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성은 민주정치체제의 핵심적 요소이다. 행정 관료들이 져야 하는 책임의 명확화와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정치적, 행정적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문서상의 절차로만 남게 될 것이다. 이처럼 책임성이 행정학의 근본적인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정책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은 왜 없을까?
10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혈세를 날린 대형 국가재정 손실은 덮어두고 넘어 가는게 전직대통령에 대한 예의일까? 교육실패만 해도 그렇다. 교육이 공공재가 아니라 상품이라며 시장에 맡긴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우리교육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교육을 황폐화시킨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입안한 관료는 어떤 책임을 졌을까? 보나마나 그를 비롯한 정책입안자들은 하나같이 표창과 승진의 혜택을 누리다가 정년퇴임 시 국가가 주는 훈장을 받고 지금 쯤 여생을 편안히 보내고 있을 것이다.
우리교육의 위기를 불러온 주범은 신자유주의정책뿐만 아니다. 입시정책을 비롯한 교원정책 등 수많은 교육정책이 하나라도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다. 그 결과는 교육수요자들의 피해로 구체화되고 있지만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한 관료들 중에 책임을 통감하고 양심선언이라도 했다는 공무원을 본 일이 없다.
오히려 7차교육과정을 도입하면 교육이 황폐해 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시위를 하고 교육부에 항의를 하던 전교조 교사들은 온갖 불이익을 당하며 살고 있다. 수많은 연구학교, 시범학교를 운영하면서 교육부의 정책을 입안한 학교도 엄청난 혈세를 낭비한 공범자(?)들이지만 그들 또한 하나같이 당당하다.
아래 글은 2001년 수요자중심의 7차교육과정 도입에 반대해 경남도민일보 칼럼에 기고한 글입니다. 이 글을 다시 보면 잘못된 곳이 없건만 당시 제 글을 전교조 교사의 과격한 글이라며 외면을 받았던 글입니다. 어떤 주장을 했는지 한번 보십시오.
교육정책 실패, 책임 물어야 한다
김용택(마산여고 교사) 2001년 07월 18일 수요일
3년 동안 약 5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교육과정 전문가, 현장교원, 학부모 등 1만 4322명 이 참석하고 282회의 협의회와 세미나,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시행한 것이 7차 교육과정이다. 이렇게 수많은 두뇌와 자금과 시간을 투입해 만들어 낸 교육과정이 시행 2년째를 맞으면서 학교현장의 반발로 전면 재검토 해야할 처지에 놓였다.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되면 교단이 황폐화할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 교사들의 생각이다. 7차교육과정에 대한 이러한 정서는 교원단체는 물론이고 전국의 일선 고등학교 교사들의 ‘불복종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교조는 물론이고 한국교원단체총연합 조차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되면 교단이 황폐화된다고 반대하자 교육인적자원부는 뒤늦게 7차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보완.개선하겠다고 나섰다. 말이 개선.보완이지 7차 교육과정의 시행착오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교육과정이란 각급 학교의 교육목적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국가수준의 학교교육의 설계 도다. 이미 잘못된 설계도에 의해 초등학교는 4학년까지,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이 교육과정에 의한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교육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되면서 학부모들은 현재와 비교할 수 없는 사교육비부담을 안게 되고 학생들은 무한경쟁에 내몰리게 될 것이라고 한다. 7차 교육과정이 전면적으로 시행되는 2004년이 되면 교육의 불평등구조는 더욱 심화되고 교단이 황폐화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7차 교육과정은 수준별 교육과정의 도입, 10개 국민 공통기본교과 설정, 재량활동 신설, 특별활동 정비라는 4가지 특징을 안고 겉으로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 수월성의 추구, 개별능력 중시’라는 세계화, 정보화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을 육성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7차 교육과정은 결과적으로 교사 ,학생뿐만 아니라 학교까지 무한경쟁을 부추겨 강자만이 살아남게 하는 무한경쟁의 논리를 담고 있는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가 교원단체를 비롯한 학부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수정고시를 거부해 온 이유는 간단하다. 7차 교육과정을 수정 고시하면 ‘교육 정책에 대한 신뢰성이 손상돼, 향후정책추진에 부정적인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7차 교육과정 시행을 고집하던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 23일 ‘학생 개개인의 수준별 교과선택 학습을 골자로 한 제7차 교육과정에 대한 교원들의 반발을 해소하기 위해 교육과정심의회(교과심)를 재구성’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 98년 해체됐던 교과심을 이른 시일 안에 재구성해 교사,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7차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보완.개선하겠다고 밝혔다.
7차 교육과정이 사회적 합의에 실패한 정책이라는 것이 증명된 이상 체면 때문에 또 적당 하게 궤 맞추어서는 안 된다. 교육정책은 교육현장에서 떠난 지 수십년이 지난 현장 감각이 없는 교육관료와 해외에서 교육학을 연구하고 돌아 온 학자들이 입안한다. 새 교육과정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연구학교나 시범학교에서 실험과정을 거친다. 우리 교육역사상 ‘실험학 교’나 ‘시범학교’에서 단 한번도 시행에 문제가 있다고 거부당한 일은 없다. 정책입안자가 정책을 내놓기 바쁘게 실험결과보고서에서 성공적이라고 손을 들어주면 정책으로 채택해 시행에 들어간다. 마치 사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성공적인 결과가 나오고 그 후 정책 입안자는 그 공로로 승진해 자기 갈 길을 가고, 그 후 시행착오에 대해서는 책임질 사람이 없다.
연구학교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교사는 권력지향적이거나 승진을 위해 소수점 이하 몇 자 리까지의 점수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7차 교육과정도 마찬가지지만 교육정책은 늘 이렇게 정책입안자의 책상 위에서 이루어지고 현장 교사들은 들러리를 서왔던 것이다. 늦기는 하지만 더 이상 학생들을 시행착오의 희생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원론적으로 옳은 이론이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이유는 이상에 치우쳐 현장정서를 외면하고 검증되지 않은 외국의 교육 이론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늦기는 하지만 지금이라도 교육정책 실명제를 철저히 시행하여 우리교육을 회복불능상태로 몰고 간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물론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 부분에 대해서는 배상과 함께 교육사에 기록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금은 7차 교육과정을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하는 길만이 교육의 황폐화를 최소화하는 길이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옛날에 썼던 글을 여기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2001년 07월 18일 (바로가기▶)'교육정책 실패, 책임 물어야 한다'는 주제로 쓴 경남도민일보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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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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