늪에서 만난 솟대 회원들>
우포늪하면 외가리 이인식선생님이 있습니다. '우포늪따오기 자연학교교장'이 그 사람입니다.
저와는 깜방 동기입니다.
1989년 전교조가 결성되고 1990년 4월 3일 교육감에게 교육문제에 대한 대화를 하자면 찾아갔다가 교육감의 고발로 4명의 교사들이 구속된 일이 있었습니다. 외가리 이인식선생은 그 때 저와함께 구속됐던 네명(이영주, 안종복, 이인식, 김용택) 중 한사람입니다.
마산제일여중에서 해직됐다가 이선생님은 그 뒤 환경운동 전문가로 활동하다가 지난 2월 말 명예퇴직하고 아예 우포늪 지킴이로 이 동네에 눌러 앉았습니다.
<이인식선생이 거처하는 집에서 필자와 이선생>
영하 11도라는 남쪽 지방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날씨였지만 2시간 30분이 걸려 우포늪을 한바퀴 돌았습니다. 우포늪의 겨울은 겨울대로 멋이 있었습니다.
온 땅덩어리가 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다행히 우포늪은 자연그대로 보존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식민지 시대는 산미증산계획 때문에 둑을 쌓았고 일부는 농지가 됐지만 아직도 70만평이나 되는 우포늪은 생명의 보고로 살아 있었습니다. 이선생님의 안내로 따오기도 보고 맛 있는 붕어찜 요리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저와함께 영하 11도의 우포늪을 한바퀴 돌아봅시다.
여기까지 왔을 때는 손이 시려워 카메라를 잡을 수 없던 날씨가 등에는 땀이 촉촉히 젖을 정도였습니다.
사진을 찍다보면 일행은 저 앞에 가고... 그러면 따라가려고 뛰고 또 찍고, 뛰고 이러다보니 땀이 더 났는가 봅니다.
사징 솜씨는 시원찮지만 그 재미로 추위도 잊었습니다.
그런데 쏨씨는 없지만 어설픈 작가의 눈에는 우포늪의 모든 것이 다 작품이었습니다. 아무 곳이나 렌즈를 갖다대면 아름다운 그림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이곳 저곳에 대고 샷터를 눌러댔습니다.
외가리선생님이 군불을 집힌 따뜻한 방에서 회원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옛날 얘기에 빠저들었습니다.
옛날 집은 방바닥은 뜨겁고 방안은 찬바람으로 귀가 시려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은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이불 속에 발을 넣고 입담이라도 좋은 사람이라도 있으면 밤새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 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20년 회원. 그들 중에는 현직교사. YMCA 활동가. 민언련대표. 민예총 회장, 사업가 그리고 필자와 같은 실업자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이면 왜 할 말이 없겠습니까? 자기 세계를 소개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연수장이 되기도 합니다. 당연히 이들은 하나같이 어려웠던 시절. 투쟁의 전선에 섰던 친구들입니다. 그 중 한 친구는 필자가 전교조 관련으로 수배가 됐을 때 트레일러에 나는 감추고 울산까지 피신시켜 준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 일행들은 과거로 돌아가 어려웠던 시절 향수를 맛보는 귀한 시간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시골살이 몇년 동안의 실력으로 장작을 깨는 실력을 과시하는 외가리 이인식선생님. 동네 사람들 말처럼 이제 '촌놈이 다 됐습니다. 그렇잖아도 그에게는 촌사람냄새가 풀풀났습니다. 사람냄새만 아니라 인간미 냄새도 함께 났습니다.
이미 동네사람들은 자기네 식구로 받아들이고 이선생에게 살던 집을 맡겨놓기도 합니다.
1박 2일 짧지만 좋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자연에 심취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이튿날 우리들은 태고적 에너지를 가득 충전한 후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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