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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훈장까지 포기 했지만 교단은 아직도...

by 참교육 2011.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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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교단에 첫발 2007년 2월, 정년퇴임을 했으니 교단을 떠난지 벌써 5년이나 됐네요. 
퇴임을 하면 누구나 받는 훈장. 저는 훈장이 없습니다.
무너진 교단을 후배들에게 물려주면서 훈장을 받기가 부끄러웠습니다. 

그 때 신문이며 방송까지 난리더군요.
지금까지 반납은 있어도 아예 포기한 사람은 없다며.... 
그때 나왔던 기사(조중동에까지 나왔어요..^8^)가 생각나 여기 올려 봅니다. 

퇴임 전 훈장 거부한 고교 교사  

                                                           연합뉴스 입력 2006: 11: 9"07"29

(마산=연합뉴스) 진규수 기자 = "교육 현실이 이 모양인데 나 혼자 훈장을 받기가 부끄러웠습니다"
정년 퇴임을 앞두고 내려온 정부의 훈장을 스스로 포기한 고등학교 교사가 있어 뒤틀려 가는 교육 현실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화제의 인물은 마산 합포고등학교에서 사회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 김용택(61)씨.

내년 2월 정년을 앞둔 김씨는 지난 10월31일 자신에게 주어진 정부의 옥조근정훈장을 받지 않겠다는 내용의 포기서를 경남도교육청에 제출했다.


근정훈장은 33년 이상 근무한 퇴임 교사 전원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자동적으로 훈장 수여 대상자가 된 김씨는 훈장 포기서를 제출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포기서를 직접 작성해 제출했다.

그는 포기서에서 "작금의 교육현실을 볼 때 과연 훈장이나 포상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을 했다"며 "입시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교육 현실에서 무거운 짐을 후배 교사들에게 남기면서 훈장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갈수록 무너져 가는 교육 현실을 외면하고 훈장을 받으며 퇴임을 하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


그는 "상응하는 공적 없이 재직기간에 따라 나오는 훈장은 의미가 없다"면서 "38년을 교육 현장에 있어왔지만 열악해진 교육 현장을 두고 떠나면서 훈장까지 받는다는 것이 부끄러웠다"고 설명했다.

그는 "교육이 무너졌다고 난리들인데 퇴임 교사에게 모두 훈장을 준다니 어이가 없다"며 "교사들이 해마다 실적을 내놓고 훈장을 받는데 왜 학교는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는 쓴소리를 덧붙였다.

초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마산지부장을 맡았던 김씨는 마산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근무하던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돼 학교를 떠난 뒤 1994년 복직된 이른바 '전교조 1세대' 교사다.

그는 "무너져가는 교육을 살리기 위해 활동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교사들이 구속수배를 당하기도 했다"며 "그럼에도 크게 달라진 게 없는 지금의 현실에서 선배로서 훈장을 받고 떠날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김씨가 교단을 떠나면서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은 입시 위주의 교육 속에서 아이들에게 인간으로서 배워야 할 것을 가르쳐주지 못한 것.

김씨는 "사람을 만들기 위한 교육을 하려고 했음에도 시험 문제를 외우게 하고 참고서 문제풀이를 해야 하는 현실에서 아이들에게 스스로를 아끼는 것을 가르쳐주지 못했던 것이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38년 전에 비해 아이들의 인간미가 사라지고 있다"며 "학교가 사회적인 존재를 키워내야 하는 데 개인의 출세를 위한 교육에만 매달려 개인적인 존재만 키워내다 보니 학교가 삭막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청소년에 대한 학교 교육 뿐 아니라 사회 차원의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교실이 무너지는 것"이라며 "현장을 감당해야 하는 교사들이 한계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학교 현실에 대한 걱정을 표시했다.

그는 이어 "교사들의 노력만으로 학교가 살아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교육부와 학부모, 교원 단체 등이 마음을 모아 교육을 살릴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nicemasaru@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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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교단을 지키는 선생님들께 장미꽃과 도종환님의 시 한 수를 올립니다. 

+ 어릴 때 내 꿈은

어릴 때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뭇잎 냄새 나는 계집애들과
먹머루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 녀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창 밖의 햇살이 언제나 교실 안에도 가득한
그런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플라타너스 아래 앉아 시들지 않는 아이들의 얘기도 들으며
하모니카 소리에 봉숭아꽃 한 잎씩 열리는
그런 시골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자라서 내 꿈대로 선생이 되었어요.
그러나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침묵과 순종을 강요하는
그런 선생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묶어놓고 험한 얼굴로 소리치며
재미없는 시험문제만 풀어주는
선생이 되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럴 듯하게 아이들을 속여넘기는
그런 선생이 되고자 했던 것은 정말 아니었어요.
아이들이 저렇게 목숨을 끊으며 거부하는데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편이 되지 못하고
억압하고 짓누르는 자의 편에 선 선생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아직도 내 꿈은 아이들의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물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 징검다리 되고 싶어요.
길을 묻는 아이들 지팡이 되고 싶어요.
헐벗은 아이들 언 살을 싸안는 옷 한 자락 되고 싶어요.
푸른 보리처럼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동안
가슴에 거름을 얹고 따뜻하게 썩어가는 봄 흙이 되고 싶어요.
(도종환·시인, 1954-)


퇴임식 때 제자들이 선물한 카메라로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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