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315, 나는 한겨레신문에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에 민주주의가 없다(클릭하시면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라는 주제로 글을 썼던 일이 있다. 12년 전 이야기다.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에 민주주의가 없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irony)한 일이다. 교육의 주체라는 학생, 학부모, 교사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학생회, 학부모회, 교사회가 법적인 기구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12년 전이나 지금도 그런 기구가 없다는 것이 믿어지는가?


학생들이 스스로 참여해 만들고 지킬 수 있는 교칙도 모르고 지내다가 걸리면 벌점을 받는 범법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그렇고 형식적으로 있기는 하지만 학급회니 전교 학생회는 민주적으로 운영 되지 않는다. 성적이 선거권의 제한 조건이 되기도 하고 태어나면서부터 누려야할 인간의 존엄성이 학생이라는 이유로 제한 당하고 두발이며 의복까지 교칙에 맞추어야 하는 이상한 현상이 민주주의를 배우는 학교에 버젓이 남아 있다.

경남에서는 지금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기 위해 교육청이 나서서 TF팀까지 꾸려 준비하고 있지만 의회를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벌써 3번째 보이콧을 당했으니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진보교육감들이 학생인권을 존중해 민주주의를 체화시키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된 시도는 전국 17개 시·도 중 4곳 뿐이다. 충남의 경우는 도의회에 이어 도내 4개 시·군에서 인권조례 폐지가 추진되고 있는 종도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민주주의 국가인지 의심이 든다.

당시 필자는 경남도민일보에 [사설로 보는 논술] 필진으로 학생들의 판단 능력을 길러주기 위한 사설로 보는 논술’(클릭하시면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을 썼던 일이 있다. 2006111동아 20051227중고교까지 정치판 만들려 하나’, 문화 20051226학생회 법제화는2사학악법이다중앙 20051227사학법 이어 학생회 법까지 만든다니’...라는 글을 소개하고 이에 반박하는 형식의 학생회 법제화 반대는...'이라는 글을 썼던 일도 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논술은 학원이 만들어 준 표준안을 암기하거나 미사여구로 늘어놓은 글장난이 아니다. 시비를 가리고 판단력을 길러주기 위해 도입한 논술이 이렇게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정부 선거 공약이기도 했던 학생회 법제화를 실현하기 위해 '학생회를 법제화하고 학생회에서 학생생활규정 개정 시, 적극적인 참여를 보장'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초·중등 교육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제출하지 사학단체와 보수적인 언론이 반발하기도 했다. 이들은 학생회를 법제화하면 학교가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 현장이라기보다 교내 세력이 대결하는 혼란의 장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며 법제화를 반대했다.


학교란 통제와 단속, 길들이기를 체화시키는 곳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해 시민의식과 비판의식을 가진 민주적인 인간을 길러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런 여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헌법에 보장된 인권존중의 가치를 가르치겠다고 전국 진보교육감들이 추진했던 학생인권조례는 전국 17개 시·도 중 겨우 4개 시도에서만 통과되었을 뿐이다.

사람의 행동이란 통제나 단속, 감시나 감독으로 길들여지는 것이 아니다. 행동의 변화는 가치 내면화를 통해 자발적으로 달라지도록 생활 속에서 체화시켜야 한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달라졌다면 학교 폭력을 감시하기 위해 학교 구석구석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교육으로 길러야 할 인성을 국회가 나서서 인성교육진흥법을 만들고 학원에서 인성을 기르겠다고 특강을 하고 있다.

"학교의 장은 법 제18조 제1항 본문에 따라 학생을 지도를 할 때에는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훈육·훈계 등의 방법으로 하되, 도구, 신체 등을 이용하여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 20113월에 개정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31조 제8항이다. 학교폭력을 막기 위해 폭력과 전쟁을 선포한 나라에 비록 간접체벌이지만 체벌이 허용되고 있다는 게 믿어지는가? 우리는 언제쯤 평화교육, 인권교육, 헌법교육을 할 수 있는 민주적인 학교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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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HAO 뉴스에서>

 

‘사리를 분별할 만한 힘이 없는 어린아이, 또는 사리를 분별하는 지각이 없어 보이는 어리석은 사람’을 철부지라 한다.

 

옛말에 철부지를 일컬어 ‘골백살을 먹으면 철이 들런지..’라고 했다. 만(萬)이 우리말로 ‘골’이고 억(億)은 잘’이니 '골 백 살’ 즉, 만 살이나 먹으면 철들어 '잘’ 할런지? 라는 뜻이다.

 

‘철부지’의 어원을 찾아봤더니 계절의 변화를 가리키는 말인 "철"은 사리를 헤아릴 줄 아는 힘, 곧 지혜를 뜻하는 말이다. 그 뒤에 알지 못한다는 한자말인 "부지(不知)"가 붙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지 못하는 어린애 같은 사람을 일컬어 철부지라고 한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수업시간에 들어 가 그들과 대화를 해 보면 참 철없는 학생들이 많다. 세상돌아가는 이치며 예의니 판단 능력이 어린아이같다. 덩치는 다 컸는데 생각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 어쩌다 우리학생들이 이 지경이 됐을까? 철부지로 만든 건 학생들 책임만이 아니다.

 

기본적인 정서는 가정교육부터 성숙된다. ‘희로애락애오욕’ 즉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구 : 두려움), 좋아함, 사랑함, 싫어함, 미워함(혐오), 욕망. 바람. 의욕’과 같은 감정이나 다섯가지 욕심 즉 식욕(食欲)과 성욕(性欲)과 물욕(物欲), 수면욕(睡眠慾), 명예욕(名譽慾)이 인간의 기본적인 정서다. 이러한 기본적인 정서가 결여된 채로 유아원, 유치원, 초등과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생이 돼 학원과 학교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하고 살았으니 언제 정서적인 감정이 제대로 성숙할 기회가 있었을까?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에서>

 

학교에서 시험문제 풀이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교육만 했다면 건강한 정신, 정서적인 안정감을 가진 성숙한 사람으로 자랐겠지만 학교는 그런 노력도 의욕도 교육도 없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지식교육은 넘치지만 정서교육을 하지 못하는 학교. 왜 그럴까? 대학서열화현실에서 초·중·고등학생들의 교육은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공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류대학입학이다.

 

정서적인 교육이란 정서적인 품성을 길러 주는 교육. 즉 자연과 사회에서 아름다운 것을 느끼고 이해하며, 예술적 감정과 취미를 가지도록 이끌어 부드럽고 아름다운 품성을 길러 주는 교육이어야 한다. 이런 정서교육은 교육과정이 명시하고 있는 대로만 교육을 한다면 건강한 체력과 지,정,의를 겸비한 모습으로 잘라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단연히 철부지로 자랄 수밖에 없다. 학교의 우등생이 사회의 열등생이 되는 이유가 그렇다.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지 못하는 교육은 절름발이 교육이다. 형식은 그럴 듯하지만 사실은 정서적인 불구자를 만들고 있는 게 학교교육이다. 일류대학이 교육의 공부를 하는 목적이요, 꿈인 학교교육은 청소년들을 정서적인 불구자로 만들고 있다. 학교의 우등생이 사회에서도 우등생이 되는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는 없을까?

 

                                           <이미지 출처 : '일다의 블로그 소통'에서>

 

학교가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할까?

 

첫째, 교육의 목표가 일류대학이 아니라 인권교육, 평등교육, 평화교육, 민주교육, 노동교육, 생태교육, 통일교육, 문화예술교육이 되어야 한다. 체벌을 교육이라고 강변하는 학교, 점수에 따라 사람의 가치를 서열매기는 학교... 국,영,수과목은 중요과목이 되고 음,미,체와 같은 예체능교과는 기타과목이 되는 학교교육은 바뀌어야 한다.

 

둘째, 대통령 후보들이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던 인문과 자연계로 분리된 교육과정을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균형 있게 배울 수 있는 통합교과로 바꿔야 한다.

 

그밖에도 개인의 소질과 적성을 최대한 발현시켜줄 수 있는 교육과정, 협력학습, 협동학습, 학생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교육과정으로 바꿔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일류대학을 준비하기 위한 집중이수제와 같은 반교육적인 교육과정과 전국단위학력고사나 중간·기말고사를 폐지해 평가권을 교사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하루 열여섯시간을 체형도 맞지 않는 의자에 앉혀놓고 정서적인 인간, 건강한 인간으로 성숙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른들의 욕심이다. 학교가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청소년들이 정서적으로 원만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겠는가?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