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사실을 학생부에 기록하는 문제를 놓고 진보교육감과 교과부장관간의 갈등이 이제 법정 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김승환전북교육감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을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며 7일 국회를 방문, 여야 각 정당 대표에게 탄핵소추안 발의 요청서를 전달했다.
김 교육감은 이 장관이 국민의 기본권과 행복추구권 등과 관련된 헌법 제37조 제2항, 제10조, 제13조 제1항 후단(동일한 범죄에 대해 거듭 처벌받지 않는다) 등을 위배하고 초·중등교육법 제18조 4항, 소년법 제32조 제6항과 제70조 제1항, 개인정보 보호법 제3조 제6항, 제4조, 제5조 등의 법률도 위배했다는 이유다.
잘잘못은 사법부가 가린다 치고 도대체 끝도 없이 치닫고 있는 학교폭력은 해결불가능한 문제일까? 실제로 학교폭력을 보는 관점도 처벌을 강화해 재범을 줄이자는 쪽과 처벌위주로 학생부기록까지 한다면 개과천선할 기회조차 잃은 아이들이 회복불능의 문제아를 만들어 놓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형벌이 존재하는 이유는 응보(應報)나 예방(豫防)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다. 응보란 '눈에는 눈'과 같이 악(惡)에 대해서는 악으로써 보복한다는 ‘갚아주기’다. 동등한 해악(害惡)을 가해자에게 갚아주는 것만이 사회정의를 실현할 수 이 있다는 이론이 응보형벌이다.
오늘날 형벌의 목적은 원시시대의 응보형의 보복이 아니라 죄를 범하게 된 행위자의 심정·성격·환경 등을 고려해 장래에 있어서의 '범죄의 예방'을 통해 사회정의를 실현하는데 두고 있다. 우리 형법에 '선고유예'·'집행유예'·'가석방' 등은 이러한 재범을 예방하기 위한 형벌로 목적론 혹은 교육형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피고인들은 이미 수십년간 이유 없는 폭력에 시달리며 누구보다 큰 괴로움을 겪어왔습니다. 따라서 피고인 모두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립니다. 구속됐던 피고인 ○○○은 금일 석방하겠습니다."
술에 취해 가족 모두를 죽이겠다며 흉기를 찾는 가장의 입을 막고 4시간30분간 방치해 질식사시킨 혐의(살인·존속살해)로 기소된 모녀에 대해 집행유예 판결이 내렸다.
지난 4월11일 성남시에 사는 피고인 A(46·여)씨는 계속된 남편의 술주정을 견디다 못해 아들과 함께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을 두고 한 판사의 집행유예 판결 이유다.
사람을 죽였으니 살인범이다. 그것도 아버지를 죽인 건 존속 살인으로 죄가 더 무겁다. 그런데 집행유예판결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수십년간 아버지의 폭력... 즉 결과가 아닌 과정을 참작했다는 판결이다.
학교폭력의 경우는 어떤가? 아이가 엄마의 배속에서 태어 날 때는 누구나 똑같은 천사다. 그러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모의 사랑으로 고이 길러지는 아이가 있는가하면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부모를 잃고 사회시설에서 자라는 불우한 아이들도 있다. 성장과정에서 아이들은 문화라는 이름의 잔혹한 게임이나 폭력만화를 보기도 하고 폭력적인 영화를 보며 폭력을 보고 배우면서 자란다.
선과 악으로 팀을 나눠 때리고 죽이고 하는 게임에 익숙한 아이들은 폭력의 고통이나 살인의 잔인함을 체감하지 못한다. ‘승자가 되느냐 패자가 되느냐’라는 게임에서는 승리감과 패배감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전쟁의 고통을 소거한 전쟁영화가 스릴과 서스팬스가 넘치는 재미를 안겨주는 것처럼...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에게 주변에서 계속 ‘너는 문제아다’라고 낙인찍다 보면 이 아이는 갈수록 의기소침해지면서 자신이 진짜 문제아인 줄 의심하게 되어 결국은 진짜 문제행동을 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 레머트(E. Lemert), 메차(D. Matza) 등이 주장한 낙인이론이다. 아버지를 죽인 행위 자체를 두고 보면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다. 그러나 판사가 보복형벌이 아닌 과정을 참작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폭력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폭력 사실을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 잔인하기로 말하면 성인범죄를 능가한다.
보복이론으로 본다면 똑같이 갚아줘야 한다. 그런데 그게 해결책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다시 말하면 죄는 밉지만 해결책이 아니라는 얘기다. 폭력이 발생할 때마다 처벌해, 해결만 된다면 반대할 사람이 누구겠는가? 더더구나 자기 자식이 폭력의 피해자라면 아무리 중형을 가해도 속이 시원치 않을 것이다.
학교는 사법부가 아니다. 변화의 가능성을 믿기 때문에 학교가 존재하는 것이다.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가 폭력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과정’을 살펴 교육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원시시대나 할 수 있는 ‘갚아주기 보복’으로 어떻게 늘어만 가는 학교폭력을 해결하겠다는 것인가? 여론에 편승해 교육의 가능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교과부는 언제까지 폭력과의 전쟁에서 패배만 반복하고 있을 것인가?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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