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는 이야기2018.06.05 06:29


언제부터 그랬을까? 나는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으면 모두 나을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살았다. 음식도 식당에서 파는 음식이면 다 안심하고 먹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홈 플러스나 이 마트 등에서 팔고 있는 인스턴트식품이나 음료수도 믿고 마시며 하등의 의심도 없이 믿고 사 먹었다. 이런 생각이 얼마나 잘못됐는지는 수술을 세 차례를 하고 나서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진출처(좌) : 대기원시보>

2008년 정년퇴임 후 내시경 검사 결과 대장암 2기 초라는 선고를 받고 항암치료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환자가 결정하라는 의사의 권고에 의심 없이 항암치료를 받기로 결심했다. 항암치료를 시작한지 6개월 정도 됐을까? 머리카락도 빠지고 설사를 계속하고 온몸이 새까맣게 타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들 그렇게 치료해서 완치될 것이라는 내 믿음은 한밤중에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을 당하고 나서야 암 때문이 아니라 항암치료를 받다가 죽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항암치료를 중단했던 일이 있다.

현대 의학에 대한 결정적인 불신은 척추측만증으로 고통을 당하다 더 늦기 전에 수술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수술을 시작한게 잘못이었다.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다 그래도 대학병원이 더 신뢰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대전에 있는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척추관협착증은 신경압박으로 받는 고통이라 이를 억제하려면 척추에 금속 조각을 삽입해 교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례인데 이 병원 의사는 협착으로 누르는 부위의 뼈를 깎아 신경을 누르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전문가가 그렇게 말하는데 환자가 무슨 이유로 반박할 것인가? 아내가 곁에서 나이가 들면 오히려 더 힘들어질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를 했지만 과감(?)하게 수술을 시작한지 얼마나 됐을까? 의학전문용어로 각성이 된 것이다. 영화에나 있을법한 각성이란 전신마취 수술 중간에 환자가 깨어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정신과 감각은 깨어났는데 몸은 여전히 마취 상태라 몸을 못 움직이는건 말할 것도 없이 눈도 못 뜨고 입도 안 움직여서 의사에게 자신이 깨어났다는 사실을 전달할 수 없는 상태를 일컫는 말인데 이런 상태에서 각성이 됐으니 그 고통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본인이 아니고서 짐작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고통을 당하고 나서야 모든 의사는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었으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본질은커녕 광고의 피해가 어떤 것인가 조차 모르고 나이가 60이 훨씬 넘어서야 깨달았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말로만 들었던 의료사고. 의술만능이라는 신기루가 이 사건 후 모든 양약은 독이라는 상식을 알게 되었다. 사람의 인체가 얼마나 신비롭고 또 섬세한 것인지... 약을 잘 못 먹고 죽거나 평생 고통스럽게 살 수도 있다는 평범한 진리도 그 후에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어리석게도 과학이 모순이 없는 완전무결할 것이라고 믿고 살았다. 현대과학에 대한 맹신... 어쩌면 그것은 학교교육으로 순치된 것이 아닐까? 의사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환자보다 리베이트의 유혹에도 빠지기도 하고 과잉진료로 환자들을 더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는 의사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라돈 침대만 하더라도 이런 물질을 삽입하면 노약자나 어린이들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정말 몰랐을까? 사람들이 먹어서 안 되는 음료수에 온갖 첨가물을 넣어 우선 팔고 보자는 돈벌이에 혈안이 된 장사꾼들은 또 어떤가?

최근 문재인 케어를 반대하는 의사들의 시위를 보면서 그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돈보다 인술을 베풀겠다는 의사들이 맞는지 의심이 간다. 이런 의사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맡겨 병을 고치겠다는 환자들은 그들의 눈에 환자가 무엇으로 보일까?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게 정치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치는 약자의 고통에 함께하지 못하고 늘 강자의 편이었다. 자본에 예속된 정치, 자본에 예속된 언론, 자본의 본질을 가르쳐 주지 않는 교육으로 늘 순진한 소비자는 피해자로 살고 있다. 소비자가 눈을 뜨지 못하게 침묵하는 나라에는 정치도 언론도 교육도 공범자일 뿐이다. 소비자가 피해자가 되는 나라에 어떻게 국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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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6.23 06:30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도를 넘고 있다. 급한 환자 수술을 거부하겠다는 공갈(?)도 그렇지만 이제 아예 사이버 테러(?)까지 마다하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포괄수가제의 주무과장인 박민수 보험정책과장이 문자 협박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박 과장은 지난 15일 한 방송사의 포괄수가제 관련 토론회에 참석해 포괄수가제의 당위성에 대한 발언을 한 후 일주일 동안 욕설과 협박이 담긴 문자를 무려 130여건과 150통의 전화를 받았다. 박과장이 받은 문자에는 ‘밤길 조심하라’, ‘포괄수가제의 첫번째 희생자가 당신의 자녀가 되길 희망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괄수가제를 일주일 정도 앞두고 온갖 괴담이 난무하고 있다. 포괄수가제는 영리병원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느니, 포괄수가제로 질이 떨어지면 고급의료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돈 있는 사람만 양질의 진료를 받는 의료민영화를 부추긴다느니, 하루를 입원하거나 한 달을 입원하거나 치료비가 똑같기 때문에 공공병원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돈을 벌어야 하는 민간병원의 운영자들은 환자를 일찍 퇴원시키려 한다느니.....

 

무섭다. 언제부터 의사들이 집단적인 행동이 사회문제가 되도록 하게 됐는지 모르지만 아예 포괄수가제 말만 나오면 벌떼처럼 덤벼들어 물고 뜯고 할퀴기 일쑤다. 지난 의약분업 때도 그랬다. 의약분업분쟁이 한창일 때 피부과에 갔더니 창구에 ‘의약분업을 하면 환자가 피해가 된다는 내용의 서명용지를 앞에 두고 환자들에게 서명을 하기를 강요했던 일이 이따. 의약분업이 좋은 지 나쁜지도 모르고 찾아 온 환자들에게 이런 서명을 강여해도 되는가? 

 

 

모든 의사들이 다 과잉진료를 하고 있거나 돈밖에 모르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걸 몰라서가 아니다. 그런데 환자들 중에는 상당수가 과잉진료로 억울한 일을 당해 의사들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깊다는 것은 부인할 수 있는가?  ‘나는 아닌데... 왜 싸잡아 도둑놈 취급하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이런 일은 의사들에게만 쏟아지는 비난이 아니다. 무너진 교실을 두고 사랑을 실천하는 모범적인 교사도 많지만 체벌이니 돈봉투 얘기만 나오면 싸잡아 욕먹지 않은가?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포괄수가제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의료정찰제다. 포괄수가제를 반대하는 분들... 정찰제를 실시하면 왜 안 되는지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해야 한다. 포괄수가제를 찬성하면 ‘밤길 조심하라느니...’, ‘첫번째 희생자가 당신의 자녀가 되길 희망한다.’느니 하는 따위의 협박으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가? 당신은 아닐지라도 누군가 억울하게 과잉진료를 당한 분노를 삭여 줄 사과도 한마디도 없이 떼거리로 혹은 힘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가?

 

솔직히 말해 나도 여러 차례 당했다. 과잉진료나 포괄수가제의 당위성에 대한 글을 썼다가는 육두문자에 가까운 악플의 고통을 감수(?)한 일도 있고...

  

허리 협착증으로 수술 없이 신경 성형술로 ‘하루 만에 수술을 마치고 퇴원할 수 있다며 통증도 없는 최신 기술이기 때문에 수술과 같은 위험부담은 전혀 질 필요가 없다’는 솔깃한 선전에 속아 서울에 있는 000병원에 갔다가 6개월동안 수백만만원의 치료비만 날리고 돌아 왔던 일도 있다.

 

지난 해에는 그 뒤 협착증 수술을 하다 마취가 풀려 죽을 고통을 당했지만 수술비 몇 푼 깎아주는 것으로 면죄부를 받아낸 의사도 있었다. 약자인 환자들의 억울함은 어디서 누가 해결해 주는가?

 

정찰제의 문제점은 없지 않다. 하지만 임의수가제로 인한 환자들의 고통이나 힘겨움에 대한 약자인 환자들을 이해시킬 명분도 없이 사이버 테러나 하는 행위는 어린아이들의 생떼처럼 유치하다. 포괄가제를 반대하는 협박성 문자를 날리기 전에 과잉진료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대안이라도 한 번 제시하면 어떨까? 국민 정서를 외면하고 테러성 악플이나 다는 게 해결책이 아니라는 걸 알만한 사람들이 아닌가?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0.09.12 16:13



“살려주세요! 살려 주세요! 누구 없어요? 살려 주세요!...”
‘뼈를 깎는 아픔’이란 말을 하며 살면서도 그 아픔이 얼마나 큰지 가늠하지 못했다. 척추 협착증 수술도중 마취가 풀려(각성) 수술 중에 고통을 느끼게 된 것이다. 생살을 찢어도 아픈데 뼈를 깎고 있는데 마취가 풀렸으니 그 고통이 오죽했을까? 뼈를 깎는 고통이 어느 정돈지는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아마 내가 태어나 70년 가까이 살면서 당한 모든 고통을 합한 고통보다도 더 큰 고통이라고 해야 할까?
“살려 주세요!”를 외치며 몸부림을 친시간이 몇 분이었는지 몇 시간이었는지 수술을 받고 있는 환자인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혼신의 힘을 다해 몸부림을 쳤지만 그게 소리로 되어 나왔는지 입술만 움직였는지 아니면 몸부림을 쳤는지 알 수가 없다. 마취과 의사가 정확하게 밝히지 않은 한 환자에게는 ‘고통의 순간’만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오죽했으면 ‘이 고통을 나에게 준 사람에게 반드시 복수를 하고 말 것이다.’라는 생각까지 했을까?
죽어도 잊을 수 없는 시간. 2010년 8월 16일 수술실에 들어 간 오전 8시부터 수술을 마치고 입원실로 돌아 온 오후 4시. 2시간이면 끝난다던 수술시간이 회복시간 1시간을 빼고 무려 7시간동안 나는 수술실에서 척추 협착증 수술을 받았다. 회진을 온 의사에게
“수술도중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왜 환자가 그토록 고통을 느껴야합니까?”
아내와 환우들이 수술도 잘됐고 하니
“그만 그 일은 잊어버리시오.” 간곡히 당부했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 수술도중 잠간 마취가 풀렸던 모양인데 그걸 환자가 알 리가 없는데...?”
이게 끝이다.
내가 꿈을 꾼게 아니다. 분명히 나는 죽어도 잊을 수 없는 고통을 당한 것이다. 집도 의사의 태도에 더 화가 났다. 환자는 의사가 아무렇게 해도 좋은 대상인가? 분명히 실정법에는 인권이라는 게 있고 환자에게는 예외일 수 없다. 더구나 돈을 내고 내 생명을 그들에게 잠시 위탁한 것이다. 그렇다면 마취 의사의 실수로 환자가 고통을 당한 것은 환자의 일방적 인내심만 강요하고 넘어갈 문제인가?
평생 꿈을 꾸지 않는 내가 잠이 안든 시간은 악몽에 시달렸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마취의사를 만나야겠다. 그러나 그건 마음뿐 혼자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 ‘내가 혼자 조금이라도 걸을 수 있다면 노동조합을 찾아가 상담(노동조합에 찾아 간 일화는 다시 기록으로 남기겠다)이라도 해 봐야겠다.’ ‘아니 소비자 보호원 같은 곳이나 의사협회 같은 곳은 이런 경우 대답을 안 해 줄까?’ 별별 생각을 다해 봤다.
이틀인가 지나 중간 결산서가 나왔는데 마취 특진료까지 붙어 있다고 했다. ‘사람을 죽이다 말아놓고 특진료라?’ 괘심한 생각에 마취 담당 의사를 만나야겠다고 했더니 마취과 전공의가 찾아왔다.
내가 겪은 고통을 얘기했더니
‘통증조절에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마취과 책임자를 봐야겠다고 했는데 전공의가 와서 변명 같은 소리를 늘어놓다니 ‘정보공개청구를 하든지 어떤 방법으로도 이일을 그냥 넘기지 않겠다고 했다. 이야기가 이쯤 되니까? 수간호사가 찾아와 ‘얼마나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이 드느냐?’며 위로하고 사과했다. 나의 요구는 단호했다. ’책임자가 와서 사실 확인을 하지 않으면 이 일을 그냥 넘기지 않겠다.‘고 분명히 못 박았다.
내가 대전에 있는 이 C병원을 찾게 된 것 사연은 이렇다. 30년 가까이 아픈 허리를 수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지난 1월경부터 걸음을 걸으면 왼쪽 다리가 저리기 시작했다. Y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에도 걸으면 저리던 왼쪽 다리가 가만있어도 저리기 시작했다. ‘이러다 잠도 못자고 통증을 느껴야 하는게 아닐까?’ 겁이 났다. 서울 Y병원에서 3차병원을 가야겠다고 진료기록을 받아 온 이유도 그렇다. 대전에 U병원이 척추수술을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갔다. U 병원장은 나의 MRI 사진을 보더니 디스크는 깨끗한데 1,2번과 34번 척추가 휘어 그 사이에 있는 신경을 눌러 허리가 아프기 때문에 수술을 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냥두면 다리병신일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병원에서 수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수술비가 얼마냐고 물어봤다. 수술비는 ‘기본이 40만원이고 수술 후 MRI사진을 다시 찍어야 하기 때문에 그 이상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환자들은 ’돈이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살고 봐야지...’ 이렇게 된다. 수술비야 어떻게 되겠지 우선 수술을 하자. 그렇게 마음먹고 간호부장인가 하는 사람의 설명을 들으면서 뭐가 좀 미심쩍다는 생각을 들었다. 의사의 진단도 진지한 면보다 사무적이고 간호부장의 설명도 너무나 사무적이고 딱딱했다. 이왈 온 김에 큰 병원에 다시한번 가보자 하고 찾은 곳이 C병원이었다.
이 C병원 척추전문의는 인상부터가 그랬지만 MRI사진을 보면서 참으로 진지하게 대해줬다. 환자는 의사의 말 한마디 태도 하나하나가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아~ 이 의사는 다르다. 여기서 해야겠다. 그래서 결정하고 이 병원에서 수술을 했던 것이다. 내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벌받는 것인가? 내가 무슨 전생에 죄가 많아, 대장암 수술을 받은 지 1년이 조금 넘었는데 또 7시간이나 사경을 헤매는 대수술을 받아야 하는지... 그런데 아내의 말처럼 잊어야 하는데 잊혀지지가 않으니...
수술한 지 일주일 지난 아침. 마취를 담당의사 L씨가 찾아왔다. 나는 감정을 억누르고 어떻게 사람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찾아오지도 안했느냐며 힐란(詰難)했다. 내 수술을 마치고 해외에 나가는 바람에 찾아오지 못했다는 등 구차스런 변명(?)을 하면서 사실이 어떠했는지 얘기해 달라고 했다. 수술 중 마취가 풀리면 마취학을 전공한 당신이 더 잘 알지 않으냐면서 ‘살려달라고 그렇고 애원했다. 뼈를 깎는 소린지 쇠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라고 고통의 순간을 설명했다.
“마취를 담당한 의사로서 환자에게 고통을 준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인간이란 참 묘하다. 그렇게 죽어도 잊지 못하겠다며 벼르던 감정이 담당의사가 자존심도 팽개치고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는 데는 더 이상 모르쇠를 할 수 없었다. “사과의 뜻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습니다.” ‘의사들은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불문율 같은 금기를 깨고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한다? 그렇다. 지금 시비를 더 가려 얻을 게 뭔가? 감정이 풀렸다. 오히려 ‘지금까지 벼르다가 그렇게 하고 말걸 왜?“라며 아내가 불만이다.
살면서 참 별난 일도 다 겪는다. 좋은 일하고 욕먹기도 하고 억울한 일, 슬픈 일, 기쁜 일... 특진료를 빼고 비보험을 보험으로 돌리고.... 담당의사의 정중한 사과... 그걸로 끝났다. 이제 30년 가까이 달고 다니던 통증이 허리에 사라졌다. 지금은 수술 중 멍들고 짓눌린 곳이 걸으면 아파 불편하지만 분명히 고통에서 해방된 것이다. 수술을 잘못해 염증으로 몇 달째 고생하는 병실의 환자를 보고 불안해했던 기억도 수술 중 잊을 수 없는 고통도 이제는 잊어야겠지. 차고 있는 보조대를 풀면 이제 날아다닐 것 같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