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단임을 이뤄서 지금 대통령들은 5년만 되면 더 있으려고 생각을 못하지 않느냐”, “(대한민국) 민주주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저는 우리 남편이라고 생각한다”
전두환의 아내 이순자가 보수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아무리 무식해도 그렇지. 남편이 사람을 그렇게 죽이는 일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을 텐데 어떻게 무고한 그 많은 시민을 죽인 남편을 ‘민주주의 아버지’라니...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인가? 살인마 전두환 일당이 1980년 5월 18일. 소름끼치는 생각하기도 싫은 5·18광주학살... 빛고을 광주에서 전두환 일당이 저지른 학살의 전말을 국민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80년 5월 광주는 고립된 섬이었다. 광주의 상황은 살아있는 도시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핏발이 선 계엄군은 군홧발로 시민들을 짓밟았고 총칼을 휘둘렀다. 남자와 여자가, 학생과 직장인이, 임산부와 어린아이가 죽거나 상처를 입었다. 국민 안위라는 신성한 의무를 헌신짝처럼 던져버린 정치군인들로, 광주는 주검의 도시로 변해버렸다...’ 수많은 시인들,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청년과 학생들이 숨죽여 울부짖고 가슴을 치던 날.. 그날, 침묵하던 다른 도시의 청년과 학생들을 대신해 그렇게 광주시민은 도륙을 당했던 것이다.
5·18 민주 유공자 유족회와 부상자회, 5·18 기념재단 등 4개 단체가 공식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5·18 사망자는 모두 606명으로, 이 가운데 165명은 항쟁 당시 숨졌고, 행방불명이 65명, 상이 후 사망 추정자는 376명이다. 1980년대 중반에는 공수부대의 잔혹한 진압과 무차별적인 연행으로 인해 사망자가 2천여 명에 달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실제로 5·18 종료 직후에 정부에 신고된 사망 추정자, 실종 추정자는 2천여 명에 달했고, 일부 학생운동권이 이를 인용한 주장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1985년 윤성민 국방부 장관은 1980년 당시 사망자 및 실종자로 신고된 인원은 2천 명이 맞다면서, 그중에는 체포 구금된 자, 사망자, 부상 입원자, 피신자도 포함돼 있어, 이들 인원이 사망자로 잘못 전파된 것이라고 답했다....
사망자는 저항 하는 학생들뿐만 아니었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행인이나 어린아이를 업고 가는 여성이나 초등학생까지 무차별 살해하고 3천여명에 달하는 수많은 시민이 계엄군에 의해 폭행당하고 트럭에 실려 광주교도소·상무대에 연행됐다. 연행자는 영창으로 넘겨지기 전 보안대에서 온갖 고문을 당했다. "워커발로 얼굴 문질러버리기", "눈동자를 움직이면 담뱃불로 얼굴이나 눈알을 지지는 '재떨이 만들기'", "발가락을 대검 날로 찍는 '닭발요리'", "사람이 가득 찬 트럭 속에 최루탄 분말 뿌리기", "두 사람을 마주보게 하고 몽둥이로 가슴 때리게 하기", "며칠째 물 한 모금 안 먹어 탈진한 사람에게 자기 오줌 싸서 먹이기", "화장실까지 포복해서 혀끝에 똥 묻혀오게 하기", "송곳으로 맨살 후벼파기", "대검으로 맨살 포 뜨기", "손톱 밑으로 송곳 밀어넣기...."
이런 짓을 한 살인마 전두환일당들은 권력을 도둑질한 후 ‘건국훈장대한민국장, 태극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일지무공훈장, 보국훈장 삼일장, 보국훈장 천수장, 보국훈장 국선장, 수교훈장 광화대장’. 등 셀프훈장을 받았다. 전두환일가에 대한 비자금수사가 진행되기 4일 전 이 훈장들을 모두 반납했지만 노태우가 받은 훈장 11개는 여전히 반납조차 하지 않고 있다. 셀프훈장뿐만 아니다. 살인자 전두환의 고향에는 전두환의 호를 딴 일해공원이 있고 그의 모교 대구공고 중앙현관에는 전두환의 초대형 사진이 걸려 있었다.
언론의 진실 왜곡은 어느 정도였을까? 조선일보는 1980년 8월 23일 “인간 전두환”,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와 행동”을 통해 “이해관계 얽매이지 않고 남에게 주기 좋아하는 성격”, “운동이면 못하는 것 없고 생도 시절엔 축구부 주장”, “사에 앞서 공, 나보다 국가 앞에서, 자신에게 엄격하고 책임 회피 안 해...”, “위대하신 우리의 영도자 전두환 장군”이라고 용비어천가를 불렀다.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던 조선일보는 사태발생 5일째 되는 날 “전국비상계엄이 선포되자, 서울을 이탈한 학원소요 주동학생과 깡패 등 현실 불만 세력이 대거 광주에 내려가 사실무근한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퍼뜨린 데서 기인됐다”며 ‘통대소집 공고, 새 역사의 장이 열리는 날, 8월은 정녕 민족의 달’이라고 했다.
전두환, 노태우일당은 김영삼정권 때 '12·12, 5·18 재판'으로 “반란수괴”, “반란모의 참여”, “반란중요임무 종사”, “상관살해”, “내란수괴”, “내란모의참여”, “내란중요임무종사”, “내란목적살인” 등의 혐의로 사형, 무기장역 등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피고인 14명 모두 복역 8개월 만에 특별 사면됐다. 광주학살 39년이 지난 올해부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비 인력을 모두 철수하기로 했지만 지금까지 전두환의 경호를 위해 경호원은 11명이 그를 보호해 주고 있었다. 그의 사저에도 지난 해 까지 10명의 경호 인력이 지켜주고 있었지만 올해부터 5명으로 줄였고, 경비 인력은 80명에서 20% 감축했다가 올해부터 완전히 철수한 상태다.
‘전사모’(전두환을 사모하는 사람들)는 살인자 전두환을 못 잊는 회원수 1만 8475명의 단체다. 전사모는 "전사모 운영진은 화려한 휴가 제작사와 제작진, 감독, 출연배우 등 왜곡된 사실로 진실을 숨기고 전사모를 정신병자로 치부해 버린 그들을 상대로 최고 300억원의 소송을 준비하기도 하고 합천에서는 전두환의 호를 딴 일해공원이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돼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전두환경호실장이었던 안현태는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전두환의 출신 대구공고 홈페이지에는 단임제대통령을 실현한 ‘한국정치 민주화에 불멸의 초석’이라고 찬양하고 있다.
전재산 29만원밖에 없다던 전두환. 12.12사태 촉발책임과 5.18광주시민 학살, 수 천억의 비자금 조성과 횡령에 관한 죄를 물어 법원으로부터 무기징역의 실형과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 받았던 전두환은 재산 29만원밖에 없다던 전두환. 12.12사태 촉발책임과 5.18광주시민 학살, 수 천억의 비자금 조성과 횡령에 관한 죄를 물어 법원으로부터 무기징역의 실형과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 받았던 전두환은 은닉 재산으로 의심되는 경기도 용인 땅이 456억원에 매각하기도 했다. 현재 전두환은 선고받은 추징금 2205억원 중 1000억원이상은 아직까지 환수되지 않은 상황이다.
2006년 국무회의에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등 3년이상 형을 선고받은 176명의 서훈을 취소하고, 훈장 등을 환수키로 의결했다. 그러나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서훈 취소 대상자 절반 가까이가 훈장 반환 요구에 대해 반환 기한 일까지 반환은 커녕 사유서조차 내지 않고 있는 상태다.
학살자가 국가원로로 대접받고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떠벌이고 다니며 97억1천만원짜리 호화저택에서 살면서 회고록을 쓰며 사는 나라에 정의는 어디 있는가? 오는 18일은 광주민중항쟁 39주년이 되는 날이다. 광주학살에 동참했던 부역자들은 아직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영역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들이 만든 민주공화당은 현재 촛불정부의 제 1야당으로 당당하게 큰 소리 치며 살고 있다. ‘전두환 국보위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를 열어 ‘사회악 제거하는 의인’이라던 기독교인. 용비어천가를 부르던 대한민국 일등 신문(?) 조선일보는 아직도 대한민국의 주인 노릇을 하며 주권자들을 개, 돼지 취급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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