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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의 땅, 축복의 땅 제주도를 가다

by 참교육 2011.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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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혓바닥을 깨물 통곡 없이는 갈 수 없는 땅.
발가락을 자를 분노 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 (녹두서평 책머리에서)

그 땅!

제주를 가다.

‘제주!’ 하면 나는 아름다운 땅, 축복의 땅 제주보다 이산하시인의 '서시'가 생각난다.

1992년이었던가? 최루탄 냄새가 온 몸에 베인 채, 내 평생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가서 밤새도록 감사일보고 오후에 바로 돌아왔던 기억이 남아 있다. 경찰에 쫓기며 싸우느라고 회계 기록은커녕 종이 쪽지에 아무렇게나 메모를 해 놓던 수준의 회계체계를 바로잡아야겠다고 감사를 하러 갈 때였던 것 같다. 전교조 초대감사위원장 직을 맡아 강원도에서 제주까지 최루탄 가스 냄새가 온 몸에 베인 채로 갔던 제주다. 제주를 갔지만 한라산이 어느 쪽에 붙어 있는지 조차 처다 볼 여유도 없이 다녀 온 후 처음이다.

퇴임한 후 건강을 되찾아야한다는 절박한 이유와 외손자를 봐 줘야한다는 아내의 바가지(?)에 못이겨 야반도주 하다시피 30년도 넘게 살아 온 마산을 떠나 온 지 3년. 청주에 사는 딸과 함께 한더위를 피해 8월 23일부터 3박 4일간의 여행이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탓이었을까 좋아하는 여행조차 차분하게 다니지 못했던 나에게 3박 4일간의 여행은 큰맘 먹고 떠난 들 뜬(?) 기분의 여행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제주란 즐기기 위함보다 한의 땅, 그 현장을 본다는 설렘이 더 컸다고 할까?

남들은 제주를 어떤 목적에서 다녀오는지 몰라도 내겐 제주하면 녹두서평 창잔호에 실린 이산하의 서시가 먼저 떠 오른다.

‘지금부터 어언 120년전

동아시아의 해군기지로서 조선이 결정된지
80년의 모진 세월이 흐른 1945년 불볕여름
....................
.....................

이렇게 사작한 서시다.

나는 그 때 이 시를 읽으며 너무 놀라 몇날며칠 밤잠을 설쳐야했다.
어떻게 대명천지에.. 그것도 학교에서 천사의 나라 미국과 국민의 권리와 재산을 지켜준다는 경찰이...
 
누가 잊었는가
누가 잊을 것을 강요하는 가
동상으로 썩어 문들어진 발가락을 자르며
뼈를 각는 모진 고문에 여성전사들의 생리마저 얼어붙는 밤
그들은 기어이 갔다
.............................
.............................
움직이는 것은 모두 우리의 적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보고 쏘았지만
글은 보지 않고 쏘았다
학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날

하늘에서는 정찰기가 살인예고장을 살포하고
바다에서 함대가 경적을 울리고
육지에서는 기마대가 총칼을 휘두르며
모든 처형장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던 그날
빨갱이 마을이라 하여 80여 남녀 중학생들을
금악벌판으로 몰고가 집단몰살하고 수장한데 이어
정방폭포에서는 발가벗긴 빨치산의 젊은 아내와 딸들을 나무기둥에
묶어두고 표창연습으로 삼다가
마침내 젖가슴을 두려내 폭포속으로 던져버린 그날

한 무리의 정치깡패단이 열 일곱도 안된

한 여고생을 윤간한 뒤 생매장해버린 그 가을 숲
서귀포 임시감옥 속에서는 게릴라들의 손톱과 발톱 밑에 못을 박고
몽키스패너로 헛바닥까지 봅아버리던 그날, 바로 그날
관덕정 인민광장 앞에는  사지가 갈갈이 찢어져
목이 짤린 얼굴은 얼굴대로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몸통은 몸통대로
전봇대에 전시되어 있었다

..........................................
..........................................

비행기에서 제주땅을 밟는 순간 나는 주문처럼 이 시가 떠올라 잠시 묵념을 올렸다.
가는 곳곳마다 폭력으로 얼룩진 민중의 피와 한이 서려 있는 땅.
시리도록 아름다운 땅 이 제주에 살상이 자행되던 일이 1948년 4월 3일부터 5월 11일까지....  
이름하여 4. 3항쟁....

정방폭폭포에서 그리고 아름다운 성산 일출봉에서.....
발길이 닿는 곳곳마다 내내 이산하의 시가 문득문득 떠올랐던 이유는 나의 과민한 성격 탓 만일까? 
........................(계속)

<정방폭포: 피비릿내나는 한이 스린 폭포가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곳으로 바뀌었다. 이들 중 과연 멏명이나 4.3의 제주를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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