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민주항쟁은 반독재 민주화운동
인내천 사상의 실현을 꿈꾸더 동학혁명, 4·3제주민중항쟁, 4·3 제주민중항쟁. 3·15 의거, 4·19혁명, 5·18광주민중항쟁 그리고 6·10 항쟁....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여정은 길고도 험한 길을 걸어왔다. 대한민국은 1987년 6·10 민중항쟁으로 쟁취한 제 9차개헌 현행 헌법은 주권자가 주인인 나라를 실현해 모든 국민이 행복추구권을 누리는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는가?
6월 민중항쟁은 1987년 1월 ‘박종철 공문치사사건’이 계기가 되어 그해 6월 29일까지 벌어진 반독재 민주화운동이다. 이 기간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 등이 기폭재가 되어 6월 10일 이후 전국적인 시위로 번졌다. ‘독재타도! 호헌철폐!, 민주쟁취!, 종철이를 살려내라! 한열이를 살려내라!’...6월의 뜨겁던 햇볕보다 더 뜨거운 열기가 전국의 22개 도시에서 24만명이 동시다발적으로 외친 구호다.
■ 1987년, 6월항쟁은 왜 일어났을까
1987년 6월 10일 ‘박종철 고문 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 쟁취 범국민대회’로부터 6월 29일 노태우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의 6·29 특별선언에 이르기까지 400~500만 국민들이 4·13 호헌조치철폐, 민주헌법쟁취 등을 요구하며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던 민주화운동을 일컬어 우리는 6월 항쟁이라고 한다.
우리가 사는 이 땅,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와 권리는 저절로 좋아진 것도 우연도 아니다. 위로는 1198년 고려 최충헌의 사노비 만적이 “왕후장상에 어찌 씨가 따로 있겠는가(왕후장상 영유종호)”를 외치던 천민해방 운동에서부터 1894년 동학혁명, 1919년 3·1혁명, 1947년 제주 4·3항쟁, 1960년 4·19혁명, 1979년 부마민주항쟁, 1987년 6·10 항쟁, 1980년 5·18 광주 민중항쟁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선열들의 불의에 항거해 나라를 지킨 저항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6월항쟁의 발단은 박정희의 독쟈정치와 유신헌법이 원인 제공자다. 군사정변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한 자. 종신집권을 위해 개헌을 무려 3차례나 비상계엄과 긴급조치를 아홉차례나 발령해 종신집권을 위한 유신헌법을 만들었던 독재자가 박정희가 아닌가? 18년간 박정희의 독재정치에 숨죽이며 살다가 10·26사태로 죽자 전두환이 12·12 군사정변으로 박정희가 만든 헌법으로 집권하자 우리국민들은 ‘독재타도! 호헌철폐!, 민주쟁취!, 종철이를 살려내라!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구호를 외치지 국민들이 일어선 것이다.
■ 6ㆍ10 항쟁의 전개과정과 의의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前대통령 사망 이후, 1980년 민주화의 봄을 기대하던 온 국민들의 여망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의 수혜자였던 전두환, 노태우를 위시한 신군부집단은 12.12쿠데타로 군권을 장악하고 정권탈취의 야욕을 드러냈다. ‘독재타도! 호헌철폐!, 민주쟁취!’ 구호를 외치며 저항하자 5월 27일 새벽 공수부대의 진압작전으로 166명을 학살하고, 행방불명자 65명, 상이 후 사망자 376명, 부상자 3,139명 등 피해자가 속출한다.
1987년 4월 13일 전두환은 임기가 1년도 안되어 임기 중의 개헌이 불가능하니, 현행 5공화국 헌법대로 차기 대통령선거를 치르고 국민이 요구하는 개헌논의를 중지시키고 제5공화국 헌법에 의한 정부이양을 핵심내용으로 하는「4·13호헌조치」를 발표한다. 전두환의 호헌조치와, 경찰에 의한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이한열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 등이 도화선이 되어 6월 10일을 전후한 20여일간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1987년 6월 10일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공식 주도한 국민대회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22개 주요 도시에서 약 24만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날 경찰은 6만여 명의 병력을 투입했지만, 전국 37개 도시에서 국민평화대행진 시위가 전개되고 3,467명이 경찰에 연행되었었다.
항쟁을 막기 위해 전두환은 6만명의 경찰병력을 배치했지만, 전국적으로 경찰서 2개소, 파출소 29개소, 민정당 지구당사 4개소 등이 파괴 또는 방화되었으며 3,467명이 연행되었다. 하지만 경찰의 원천봉쇄에도 불구하고 전국 34개 도시와 4개 군에서 130여만 명의 시민과 학생과 시민들은 국민평화대행진에 참여하여 경찰이 막을 수조차 없게 된다. 이에 겁을 먹은 노태우는 6월 29일, 국민의 민주화의 요구를 잠재우기 위해 대통령 직선제(直選制)로 하는 ‘6·29선언’을 발표한다. 노태우의 ‘속이구선언’과 김영삼, 김대중의 분열은 결과적으로 12·12쿠데타의 공범자 노태우에게 정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 6·29선언이란...?
1987년 6월 항쟁 직후인 6월 29일에 민주정의당의 대표 노태우가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여 발표한 6·29선언이란 1.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통한 1988년 2월 평화적 정권이양. 2. 대통령선거법 개정을 통한 공정한 경쟁 보장이양. 3. 김대중의 사면복권과 시국관련 사범들의 석방이양, 4. 인간존엄성 존중 및 기본인권 신장이양. 5. 자유언론의 창달이양. 6. 지방자치 및 교육자치 실시양. 7. 정당의 건전한 활동 보장이양. 8 과감한 사회정화조치의 단행이양 등이다.
■ 제 9차개헌 현행 헌법의 탄생
제5공화국에 대한 국민들의 끊임없는 불신과 저항으로 궁지에 몰린 집권여당의 대표가 발표한 이 선언으로 인해 헌법 개정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현행 제9차 개정헌법이 발의되었다. 제9차 개정헌법은 1987년 10월 27일 총 유권자의 78.2%에 대당하는 20,038,672명이 국민 투표에 참여하고 이 중 93.1%가 찬성한다.
개정된 재 9차 개헌 헌법에 따라 대통령선거가 치러져 노태우가 이듬해인 1988년 2월에 제13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이후 3당 합당으로 김영삼에 이어 김대중, 노무현의 민주정부가 탄생했지만 역사는 다시 이명박 박근혜시대와 윤석열정부로 이어져 국민이 원하는 민주주의는 아직도 먼 남의 나라 얘기가 됐다. 주권자가 주인인 나라 주권자를 위해 정치를 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언제쯤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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