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은 국민을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혁명이었다'

1979년 발행된 고등학교 국정 국사 교과서에 기록된 역사다. 이 국정교과서에는 5·16군사정변에 대해 "박정희 장군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혁명군이 대한민국을 공산주의자들의 침략 위협으로부터 구출하고, 국민을 부정부패와 불안에서 해방시켜 올바른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시행된 것"이라고 서술해 놓았다. 중학생들이 배우는 국사 교과서에는 "최남선과 이광수의 문학 활동이 민족의식을 끌어올렸다"고 서술했으며 "홍난파의 작곡 활동이 민족 감정을 살린 작품을 만들어 민중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고 기록했다.



교과서에 기록된 모든 역사를 진실이라고 믿어도 좋을까? 우리는 지난 박정희정권 시절, 그들이 유신헌법을 만들고 국정교과서를 통해 유신헌법이 한국인의 생리에 맞는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기록해 학생들에게 가르치게 했다. 또 자신이 권력을 탐해 일으킨 5·16쿠데타를 정변이 아니라 혁명이라고 기록한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가르치게 했다. 국정교과서의 정권 미화는 전두환 정부가 들어선 4차 교육과정에서도 "10.26 이후 한때 혼란 상태가 나타났고, 이러한 혼란 속에서 북한 공산군의 남침 위기에서 벗어나고 국내 질서를 회복하기 위하여" 라고 기록해 놓았다.

5·16이나 유신헌법이 애국인지 정치군인이 일으킨 쿠데타인지는 민주주의라는 기준으로 해석해 보면 금방 진위(眞僞)가 드러난다. 민주주의란 주권자인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 주인의 뜻, 국민의 뜻에 따르지 않고 힘의 논리로, 총으로 주인을 위협해 만든 정부는 어떤 명분으로라도 정당화 될 수 없다. 그런 집단이 아무리 선정을 해 부정부패를 몰아내고 경제를 살렸다(사실은 그렇지도 않았지만...)고 해도 쿠데타가 혁명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역사란 지나온 사실에 대한 기록이다. 개인의 기록을 개인사인 일기라고 한다면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게 국사요, 세계 여러 나라의 기록은 세계사다. 모든 과거의 기록은 사실(事實)이다. 사실(事實)을 낱낱이 다 기록하려면 이 세상의 종이를 모두 써도 모자랄 것이다. 그래서 사가(史家)들이 학생들이 사실(事實)을 통해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사실(事實)을 추출(抽出)한 것이 사실(史實)이다. 현장에서 자기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인지(認知)하지 못한 사람은 당연히 사가(史家)가 사실(事實) 중에서 골라 뽑아 기록한 사실(史實)을 통해 역사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사실(史實)은 객관적인 진실일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과거 사가들이 기록한 사실(史實) 즉 역사책을 통해 역사를 배우고 이해한다. 그러나 그 역사가 객관적인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역사를 배우는 사람들은 무엇으로 진위를 분별하는가? 그것이 역사는 보는 기준인 사관(史觀)이다. 승자의 기록은 객관적인 역사책이 아니다. 사관없이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승자의 기록을 역사를 배워 그 역사를 진실이라고 믿는 경우가 만다. 박정희나 박근혜에 대한 맹신이나 존경은 그래서 일수도 있는 것이다.



김부식이 쓴 역사책, 삼국사기를 우리는 정사(正使)라고 한다. 정사(正史)란 관료들이 쓴 역사서다. 고려시대 문벌귀족이었던 김부식(1075~ 1151)은 인종임금의 명을 받고 김효충(金孝忠) 10명의 고위관리와 함께 삼국사기를 편찬한다. 반면 고려시대 군위 인각사에서 일연이 집필 역사책이 삼국유사다. 관료와 스님이 쓴 역사서.... 당연히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는 서경천도를 주장하던 서경파 묘청과 이자겸의 난을 진압한 승자의 입장에서 쓴 책이요. 김부식은 인종의 입맛에 맞게 삼국사기를 서술했을 것이요, 일연이 쓴 삼국유사는 불교라는 종교인의 시각에서 쓴 역사서일 것이다.

사관이란 사가(史家)가가 역사를 보는 기준이다. 사관에는 실증사관, 식민사관, 민족사관, 유물사관, 순환론적 사관, 문명사관, 영웅사관...등 수많은 사관이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는 한국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 한국인에 대한 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일제에 의해 조직된 역사를 가르친다. 식민사관(植民史觀)은 일제강점기 일제의 한국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 한국인에 대한 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일제에 의해 정책적 · 조직적으로 조작된 역사관을 말한다. 일동조론(日鮮同祖論)은 식민사관 학자들이 기록한 역사서다. 일선동조론, 정체성론, 타율성론은 식민사학자들이 기록한 역사서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학교를 통해 배운 교과서는 객관적인 역사가 아니라 식민사학자들이 기록한 교과서로 역사를 배워 왔다. 대한민국의 초대 문교부장관 안호상은 모윤숙의 남편으로 홍익인간의 이념을 근간으로 하는 교육이념을 토대로 한국교육의 방향을 설정한 일민주의의 창시자이자 대표적인 파시스트였던 사람이다. 안호상문교부장관 시절 역사를 공부한 학생들은 어떤 역사를 배웠을까? 민족사관이 아닌 식민사관 학자가 쓴 국정교과서로 한국사를 배운 사람들은 어떤 역사를 배웠을까? 나라와 민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진 애국자를 키워냈을까? 사관을 가르치지 않는 국사, 정권의 필요에 의해 만든 국정 국사교과서는 시험용 지식으로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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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부와 새누리당 일각에서 현재 검인정 체제로 발행하고 있는 역사 교과서를 국정교과서 체제로 바꾸자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14일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교과서 검정과 관련해 많은 문제가 드러나 국정 체제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자연스럽다”고 밝혔다. 정홍원 국무총리와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 등도 최근 국정교과서 체제로 가야 한다는 주장을 잇달아 내놨다.

 

 

교과서 제도는 국정과 검인정, 자유발행제 3가지 종류가 있다. 해방 이후 검정체제를 유지하던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는 박정희 정권의 유신 선포 이후인 1974년 ‘주체적 민족사관 확립’을 이유로 국정체제로 바꿨다. 당시 검정체제로 발행하던 11종의 중·고교 국사 교과서를 1종의 국정교과서로 통일시킨 것이다.

 

노무현정부는 2007년부터 ‘교과서의 정형화 및 획일화 등을 해소하고 창의성과 자기 주도성을 높이는 동시에 교과서 편찬에도 경쟁 체제를 도입해 내용의 질을 높이기 위해’ 초.중.고교 도덕과 국사, 국어 등 국정교과서 발행 체제를 검.인정 체제로 전환, 지금까지 운영해 오고 있다.

 

박근혜정부 출범 후 국사교육 강화를 끊임없이 주장해왔다. 이승만을 ‘국민적 영웅’으로 ‘5·16 군사쿠데타를 긍정적으로 또 8.15를 건국절로 바꾸자는 보수·뉴라이트 관점에서 역사를 보겠다는 의도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뉴라이트계 학자가 쓴 고등학교 국사교과서를 검인정에 통과시키고 대학수학능력고사에 필수교과로 바꾸더니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국사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박근혜정부가 국사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진짜 이유가 뭘까?

박근혜정부가 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겠다는 이유는 ‘대한민국은 현재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준 전시국가’ 체제로 ‘국민들에게 애국의식을 심어주고 자긍심을 길러 주기 위해서는 국어 국사 도덕은 종전대로 국정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이유다.

 

또한 해방 후 좌우 대결시대를 거치면서 좌우편향의 논쟁으로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기 위해서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인한 한국사교과서가 6종 중 4종이 우리 정부를 독재 정부로 비판하면서 북한 정권에 대해선 미화하고 안보의식을 약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국정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유신정권 시절. 국정교과서의 폭력을 처절하게 경험했다. 우리는 30년 가까이 유지해오던 멀쩡한 검인정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꿔 유신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가르치게 했다. 그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유신정권이 끝난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후유증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역사란 기록하는 사람이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가에 따라 다르게 기록된다. 왕이나 귀족의 눈으로 기록한 역사는 왕조사관이요, 노동자, 농민의 입장에서 기록하면 민중사관이다. 기독교인의 눈으로 본 역사는 기독교 사관이요, 불교신자의 입장에서 기록한 역사는 불교사관이다. 사관도 없이 정권의 기준에 따라 기록한 역사가 표준이 되면 어떻게 될까? 노동자가 자본의 시각으로 역사를 배우면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가진 사람을 만들어 놓을 것이다.

 

지금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대부분 선진국가의 교과서는 자유발행제다. 제작이나 발행에 대한 제약이 두지 않고 있다. 반면 북한을 비롯해 베트남·캄보디아·필리핀 등과 같은 나라에서는 국정교과서 제도를 시행 중이다.

 

교육의 중립성을 말하면서 정권의 시각에 맞춰 기록한 국정 교과서를 가르친다는 것은 국가의 또 다른 폭력이다. 유신을 정당화하는 시각, 친일을 미화하는 시각으로 어떻게 건강한 국민을 기르겠다는 것인가? 부끄러운 국사교과서 국정 시도는 중단해야 한다.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서남수교육부장관이 ‘5·16군사정변’을 놓고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 14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5·16과 5·18이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대립된 이슈라고 생각하느냐. 5·16은 군사정변이냐, 구국의 혁명이냐”는 질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서장관의 5.16, 5.18에 대한 정체성확인 요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자리에서도 ‘5·16을 군사정변으로 보느냐, 혁명으로 보느냐’는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양해를 바란다”고 말해 교육수장으로서 자질을 의심받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교과서에 기술한데로 ‘5.16은 군사정변이요, 5.18은 민주화운동’이라고 답변은 했지만 불편한 심기는 그대로다. 그가 5.16이나 5.18에 대한 답변을 소신대로 못하는 이유는 임명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의 눈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사가 만신창이 되고 있다. 일베의 막말파동, 조중동의 역사왜곡, 뉴라이트 인사들이 이끄는 한국현대사학회가 집필한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교학사)의 검정심의 본심사 통과 등등... 일제시대는 축복으로, 광주는 북괴군의 개입으로, 5.16은 혁명으로 공공연하게 왜곡시키고 있다. 유신시대 관료, 박정희시대 개발논리가 목소리를 내고 사이비역사학자들은 때를 만난 듯 기고만장이다.

 

 

 

수구세력의 역사왜곡으로부터 우리역사를 지킬 방법은 없을까?

학교에서의 역사교육은 사건중심의 역사다. 원인, 경과, 결과로 나눠 시대별로 사건을 암기하는 게 역사공부의 전부다. 선사시대부터 고대사, 중세사, 근대사, 현대사...로 훑어 내려오면서 건국과정에부터 통치조직, 관료체제, 문벌귀족, 외교관계, 종교, 문화... 에 대한 사건이며 자료를 빠짐없이 배운다.

 

역사적 사실을 많이 기억하는 학생이 역사공부를 잘한 학생일까? 시험을 위해 배운 공부는 시험이 끝나면 끝이다. 역사 지식을 많이 암기하고 있는 학생이란 퀴즈대회에서 우승을 할 수는 있지만 역사를 보는 안목이나 역사의식은 제로다. 역사공부는 과거에 있었던 구체적인 사건을 모두 배울 필요가 없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가치 있는 사실(史實)을 통해 오늘을 사는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얻기 위해서’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적 지식이란 나와 무관한 역사란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첫째, 나와 무관한 역사는 역사로서 의미가 없다.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에서 일어났던  사실(事實)을 모두 외울 필요가 없다. 내가 알아서 살아가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史實)을 통해 지혜를 얻지 못한다면 역사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데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역사공부란 내가 소외된 역사, 양반중심의 역사, 서울중심의 역사... 그런 역사를 교과서대로, 하나라도 더 많이 외워야 좋은 점수를 받는게 역사공부라고 가르치고 있다.

 

역사공부는 나를 찾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현재의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 또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나를 찾는 작업... 그것이 역사공부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가족의 역사, 우리고장의 역사부터 배워야 한다. 내가 빠지고 내 가족, 우리고장과 무관한 역사가 애정이나 관심이 있을 리 없다.

 

내가 실종된 역사는 역사로서 가치가 없다.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샅샅이 공부했지만 시험이 끝나면 기억에 남는 게 없다면 그런 역사적 지식이란 시험용일 뿐이다. 선조들이 우리역사와 문화를 가꾸고 지키는 삶을 배우면서 내가 역사의 빚을 지고 있다는 부채의식(역사의식)을 깨닫지 못한다면 역사공부란 헛수고로 끝날 뿐이다.

 

둘째, 제대로 된 역사는 사관(史觀)부터 가르쳐야 한다. 

 

똑같은 사건을 다른 모습으로 비춘 대표적인 사례를 보자.

1135년에 일어난 ‘서경천도운동’의 경우, 옛날 고등학생들이 배우던 교과서에는 ‘승려 묘청 등이 금국정벌론과 서경천도론이 개경 귀족들의 방해로 무산되자 서경(西京)에서 국호를 대위(大爲), 연호를 천개(天開), 군호(軍號)를 천견충의군(天遣忠義軍)이라 하여 대위국(大爲國)을 선언하고 일으킨 반란이다.’라고 기록했다.

 

그런데 일제시대의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 사학의 선구자인 단재 신채호선생은 ‘서경천도운동’을 두고 '조선역사상 1천년래 제1대 사건'이라 했다.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의 실상은 ‘낭가(郎家)와 불교 양가 대 유교의 싸움이며, 진취 사상 대 보수 사상의 싸움이니, 묘청은 전자의 대표요 김부식은 후자의 대표였던 것이다. 묘청이 패하고 김부식이 이겼음으로 조선사가 사대적, 보수적, 속박적 사상인 유교 사상에 정복되고 말았다.’고 해석하고 있다.

 

왜 똑같은 사건이 하나는 ‘난(亂)으로 또 하나는 ’일천내 일대사건‘으로 달리 보게 되었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역사를 어떤 안경으로 보는가하는 사관(史觀)의 차이다. 같은 물이라도 그것을 담는 그릇의 모양에 따라 물체의 형태가 다르게 보이듯 역사도 마찬가지다. 우리역사에는 수많은 민란(?)이 있었다. 양반중심의 사관에 따르면 무지랭이 민초들이 일으킨 난(亂)일뿐이지만 민중사관의 입장에서 보면 민초들의 권리찾기 항쟁이요, 민중의 정당한 유구다.

 

사관이란 역사를 해석하는 기준이다. 서경으로 서울을 옮기는 일 하나를 두고 한쪽에서는 ‘난’으로 다른 한쪽에서는 1천년만에 있을까말까한 대 사건‘으로 보는 차이만큼이나 다르게 보이는 게 사관이다. 이렇게 역사란 황국신민화라는 식민사관도 있고 왕이나 귀족이 역사창조의 주인이라는 왕조사관도 있다. 민중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보는 민중사관도 있고 민족주의사관, 유물사관 불교사관, 기독교사관... 등 다양하다.

 

실제로 우리역사에 임금님의 역사, 양반의 역사는 있지만 서민의 역사, 민초들의 역사는 없다. 서울의 역사는 있어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사는 없다. 왕의 생각, 양반의 생각을 나의 생각으로 만드는 역사란 나를 위한 역사공부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로서의 역사일 뿐이다.

 

 

골품제의 경우를 보자. 골품제란 ‘공복(公服)의 빛깔, 착용할 수 있는 옷감의 종류, 관(冠)의 재질, 요대(腰帶) 및 신발의 재질, 수레에 사용하는 장식품의 종류, 일상생활의 용기까지도 골품에 따라 차등 있게 구분하였다는 것까지 상세히 배우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의 사회는 계급 없는 평등사회인지 부모의경제력으로 사회적 지위가 대물림되는 양극화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과거의 사실(史實)을 통해 오늘의 현실을 해석해 내는 일.. 그것은 제대로된 사관을 배울 때 가능한 얘기다. 사실이 모두 과거에 있었던 사실(事實)로 파지(把持)의 대상이라면 그런 지식이란 시험 점수를 높게 받을 때나 필요할 뿐이다.

 

내가 실종된 역사. 사관 없는 역사를 안다는 것은 무의미철자를 암기한 것이나 진배없다. 친일사관으로 씌여진 역사, 양반이 역사의 주인인 역사는 삶의 안내자가 될 수 없다. 내일의 주인공들에게 사관없는 이데롤로기로서의 역사를 가르치는 역사교육은 이제 그쳐야 한다.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8.16 05:30


 

어제 광복절 관련 포스팅을 하려다 글이 올라가지 않아 서너차례 시도하다 포기하고 다른 글을 썼습니다.

 

내용을 알고 봤더니 티스토리가 읽지 못하는 문자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그 문자를 빼고 다시 올립니다.   

 

이 자료는 졸고 '현대사 자료집(전국역서교사모음-김용택 편저)을 참고했을을 알려드립니다) 

 

해방정국의 역사, 교과서는 상당부분 틀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 현대사를 쓴 사람은 누군가?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사편찬위원회'에 참여하여 한국의 역사를 왜곡, 일제 식민통치에 기여하는 공훈을 세우며 한민족의 혼인 역사를 파괴한 이병도를 비롯한 그 아류들이다.

 

박근혜가 말했지. 박근혜는 말했다. '5.16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라고... 마찬가지로 일제의 은혜를 입은 이병도를 비롯한 친일 사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쓴 한국사는 우리역사를 제대로 기록했을까?

 

이들은 민족사관이 아니라 식민사관에 이해 역사를 기록했다. 그런 역사가 교과서를 통해 2세들의 머리 속에 친일사관의 입각한 왜곡된 역사를 그르치기를 강요해 왔다.  현대사의 경우 미군정시대에서 유신시대, 군사정권 시절의 역사를 아예 제대로 기록조차 하지 않는 무성의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 수립 후 1960년 4월까지 즉 이승만 정권 12년간의 각료는 국무총리 이하 115명이다. 재임 장관들을 제외하면 96명인데 이중 독립 운동가는 단 4명, 국내 민족 투사 8명을 합해서 그 비율은 12.5%이다. 해방정국의 경찰 간부 80%가 일제 경찰 출신이요, 국무총리를 비롯한 육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 공군 참모총장이 일본군 대좌출신이다.

 

황국신민화를 외치던 인물들이 만든 제 1공화국, 그들이 쓴 역사는 우리 조상들의 문화와 역사와 혼을 후손들에게 제대로 알려 주는 역사였을까? 다시 광복절을 맞습니다. 올해가 일제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지 67주년째를 맞지만 아직도 식민지잔재청산은 친일인명사전에는 있을지 몰라도 현실은 아직도 요원하다.

 

그 역사의 왜곡현장을 저의 졸고 ‘한국현대사자료집’(전국역사교사모음)을 인용해 살펴보겠습니다.

 

식민지 잔재청산 못한 정부

 

경찰의 경우

 

일제 경찰에 종사한 8,000명중 5,000명이 군정 경찰에 복무하고 있었고, 이들을 핵으로 군정 경찰이 구성되었으며, 경찰 간부의 80%가 일제 경찰 출신이었다. 경찰 간부의 경우 경찰 청장 8명중 5명(63%), 국장 10명중 8명(80%), 총경 30명중 25명(83%), 경감 139명중 104명(75%), 경위 965명중 806명(83%)이 고등 경찰을 비롯한 일제 경찰 출신었고, 경찰 최고직인 치안감(1명)도 일제 경찰 출신이었다.(우리 역사 이야기3, 돌베개, p.59~60)

 

군인의 경우

 

군인의 경우

 

 

 

【제 1공화국 친일 인맥】

(해방전후사의 인식2, 한길사, p.146)

 

 

정부 수립 후 1960년 4월까지 즉 이승만 정권 12년간의 각료는 국무총리 이하 115명이다. 재임 장관들을 제외하면 96명인데 이중 독립 운동가는 단 4명, 국내 민족 투사 8명을 합해서 그 비율은 12.5%이다. 반면, 부일 협력 전력자는 34.4%인 33명이나 된다.

 

반민족 행위자 처벌법(반민법)과 반민특위의 와해

 

반민족 행위자 처벌은 해방 정국의 민족적 과제이기도 하였다. 제헌국회는 1948년 10월 23일 조사위원 10명을 선출하여 임정 요인 출신 김상덕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중앙에 중앙 사무국 각도에 조사부, 각 시, 군에 조사 지부를 설치하였다.

 

반민특위는 조사 업무를 개시하여 반민족 행위자 7000여명을 파악하고 49년 1월 9일부터 검거 활동에 들어가 친일 실업가 박흥식, 일제 기관의 고등 밀정 이종형, 중추원 부의장 최린, 강우규 이사를 체포 처형케 한 고등 경찰 김태석, 도지사를 지내고 총독부 기관지 매일 신문 사장이던 이성근, 일제 헌병 출신의 전직 경찰 간부 유철, 친일 문인 이광수와 사학자 최남선, 군용기 헌납에 광분한 문명기 등 드러난 친일파들을 계속 체포했다.

 

국민 여론의 지지를 받으며 특위 활동이 계속되는 동안 자수자도 61명이나 됐다. 그러나 친일 세력들은 반민법이 공포된 9월 23일 대한일보사장 이종형이 주동이 되어 ‘반공구국총궐기대회 및 정권 이양 축하 국민대회’란 군중 집회를 열어 반민법을 성토하고 주동 국회의원들을 공산당의 주구라고 몰아친다. 반민법안의 국회 심의 때부터 반대 의사를 표명해 오던 대통령 이승만은 노덕술을 석방하라는 요구를 하기도 하고 특위를 비난하고 반민법 개정안을 제출했다는 담화를 발표하기도 한다.

 

6월 6일 새벽 중부 서장 윤기병이 지휘하는 40명의 무장 경찰대가 특위를 습격하여 무기와 장비를 압수하고 특경대원 35명을 연행하는 사태를 일으킨다. 이 사건에 격분한 국회는 대통령 이하 전국무위원 출석을 요구하고 정부를 규탄했다.

 

6월 21일 국회 프락치 사건 2차 검거로 김약수 등 7명의 국회의원이 추가 구속되고 26일에는 김구 선생이 암살 당한다.

 

반민특위는 공소시효 만료까지 조사 건수 6백82건, 체포 3백5건, 미체포 1백73건, 자수 61건, 영장 취소 30건, 검찰에 송치한 건수는 5백59건 이였다. 그러나 그 중 2백21건이 기소되어 재판을 종결한 것은 불과 38건인데 사형1건, 무기징역1건을 포함하여 실형이 선고된 것은 불과 7건뿐이었고 거의가 집행 유예나 무죄로 풀려났다. 실형 선고를 받은 7명도 1950년 본까지 감형과 집행 정지 등으로 모두 풀려났다.

 

 

 

 

끓어 오르는 한라산

 

(우리 역사 이야기, 조성오, 돌베개, p.10~53)

 

움직이는 것은 모두 우리의 적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보고 쏘았지만

그들은 보지 않고 쏘았다.

학살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날

하늘에서는 정찰기가 살인 예고장을 살포하고

바다에서는 함대가 정적을 울리고

육지에서는 기마대가 총칼을 휘두르며

모든 처형장을 진두 지휘하고 있었던 그날

빨갱이 마을이라 하여 80여 남녀 중학생들을

금악벌판으로 몰고 가 집단 몰살하고 수장한데 이어

정방 폭포에서는 빨가벗긴 빨지산의 젊은 아내와 딸들을 나무 기둥에 묶어 두고 표창 연습으로 삼다가

마침내 젖가슴을 도려내 폭포 속으로 던져 버린 그날

한 무리의 정치 깡패단이 열 일곱도 안된

한 여고생을 윤간한 뒤 생매장해 버린 그 가을 숲

서귀포 임시 감옥 속에서는 게릴라들의 손톱과 발톱 밑에 못을 박고

몽키 스패너로 혓바닥까지 뽑아 버리던 그날, 바로 그날

관덕정 인민 광장 앞에서는 사지가 갈갈이 찢어져

목이 짤린 얼굴은 얼굴대로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몸통은 몸통대로

전봇대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하 생략.............

이산하 “한라산” 에서

 

4․3 사 건

 

 

기미독립운동 28주년이 되는 1947년 3월 1일, 제주 도민 3만 여명(당시 제주도 총인구 27만명)이 3.1절 기념식(미군이 불법으로 인정)을 열고 애국가와 3.1절 노래를 부르며 “3.1혁명 정신으로 한국통일독립을 쟁취하자”, “미국은 남한에서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쳤다. 기념식이 끝난 후 가두시위에서 7명의 시민이 사망하자 제주도 총파업 위원회가 3월 9일 총파업을 선언하면서 강력한 저항이 시작된다.

 

4월 초순경에는 2,000여명의 도민이 체포되고 시위대와 미군, 경찰, 서북 청년회, 대동 청년 당 등의 대치 상황에서 처절한 살육 극이 자행되었다. 1949년 3월 25일 정부의 1,667명 인명 손실 발표와는 달리 한국 편람(1956)에 4만명, 1960년 국회의원 김성숙이 제출한 「제주도 양민 학살 조사 건의안」에 5만명, 그리고 1963년 제주도 당국이 발행한 「제주도」8월 호에는 8만65명의 희생자를 냈다고 기록되고 있다.

 

제주 항쟁은 ‘식민지 예속을 거부하고 민족 분단을 저지하기 위해 일어선 우리 민중의 영웅적이고도 처절한 투쟁’이라고 정의하는 학자들이 늘어가고 있다.`

 

 

 

 

【여수 순천 사건】 ― 1948.10.19~

 

(우리는 결코 둘일 수 없다, 남풍 신서, p.44~45)

 

 

여수 순천 사건은 극우나 극좌가 결탁하여 발생한 쿠데타나 혹은 제주 4.3사건 진압 차 출동 명령을 받은 14연대 내의 소수의 좌익계 사병 집단에 의해 주도된 군부 반란 사건이라기 보다는 1공화국 출범 당시 사회, 경제적 조건 및 정치적 상황과 해방 이후 건국에 이르기까지의 전남 지방 정치의 과정에서 발생된 제 조건이 결합하여 폭발한 보다 근본적인 성격의 사건이다.(해방 전후사의 인식, 한길사, p.414)

 

1948.10.19 여수 순천의 14연대 장병 3천여 명이 ‘경찰 타도, 제주도 출동 거부, 남북통일을 위하여 인민군으로 행동하자’라는 구호를 내세워 일어난 여수 순천 사건은 9천4백5명이 학살당하고 2만3천명의 체포로 끝난다.

 

14연대가 제주 사건 진압을 위한 차출 명령을 받자 연대 인사계인 지창수 상사는 연대 내 핵심 세포 40여명에게 무기고와 화약고를 점령하게 하고 출동 계획 일시인 19일 저녁 9시가 되기 한시간 전 비상 나팔을 불어 출동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1개 대대 병력 이외에 부대 주변에 있던 남로당원 23명과 나머지 2개 대대를 합류시켜 3천명을 집결, 20일 1시경 지창수 지휘하에 여수 경찰서를 점거하고 학생과 지하 단체 6백여 명이 합세 무기 탄약을 지급 받고 관공서가 이들의 치하에 들어갔다.

 

이날 여수 시내는 약 3만 명의 군중들이 모여 인민 대회를 개최하고 ‘여수 인민 위원회에 의한 정권 장악’을 선언하고 “무상 몰수 무상 분배의 토지개혁을 즉시 실시한다”고 주장하고 이승만 정권에 대한 도전을 시작하였다.

 

이들 중 2개 대대 병력 약 2천명은 철도편을 이용하여 순천에 도착하여 홍순석 중위가 지휘하는 제14연대 2개 중대 병력과 합류하여 오후 5시경에는 순천을 완전 장악한다.

 

 

이들은 3개 부대를 재편하여 학구, 구례, 남원 방면으로, 한 부대는 광양 방면으로, 다른 부대는 벌교 보성 방면으로 진격하여 여수, 순천, 보성, 광양의 거의 전 지역과 하동, 남원, 구례, 곡성의 일부 지역까지 이르렀다.

 

 

UN의 조선 문제에 관한 결의안 및 총선거에 대한 하지 중장의 견해 발표

 

(1947.11.20)

 

 

본관은 유엔총회에서 43대 0으로 총선거 실시를 감시하기 위하여 통일된 조선 정부의 수립 및 조선 독립의 달성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불원간 來朝할 유엔 조선 위원회의 설치안을 가결하였다는 보도를 접하여 기쁘게 생각하였습니다.

 

동 위원회는 9개국 대표로 구성된 것이며 그 중 4개국은 태평양 및 극동 방면에 있는 중국, 인도, 필리핀 및 호주의 제국이 임명된 것입니다.

 

본관은 본국 정부로부터 유엔 조선 위원회의 감시 하에 총선거를 실시할 것을 포함한 조선에 관한 결의안의 각 조를 미국 정부가 필히 준수할 것이라는 것을 조선 국민 및 지도자에게 전달하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미국 정부의 대표자로서 본관은 조선 국민에게 유엔 조선 위원회가 설치된 목적을 완수하기 위하여 전력을 하여 원조할 것을 보장하는 바입니다.

 

이 계획안에 의한 제일 단계의 조치는 결의안에 의하여 1948년 3월 31일 이내에 총선거를 실시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조선 국민은 동 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총선거에 대대적으로 응하게 될 것입니다.

 

본관은 방금 본 문제에 관하여 워싱톤 당국과 교섭 중에 있으므로 총선거에 대한 조치를 불원간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발표가 있을 때까지는 전 조선 국민은 본 문제에 관한 정식 발표를 기다려야 됩니다. 취중 조선 국민 악선전에 속지 말 것이며 또 총선거에 관한 승인을 받지 않는 비공식 보도에도 현혹되지 않아야 됩니다.

 

본관도 조선 국민이 과거 2년간이나 실망과 낙담에 빠져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즉 조선 독립을 제래하기 위하여 미국 정부 및 그 대표자들의 부단의 노력(첫째로 1946년 및 1947년에 각각 채택된 二國회의 미, 소 공동 위원회를 통하여, 둘째로 모스크바 협정에 서명한 4개국 회의를 통하여, 셋째로 미국 정부가 제의한 최근의 유엔의 조치를 통하여)에도 불구하고 2년간이나 지연되어 왔습니다.

 

본관은 유엔의 여러분의 문제에 대한 금반의 신 단계는 세계의 독립 제국가가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여러분의 오랫동안의 꿈이 실현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유엔 결의안의 내용에 대한 여러분의 연구에 資하고자 다음의 결의안 원문을 인용합니다.

 

 

이완용의 질손 이병도와 친일 사학자들이 쓴 역사 교과서... 

이병도를 비롯한 식민사관 학자들에 의해 기록된 국정교과서를 배운 우리는 우리민족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알고 있을까?

 

황국신민화를 외치던 입으로 우리의 역사를 가르치던 그들은 해방 70년이 가까운 지금도 훌륭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아침 신문을 읽다가 장준하선생님이 박정희에게 했다는 말씀이 잊혀지지 않네요.

 

"일제가 그냥 계속됐다면 너는 만주군 장교로서 독립투사들에 대한 살륙을 계속했을 것이 아닌가?"

 

이명박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놓고 네티즌들이 이명박대통령 독립운동하는 중이라고 비아냥거리고 있습니다.

 

울고 싶은 사람에게 뺨때려 준 독도 방문... 일본은 각본에 따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한다고 분주합니다.

 

해방 67주년, 아직도 우리는 진정한 해방을 맞지 못하고 있습니다.

친일세력들이 득세하고 그들이 애국자가 되는 한 진정한 해방은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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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0.11.28 07:51



이 기사는 필자가 학교에 재직시절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들려줬던 얘기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수업시간에 “자기가 가장 갖고 싶은 게 무엇인가? “라고 학생들에게 불으면 ‘돈, 여자 권력, 명예…….’ 이렇게들 대답한다. 맞는 말이다. 그건 누구나 갖고 싶은 거지. 그걸 일컬어 희소가치라고 하는 거야. 희소가치[稀少價値]라는 것은 드물고 적기 때문에 인정되는 가치란다. 다이아몬드와 물을 보면 알지. 물은 하루만 없어도 큰일 나는 소중한 물건인데 다이아몬드는 없어도 살지 않니? 그 다이아몬드 값이 비싼 이유가 희소가치 때문이라는 거야.

 그런데 희소가치라고 하는 그 돈과 여자와 권력…….그런 걸 어떻게 자기가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란다. 지금부터 그 얘길 해보자.(이런 얘길 하면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낚시꾼이 고기를 많이 잡으려면 낚시도구만 가지고 아무렇게나 낚시를 던져놓고 기다린다고 되는 게 아니란다. 어떤 바다에는 어떤 물고기가 많고 어떤 물고기는 무슨 먹이를 좋아한다는 걸 알아야 원하는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는 거지.

그런데 사람들은 어리석은 낚시꾼처럼 물고기만 잡겠다고 덤비니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밖에 없지 않겠니?(그렇게 기를 쓰고 잠을 자던 아이들이 이번 시간에는 잠을 자겠다는 눈치가 보이지 않는다. 내친 김에 ‘한 시간 특강을 하자’ 마음먹고 시작해 본다)

                                                         <사진자료 : 네이버 이미지에서>

-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

길을 가다가 첫눈에 참 맘에 드는 여자를 만났다고 하자. 그렇다고 “야! 너 나하고 결혼하자!”하고 덤비면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순서를 밟아야 할까? 희소가치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감각적으로 인지하는 현상에는 겉과 속이 다르다. 사과 껍질이 빨갛다고 속까지 빨간 건 아니다. 본질을 모르고 현상이 본질이라고 착각한다면 그 희소가치를 내 것으로 만들기는 영 불가능하지. 그렇다면 그 본질을 찾는 여행을 해보자.

- 겉과 속은 다르다 -

우선 ‘어떤 바다에는 어떤 물고기가 많이 사는가?’를 안다는 것. 그게 중요한거야. 그렇다면 그 바다와 낚시, 미끼 그리고 낚시장비는 어떤 것인가 살펴보자.
가장 중요한 것은 희소가치를 가지고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하지 않니? 그런데 그 희소가치라는 게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살아가면서 자주 듣는 말 중에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 않니? 아무리 위대한 시인이 쓴 시라도 그 시를 해득할만한 안목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 시의 진가를 모를 수밖에 없단다. 어디 시만 그렇겠니? 정치자금을 준 대가로 특혜를 받고 탈세를 하고 내수가격을 올려 치부하는 재벌의 정경유착을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순진한 사람들만 사는 세상이라면 어떻게 세상이 바뀌겠니? 그러니까 사람들은 자기 수준만큼 보이기 마련이라고 하지 않니? 이런 사람들일수록 아무리 부지런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자신의 무능이나 운명 탓으로 돌리기 마련이거든…….  

                                                        <사진 : 네이버 이미지에서>

희소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옛날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그걸 먼저 알아야 한단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왜 농민들은 죽을 지경으로 심한 노동에 시달리면서 일했는데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는가……. 이런 역사를 배워야 하고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어떤 것이 옳은 것이고 어떤 것이 그런 것인가를 판단할 수 있는 철학을 배워야 한단다.

뿐만 아니라 돈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돈을 벌겠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란다. 그 돈의 흐름이나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경제나 경제사를 배워야 한단다. 우리가 학교에서 영어나 수학을 잘하면 출세도 하고 훌륭한 사람대접 받는 건 생각해 보면 웃기는 얘기란다. 영어나 수학이 살아가는데 필요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영어나 수학은 살아가는데 필요하기는 하지만 모두가 영어와 수학을 그렇게 깊이 배울 필요가 있겠느냐는거지.

그러나 이게 옳은지 저게 옳은지 판단하지 못한다면 인생을 실패할 수도 있고 방황할 수도 있지 않겠니? 그 판단의 기준이 되는 세계관이나 철학을 학교가 가르쳐 주지도 않고 그런 건 중요하다고 취급도 하지 않는 학교가 우습지 않니?(이 문제도 후에 자본주의의 본질을 배우면 이해할 수 있단다)  

먼저 원하는 물고기를 낚기 위해 우선 역사부터 알아보자.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역사란 어떤 것일까? 지금은 바뀌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가가 ‘이건 필요한 역사적 지식이다‘라고 선별해 골라 묶은 ’국정교과서‘라는 걸 배우게 했지. 요즈음 그 속셈이 드러나고 말았지만 그 국정교과서를 만들던 국정교과서 편수관들이 일제시대 민족을 배신한 대가로 일본의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이거나 그 후손이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교과서를 그렇게 만든 이유를 알 수 있지 않겠니? 

특히 고대사를 많이 배우게 하고 현대사는 거의 배우지 못하게 한 이유도 말이다. 하여간 국정교과서라는 걸 배우면 암기한 지식의 량으로 사람의 가치를 서열매기게 된 이유를 알 수 있단다. 이제부터 그 역사를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알아보자.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교과서에는 옛날사람들이 살아 온 내력이라는 게 무조건 ‘아무게네 집에 벼를 몇 섬하고 노비는 몇이나 있었고…….’ 이런 지식을 많이 암기하도록 잡다한 지식을 나열해 놓은 식이었단다. '광개토대왕이 장수왕이 몇 년에 태어나 몇 년에 죽었다든지 하는 지식보다는 농부들이 열심히 일했는데 왜 일하지 않은 양반들이 호의호식하며 살았는가?' 그게 더 중요한 게 아닐까?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극을 보면 왕이나 양반은 인기도 있고 잘생긴 사람이,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뭐가 모자라도 한 참 모자라는 사팔뜨기, 팔푼이가 등장해 양반의 고귀한 삶의 조역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상놈들은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생겼고 못났으니까 저런 대접을 받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란다. 그런 걸 자꾸 보다보면 차차 나도 못 배우고 못났으니까 가난하게 사는 게 당연하다‘는 운명론자가 되고 마는 거란다.

이렇게 나와 무관하게 보이도록 쓴 역사를 영웅사관, 또는 왕조사관이라 고 하는 거야. ‘어떤 색깔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느냐’ 그것도 없이 역사적 지식을 많이 안다고 훌륭한 사람 취급받는다는 건 웃기는 얘기 아니니?(텔레비전에서 돈을 걸어놓고 이렇게 단편적 지식을 많이 알고 있는가의 여부로 보상을 해주는 것도 일종의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는 거지. 그런데 일반인도 아닌 학생의 상대로 암기한 지식의 양으로 영웅을 만드는 ‘골든 벨을 울려라’와 같은 프로그램도 그런 아류라고 볼 수 있단다.)

나와 무관한 역사적 지식이라는 걸 배우는데 내 소중한 인생을 허비해야 한다는 건 좀 생각해 볼 일이 아니겠니? 그래서 내가 민중이면 민중사관에 의한 역사를, 내가 지배계급에 속한다면 영웅사관이나 왕조사관에 의해 씌어진 역사를 배우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드는 구나.

분명한 사실은 역사를 배우면서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걸, 내 민족이 우리 문화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걸, 우리 선조들이 피땀흘린 대가로 내가 이정도 자유를 누리고 산다는 역사의식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런 역사는 가짜라는 거지. 그런 역사는 배울 가치가 없는 게 아닐까? 민족을 배신한 대가로 개인의 부귀영화를 누렸다면 그 배신으로 다수의 동족이 당한 고통을 덮어둔다면 누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할 것인가?

역사는 안다는 것은 나를 아는 것이요, 나의 정체성을 깨닫는 일이다. 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깨닫지 못하는 역사는 가짜다. (계속)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