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만나는 신문. 우리세대들은 신문의 그 잉크 냄새를 맡으며 기사를 보고 울고 웃으며 하루를 시작하며 살아 왔다.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시절,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입이 있어도 할 말을 못하고 얼울한 일이 있어도 하소연할 곳도 없이 무시당하면서 살아왔다. 약자의 편이 되겠다는 한겨레신문이 창간 될 당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어찌 그 감동을 말로 다 표현하겠는가?
약자의 힘이 된 신문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신문, 당시 한겨레신문은 약자의 희망이요, 삶의 보람이기도 했다. 진실을 보도해주는 신문이 있다는 것은 언론이 통제당하며 인권이 유린되던 시절을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간절함을 모른다. 그래서 한겨레신문을 본다는 것만으로 빨갱이 취급당했지만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구독운동에 앞장서기도 하고 무료배달을 자원하는 감동적인 모습을 어찌 잊겠는가?
그런데 요즈음 한겨레신문을 보면 짜증이 난다. 아니 짜증이 아니라 이런 신문을 계속 보아야 할지 회의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제 한겨레신문을 끊을 때도 됐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지난 연말 정석구논설위원실장이 쓴 ‘12·19 부정선거와 박근혜 사퇴론’을 읽다 하도 화가 나서 ‘한겨레신문도 이제 찌라시가 되고 싶은가?' (바로가기→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21127.html)라는 글을 썼던 일이 있지만 어제 아침에도 한겨레신문을 보고 화가 나서 신문을 덮어 버렸다.
내가 한겨레신문을 읽고 화가 난 이유는 김의겸 논설위원이 쓴 '애국가와 난지도'(바로가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21127.html‘애국가와 난지도’ 라는 칼럼 때문이다. 기사내용을 보면 애국가 노랫말 가사를 누가 썼느냐를 놓고 작곡가는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안익태가 그리고 지금 논란 중인 작사는 친일파 윤치호가 쓴 게 맞느냐는 문제를 놓고 자신의 생각을 적은 글 때문이다.
부끄럽고 황당한 얘기지만 우리가 부르고 있는 애국가가 친일인명 사전에 이름이 올라 있는 안익태라는 사실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런데 애국가 노랫말을 쓴 작사자마저 친일파 윤치호가 맞느냐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되고 있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칼럼을 기고 한 것이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생각해 보자. 해방된 나라의 애국가가 작곡가는 물론 작사자조차 친일 인사라면 당연히 새로운 애국가를 만들어 폐기처분해야 옳지 않은가? 이참에 더 멋지고 아름다운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애국가를 다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부끄럽게도 양심을 팔아 동족의 피를 빨아먹던 매국노가 쓴 노래를 애국가라고 부른 다는 것은 민족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김의겸의원은 이 문제를 어떻게 정리했을까? 그는 ‘애국가와 난지도’라는 칼럼에서 두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하나는 애국가를 국가의 지위에서 끌어내리는 방법과 다른 하나는 윤치호의 고뇌를 감싸 그대로 인정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런 주장은 둘 다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의겸논설의원은 ‘작사자의 훼절이 당혹스럽고 친일과 독재라는 생채기가 있지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자’는 주장이다.
김의겸 논설위원에게 묻고 싶다. 친일파 윤치호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자는 게 어떻게 다른지를...? 김논설위원은 착각해도 뭘 한참 착각하고 있다. ‘임시정부 국무원들은 매일 아침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합창‘했기 때문에 혹은 ‘이한열 열사 장례식 때 신촌에서 시청까지 백만 인파가 목이 터져라 불렀고... 그래서 윤치호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그의 변절에 아파할 필요도 없이... ’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김논설 위원은 답해야 한다. 몸속에 암이 생겼는데 ‘모른 채 하는 것도 나쁘고 수술도 하지 말고 말자는 것도 나쁜데, 암 덩어리가 있어도 걱정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면 문제가 될게 없다는 말인가? 정말 그래도 괜찮은가? 환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병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환자를 진정으로 살리겠다면 수술도 해보고 항암제도 투여 해 살릴 길을 찾아 보는게 환자를 살리는 길이다. 그런데 더럽더라도 개의치 말고 살면 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지난번 장석구논설실장도 그랬지만 김의겸 논설위원은 한겨레신문이 지향하는 이념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나 한가?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 평범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 한겨레신문이 지향하는 가치다. ‘애국가와 난지도’의 논조처럼 힘겹게 살았던 과거가 소중하기에 그런 상처까지도 함께 덮고 살면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가?
우리사히가 왜 이 모양이 됐는가? 사회정의가 실종되고 정치판이 ×판이 된 이유가 무엇인가?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로 승자를 가리는 막가파 세상, 부모의 경제력으로 자녀의 사회경제적인 지위가 대물림되는 현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희망이 없는 사회가 됐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는 말인가?
왜 학생들이, 노동자와 시민, 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가 안녕하지 못한 사회가 됐는지를... 이런 모순의 근원이 해방정국에서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지지기반이 부족해 친일세력을 끌어들여 정권을 장악하려했던 이승만의 야망이 오늘날 우리사회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김의겸논설의원은 모를 리 없다. 그러면서 지난일은 덮고 현실에 충실하게 살자고...? 그러면 살기 좋은 사회, 안녕한 사회가 될 수 있는가?
‘불의와 부정에 대한 비판자로서 봉사하며 정치권력 등에 의한 인권침해를 파헤친다.’는 게 한겨레신문이 지향하는 가치다. 그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힘들었던 과거이기에 청산할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한겨레신문은 설마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창간 당시의 세상과 달라진 게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론의 사회적 책무에 따르는 언론인 자신의 도덕적 결단과 실천’을 통해 언론 본연의 역할을 하겠다’면서 적당히 비판하고 적당히 타협하면 한겨레가 지향하는 이념을 실천할 수 있는가? 그런 세상이 오는가? 모두들 거꾸로 가고 있으니까 한겨레신문도 조금씩 타협하고 눈감고 거꾸로 가는 것쯤이야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 정말 한겨레신문을 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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