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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퇴근길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께 띠를 두른 교인들이 행인들에게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예수 믿고 천당가십시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이런 구호와 함께. 그런데 홍보지를 받아 지나가려는 데 건장한 남자 한 분이 필자를 보는 순간 “아! 선생님!”하고 아는 채를 했다. 필자도 몇 십년만에 만난 옛 교우(?)가 반가워 “아이구 오랜만입니다”라고 악수를 했다. 십여년동안 같은 감리교에서 권사직을 맡아 일했던 분이다. 그런데 이분, 다음 말씀이 “선생님도 이제 교회 나와 천당 갈 준비나 하셔야지요?” 그랬다. 신호가 바뀌어 급히 인사를 하고 건너오기는 했지만 말을 어떻게 저렇게 할까 섭섭한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당신도 이제 나이께나 먹었으니 죽을 준비나 하라’는 뜻인가?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른데... 어떻게 60도 안 된 사람에게...
필자와 기독교는 묘한 인연이 있다. 사립학교에 근무하다보니 학교설립자인 교장이 장로였었고, 어쩌다 같은 교회에 다니게 됐다. 주일학교부장까지 맡아 일하던 필자는 그 뒤 전교조 관련으로 해직되면서 몰라도 될 여러 가지를 알게 되고 개인적인 존경심이 바뀌어 감정적인 앙금까지 남은 채 직권 면직 당한다. 순진하게도 평소 존경하던 교장선생님(장로님)은 우리가 요구하는 ‘참교육의 열정을 이해해 주시고 오히려 함께 하지 않을까?’ 할 정도로 평소 존경해 왔다. 그러나 결국은 참교육이라는 갈림길에서 서로 각각의 길을 걷게 됐다. 그 후 기독교에 대한 상처는 쉬 회복되지 못하고 그 때의 감정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
개인적인 감정 때문만이 아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전혀 민족적이지도 못하고 민주적이지도 못하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독교 한 종파는 군수산업을 해 돈벌이를 하고 있지만 여기선 그 얘긴 덮어 두자. 그 외에도 최근 사립학교법이며 기독교인이 경영하는 이랜드의 파업사태를 보면서 기독교가 이렇게 막나가도 될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멀지 않은 지난 역사에 황사영의 백서사건을 보자. 1801년 천주교 신자였던 황사영(1775-1801)이 신유박해를 피해 충북 제천의 한 토굴에 숨어 지내던 중 한국 천주교의 위기와 이 땅을 천주교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 청나라와 서구 열강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장문의 편지를 작성한다.
신앙의 자유도 좋고 천주교선교도 좋다. 그러나 백서에 담은 내용을 보면 '청이 조선 조정에 압력을 가하거나 조선을 아예 한 성으로 편입시켜 천주교를 공인하거나, 프랑스 등 서양의 천주교 국가들에게 호소하여 군사 수만과 군함으로 조선을 협박하거나 정복해서 천주의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다. 자신이 믿는 종교를 위해 나라를 외국에 바치는 행위를 어떻게 봐야 할까? 백성들이야 전장에서 죽든 말든 천주교만 전파된다면 나라고 역사고 필요 없다는 종교는 제정신이 있는 사람일까?
종교재단이 운영하는 사립학교 부정과 비리를 두둔하기 위해 '사학법 개악을 막자'는 사람들을 마귀로 규정하는 기독교인들은 천사인가 악마인가? 부패한 사학 편에 서서 사학을 바로 세우자는 시민들을 마귀로 단정할 권리는 진정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일까? 식민지시대에는 또 무슨 짓을 했는가? 1936년 6월 감리교 총리사 양주삼 목사는 총독부에서 신사 참배에 응할 것을 밝히자 성결교 구세군 성공회 등이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장로교도 이에 뒤질세라 1938년 9월 제27차 총회(총회장:홍택기 목사)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했다.
『신사가 종교가 아니요 …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의식임을 자각하며 이 에 신사참배를 솔선 여행(勵行)하고 추히 국민정신 동원에 참가하여 비상 시국하에서 총후(銃後) 황국신민으로서 적성(赤 誠 )을 다하기로 함』 십계명을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저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도 십계명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진정한 예수의 제자일까?
황국신민화정책을 실시하기 위해 조선여성을 동원했을 때 고황경, 김활란, 이숙종, 조기홍 등 대표적인 기독교 여성 지도자들은 ‘대세순응론’을 들고 나와 미나미 총독이 추진하는 어용단체에 협력해 동족을 내선일체, 황국신민을 만드는데 앞장섰다.
일제 때만 아니다. 광주시민들이 전두환 부하들의 총칼에 무참히 난도질당할 때, 전두환을 위한 용비어천가를 불렀던 목사님들은 아직도 눈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 1980년 8월6일 원한을 품고 죽어간 무고한 시민들의 피도 채 마르기 전, 롯데호텔에서 기독교 지도자라는 분은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조찬 기도회」를 열었다. 이 기도회에서 문만필 목사가 사회를 맡고 설교에 한경직 목사, 기도에 정진경 조향록 김지길 목사와 김인득 장로가 맡았다. 이들이 하나님께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해 감사한다.』고 기도했다. 이 조찬기도회는 KBS와 MBC를 통해 현장 중계됐으며 다음날 두 번에 걸쳐 녹화 중계 했다.
한경직목사는 박정희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에서 '박정희 = 모세'라고 찬양했던 바로 그분이다. 양의 탈을 쓴 종교지도자들은 회개해야 한다. 교회지도층의 카멜레온 같은 삶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1972년에는 「대한기독 교연합회」 등에서 유신헌법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가보안법수호 국민대회를 열고, 2001.부터 연이어 3년동안 세 차례에 걸친 미군철수반대와 숭미집회를 열기도 했다.
1년간 약 1억1300여만원의 십일조를 내는 조모목사의 경우 연간 약 11억3000만원의 소득있다는 말이다. 이 목사에게 국가는 세금 한 푼도 매기지 않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현대판 골품제를 적용하겠다는 것인가? '종교법인법 제정 추진 시민연대' 이드(52) 사무처장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종교인이 세금을 내지 않는 나라가 한국"뿐이라며 "한국 종교계는 헌법 11조 국민평등권을 위배하고 있고 헌법 38조에 납세의 의무까지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오마이뉴스 2007년 7월 11일)
종교와 자본, 종교와 권력이 손잡으면 종교가 교의를 따라갈까? 멀쩡한 사람도 권력의 맛을 보면 ‘맛이 간다’(?)고들 한다. 역사적으로 불교가 권력 화됐던 지난날을 우리는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물론 사람이나 종교도 시행착오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인이나 단체가 개인이나 국민앞에 저지른 죄악을 회개할 줄 모르고서 어떻게 신자들을 천국으로 안내할 것이며 본인은 천국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2000년 전에 예수님은 말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회개없는 천국은 없다. 한국교회가 살 수 있는 길은 회개를 통한 양심회복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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