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세상읽기2018.07.25 06:30


"外相會議論議朝鮮獨立問題 蘇聯信託統治主張 蘇聯口實三八線 分割占領 米國卽時 獨立主張"(외상회의에 논의된 조선독립문제 소련은 신탁통치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 점령,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독립주장'... 19451227일자 동아일보 1면 기사제목이다. ‘동아일보가 쓴 합동통신 워싱턴발 25일자 보도를 근거로 쓴 이 기사는 사실은 19451227일 아침 <조선일보>에 먼저 실렸다. 석간이던 <동아일보>는 몇 시간 뒤 같은 기사를 토씨 하나 안 바꾸고 그대로 1면 톱기사로 실었다. 동아일보는 이 기사에서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독립 주장이라고 제목을 붙여 독자가 미국은 우리의 독립을 위해 애쓰는데, 소련은 우리를 다시 식민지로 만들려고 한다는 인식을 갖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당시 최대 우파 정당인 한민당과 함께 (<동아일보>는 한민당의 핵심인 김성수가 창간했고, 송진우가 사장으로 있던 신문이었다)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맹렬하게 전개했다.

<동아일보가 반탁에 나선 이유>

동아일보가 미국은 우리의 독립을 위해 애쓰는데, 소련은 조선을 다시 식민지로 만들려고 한다는 기사는 사실은 오보가 아니라 반탁운동을 계기로 망하기 일보 직전에 있던 친일파 민족 반역자들이 소련의 신탁통치즉시 독립을 대비시켜 마치 지신들이 독립을 옹호하는 애국지사인 것처럼 행사하기 위한 의도로 작성된 왜곡기사였다. 처음 이런 기사를 내 보낸 조선일보나 이 기사로 매국친일 인사들로 구성된 한민당의 핵심인사인 동아일보 사장 김성수와 미군정의 의도가 만들어 낸 민족의 분단과 동족상잔의 불씨를 만든 것이다.

동아일보 오보사건으로 알려진 찬탁과 반탁은 <동아일보><조선일보>의 기사와는 반대로 신탁통치안을 제시한 쪽은 소련이 아니라 미국이었으며 미국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한반도 신탁통치안을 주장해 왔다. 신탁통치의 구상은 19452월 얄타회담에서 소련과도 합의됐는데, 당시 루스벨트는 한국인은 자치 능력이 없다. 아마 40년 내지 50년 정도는 신탁통치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으나, 소련의 스탈린은 그렇게 길게는 안 된다. 5년 정도로 하자고 했다. 결국 한반도 문제는 최대 5년을 기한으로, ···4개국 정부가 신탁통치를 실시한다는 결정이었다.

반탁운동진영의 주장처럼 이 신탁통치가 일본의 뒤를 이어 한반도를 마음대로 통치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한국 독립의 기초를 다지기 위한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그 임시정부는 신탁통치의 시한과 시행 방안 등을 4개국 정부와 협의할 권한을 갖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신탁통치 기간에도 통치의 기본 주체는 임시정부이며, 4개국은 임시정부를 후원하는 역할만 맡게 돼 있었다. 따라서 나중에 소련이 남북한의 공산당에 말이 신탁통치이지 실질적으로 후견제이므로 한국인의 주권은 침해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미루어 3상회의 결정을 받아들이도록 권유한 것이 당시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미군정과 이승만 일파의 반탁음모가 우리 민족사에 끼친 영향은 너무나 컸다. 반탁운동은 동아일보의 오보사건으로 촉발된 ·반탁 갈등은 민족해방운동의 맥을 이어온 좌파세력을 매국노로, 친일파를 애국자로 둔갑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결국 찬탁=매’, ‘반탁=애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찬탁 지지자를 분단세력으로 반탁을 통일을 주장하는 애국세력으로 몰아갔던 것이다. “분열하여 통치하라!” 이것이 바로 제국주의자들이 언제 어느 곳에서나 시도했던 제 1의 통치 원칙이다.



우리역사상 동아일보 오보사건만큼 큰 오보는 언론 역사를 통틀어 찾아 볼 수 없다. 민족의 운명을 바꿔놓은 동아일보오보사건은 한반도 분단을 통한 미군정의 한반도지배와 미국대통령 윌슨에게 자치의 능력이 있다고 인정할 때까지 국제연맹이 한반도를 위임 통치해 달라고 구걸하다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에서 탄핵당한 이승만, 그리고 친일 지주들로 구성된 한민당이 만들어 낸 작품이이다. 민족분단과 6,25전쟁 그리고 해방 73년을 맞는 오늘날까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역사에 저지른 죗값에 대해 한번이라도 민족 앞에 속죄한 일이 있는가?

역사의 고비마다 가해자가 되어 민중을 질곡으로 몰아넣었던 신문.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고 제주항쟁을 폭동으로 동족을 학살할 수 없다며 출동을 거부한 여순사건은 반란으로, 대구 10,1항쟁은 폭동으로, 박정희 정권에 유신찬미로, 살인자 전두환에게 용비어천가를 부르던 신문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아닌가? 전두환의 대국민 사기극 평화의 댐건설이며 이명박의 4대강사업에 앞장서 토건업자를 대변하던 신문,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에 언론이기를 포기한 신문이 조선과 동아일보다. 지금이라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역사와 민족에 저지른 죄를 밝히는 것이 거꾸로 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첩경이 아니겠는가


.................................................................



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손바닥헌법책 보급운동에 함께 합시다 - '헌법대로 하라!!! 헌법대로 살자!!!' 


==>>동참하러가기 [손바닥헌법책 선물하기 운동!!!"한 권에 500원으로 최고의 선물을 할 수 있어요!!"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공교육의 정상화를 꿈꾸다' 

☞. 구매하러 가기... 교보문고 바로가기yes 바로가지, 알라딘 바로가기  인터파크 바로가기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사랑으로 되살아 나는 교육을 꿈꾸다'  

 ☞. 전자책 (eBOOK) 구매하러 가기.. 예스24 바로가기  , 알라딘 바로가기, 북큐브 바로가기


<아리스토텔레스, 이게 행복이다> 생각비행이 출간한 1318청소년 시리즈 제 2탄  


방황 하는 아이들에게 삶이 무엇인지, 왜 사는지, 행복이란 무엇인지...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울 수 있는 책. 구매하러 가기 ▶ 예스 24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역사2018.07.20 06:33


어떤 사람도 항복 문서의 조항과 또는 미 태평양 방면 총사령관의 권한 아래 내려진 포고, 명령, 지시에 위반하거나, 미국과 그 연합국의 국민 또는 재산의 질서, 생명, 안전, 치안을 해치는 행위, 공공의 안녕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 정의로운 행동을 수행하지 못하게 하는 행위, 또는 연합국에 대하여 고의로 적대 행위를 하는 자는 점령군의 군사 법정에서 사형을 포함한 기타의 판결에 처해질 것이다.”(97일 맥아더 사령관 포고 제2)


<이미지 출처 : 다음 블로그 망구>

우리 민중들은 미군정기를 어떻게 평가할까? 김주환이 쓴 미국의 세계전략과 한국전쟁을 보면 우리민족의 49%의 국민들은 미국이 가져다 준 해방으로 겪는 고통보다 차라리 일제통치가 더 낫다.”고 썼다. “미군의 통치가 더 낫다는 대답을 한 사람은 단지 2%에 지나지 않았다.”고 했다. 일제의 폭압에서 해방된 국민들에게 이 무슨 날벼락일까? 미군정기보다 일제 식민지시대가 더 좋았다니... 이런 기록은 군정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혹은 기록으로 수없이 남아 있다. ‘일제가 패망한 뒤 텅 비어 있던 감옥은 1년이 지나자 정치범들로 꽈 들어차게 되었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해방 1주년이 지난 1946815일 서울 어느 신문은 우리는 이날을 기쁨으로 축하해야 할 것인가?"라고 썼다.

대부분이 친일파 민족반역자였던 <한민당은 국민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는 민주주의 집단이요, 민중 스스로의 뜻으로 세운 조선인민공화국을 소련의 조종을 받는 공산주의 집단>이라면 당시의 민중들은 어느 쪽을 지지했을까? 미군정 정치고문 배닝호프가 국무장관 번즈에게 보낸 보고서는 한민당과 조선인민공화국을 이렇게 분석했다. 모든 것을 공산주의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았던 미국에게 자주적인 변혁운동은 단순히 소련의 사주를 받는 불순한 음모일 뿐이었다. 놀랍게도 당시 세계 재패를 실현하려는 미국의 <좌익><우익>이라는 술책이 해방 73년이 지나는 동안 독재와 유신정권 그리고 살인정권을 유지시켜 준 이데올로기가 될 줄 미국이 예상이라도 했을까?

반공을 제 1 목표로 내걸고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을 지주로 하여 대리정권을 수립하고자 했던 미군정에게 외세를 배격하는 철저한 민족주의자 김구는 적절한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장애물이었다. 당연히 미군이 선택한 인물은 김구가 아닌 매우 교활한 정치모략가인 이승만일 수밖에 없었다. 미군정이 이름만 바뀐 조선총독부라면 대부분이 친일파 민족반역자였던 한민당이 세운 이승만정권은 미군정이 꿈꾸던 대륙전진기지로서 한반도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적격자로 당연히 미국은 김구가 아닌 이승만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38도 이북의 북한의 군정기는 어떠했을까?>

194598일부터 1948815일까지 38선 이남을 통치하던 미군정과는 달리 38도 이북의 북한에서는 해방군으로서 진주한 소련군은 103일 제25군사령부 산하에 소련민정기관이 조직되었다. 50명의 장교들로 구성된 이 기관을 지휘하는 A. A. 로마넨코는 민정 담당 부사령관의 직책을 겸임한 민정기관에서는 행정정치부, 산업부, 재정부, 상업조달부, 농림부, 통신부, 교통부, 보건부, 사법검찰부, 보안검열부 등 모두 10개 부서가 설치되어 지도적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 민정기관의 역할은 미군정과는 달리 일제에 의해 파괴된 경제를 복구하고 정상적인 생활 기반을 조성하며 조선 인민 자신의 국가권력 수립에 방조하는 문제 등을 담당하는것이었다.

맥아더 사령관의 포고문 -  맥아더사령관 포고문.hwp

치스차코프사령관 포고문 -  치스차코프 대장의 포고문.hwp


승전국의 점령군이 점령지의 민중에게 예의를 갖추고 인격적으로 대할리는 없다. 점령군의 자잘한 비리와 불법이란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이런 현실이 미소군정기의 납북에서 수없이 일어났던 사례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군에 비해 38이북에 진주한 소군정은 놀랍게도 1945815일 인제가 패망한 후 19489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공식적 출범하기 까지 38선 이북에 사실상 북한정권이 수립되었다는 사실이다. 소련군이 조선으로 진격한 이유도 조선의 해방 때문이 아니라 만주 작전 당시 만주국을 비롯한 만주지역 내 일본 육군 관동군의 괴멸을 위해서였다. 38이남의 맥아더 사령관의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영토를 점령...’을 위해서였지만 소련의 치스차코프 사령관의 포고문은 "조선인민들이여, 그대들은 독립과 자유를 회복...’이라는 인민들의 해방군으로 진주했다. 또 한 가지. ‘소련군정은 미군정처럼 직접 통치가 아닌 간접 통치를 표방하였으며 각지에 세워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지부와 인민위원회를 인정한 통치였다’(나무위키 참조)는 사실이었다.

1946101일 대구를 비롯한 남한의 전 지역에서 일어난 항쟁은 미군과 남조선국방경비대를 비롯하여 한민당세력, 민족청년단, 서북청년회, 백의사 등 반공주의 우파 인사들의 도움을 받아 진압하는 과정에서 공무원 63, 일반인 73명으로 총 136명의 희생자를 냈다. 항쟁 진압과정에서 예의 빨갱이토벌의 효과가 이때부터 드러나기 시작한다. 물론 당시 미군보다 토벌에 전면에 나서서 앞잡이가 되었던 친일파를 비롯한 극우 세력들은 미군정에 이어 이승만의 보호와 국가가 주는 훈장을 받는가 하면 죽은 후에 지금도 63명이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민족을 위해 조국의 완전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열사들이 편히 눈감을 수 있겠는가? 미군정기를 비롯한 해방 후 오늘에 이르기 까지 미국은 우리나라에 혈맹이요, 수호신이기만 했을까?...(계속)  


.................................................................



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손바닥헌법책 보급운동에 함께 합시다 - '헌법대로 하라!!! 헌법대로 살자!!!' 


==>>동참하러가기 [손바닥헌법책 선물하기 운동!!!"한 권에 500원으로 최고의 선물을 할 수 있어요!!"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공교육의 정상화를 꿈꾸다' 

☞. 구매하러 가기... 교보문고 바로가기yes 바로가지, 알라딘 바로가기  인터파크 바로가기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사랑으로 되살아 나는 교육을 꿈꾸다'  

 ☞. 전자책 (eBOOK) 구매하러 가기.. 예스24 바로가기  , 알라딘 바로가기, 북큐브 바로가기


<아리스토텔레스, 이게 행복이다> 생각비행이 출간한 1318청소년 시리즈 제 2탄  


방황 하는 아이들에게 삶이 무엇인지, 왜 사는지, 행복이란 무엇인지...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울 수 있는 책. 구매하러 가기 ▶ 예스 24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정치2018.04.04 06:26


"제주 양민이 무고한 죽음을 당한 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좌익 무장 폭동이 개시된 날이 43일이다"

116석의 제 1야당의 대표라는 사람이 자신의 페이스 북에 이런 글을 올려 논란이 돼고 있다. 그는 (4·3)제주 양민이 무고한 죽음을 당한 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좌익 무장 폭동이 개시된 날이며 "43일은 194843일 남로당 제주도당위원장인 김달삼이 350명 무장폭도를 이끌고 새벽 2시에 제주 경찰서 12곳을 습격했던 날"이라며 "이 날을 제주 양민이 무고하게 희생된 날로 잡아 추념한다는 것은 오히려 좌익 폭동과 상관없는 제주 양민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제주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가 만든 제주4·3 70주년 포스터>


사법고시를 대비해 국정교과서를 암기한 범생이어서 그런가? 대한민국 제 1야당의 대표라는 사람의 역사인식 수준이 이 정도라는 것은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아니 사망자만 무려 14,232명이요, 그 중에 10살 이하가 772, 11~20살이 2,464명이나 되는 미군정과 경찰이 저지른 폭력을 두고 한 이런 막말은 희생자에 대한 모욕이요, 저주다. 홍준표는 희생자 유족 59,426명에게 답해야 한다. 아내와 자식을 잃고 혹은 부모와 친척을 잃고 70년간 죽지 못해 살아 온 사람들에게 이런 막말, 아니 저주를 쏟아 부은 저의가 어디 있는지를...

역사를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 3·1운동도 4·19혁명도 5.18 광주민주화운동도 폭동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역사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라면 1947년 당시 제주도와 5·10선거가 치러진 당시의 배경과 과정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36년간 왜놈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대한민국은 분단조국이 아닌 통일대한민국이어야 옳다. 강대국의 힘겨루기에 못이겨 신탁통치니 남한만의 단독선거는 또 다른 민족비극을 예고한 계기이기도 하다. 5·10단독선거가 유엔의 결정이기 때문에 정당하고 경찰이 어린아이까지 죽이는 현장을 보다 못한 주민들의 항의에 남로당이 섞여있었다면 폭동인가?

당시 해방 후 상황은 제주뿐만 아니라 나라전체가 극심한 실업난과 식량부족, 전염병 창궐 등으로 국민들의 삶이 극도로 피폐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친일경찰 출신들이 다시 경찰로 복권됐고, 이들은 미군정 관리들의 무능을 틈타 악행과 폭력을 행사해 민심은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제주 3.1절 기념식에서 기마경관의 말에 어린아이가 다치는 사건이 벌어지고 경찰의 처벌을 요구하는 주민에게 경찰을 총을 쏴 6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상을 입게 됐다.

사망한 어린이 중에는 초등학생과 젖먹이도 있었고 20대젊은 엄마도 있었다. 이 사건을 두고 미군정과 경찰은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도민과 학생들을 강제 연행하자 310일부터 제주 도청을 비롯한 행정기관 대부분인 23개 기관, 105개의 학교, 우체국, 전기회사 등 제주 직장인 95%에 달하는 4만여 명이 참여하는 총파업이 벌어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 남로당 북로당을 따지겠는가? 이 과정에 남로당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고 하더라도 남로당이 저지른 폭동인가?



"서북청년회 출신 정 주임은 너무도 잔인했어요. 여자들 옷을 벗겨 더러운 행위를 하는 것도 다 봤습니다. 그리고 그 추운 겨울날 여자들의 옷을 벗긴 채 망루 위에 오랜 시간 앉혀 놓았습니다. 난 벌벌 떠는 그들이 불쌍해 코트를 벗어 덮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날이 밝으면 삼양지서 옆 밭에서 남자고 여자고 수십 명씩 잡아다 죽였습니다. 차라리 총으로 쏘아 죽일 것이지 그 마을 대동청년단원들에게 창으로 찌르도록 강요했습니다." (김제진 제주경찰학교 10기생 증언-출처:제주4.3사건진상보고서)

“정기보고를 하러 지서에 갔더니 남편이 입산했다는 이유로 젊은 여자 한 명이 끌려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 주임은 웬일인지 총구를 난로 속에 넣고 있더군요. 그리고는 젊은 여자를 홀딱 벗겼어요. 임신한 상태라 배와 가슴이 나와 있었습니다. 정 주임은 시뻘겋게 달궈진 총구를 그녀의 몸 아래 속으로 찔러 넣었습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정 주임은 그 짓을 하다가 지서 옆 밭에서 머리에 휘발유를 뿌려 태워 죽였습니다. 우리에게 시신 위로 흙을 덮으라고 했는데 아직 덜 죽어있던 상태라 흙이 들썩들썩했습니다.” (고봉수 대한청년단 분대장 증언-출처:제주4.3사건진상보고서) 

이런 현상을 보고 제주도민은 구경만하고 있어야 하는가? 미군정과 경찰이 하면 선이고 민중들이 저항하면 폭동인가? 남편이 보는 앞에서 아내가 강간을 당하고, 자녀들이 몽둥이로 맞아 퇴학을 당하고, 그나마 남아 있던 식량을 뺏기는 상황에서 제주도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산으로 도망을 가거나 죽창을 들다가 총에 맞아 죽는 일이 전부였다. 이런 상황을 무시하고 4.3사건이 단순히 5.10 선거를 막기 위한 남로당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4·3의 도화선은 좌익 무장 폭동이 개시된 날이 아니라 3·1발포사건이다.

이런 현실을 두고 홍준표의 "이 날을 제주 양민이 무고하게 희생된 날로 잡아 추념한다는 것은 오히려 좌익 폭동과 상관없는 제주 양민을 모욕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304명의 단원고 학생들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다 희생된 사건을 두고 북괴의 지령에 놀아나는 좌파단체와 좌파 사이버테러리스트들이 정부 전복 작전을 전개할 것이라던 한기호 당시 새누리당 의원의 말과 무엇이 다른가? 정치란 사람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홍준표는 제주도민에게 사과하고 정치에서 손을 떼야 한다. 사람을 개·돼지 취급하고서야 어떻게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가?


.....................................................................


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제가 쓴 '사료와 함께 보는 한국 현대사 자료집'입니다. 전자책으로 나왔습니다.



구매하러 가기 ==>> 교보문고,  YES 24  알라딘,  반디앤루이스, 리디북스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공교육의 정상화를 꿈꾸다' 


☞. 구매하러 가기... 교보문고yes24, 알라딘,  인터파크



<유모차 밀고 선거 나온 여자>는 지난 6.4 지방선거에 구의원 후보로 출마했다가 꼴등으로 낙마한 두 아이 엄마의 좌충우돌 선거 도전기 


선거에 관련된 모든 자료와 경험을 알차게 담아 놓은 선거준비 사전... 정치를 꿈꾸는 분들의 필독서 구매하러 가기 ▶ 교보문고


바닥헌법책 보급운동에 함께 합시다 - '헌법대로 하라!!! 헌법대로 살자!!!' ==>>동참하러가기


손바닥헌법책 주문하러 가기 ==>> 손바닥헌법책 주문서.mht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3.06.05 07:24


 

 

6월 6일은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 및 전몰장병의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하는 현충일’이기도 하지만 일제 치하 36년간 자행된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처벌하기 위하여 제헌국회에 설치되었던 특별기구인 ‘반민 특위가 해체된 날’이기도 하다.

 

흔히 우리역사의 총체적인 모순과 비극을 일제잔재미청산에서 찾는다. 일제잔재 미청산은 배방 후, 친일세력이 한국사회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는 길을 열어준 것은 물론, 한국민족주의의 좌절과 단절을 분단과 6.25민족비극으로 이어지게 하는 원인제공자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역사청산에 대한 민중들의 열망은 해방 전부터 시작됐다.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기 이전인 1947년 친일잔재청산을 위하여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은 ‘민족반역자 ·부일협력자 ·전범 ·간상배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군정은 이 법안이 미군정의 동맹세력인 친일경찰, 친일관료, 친일정치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준을 거부하였다. 이로써 친일파 청산의 과제는 정부 수립 후로 넘어가게 되었다.

 

 

1948년 8월, 헌법 제101조에 의거하여 국회에 반민족행위처벌법기초특별위원회가 구성되고, 이어 9월 특별위원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의하면 ‘국권피탈에 적극 협력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제국의회의원이 된 자는 최고 무기징역 최하 5년 이상의 징역, 독립운동가 및 그 가족을 살상 ·박해한 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징역, 직 ·간접으로 일제에 협력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재산몰수’에 처하도록 하였다.

 

1949년 1월 5일 반민특위는 중앙청 205호실에 사무실을 차리고 8일 박흥식을 체포함으로써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그러자 이승만은 담화를 통하여 ‘반민특위가 삼권분립의 원칙에 위반되며 안보상황이 위급한 때 경찰을 동요시켜서는 안 된다’며 반민족세력을 비호한다. 반민특위는 특위활동이 불법이 아니라는 담화를 발표하고 정부의 협조를 촉구하였지만 이승만은 ‘반민법 법률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하는 등 방해활동을 그치지 않았다.

 

 

 

이승만의 노골적인 반대와 방해로 반민 특위는 총682건 중 기소 221건, 재판부의 판결건수 40건으로, 체형은 고작 14명에 그쳤다. 실제 사형집행은 1명도 없었으며, 체형을 받은 사람들도 곧바로 풀려나고 말았다. 반민특위는 국회프락치사건과 6 ·6경찰의 특위습격사건을 겪으면서 와해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친일파 척결의 주도세력이었던 소장파의원들을 간첩혐의로 체포되는 국회프락치사건을 겪으면서 위축되는 등 특위 산하 특경대에 대한 경찰의 습격은 반민특위의 폐기법안을 통과시키게 함으로써 민족반역자에 대한 처벌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다른 나라는 빈민족행위자를 어떻게 청산했을까?

 

프랑스의 경우, 나치협력자들이 감형되거나 피선거권을 얻기도 했지만 약 70%의 구 정치인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드골대통령은 기업인, 출판계, 작가, 지식인, 영화 배우, 가수, 학자, 정치인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 12만 7천 7백 51명이 재판에 회부, 6천 7백 6십여 명이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이 가운데 사형이 집행된 사람은 7백 6십여 명이었다.

중국의 경우, 1945년 11월 23일, <한간(漢奸)처리안건조례>를 공포, 1947년 10월까지 국민당 관할 지역 각 성시(省市)의 고등법원에서 재판한 한간 관련 안건은 약 25,000건이었으며, 그 중 369명이 사형, 979명이 무기징역, 13,570명이 유기징역, 14명이 벌금형에 각각 처해졌다.

 

독읠의 경우, 독일은 지금도 나치전범에 대한 색출과 처단을 그치지 않고 있다. 독일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을 통해 나치 전범 12명을 사형시켰고, 연합군 점령 종료 후에도 나치 전범을 계속 추적해 10만 건 이상의 용의자를 수사, 6,000건 이상의 유죄 판결을 내렸다.

 

몇년 전, 93세 나치 전범 용의자가 체포됐다는 뉴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할 충격을 주기도 했다. 지난 1970년 빌리 브란트 총리는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위령탑에 무릎을 꿇고 헌화하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며, 1998년 헬무트 콜 총리는 “독일은 나치 만행을 잊어서도 안 되고, 잊으려 하지도 않는다.”면서 지속적인 사과의 말을 하기도 했다.

 

네델란드의 경우, 1940년 5월부터 1945년 5월까지 5년간 나치 독일의 지배를 받은 네델란드는 <특별법원>, <인민재판소>에서 맡아 네델란드 괴벨스라 불린 친독언론인 막스 블록쩔 등 154명에 사형을 선고, 이들 중 39명은 사형이 집행되었으며 무기징역 148명, 15 ~ 20년 징역형 578명, 10 ~ 15년 징역형 4,589명 등 중형을 선고하고, 인민재판소도 10년 미만의 징역형 531명 등을 선고하여 반민족행위자들을 엄벌하였다.

 

폴란드는 1942년부터 반역자와 협력자들을 처벌하는 특별군사재판소와 특별민사재판소를 운영하였다. 이들 재판소에서는 약 5,000건의 재판에서 약 3,000건의 사형선고를 내리고, 약 2,500명의 사형을 집행하였다.

 

위에서 예를 든 몇몇 나라들은 일본 지도자들의 매년 야스쿠니신사 참배와는 대조적으로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는 수록하고 투쟁사 교육을 계속하는 가하면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친일잔재청산을 어떻게 했을까?

 

일제시대 반민족행위를 저지른 자를 처벌한다는 것은 무너진 민족정신을 바로 세우고 정의를 확립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친일파 처단에 실패함으로써 친일세력들이 정부수립의 주도권을 장악, 자신들의 반민족행위를 반공이데올로기로 은폐시키고 독재체제에 충성하며 분단체제의 고착화에 앞장섰다.

 

이러한 과정에서 친일파들은 단죄를 받기는커녕 권력의 요직을 장악, 지도층을 형성함으로써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거기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다는 상식은 물론 사회 정의가 무너져 가치관을 극도로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친일 경찰이 군과 경찰을 장악하여 한국전쟁 전후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하였으며. 각종 선거에 개입하여 부정을 저지르는 등 민주주의 질서를 무너트려 이기주의와 부정부패 등이 만연한 사회를 만들어 놓고 말았다.

 

 

최근 “5.16 쿠데타는 성스러운 혁명이며, 5.18 민주화 운동을 북한 간첩의 사주에 의한 좌경. 빨갱이들의 폭동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정신대는 일제가 강제동원한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상업적 매춘이자 공창제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왜곡은 종편을 비롯한 일베저장소와 뉴라이트 그리고 조중동의 역사왜곡이 뉴라이트의 국정교과서 검인정 통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민족을 배신한 과거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는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일제 경찰에 종사한 8,000명중 5,000명이 군정 경찰에 복무하고, 이들을 핵으로 군정 경찰이 구성되었으며, 경찰 간부의 80%가 일제 경찰 출신인 나라가 해방된 대한민국 정부다. 정부 수립 후 1960년 4월까지 즉 이승만 정권 12년간의 전체 각료 115명 중 재임 장관들을 제외하면 96명인데 이중 독립 운동가는 단 4명, 국내 민족 투사 8명을 합해서 그 비율은 12.5%에 불과하다.

 

부일 협력 전력자가 34.4%인 33명으로 구성된 정부, 반민특위는 공소시효 만료까지 조사 건수 6백82건, 체포 3백5건, 미체포 1백73건, 자수 61건, 영장 취소 30건, 검찰에 송치한 건수는 5백59건 이였다. 그러나 그 중 2백21건이 기소되어 재판을 종결한 것은 불과 38건인데 사형1건, 무기징역1건을 포함하여 실형이 선고된 것은 불과 7건뿐이었고 거의가 집행 유예나 무죄로 풀려났다.

 

실형 선고를 받은 7명도 1950년 6.25전쟁까지 감형과 집행 정지 등으로 모두 풀려난 세계에서 유일한 역사청산을 못한 부끄러운 나라가 됐다. 어쩌면 뉴라이트를 비롯한 수구세력들의 발호는 일제잔재청산을 못한 필연적인 결과가 아닐까?

 

-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원단체/전교조2012.12.25 07:00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에서>

 

전교조에 대한 글을 썼더니 악플이 무려 100여개가 달렸다. 그것도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댓글이 아니라 입에 담지 못한 욕설과 악의에 찬 글들이다. 이 사람들은 전교조와 무슨 원한이 있기에, 무슨 죽을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악담을 퍼부을까?

 

전교조를 비난하는 이들의 글들을 읽어보면 지금 우리교육이 이 지경이 된 것은 모두가 전교조 때문이라는 논리다. 무능하고 자기이익만 챙기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라느니, 학생들에게 정치적 편향성을 세뇌시키는 집단이라느니, ‘6.25를 북침이라고 어린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종북세력이라는 것이다.

 

교원단체가 여럿 있지만 그중에 대표적인 게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와 교총(한국교원단체총연합)이다. 전교조 말만하면 입에 거품을 무는 사람들이 있는데 반해 교총을 욕하는 사람들은 눈 닦고 봐도 없다. 교육이 이 지경이 된 책임으로 따진다면 전교조가 보다는 교총의 책임이 더 크다.

 

 

그런데 욕은 교총이 아니라 전교조에 돌아온다. 그 이유가 뭘까? 교총은 탄생이후 지금까지 권력의 눈에 예쁜 짓(?)만 골라해 왔다. 이에 반해 전교조는 탄생하면서부터 권력의 미운살이 박혔다. 정부의 교육실패와 비행을 낱낱이 비판하는 정교조가 곱게 보일 리 없다.

 

역사적으로 교총이 탄생한 건 미군정시대다. 미군정은 자신의 교육정책을 지지해 줄 어용단체가 필요한 만든 게 ‘조선교육연합회’다. 교총은 정부수립 후 독재와 유신정권의 나팔수노릇을 한 대가로 승승장구, 오늘날 탄탄한 경제력과 18만 교원이 가입한 거대 교원 조직으로 우뚝섰다. 권력의 대변인 구실을 하는 교총에게 누가 돌을 던지는가?

 

이에 반해 전교조는 1989년 우여곡절 끝에 탄생했다. 군림하는 교사가 아니라 낮은 곳에서 학생을 섬기는 자가 되겠다며 노동조합을 만들자 성직인 교원이 어떻게 노동자냐며 색깔칠 당하기 시작했다. 결성과정에서 15백여명의 교사들이 교단에서 쫓겨나면서 고난의 길은 시작된다. 4.19 혁명 후 교원노조가 5.16쿠데타로 박멸(?)됐듯이 전교조는 전두환, 노태우와 같은 살인정권에 의해 폭압적인 탄압을 받았으나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전교조는 교원의 권리는 물론 학생인권과 학부모의 교육권을 함께 주장한다. 군림하는 교사가 아니라 섬기는 교사, 노동자로서의 교육의 중립을 주장한다. 독재권력의 나팔수가 되기를 거부하고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교육의 민주화를 추구한다. 학생들이 민주적인 시민으로 살 수 있도록 민족교육, 민주교육, 인간교육을 위해 10만의 교원들이 지켜낸 조직으로 성장했다.

 

 

전교조는 교원의 이익단체다. 이익단체란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공동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정부의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압력 단체다. 이익단체는 종교단체가 아니다. 도덕적으로 완벽하지도 할 수도 없다. 모든 조합원이 성인군자가 아니다. 전두환, 노태우정권에서 혹독한 탄압을 받아 온 전교조가 합법화되자, 전교조를 벌레 보듯 하던 교원들까지 하나 둘 가입하기 시작했다.

 

전교조의 강령에 동의하는 사람도 가입했지만 승진을 꿈꾸는 사람도 전교조에 가입하고 전교조에 가입해 자신의 무능을 감추려는 삼도 가입했다. 내가 만난 선생님 중에는 '저런 사람이 전교조라면 나는 절대로 전교조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사람을 보고 전교조 전체가 부도덕하다든지 무능하다고 매도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이익집단이란 인간의 욕구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사회, 경제적, 사회적으로 다양화, 세분화된 현대사회에서 등장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교사가 노동자냐?’라든지 ‘편향된 의식 주입’ 어쩌고 하는 것은 뒤가 꾸린 세력이나 조중동의 논리다. 세상에서 해직을 몇 번씩이나 당해 가정이 파탄나면서 까지 교육을 살리겠다는 나서는 사람들에게 불순세력이라고 악담을 퍼붓는 사람들이야말로 무식하거나 아니면 반공교육에 마취된 사람이다. 아니라면 돈과 양심을 바꾼 알바생들이나 할 소리다.

 

 

 

모든 전교조 교사가 완벽한 인격자도 완전무결한 교사도 아니다. 미운 자식의 잘못은 더 크게 보이는 법이다. 친일세력의 후예들에게 친일 역사를 청산하자고 하고 전두환 노태우를 살인정권이라 하고 북한과 적대관계가 아닌 공존의 관계로 바꾸자는 주장은 친일세력, 살인정권, 반공교육으로 세뇌당한 사람들의 눈에 곱게 보일리 없다. 거기다 조중동과 같은 뒤가 꾸린 사이비 언론이 결사적인 색깔공세까지 펴는데 전교조가 빨갱이로 몰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교조도 고쳐야할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조합원들의 교육도 못하는 무력함이나 정파간의 세력다툼으로 대립과 갈등이 그치지 않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꼴볼견이다. 자기비판에 인색한 조직이라는 비판은 또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선거과정 때마다 나타나는 제도정치를 빼닮은 정직하지 못한 모습은 지난 민주노동당의 부정선거를 연상케 한다. 아무리 오픈 샾의 약점이라고는 하지만 이제는 희망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거듭 날 때도 되지 않았는가?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반공이라는 마취, 유신이라는 마취, 조종동의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한 전교조가 바로 보일 리 없다. 모든 전교조 교사는 도덕군자라든가 성직자로 착각하지 말라. 전교조 조합원이 아닌 교사가 전교조 조합원 보다 백배나 훌륭한 교사가 있듯이 전교조 교사가 전교조 조합원 아닌 교사보다 백배나 좋은 교사도 있다. 전교조를 비방하는 눈으로 권력의 나팔수노릇이나 하는 교총은 왜 비판받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안목으로 어떻게 전교조가 바로 보이겠는가?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