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섬진강 시인 김용택님의 강의를 듣고 나서 어떤 분이 물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습니까?”
참으로 어려운 질문을 김시인은 간단하게 답했다.
“자세히 보면 됩니다”
‘자세히 보는 눈, 그렇지! 사람들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그런 눈을 잃어버렸지. 자기 기준에서, 선입견으로 대충 대충 자신의 수준만큼만 보고 느끼고 만족하며 사는 데 익숙해 있다. 사실 그의 시를 보면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 삶에 쫓겨 눈여겨보지 못한 작은 것에 감탄하고 느끼고 시를 만든다. 이름 없는 풀꽃을 보고도 감탄하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하기만 한 농민들을 보고 그들을 고생시키는 정책에 분노하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대충대충 보고 말거나 겉(현상)만 보고 그게 사실(본질)이거니 하며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아니면 자신의 기준에서 세상을 보고 판단해 버리는 경우도 많다.
보도블록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는 이름 모를 잡초를 보고 감탄해 보지 않는 사람, 자연에 존재하는 생명이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오만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진실을 보고 좋은 시를 쓸 수 있겠는가?
이른 봄, 언젠가 도시 도로변에 조성한 화단에 진달래가 꽃을 피운 걸 본 일이 있다. 계절의 섭리를 어기지 못해 피어난 진달래는 깊은 산속 맑은 공기와 새소리를 듣고 자라면서 피워낸 그런 색깔의 진달래가 아니었다. 소음에 찌들고 오염된 빗물과 공기에 지칠 대로 지쳐 겨우겨우 피워낸 꽃은 이름은 진달래였지만 이미 그 색깔이며 모습은 도시의 피로를 뒤지어 쓴 그런 초라한 모습이었다.
진달래만 그럴까? 좋은 물과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자연과 더불어 살지 못하는 도시의 아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시멘트로 지은 아파트, 겉으로는 참으로 아름답다. 좋은 옷, 만난 음식, 하고 싶은걸 언제든지 하면서 사는 아이들, 그러나 그런 환경에서 사는 아이들은 진정으로 행복할까? 문명의 이기로 둘러싸인 시멘트벽이며 환경호르몬으로 꾸며진 벽지며 침구며 농약과 방부제가 섞인 음식을 먹으며 자라는 아이들은 도시의 도로변에 지쳐 피워낸 꽃처럼 자라는 건 아닐까?
아파트 열쇠를 목에 걸고 학원에 가지 않으면 놀 친구가 없는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자라고 있을까? 밤마다 하늘을 수놓는 찬란한 별들도, 비개인 하늘에 피워내는 무지개도, 바람이 나뭇가지를 간지럽히는 소리도, 반딧불의 유영도 보지 못하고, 학원과 학교를 개미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이 땅의 아이들은 무슨 색깔일까?
우리가 마시는 물은 옛날 옹달샘에서 솟아나던 순수한 물이 아니다. 없는 게 없는 호화판(?)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은 물의 오염, 자연의 오염처럼 생각이나 말, 판단하는 능력까지도 지치고 오염되지는 않았을까?
나의 눈에 비친 자연이 본래의 모습이 아니듯 우리가 보는 신문도 방송도 오염된 건 아닐까? 욕망이라는 신기루, 성공이라는 신기루, 출세라는 신기루... 그런 신기루를 쫒다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잃어버리고 사는 건 아닐까?
자본의 횡포에 찌들고, 승진을 위해 만든 정책의 희생물이 된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색깔이 바래가고 있는데 어른들은 말한다. ‘다 너를 위해서...’라고. 이겨야 산다고, 지면 죽는다고... 조금만 참으면, 어른이 되고 그 때는 네가 원하는 모든 걸 다 가질 수 있다고...
‘어느 날’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모든 오늘’을 저당 잡혀 사는 사람들은 행복하게 사는 것일까? 확실하게 보장도 되지 않은 ‘어른이 된 후의 어느 날’의 행복을 위해 청소년기의 모든 날을 사람대접 받지 못하고 살아도 좋을까?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 더 높은 것을 얻기 위해 정작 귀한 것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신을 잃어버리고 원하는 것을 다 얻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는가?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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