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쓴 책 「이땅에 교사로 산다는 것은」첫 쪽에 나오는 글입니다. 저는 그 때 교직생활에서 보고 듣고 느낀 생각들을 가끔 제 홈페이지며 오마이뉴스를 비롯해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도서출판 불휘'에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 책에는 국회의원 권영길님과 섬진강시인 김용택님 그리고 도종환시인이 추천사를 써 주셨습니다.
공저로 낸 책 외에 제가 쓴 책은 한국현대사 자료집(전국역사교사모임)과 이땅에 교사로 산다는 것은(불휘) 그리고 김용택의참교육이야기-교육의정상화를 꿈꾸다(생각비행), 김용택의참교육이야기-사랑으로 되살아하는 교육을 꿈꾸다(생각비행)...이렇게 모두 4권입니다. 이 책 중에 썼던 글을 가끔씩 여기 블로그에 올리겠습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 글로 "너는 왜 학생회장에 출마하니?"입니다. 책은 2006년에 펴 냈지만 이 글은 2004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16년 전에 썼던 글입니다. 그런데 오늘 날 학교 현장은 아직도 별로 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 4차 산업시대 아날로그교육을 하고 있는 학교... 글쎄요 이런 교육으로 경쟁사회에서 능력을 발휘하며 민주시민으로써 살아 가는데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너는 왜 학생회장에 출마하니?"
"너는 왜 000학생회장 후보, 지지운동을 하느냐?"
수업을 들어갔더니 같은 반 '000 후보를 학생회장으로...'라는 어깨띠를 두르고 있는 학생이 있어 물어 보았다.
뜻밖의 질문에 놀랐는지 한참 망설이다가 하는 말이 "일년동안 가까이서 지켜봤는데 리더십이 있고...' 그런가? 내친 김에 후보 학생이 앉아 있기에
"너는 왜 학생회장 후보로 출마하기로 했니?"라고 물었다.
얼굴이 빨갛게 수줍을 타는 회장후보가
"리더십을 키울 수도 있고... 우리학교를 좋은 학교로 만들기 위해... "하며 머뭇거리고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성격 좋은 친구가 "선생님 게(그 아이)요, 대학 갈 때 가산점이 필요해서 그래요, 야! 임마, 안 그래 솔직히 바른말 해"" 하는 바람에 교실이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이 사진은 본문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잖아도 오늘 아침 출근하는데 피켓을 든 학생들이 교문 앞에 줄줄이 섰다가
"기호 0번 000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10여명씩 조를 짠 후보학생들이 연이어 자기 지지후보를 선전하느라고 목청을 돋우는 바람에 조용하던 학교가 떠들썩하다.
그런데 이건 어디서 듣던 소리 같다. 국회의원이고 시장이고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말. 출근 길에 줄지어 서서 한목소리로
"기호 0번 000후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다던 당선자가 국회에 가서 열심히 한 건 싸움밖에 없었던 걸 보면 그 '열심히 하겠다'던 열심히 앞에 '싸움'이 생략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혹 우리반 학생이기 때문에 지지하는 건 아니니? 다른 후보의 장단점과 공약을 알아보기라도 했니?" 라고 물었더니 묵묵부답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성 정치판에서 경멸하던 지연이나 학연 그리고 혈연을 내세워 선거운동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라고 물었지만 말을 못한다.
다시 학생회장 후보에게 물었다. '우리학교를 좋은 학교로 만들기 위해 출마했다'고 했는데 학생회장으로서 어떻게 하면 우리 학교를 훌륭한 학교로 만들 수 있니? 그건 교장선생님이나 할 약속이 아닌가?" 공약(公約)이 아닌 공약(空約)을 해서는 안 된단다. 학생회장으로서 할 수 있는 실천 가능한 약속을 해야지...."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다.
<학생회장 선거는 민주주의 교육의 학습장이 돼야...>
입시교육을 하는 학교에서 전교학생회 정부회장선거는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절호의 기회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맡겨두고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지도를 하는 학교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학생회장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회장을 감투라고 생각하거나 대학입학에 유리한 가산점을 얻기 위해서라면 아까운 시간을 내 치러지는 직접선거의 의미가 없다. 하기는 지금까지 중등학교에서의 학생회란 전교생의 대표기구가 아니라 학생부의 하부조직 정도 역할밖에 못했으니 그런 의미 부여를 할 겨를이 없다.
학생들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애절한 요구사항인 두발 자유화 같은 문제도 대의기구로서 학생회가 제대로 역할만 한다면 해결 못할 리 없다.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그리고 민주적인 교육의 실천장이 되도록 지도하지 못하는 것은 입시위주교육이 낳은 또 하나의 교육실패다. 학생들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학생자치를 원천적으로 봉쇄해 '학생회장이 학생들의 뜻에 따라 학생회를 개최하거나 안건 상정도 할 수 없도록 규정한 학교조차 있다. 어떤 학교는 학교장이 학생회 개최에 대한 필요성에 따라 회의 개최를 명하면 학생부장이 학생회 간부를 불러 안건을 설명한다. 안건에 대한 예고기간(급할 때는 당일 방송을 통해 회의소집만 알림)을 거쳐 회의가 개최되면 학교장 또는 학생부장의 안건 설명을 듣고 질문 몇 번 하다 통과하면 그만이다.
경우에 따라 학급이나 학생회 간부가 생각한 건의사항 정도가 기록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전교학생회 안건들을 보면 '소풍 장소 선정', '체육대회 경기종목 선정', '수재의연금 내는 방법 및 액수 선정', '스승의 날 행사 준비' 등이 회의록에 기록되어 있다.'( 2004년 마산, 창원지역 고등학생 학생인권보고서)
<학생회장 출마 자격이 학업성적 우수라니...>
더더구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전교학생회정부회장 출마자격이 '학업성적이 우수하며 전 학년도 성적(상위 40혹은 50% 이내, 前학기 성적2/3 이상, '우' 이상인 자. 양, 가(50% 이내)가 없는 자, 前학기 계열석차 1/3 이내인 과목이 과반수인 학생...'등으로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조항을 두고 있다. 성적뿐만 아니라 '품행(성격)이 바르고 타의 모범이 되는 자. 지휘통솔 능력이 있는 자, 70∼90% 이상 출석, 교내봉사 등의 처벌이 없는 자...' 등 민주적이지 못한 관행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학교는 있어도 교육이 없는 학교'라는 평가는 우연히 나온 말이 아니다. 학교운영위원회라는 법적인 기구가 있지만 1, 2년 후에는 국가원수나 국회의원을 선출해야할 고등학생조차 운영위원회에 참가해 의견을 진술하고 토론할 훈련의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 대표성이 없는 대표는 독재의 외피를 쓴 형식적 민주주의다. 싸움을 하다 임기를 마치는 국회가 파행을 반복하는 이유도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가 입시준비를 하는 한 국회가 민의의 대표기구로서 구실을 제대로 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 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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