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바쁘게 살고 있어서 그럴까? 해야 할 일, 놓치고 잊고 사는 게 너무 많다. 특히 내가 가진 것. 누려야할 권리를 잊고 사는 사람들.... 가끔 자신이 누릴 권리를 정당하게 찾아 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가 민주시민으로서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최근 카카오톡에는 재미 있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헌법 바로 알기라는 카톡방에는 며칠 사이에 수백명이 참가해 (바로가기) '우리헌법바로알기 국민운동본부' 카페까지 만들었다. 이 사람들은 우리국민 모두가 헌법책을 가지고 다니며 언제든지 읽을 수 있도록 '손바닥 헌법' 책을 만들어 배포할 계획을 세우고 1차로 500만부를 인쇄할 준비 들어갔다.
살다보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없어도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게 있다. 법이라는 게 그렇다. '당신은 이러이러한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국민의 합의로 정해 둔 소중한 권리를... 세상사람들이 모두 내 마음 같으리라 생각하고 불편해도 운명이려니 하며 사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모든 사람들이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면 좋겠는데 세상이 갈수록 각박해져 순진한 사람, 착한 사람이 바보취급 받기에 하는 말이다.
이런 생활습관은 어려서부터 바로 잡고 고쳐야 하는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학교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지식도 가르치고 정서함양과 체력향상을 위한 예체능도 가르쳐야 하지만 그 중에서 절대로 빼놓아서 안되는게 민주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나 책임, 자질과 긍지...와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학교는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 그리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 비판하는 능력,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될 도리...와 같은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가치를 배우기 보다 시험문제를 하나라도 더 잘 풀어 남에게 이기는 경쟁이 학교가 해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로 자리 잡고 말았다.
헌법이라는 게 그렇다. 태어나면서부토 누릴 수 있는 국민으로서 권리, 의무,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비롯한 가장 소중한 내용이 담긴... 아니 몰라서 안 될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 국어, 영어, 수학 문제는 한두개 못풀어도 괜찮지만 헌법을 모른다는 것은 국민으로서 수치며 개인으로서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당신은 "당신은 1988년 2월 28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을 한 번이라도 읽어보셨습니까?"라고 물어 본다면 과연 몇 퍼센트의 국민들이 "예"하고 대답할까?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교육이 실종되고 경쟁이 학교교육의 목표가 됐으니 주객전도현상은 당연히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그런 현상이 제가 근무했던 마산여고라는 학교에서도 일어났다. 두발 자유화를 위해 교칙을 바꾸려고 했지만 학부모위원은 물론 학교장도 학생들게 그런 자유를 주면 학생 통제가 어렵다며 반대했다. 결국 범생이 학생들까지 가세해 학생 전체 의견을 무시하고 두발자유화를 반대한다는 결정까지 하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런 학생들의 움직임을 두고 볼 수 없어 제가 학교홈페이지 토론방에 들어가 개입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 이야기다. 지금도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자면 이런 학교가 다시 나타날 께 뻔하지 않을까? 아랫글은 그 때의 일을 오마이 뉴스에 썼던 기사다. 이 학생들은 지금 30세가 넘은 청년들이 됐는데 이들이 자신이 했던 일을 읽어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
아니 아직도 헌법에 명시된 신체의 자유라는 소중한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산다면.... 생각해 보니 헌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공부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2001년 9월 27일
'두발자유를 반납하고 다시 단발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얘기를 들은 것은 학생 대표자회의를 한 다음날 아침이었다. 필자는 그 말을 듣고난 후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내 귀를 의심했다.
왜냐하면 그만큼 '두발자유화'는 전교생의 열화와 같은 요구였으며 힘겹게 얻어낸 결실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은 두발문제로 학교가 온통 뜨거운 열기로 식을 줄 몰랐다.
각 학급마다 반장들이 학생들의 여론을 수렴하고 직원회의에서는 두발자유화에 대한 격론이 벌어졌다. 홈룸시간 한 시간 내내 토론한 결과를 놓고 "교복을 입은 학생이 머리를 풀어헤친 모습은 학생답지 못하다"는 발언을 한 학교장을 향해 거친 항의성 발언도 거침없이 나왔다.
'자율이냐 규제의 완화냐'를 놓고 용어의 정의부터 해야 한다는 이의가 제기되기도 했다.
학생생활지도규정이라고도 하는 교칙 중 '귀밑 3cm'는 모든 학생들을 옭아매는 혐오의 상징이기도 했다. 때문에 교문을 지키는 학생부 지도교사와 학생들 간에는 아침마다 신경전이 벌어지곤 했다.
교문 앞에 선 학생부 지도교사와 선도생들은 아예 가위와 자를 들고 교문을 지키고 서 있어야 했고 조금만 규정에 어긋나면 사정없이 잘리곤 했다. 용케 피해 다니던 학생들도 수업시간을 이용해 실시하는 불시점검에는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두발을 자율화하자는 학생회 간부들이 몰래 1,2학년 교실을 찾아다니며 연판장을 돌리기도 하였다. 그렇게 소원을 하던 두발문제가 각 반에서 여론을 수렴하고 교무회의에서 고성이 오간 토론 끝에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어깨 선'까지라는 규정이 확정될 때까지는 우여곡절을 겪었던 것이다.
두발 자율화 소식이 각 교실에 전해지자 교실마다 승리의 환호성이 터졌다. 그런데 그 감동이 1년도 채 가시기도 전에 학생 대표들이 모여 다시 단발을 하자는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단발을 자청한 이유는 대강 이렇다.
'우리 학교는 두발을 자유화했기 때문에 시내의 중학교에서 공부하기 싫은 날라리(?)들이 본교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또 '우리 학교는 두발 자유화가 되어 있기 때문에 질 나쁜 아이들이 몰려와 학교가 개판(?)이 된다'는 이유다.
사랑하는 모교에 질 나쁜 학생들이 들어와 학교가 엉망이 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학생간부로서 학교가 삼류화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이유다. 이렇게 애교심이라는 가치 앞에 자유라는 가치가 고사 직전에 놓여 있는 것이다.
어떤 사가(史家)는 인류의 역사를 '자유의 쟁취과정'이라고 서술했다. 그만큼 자유를 얻기까지의 과정은 피로 얼룩진 투쟁의 연속이었다. 계급사회에서 소수의 지배계급을 빼면 나머지 인간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릴 수 없었다.
옷의 색깔에서 집의 크기는 물론 신분이 다른 사람과는 혼인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신분이 낮다는 이유나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인간다운 대접을 받을 수가 없었던 것이 계급사회다. 유럽사회의 스파르타쿠스의 저항에서 우리나라의 동학혁명에 이르는 헤아릴 수 없는 저항은 자유를 찾기 위한 권리회복이요, 저항이었다.
자유란 그만큼 권력의 시혜가 아닌 스스로 쟁취하여 얻은 결과였기에 더욱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이 정도의 자유도 따지고 보면 수많은 피와 눈물로 얼룩진 투쟁의 산물이다. 쉽게 번 돈이 헤프게 쓰여지듯 쉽게 누리는 자유이기에 그 가치가 평가절하 되어 있는 것이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생대표의 마음은 어찌 보면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러나 학생대표들이 스스로 포기한 '두발 자유의 포기'라는 결정은 몇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 학생 대표단의 비민주적인 결정이다. 대표란 말 그대로 구성원의 의사를 수렴하여 전체회의에 반영하는 이름 그대로 대표이다. 어떤 학생이 무슨 연유에서 제안하고 결정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전체학생의 의견수렴 없이 대표의 의사만 반영한 결정은 대표성을 반영한 것이 아니다. 고로 각 학급 급장 개인의 제안에 의한 결정은 대표성을 반영하지 못한 '대표권의 남용'으로 원인 무효다.
둘째, 고등학생으로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결정하지 못한 단견이다. 성적이 상대적으로 좋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이단시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전혀 민주적이지 못하다.
모교사랑이나 전통이란 소중한 가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전통이 집단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고 '우수집단'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패거리 문화를 만드는 역기능으로 작용한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이런 경우 '애교심'은 집단의 우월감을 충족시켜주는 집단이기주의로 기능한다.
셋째, 두발 자유화를 포기한다는 결정은 자유라는 가치와 애교심이라는 가치 중 어떤 가치가 더 소중한 가치인가에 대해 판단하지 못한 오류다. 인간의 존엄성이 자유나 평등이라는 가치보다 기본적 가치이듯이 애교심이라는 가치는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인 자유보다 소중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학생답지 못한 순수성의 결여라는 문제다. 학문을 하는 학생들이 우리 학교가 살아남기 위해 자기보다 약간의 실력 차이가 있는 친구를 배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큰 병폐의 하나가 이해타산하고 우월감을 갖는 집단들이 만든 패거리 문화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지연, 학연, 혈연으로 뭉치는 사고방식은 봉건적인 유습으로 청산되어야 할 문화다.
통제와 규제에 익숙해진 사람은 자유가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노예해방에 가장 정면으로 반기를 든 사람은 어이없게도 노예주인이 아니라 노예들이었다. 잘못된 교육에 의해 순치(馴致)된 인간은 독재권력의 도구나 불의한 집단의 충견이 될 수도 있다.
민주주의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다수결을 내세워 소수의 의견이 무시되는 민주주의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아니다. '다수결이란 최선이 아니다.' 대표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표가 행사하는 권리는 권리가 아니라 폭력이다.
자유라는 인류사회의 보편적인 가치는 전통이나 애교심의 차원을 뛰어넘는 진리다. 이기적인 안목으로 결정한 그 어떤 합의도 민주주의의 적이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제가 방송에 출연했던 원고, 경남도민일보 사설이나 칼럼, 대학학보사, 일간지, 교육희망, 우리교육, 역사교사모임, 국어교과모임, 우리교육, 오마이뉴스, 그밖의 주간 혹은 일간지에 썼던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2001년 09월 27일 (바로가기▶)'자유'를 반납하겠다는 아이들에게'라는 주제로 오마이뉴스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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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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