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플운동본부 홈페이지 켑쳐>
‘남의 말을 좋게 합시다.’
‘부정적으로 보지 말라’
이런 말은 얼핏 들으면 좋은 것 같지만 사실은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대충대충 적당히 살자는 주문이다. 이방원이 정몽주에게 읊어준 하여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게 아닐까?
시비지심(是非之心)이란 ‘옳음과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으로 맹자의 사단설(四端說 또는 성선설(性善說이라고도 함)에 나오는 말이다
‘선플운동’이 대통령 글에 선플달기를 하면 학생들의 봉사점수를 준다는 글을 읽다가 생각난 구절이다.
‘선플' 40개 달면 봉사활동 2시간 인정’한다는 학교의 방침에 따라 병원이나 양로원등에 봉사활동을 나가던 학생들이 컴퓨터에 앉아 댓글 달기에 열심이란다.
“멋진 검찰 힘내세요. 우리나라를 잘 지켜주세요”
이 대통령 부부의 야구장 키스 사진 기사에 달린
“좋은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정말 인간적이고 아름답습니다.”
이런 댓글이 학생들의 봉사활동 점수로 인정받았다.
‘옳음과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 즉 시비지심이란 사물에 대한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면서 나타나는 가치관의 성숙이다.
그런데 시비지심을 가릴 줄 모르는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선플로 봉사점수를 받아 상급학교진학이나 대학에 가는데 유리한 인센티브를 준다는 게 이치에 맞을까?
전북 고창의 한 초등학교 교장이 지난해 봄에 한 학생이 시청각실에서
현 대통령을 ‘명박이’라 부르자 주먹으로 때리고 귀를 잡아당기며
“대한민국에서 꺼지라”고 말해 말썽이 되고 있다. 초등학생이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 없다는 이유다.
초등학생이 이병박대통령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구별할 수 있는 판단 능력이 제대로 있을 리 없다.
주변 사람들이 한 말을 듣고 대통령 이름을 그냥 불렀다고 ‘대한민국에서 꺼져야할 만큼 중죄를 범했을까?
이런 수준의 아이들에게 남의 글을 보고 선플을 달라면 어떤 글을 쓸까?
맹장의 <공손추편(公孫丑篇)〉[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에 나오는 얘기다.
시험문제를 풀이하는 학교.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점수따기로 전락한 학교에서 초중학생들이 측은지심이나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라는 가치관이 확립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아이들에게 어떤 글에 선플을, 어떤 글에 악플을 달아야 하는 지 구별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거기다 대통령 글에 선플을 달면 봉사활동점수라니....?
<선플운동본부 팝업창:이 팝업창에는 봉사활동점수주기가 근거없는 비방이라며 명예를 훼손이라고 적고 있다>
말이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고 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다. 말하는 사람들의 의도를 숨기고 미사어귀로 상대방에게 하는 말은 진실성이 없는 말이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 이데올로기가 되기도 한다.
학교교훈이나 급훈으로 많이 인용되는 말 중에 ‘근면이니 성실, 정직’과 같은 말이 그렇다. 근면한 인간, 정직한 인간을 키운다는 데 무엇이 문제인가 라고 할지 모르지만 ‘근면하기만 한 사람’ ‘정직하기만 한 사람‘은 문제가 많다.
성실한 사람이 마피아 집단에서, 혹은 갱집단에서 살아간다면... 근면하기만 한 사람이 평생 노동자로 살아간다면.. 어떤 삶을 살까? 악플이란 사이버시대 견디기 어려운 인간 심성을 좀먹는 바이러스다. 블로그나 카페를 운영해 본 사람이라면 악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다 안다.
그런 악플을 달지 말고 선플을 달자는데 반대할 사람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사회현상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선플이라는 유혹은 객관적으로 세상을 볼 수 없게 만드는 마취제다.
‘악성(惡性) 댓글 또는 악성 리플(惡性reply, 악플)이란 상대방에게 모욕감이나 치욕감을 줄 목적으로 인터넷 상에서 상대방이 올린 글에 대한 비방이나 험담을 하는 악의적인 댓글을 말한다. 악플에 시달리다 목숨까지 끊는 사람이나 가족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선플운동을 쌍수로 환영해야겠지만 최근 학생들에게 ’대통령 글에 선플을 달면 봉사활동점수를 주겠다는 비교육적인 선플달기운동본부의 변절(?)에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선플달기운동본부 민병철 이사장(사)은 ‘악플 때문에 고통 받는 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칭찬과 격려의 선플로 밝고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했다'고 하지만 미성숙한 어린 아이들에게 비판의식을 마비시키는 선플운동은 본의와 다르게 왜곡될 소지가 높다. 뒤가 깨끗지 못한 사람. 허물이 많은 사람들이 ‘좋은 게 좋다‘거나 ‘부정적으로 세상을 보지 말라’는 말을 좋아한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시작한 운동일지라도 권력의 비위를 맞추거나 철없는 청소년들에게 비판의식을 마비시키는 운동은 사회운동이 아니라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이데올로기다. 선플운동본부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맹자의 ‘사단설’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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