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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이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골라 먹이고 학교와 학원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보내기만 하면 훌륭한 인격체로 자랄 수 있을까요?
‘학원에 가지 않으면 놀 친구가 없다’
‘아이가 놀고 있으면 왠지 불안하다’
‘100점만 받아오면...’
이런 생각을 하고 학원으로 학원으로 내 모는 어머니... 좀 더 비싼 학원, 좀 더 고액과외를 시켜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고 파출부며 노래방 도우미도 불사하는 어머니는 가장 훌륭한 어머니일까요?
기저귀를 찬 아이에게 영어 과외를 시키고 영어 본토발음을 하기 위해 혓바닥 수술도 불사하는 극성 엄마가 유능한 어머니일까요?
놀 친구가 없어 학원에서 학원으로 개미 쳇바퀴 돌듯이 쫒기며 사는 아이들은 정말 몸도 마음도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쳐야합니다. 그러나 학교는 무엇을 가르칩니까? ‘이겨야 산다. 지면 죽는다. 학교는 ‘성적지상주의’, ‘승자 독식주의’가 진리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무엇인 소중한 것인지 무엇이 귀한 것인지... 행복이 어떤 것인지... 바르게 산다는 게 무엇인지... 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존재라는 걸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아름다운건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가르치기 보다는 100점만 받으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 좋은 그만이라며 정답만 가르쳐주는 교육은 착한 교육일까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청소년기를 저당 잡히고 군대보다 더 엄격한 교칙에 묶여 시험문제 풀이로 날밤을 세우는 아이들.... 학원과 학교를 개미 쳇바퀴 돌듯 오가며 친구가 뭔지 자연의 소중함이 뭔지 모르고 오직 이겨야 산다는 삭막한 경쟁의식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님들. 내 자식이 지금 이대로 교육받고 자라면 정말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진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부모님들이 원하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아이를 경쟁 때문에 정작 가장 중요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상식적인 이야기, 사랑 때문에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한 번 짚어보기로 합시다.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할까요?
첫째, 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것부터 가르쳐야합니다.
성적이 나쁘다고 자살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얼굴이 못생겼다거나 가난하다는 이유로 혹은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한다고 자살을 하는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높아지자 뒤늦게 ‘자아 존중감을 길러야 한다고 시범학교니 연구학교를 만들어 쇼(?)를 하고 있습니다. 자아 존중감은 시범학교나 연구학교로 기르는 게 아니라 학교의 모든 교육과정이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교육과정 전체에 녹아 있도록 짜야합니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아이가 어떻게 내 부모나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소중하다는 것은 아는 사람만이 이웃을 사랑할 줄 알고 내 민족과 우리문화를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라고 했습니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가요? 돈이 사람보다 자산이 사람보다 소중하다는 풍토가 만연해 있습니다. 학교를 비롯해 그 어디에서도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걸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선(善)이요, 승자가 (善)이 됩니다. 내가 승자가 되기 위해 소중한 친구에게 노트조차 빌려주지 않는 삭막한 마음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선의의 경쟁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내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면 남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와 너, 우리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 인간존중의 가치관을 갖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지요. 교육은 근본은 인간에 대한 예의, 더불어 사는 지혜,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을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하지요. 말로는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면서 친구나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교육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셋째, 지식위주의 교육만이 교육이 아닙니다.
놀이를 빼앗긴 아이들. 머리는 있어 가슴이 없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놀이문화를 빼앗기고 학원에서 학원으로 전전하는 아이들은 자라서 어떤 인간이 될까요? 실천이 없이 말만 하는 사람을 ‘입만 살아있다’고 하지요. 유치원에서부터 초·중·고등학교시절. 아이들의 머리 속에는 실천과 연결되지 않는 관념적인 지식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약속이란 무엇인가? ‘다른 사람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하여 둠. 또는 그렇게 정한 내용’ 이렇게 사전에 나온 내용을 외워서 알긴느 하지만 약속을 어기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무엇일가요?
친구와 ‘오늘 오후 몇 시 어디에서 만나 기마전 놀이를 하자’는 약속을 하고 실제로 어기지 않도록 해보고 놀이를 하면서 규칙을 지키고 상대방에 대해 배려하고 질서를 지키고 인내하고 하는 과정에서 소중한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놀이문화를 빼앗기고 학원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학원으로 개미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는 아이들은 그런 귀한 경험하지 못하고 자라고 있습니다. 아이가 놀면 불안 한 어머니... 놀이는 살아 있는 공부입니다. 모르는 것은 배우면 되지만 그만그만한 나이에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체험은 나이가 들어 배우기는 어렵습니다.
네째,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이번 여름, 어마어마한 폭우와 태풍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너무나 아픈 경험을 통해 배웠습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화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 또 자연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실감했습니다. 사람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닌 자연의 일원입니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풀이 어떻게 자라고 꽃은 어떻게 피는지,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지 못하고 자랍니다.
시멘트로 지은 집에다 시멘트 길을 밟으며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 자랍니다. 생명의 근원인 태양이 얼마나 소중한지, 농부나 어부들의 땅방울의 가치를 모르고 자라고 있습니다. 나의 생명의 근원이 돈이 아니라 수고한 이웃이 흘린 땀의 대가라는 것 모르고 자라고 있다는 말입니다. 수량화된 지식, 칼로리를 따지고 영양가를 따지고 그런 개량화된 지식으로 세상을 보고 그런 안목으로 살아가도록 강요받고 있는 것입니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닙니다. 더불어 살아야할 공존의 대상입니다. 자연을 훼손하면 보복을 당합니다. 극지방의 얼음이 녹고 바다의 온도가 높아지는 엘리뇨현상, 라니뇨현상이니 하는 기상이변으로 인류의 미래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서양에서 들어온 지식, 서구의 자연관은 정복주의 세계관입니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참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오만한 사고방식이 지구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과 공존하는 세상의 살아왔습니다. 자연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 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자식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부모라면 오늘날 학교교육이 병든 교육이라는 것을 하루빨리 깨달아야합니다. 학교교육을 거부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학교에서 어련히 알아서 해주겠지...!’ 하지 마십시오. 교육을 상품이라고 선언한지 오랩니다. 상품이란 수요자가 좋은 상품을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이 받는 교육이 삶을 황폐화시키는 반교육이라면 부모들이 나서야합니다.
‘누군가가 해주겠지...!’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방심하고 있을 동안 사랑하는 아이는 너무 빨리 자라 좋은 교육 바른 교육을 받을 기회를 잃고 말 것입니다. 학교운영위원회든, 학부모단체든 나가서 적극적으로 바꾸려고 노력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고쳐주지 않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기회는 놓치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위대한 힘으로 병든 교육, 위기의 교육을 살려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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