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는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사람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흔히들 시비(是非)를 가린다'고 하면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도전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시비를 가린다는 것은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른, '잘잘못을 가린다'는 뜻이다. 친족단위의 공동체사회에서 살아 온 조상들은 자기 몫을 분명히 가려 내 것, 네 것을 따지고 계산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가족이나 친족단위의 정서는 상대방에 양보하고 배려하는 '좋은 게 좋은' 분위기가 지배하는 사회다. 이러한 사회에서 시비를 가린다는 것은 정이 메마른 사람이 된다. 서로 믿고 순수가 통하던 사회에서는 이러한 정서를 탓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한쪽이 이익을 보면 상대방이 손해를 보는 '좋은 게 좋다'는 뜻의 '두리뭉실한 정서'는 통하지 않는다.

 

산업사회는 이해관계가 민감하게 대립되는 사회다. 사용자는 임금을 적게 주고 일을 많이 시키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피고용자는 임금을 많이 받고 적게 일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이해관계는 학교사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교사와 학교장은 이해관계가 대립되기 마련이다. 학교장은 일을 시키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순종하는 교사를 좋아한다.

 

학교장의 입장에서 보면 교사들은 시비를 가리고 따지는 사람보다 교장이 하는 일을 무조건 믿고 따르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반면에 대부분의 교사들은 학교장의 독단적인 경영보다 민주적이고 투명한 학교경영을 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교장과 교사는 이해관계가 상반된 갈등관계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반된 이해관계는 학교운영위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학부모와 학교는 이해관계가 배치된다. 학교운영위원회가 교사위원만이 아닌 학부모위원을 둔 이유도 그렇다. 학교운영위원회가 설립목적에 맞게 운영되면 학교장과 학부모들은 안건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학교운영위원회에 참가해 보면 학부모위원들은 '좋은 게 좋다'는 정서가 지배적이다. 학교장에게 찍히면 자기자녀가 불이익을 당할 지도 모른다는 계산 때문이다. 전체학생을 위해 내가 대표성을 행사해 십자가를 져야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적으로 궁색하지 않은 학부모위원들은 어려운 학생의 입장에서 학교운영에 참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앨범제작업체나 여행사는 단골업자가 독점 해왔다. 앨범제작은 당연히 수의계약이나 조달청을 통해 구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평생에 한번밖에 하지 않는 앨범을 뭘 까다롭고 복잡한 입찰로 돈 1, 2만원 가지고 쫀쫀하게 따지느냐고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한다.

 

제대로 된 경영자라면 학교가 앞장서서 학생들의 입장에서 일을 처리해야 옳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를 지금까지 관행을 뿌리치고 학생이나 학부모 편에서 일을 처리하려는 학교장은 그렇게 흔치 않다. 앨범뿐만 아니다. 예산이 수반된 안건을 따지고 시비를 가리자고 하면 '뭐 그런 일을 가지고 까다롭게 구느냐?'는 투다. 금전관계가 걸린 문제에 투명성을 주장하면 반대를 하는 사람이 누군지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모든 영역에서 그렇지만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민주적이고 교육적이어야 한다. 학교급식은 바쁜 학부모의 불편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편식을 교정하여 식습관을 교육적으로 바꾸기 위해' 학교급식을 실시한 것이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예산집행도 당연히 교육적으로 모범이 되고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한다.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급식업체의 선정이나 앨범업체선정 등 금전과 관련된 안건은 교사와 학부모에게 공개해야 한다. 이러한 일을 심의해야할 학교운영위원회 구성원이 '좋은 게 좋다'는 정서는 옳지 않다.

 

잘못된 관행은 바로잡아야 하고 틀린 것은 고쳐야 된다.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다. 앨범업자든, 여행사든 누군가가 로비를 받으면 학생들은 피해자가 된다. 학교운영위원회가 있어야 할 이유는 투명하지 못한 관행을 고치고 한 점 의혹도 없도록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서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가 희생하는 사회는 전근대적인 봉건사회다.

 

교장의 이익, 교사의 이익, 학부모 운영위원의 이해관계에 따라 학교가 운영되어서는 안된다. 학교 운영이 보다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시비를 가리는 사람이 필요하다. 교장선생님에게 점수를 따서 승진하기 위해서 혹은 내 아이가 학교에서 특혜를 받기 위해서 학교장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는 풍토는 바뀌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가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으면서 어떻게 민주적인 교육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ㅡ이미지 출처 : 오마이 뉴스에서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